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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종으로 다가오는 기적(시 1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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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으로 다가오는 기적(시 107:8).

  오늘은 옛날 얘기로 말씀을 시작할까 합니다. 아주 먼 옛날, 2008년의 일입니다. 그때는 제가 미국에 간지 1년이 조금 넘은 시기였습니다. 그 해 겨울은 아내와 제가 아틀란타에서 맞는 두 번째 겨울이었습니다. 아틀란타는 보통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데요, 저희 부부에게 2008년 겨울의 시작은 매우 추웠습니다. 왜냐하면 가정형편이 극도로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여유도 없어지고, 가슴도 답답하고, 뭐 가슴도 무척 시렸습니다. 저는 그때 새삼 깨달은 사실이 있는데요, ‘돈 없는 사람들의 겨울은 정말 춥겠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11월쯤 되었을 때에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결혼하면서 가져왔던 모든 돈은 1년간의 생활비와 3학기 등록금으로 모두 소진했습니다. 돈은 이미 바닥났지만, 부모님의 형편도 좋지 않아져서 송금 받기도 힘들어졌습니다. 더욱이 환율은 1달러당 1500원이 넘어섰는데, 1년 전에 비해 170%정도가 상승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기숙사 월세는 세 달씩이나 밀리게 되었고, 수중에는 50달러, 약 7만원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가면 미국에서 홈리스가 되어야할 판국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이 한 달 동안 생활하기 위해서는 기숙사비를 포함해서 최소 1900불이 필요했습니다. 사실 1년 전만해도 1900불의 돈은 180만원 정도였는데, 환율이 오르니 약 280만원 정도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12월이 지나면 4000불, 약 650만원 정도의 수업료도 내야했습니다.
  1년 동안 미국식 수업에 힘겹게 적응하니, 이젠 생각지 못했던 경제적인 압박이 너무 커져갔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않좋아진데에는 물론 환율 문제도 있지만, 제가 사역의 자리를 잡지 못했고, 제 아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 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하나님이 어떻게든 해결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믿음과 염려사이에서 갈팡질팡 했습니다. “설마 국제미아가 되겠어?” “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1년간 돈을 벌고 다시 와야 할까?” “아니야, 하나님께서 학업의 끈을 계속 이어주실꺼야” “그래, 주님이 주시는 기회를 잘 포착하자. 잘되면 할렐루야, 안되면 아멘 아니겠어?” 저는 계속 염려하고 기도하고 걱정하고 기도하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더욱이 최소 하루에 10시간 이상 공부하며, 경제적인 걱정까지 해야 하는 것은 정말 힘겨운 상황이었습니다. 다 이기고 나니, 간증할 수 있지만, 당시는 정말 하루하루가 인고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저는 곧 믿는자로서의 삶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녁마다 가정예배를 드리며 경제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기도하며 찬양했습니다. 살통이 없었기에, 쌀통을 붙잡고 기도하지는 못했지만, 정말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눈물과 통곡이 있었지만, 결국 저와 아내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우리 가정의 길에 걱정의 그늘을 씌우기보다 기쁨 안에서 순종하며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남들이 대학원을 3년 만에 졸업한다고 저도 3년 만에 졸업해야 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며 7년 만에 졸업하면 또 어떻습니까? 3년 동안 배울 것을 7년 만에 배우면 스쳐지나갈 것들도 기억하며 더욱 자세히 배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자금을 펀딩할 수 있는 루트를 열심히 찾으며 모든 것에 도전했습니다. 여러 기관과 학교에 장학금을 신청하고, 일자리도 알아보았고, 인턴쉽을 위한 서류도 꼼꼼히 준비했습니다.  
  그러한 노력을 기울인지 두어 달쯤 지났습니다. 12월이 다 지나갈 무렵, 저는 인턴 전도사로 섬기고 있던 교회의 수요예배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2년 만에 성인예배의 설교를 하다 보니 다소 떨리긴 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설교를 마쳤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려는 찰나, 여선교회 회장님이 봉투를 주셨습니다. 저는 그 안에 분명 무엇이 들어있을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뜻 받을 수 없었습니다. “엇??”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느새 제 오른손이 의지와 상관없이 봉투를 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생활고는 사람을 이렇게 염치없게 만드는 모양입니다. 
