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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홍수 심판의 두 원인 (창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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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심판의 두 원인 (창 6:1-4)

창세기 6장은 홍수가 일어나기 전 인간들의 상황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쓸데없이 옛날이야기를 들어야 됩니까? 이것은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노아의 때와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때가 비슷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 24:37~39).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의 상황이 노아의 홍수가 나기 전 상황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 시대에 홍수가 나기 전 상황을 옛날이야기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홍수 이전의 상황을 지금 우리의 상황과 동일하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하지만 먹는 것도 과하면 탐심이 되고 마시는 것도 과하면 취함이 되고 결혼도 잘못하면 심판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홍수가 나기 120년 전에 경고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 6:3). 

이 말씀은 물론 홍수 이후에 인간의 수명이 120세로 짧아진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하나님이 심판을 하시되 120년 동안은 심판을 미루시겠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합니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홍수가 났으니까 창세기 6장의 말씀은 노아가 480세 되던 해에 임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 당시 노아의 아버지 라멕과 할아버지 므두셀라도 살아있었습니다. 라멕은 홍수나기 5년 전에 죽었고 므두셀라는 홍수날 때까지 살아있었습니다. 노아와 라멕과 므두셀라 이 세 사람이 무엇을 했느냐? 장차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므로 죄악에 빠져 사는 사람들에게 죄악에서 돌이키고 회개하여 경건하게 살라고 증거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홍수가 났을 때는 노아의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죽고 오직 노아의 여덟 식구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면 노아의 때에 사람들이 어떤 죄악에 빠졌기에 홍수 심판이 오게 되었느냐? 오늘 본문은 두 가지 죄악을 말하고 있습니다. 

Ⅰ. 홍수 심판의 첫째 원인은 혼합결혼이다 

홍수 심판이 오게 된 첫째 원인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결혼이 잘못되면 심판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창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외모만 보고 결혼했습니다.
 
대부분 남자들의 결혼조건은 일단 외모가 예뻐야 됩니다. 여자의 외모가 예쁜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의 외모만 보고 결혼하게 되면 망하는 수가 있습니다. 사사기 14~16장을 보면 나실인이었던 사사 삼손이 블레셋 여자 들릴라의 얼굴만 보고 사랑에 빠져서 그 여자를 아내로 취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힘의 근원인 머리카락을 깎이고 두 눈이 뽑혀서 맷돌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여자의 외모만 보고 아내로 취한 것 때문에 삼손은 망한 것입니다. 홍수 이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외모만 보고 아내로 삼았습니다. 사람의 딸들은 외모만 아름다웠지 내면은 매우 불경건했습니다. 이런 여자들과 하나님의 아들들이 결혼했기 때문에 홍수 심판이 온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고 사람의 딸들은 누구냐는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과 목사들은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천사가 사람의 딸들에게 반하여 결혼했고 네피림이라는 거인을 자식으로 낳았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에는 두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첫째, 욥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들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욥기는 창세기보다 먼저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욥기 1장 6절, 2장 1절, 38장 7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들을 가리키니까 창세기 6장 2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도 천사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둘째, 성경은 아니지만 외경으로 분리되는 에녹서를 보면 천사가 내려와서 사람의 딸을 취해 자식을 낳았는데 거인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마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와 같습니다.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다가 나무꾼이 선녀의 옷을 숨겨 결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성경적인 근거는 욥기에 나오는 성경구절이 전부인 것입니다. 

이처럼 환상적인 해석은 결정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첫째,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성도를 가리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천사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지만 성도들을 가리키는 경우도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호 1:10).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신 14:1).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천사만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부분적인 사실을 전체로 확대한 잘못된 해석인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사들은 결혼하지도 않고 자녀를 낳는 일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마 22:30). 부활 때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천사들과 같이 되어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서 자녀를 낳을 일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천사들의 본질과 인간의 본질은 완전히 다릅니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히 1:14). 천사들은 영적인 존재로 육신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넷째, 천사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해서 낳은 존재가 네피림이라는 생각도 잘못됐습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6장 4절은 당시 네피림이 있었다고만 이야기하지 네피림이 천사의 자녀라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네피림이라는 것은 거인을 말합니다. 홍수 이전에 거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홍수 이전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거인들이 있습니다. 저도 어려서 저희 동네에 키가 2m 30cm인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최홍만 선수나 농구선수 중에도 키가 큰 거인들이 있지 않습니까? 민수기에도 거인들이 등장합니다.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 13:33). 민수기 13장 33절에서 네피림은 가나안 원주민인 아낙자손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네피림은 천사의 자녀가 아니라 사람의 자녀 중 키가 큰 사람으로 보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다섯째, 만약 사람의 아들들이 천사들이라면 이들이 선한 천사일리가 없습니다. 선한 천사가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고 땅에 내려와 여자를 취해서 자식을 낳겠습니까? 결국 이런 일을 하는 천사는 악한 천사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악한 천사들을 귀신이라고 부르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겠습니까? 조금만 생각해봐도 하나님의 아들이 악한 천사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섯째, 더 결정적인 것은 홍수 심판이 악한 천사들의 죄로 인한 심판이 아니라 인간들의 죄에 대한 심판이라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 6:5~6). 홍수 심판은 사람의 죄 때문에 내리신 것이지 천사들의 죄 때문에 내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여섯 가지를 이야기해도 하나님의 아들이 천사라고 믿으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하나님의 아들이 천사일 리가 없다고 확신합니다. 역사상 수많은 목사들이 성경을 연구하여 내놓은 전통적인 견해가 옳은 것입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셋의 후손으로 경건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가인의 후손으로 불경건한 사람들입니다. 

이 두 계보는 영적으로도 구별되어야 하고 혼인관계로도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셋의 후손들의 아들들이 가인의 후손들의 딸을 보니까 키도 크고 외모도 예뻐서 결혼한 것입니다. 결혼을 하면 자녀 교육은 보통 누가합니까? 불경건한 엄마가 자녀를 교육하여 몇 세대가 지나가면 결국 불경건한 자녀만 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의 여덟 식구를 제외하고 온 인류가 불경건하게 되었고 홍수 심판이 오게 된 것입니다. 

저는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목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몰몬교를 인정하는 발언을 해서 욕먹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복음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도 이분이 한 말 중에 참고할만한 말이 있습니다. “신자와 불신자가 결혼하는 것은 마귀를 장모로 모시는 것과 같다.” 

마귀의 딸이 여러분의 아내라면 어떻게 복을 받겠습니까? 신자와 불신자의 결혼은 신자의 부패를 가져오게 되고 점진적으로 부패하다가 결국 심판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불신자와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가 아니라 ‘불신자와의 결혼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은 자녀의 배우자 될 사람이 아무리 훌륭하고 잘 생기고 성품이 좋아도 불신자와는 결혼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결혼하겠다고 끝까지 우기면 교회에 데리고 나와서 기초 성경공부를 다 마치고 침례 받고 주일날 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겠다고 각서를 쓰고 결혼시켜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시키지 말아야 됩니다. 성령님을 모신 사람이 악령을 모신 사람과 어떻게 평생을 같이 삽니까? 외모 예쁜 것은 3개월 이상 못갑니다. 3개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예쁜 사람이나 안 예쁜 사람이나 별 차이 안 납니다. 물론 외모가 예쁘면 좋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들어있는 신앙인 것입니다. 

결혼뿐만 아니라 교회와 세상도 절대로 혼합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세상의 방법을 써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세상과 혼합되면 교회는 부패하고 결국 심판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은 기독교가 왕성한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 기독교는 아주 부패했습니다. 

미국에서 현재 새롭게 일어나는 3대 운동이 있는데 하나는 신흥교회 운동입니다. 다른 말로 ‘이머징 처치’(emerging church)라고 하는데 ‘이머징’이 어디서 나온다는 말인데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이상한 혼합종교 같습니다. 

또 하나는 목적이 지향하는 교회 운동인데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책을 지은 ‘릭 워렌’이라는 목사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무슨 목적으로 이끄는지 분명하질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사도 운동인데 여기서 주관하는 집회에 가보면 성경에 관련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천사를 봤다느니 예언을 한다느니 이런 이야기만 합니다. 