  봉투 안에는 자그마치 150불, 약 25만원이나 들어있었습니다. 50불로 열흘을 버텼던 우리 가족에게 150불은 너무나 큰 액수였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전혀 몰랐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기적의 첫 단계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25만원이라는 돈은 한가정의 한 달 생활비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12월 마지막 주에 학교의 장학위원회로부터 E-메일 한통이 왔습니다. 수없이 기도하며 신청했던 장학금에 관한 소식이었기에, 아내와 함께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메일을 읽어나갔습니다. 이윽고 마지막 문장을 읽을 차례가 되었는데, 그 마지막 문장은 이러했습니다. “축하합니다. Mr. 문, 학교는 당신에게 2009년 봄 학기의 장학금으로 3700불을 추가지급 할 예정입니다.” 3700불이면 약 560만원의 돈이었는데, 저는 기존의 장학금과 합쳐 한 학기 수업료를 면제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사기도만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게 죄송할 따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또 한 달 후, 2009년 1월부터 저를 한 장로교회의 청소년부 전도사로 보내주셨는데, 교회로부터 매달 1000불, 약 150만원의 생활비도 지원받게 해주셨습니다. 
  또 한 달 후, 2월 달에는 학교에서 12명을 뽑는 섬머인턴쉽과정에도 합격시켜 주셨습니다. 저는 당시 유일한 외국인 학생으로 뽑혔는데, 제 영어실력과 성적으로는 결코 합격할 수 없던 자리였습니다. 다만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신 것뿐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6주의 실습과 1주의 세미나를 수료하면 5000불, 약 750만원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다음 학기의 수업료도 면제되었고, 약 한 달간 기숙사비도 마련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그렇게 아틀란타에서의 두 번째 겨울을 은혜 안에서 따뜻하게 보냈습니다. 정말이지, 하나님은 넉 달 동안 매 달 크고 작은 기적들을 보여주시며 저희 가정을 인도해주셨습니다. 절망 가운데에서도 소망의 끊을 놓지 않게 붙들어주셨습니다. 비록 호화로운 생활은 아니었지만, 우리 부부는 날마다 기쁨으로 가득 넘치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2008년 아틀란타의 겨울을 떠올리며 “겨울의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기적이면 기적 아닌게 어딨어?”라며 이것이 어떻게 기적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긴, 많은 사람들이 로또 1등에 당첨되거나 불치병에서 회복된 경우만을 기적이라고 부르니 말입니다. 아마도 그들 중 대부분은 베드로가 그물을 던졌을 때, 황금이나 호랑이 같은 것들을 끌어올렸어야 기적이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크리스천에게 하나님의 기적이란 다양한 모양으로 펼쳐집니다. 때로는 웅장하게, 때로는 소박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복잡한 삶을 살다보면 수없이 어려운 상황들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때로는 모진 풍파가 나를 흔들기도 하고, 세차게 몰아치는 눈보라에 한 걸음도 떼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일수록 우리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말씀드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출애굽을 결심한 때가 언제였을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 구원해주세요”라고 부르짖는 모습을 보신 직후 출애굽 시킬 결심을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장의 마지막 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울부짖음을 하나님이 들으시고 기억하신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뒤 이어 나오는 출애굽기 3장 1절은 하나님이 지도자 모세를 부르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울부짖음을 듣자마자 출애굽이라는 기적적인 사건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하고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 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눅 11:9)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구할 때, 하나님께서 행해주시는 기적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게 됩니다. 
  삶 한가운데 홍해바다가 여러분을 삼키기 위해 넘실거리고 있습니까? 먼저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바다를 가르시고, 마른땅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홍해바다의 거칠고 무섭게 보이는 파도에 집중하지만, 하나님은 그 안의 마른땅을 보고 계십니다. 
  결코 현상에 집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현상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홍해바다요? 별거 아닙니다. 하나님이 손 대시면 우리가 보게 될 것은 홍해가 아니라 마른 땅입니다.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고,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며, 죽음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혹시 우리들의 삶이 난파선처럼 산산조각 부숴 졌다 하여도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조각난 퍼즐을 맞추시듯 조각난 우리들의 삶도 맞춰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순종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함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인 것처럼, 순종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을 거저 이루어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민감하게 반응하여 순종할 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주십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한 번 살펴볼까요? 어느 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희 고향을 떠나 내가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었죠, 75세였습니다. 하나님은 한 늙은이에게 삶의 터전과 친척을 떠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너로 인해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가야할지도, 어디로 가야할지도 몰랐습니다. 지금이라면 인터넷을 통해 미리 정보라도 수집했겠지만, 당시는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막막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그저 하나님의 주신 언약을 믿고 말씀을 따라, 가나안으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백척간두진일보 시방세계현전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백 척, 약 330m나 되는 대나무의 끝에 간신히 서 있는 사람이 한 발을 내딛을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한 번 상상해볼까요? 지금 여러분이 63빌딩보다 30층이 높은 90층 높이의 건물 옥상 난관에 서 있습니다. 자, 그리고 허공을 향해 한 걸음 내 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아찔한 순간입니까? 