저는 이 사람들보다 차라리 무당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당은 자신을 무당이라고 하지 목사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오면 왜 왔냐고 호통도 칩니다. 그런데 신사도 운동을 하는 정작 무당 같은 사람들은 자신을 목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이미 3대 운동이 전국 각지에 퍼졌고 이제는 한국으로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런 운동을 미화시켜 책을 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속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교회는 이방 종교의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부산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회의가 열린다고 합니다. 우리 침례교는 그런 곳에 가담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해도 상관없습니다. 왜 우리가 1960년 이후로 공산주의 좌파사상에 물든 그런 협의회를 세금을 들여서 도와줘야 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교회는 세상과 혼합되어서도 안 되고 무당이나 공산주의의 방법을 써서도 안됩니다.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말씀과 기도에 힘쓰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깨끗한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Ⅱ. 홍수 심판의 둘째 원인은 사람들이 성령님의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 6:3). 여기서 나의 신은 성령님을 뜻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앞으로 사람과 영원히 함께하지 않으시겠다고 해석해야 합니까?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부분부정입니다.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그 속에 성령님이 계시게 됩니다. 어떤 분은 기도하다가 성령 체험을 하고 나면 깜짝 놀라면서 자기 안에 성령님이 계시는 줄 이제 알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기도를 열심히 해보십시오. 성령님이 계시다는 증거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안에 성령님이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에게서 영원히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한번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고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사람은 지옥가기 다 틀린 것입니다. 하지만 구약시대는 다릅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령님이 왔다 갔다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계시다가도 죄를 지으면 떠나시고 이어서 심판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성령님이 120년 동안만 사람들과 함께 계시다가 떠나실 것이고 이어서 심판이 온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그 역사를 거두실 때도 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홍수 이전 구약시대에는 성령님이 사람들과 함께 거하셨고(abide) 다투기도(strive) 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느냐? 세 가지로 역사하셨습니다. 

첫째, 죄를 억제하십니다(restraining). 사람은 때로는 복수하고 싶어서 사람을 죽이고 싶을만큼 미울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성령님께서 막으시는 것입니다. “만약 네가 사람을 죽이면 너만 손해다. 원수를 용서해라. 원수를 위해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해서 용서해라.” 이렇게 죄를 막으시는 것입니다.
 
둘째, 죄를 책망하십니다(convicting).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8).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한 여인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손가락하면 모세가 생각났습니다. 시내산에서 두 돌비를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돌비에 기록하셨기 때문입니다. 두 돌비는 바로 십계명이었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다가도 ‘나는 십계명을 어긴 적이 없나?’ 이런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죄 없는 자는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자 그냥 돌을 바닥에 두고 가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원수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죄가 있음을 성령님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심판이 온다는 것을 경고하십니다(warning). 홍수 심판 이전에 성령님은 앞으로 너희가 죄를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악하게 살면 물 심판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동일한 경고를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앞으로 이 세상은 불로 망할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불 심판이 온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러시아에 있는 핵폭탄만 다 터져도 이 세상은 불로 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노아 시대에도 사람들은 물 심판이 올 것이라는 성령님의 경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창 6:3). 육체가 된다는 것은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죄를 고집하는 죄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이 책망하고 경고해도 무시하는 것입니다. 120년 동안 계속해서 역사하셨지만 계속해서 경고를 듣지 않자 성령님은 떠나시고 결국 궁창 위의 물을 터뜨려서 홍수로 심판을 하신 것입니다. 120년은 경고의 기간이었고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였지만 오직 노아의 여덟 식구만이 성령님의 경고를 받아들였습니다. 


결론 

물 심판은 배를 만들어서 살아남았지만 불 심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믿고 죄 용서함을 받아 성령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홍수가 났을 때 인구는 거의 10억이었다고 합니다. 10억 명 중에서 노아 식구 8명만이 살아남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불경건하게 살아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는 세상과 교회가 혼합되어 구별이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아무리 경고해도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이 시대는 신학적인 배교도 심합니다. 신학자들이 별 헛소리를 다합니다. 또한 영성의 배교도 극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바른 신앙과 바른 윤리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물 심판은 지나갔어도 불 심판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 가지 잘못했다고 바로 심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러셨다면 우리는 벼락을 맞아도 10번은 더 맞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가 쌓일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기다리시다가 죄가 쌓이게 되면 그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죄가 많이 안 쌓였으니까 더 지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쌓여서 심판이 오기 전에 돌이켜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 죄로부터 돌이켜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여 경건하게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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