  아브라함의 상황이 이와 같았습니다. 당시 낯선 곳으로 떠나는 길은 목숨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위험했습니다. 실제로 길을 떠나면서 몇 차례의 위기도 겪었습니다. 그런 길을 선뜻 나선다는 것은 굳은 믿음을 기반으로 한 순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마침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한 걸음 내딛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셨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한 어부가 허탈하게 그물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밤새 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던져보았지만, 헛수고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은 뭐를 해도 안 되는 날이구먼.’ 어부는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사람이 자신의 배에 올라 타, 알 듯 말 듯, 아리송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듣기도 짜증나는데 이제 명령까지 하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 이 어부는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고기잡이의 전문가인 나도 실패했는데, 당신이 감히 내게 명령해?’ 어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 어부의 이름을 얘기했나요? 이 어부가 누굴까요? 이 어부의 이름은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나 곧 베드로는 신비스러운 힘에 이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이런 이야기가 튀어 나왔습니다. “선생님, 제가 밤새도록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지만, 당신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 때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물이 끊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잡힌 것입니다. 이 날 잡은 물고기는 두 배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풍성했습니다.
  사실 우리 삶은 십자가에서 순종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기적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죄의 종노릇 할 수밖에 없던 우리가 천국백성 되었고, 나만 생각했던 이기적인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생각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은 우리 인생의 시작점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당신의 자녀에게 다양한 기적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종은 기적의 디딤돌이며, 믿는 자에게 기적은 끊임없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부터 청년사역과 중고등부 사역을 하며 의문점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젊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기적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청년들과 함께 필리핀 선교사님의 간증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척박한 오지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 역경을 이겨내고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님의 간증은 정말 은혜로웠습니다. 그러나 청년들과 함께 교회를 나오면서 그만 듣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형제가 다른 형제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선교사님이 대단하시긴 한데, 과장이 너무 심해. 말도 안 통하는데 매 번 어떻게 그렇게 쉽게 고비를 넘기냐? 기적이 그렇게 쉽게 일어나겠냐?”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무척 허탈해졌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이렇게 다르게 생각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반응했겠습니까? 성경강해를 하며, 믿음이 적다고 핀잔을 주었겠습니까? 아니요, 당시 저는 그 청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그 청년의 말이 어느 정도 맞기도 합니다. 기적은 결코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유감스럽게도 그 말이 옳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변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바라고 구하는 믿음의 자녀에게만 하나님의 기적은 보여 지게 됩니다.  
  마가복음 5장과 누가복음 8장에서,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실 때였습니다. 그의 딸은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고, 많은 사람이 통곡하며 소녀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다만 자고 있을 뿐이다.” 
  그 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기억하시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터무니없게 생각하며 비웃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의 반응은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에, 불가능한 소리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어진 광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소녀의 손을 잡고 일어나라고 하자, 소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성도님들께 진지하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혹시 지금 성도님들께서 빠져있는 절망과 슬픔의 늪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지금 성도님들의 처한 상황에서 조금도 나아질 것 같지 않은가요? 
  만약 그렇다면 눈을 감고 손을 내밀고 계시는 하나님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늘 나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미세하게 들리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속삭임을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얘야, 손을 잡고 빨리 나오렴. 너를 위해 이만큼 큰 기적을 준비했단다.” 그리고 눈을 떠보면, 우리가 허우적대던 절망의 늪은 어느새 작고 아름다운 시냇가로 바뀌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는 불가능이란 우리가 매일 주님의 음성을 듣지만 귀 귀울여 듣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서 울며 통곡했던 사람들처럼, 그리고 간증집회에서 엉뚱한 것을 들었던 한 청년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앉은 자도 일으키시고, 듣지 못하는 자도 듣게 하셨으며, 눈먼 자도 뜨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죽은 영혼도 살리셨습니다. 지금, 그런 주님이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제 생각에는 불가능한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이 행해주시는 기적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졌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에 많은 것들은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수도 있겠지만, 그것마저 푸른 초원으로 바꿔주실 그 기적, 너무 아파 신음조차 낼 수 없는 순간에, 환희의 미소를 짓게 하실 수 있는 그 기적을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간다는 것은 답 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배우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바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이신 귀하신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깜깜할지라도, 지금부터 하나님이 주실 기적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단 1분 뒤에 일어나는 일조차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최선의 상황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를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잘되면 할렐루야. 안되면 아멘!”을 모토로 복된 삶을 펼쳐 가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은 크고 작은 기적들을 우리 삶 가운데 활짝 펼쳐주실 것입니다. 다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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