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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 (창 2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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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 (창 28:10-22)

요즈음 대학 입시철인데 12년 동안 공부했지만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 쉽지 않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취업이라는 관문이 있습니다. 

‘빅데이터 국가전략 포럼’ 자료를 보니까 고교나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3분의 1 정도는 3년간 할 일 없이 지낸다고 합니다. 어렵사리 중소기업에 입사해서 대기업 이직을 희망하지만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외모가 문제가 되면 성형이라고 해서 취업을 하려고 합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외모도 스펙, 취업 성형 열풍’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장기적인 취업난 속에서 1013년 상반기 공채를 앞두고 성형외과에 취업성형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최근 한 취업포털에서 대학생 3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본 결과 10명 중 3명은 취업을 위해 성형 수술을 고려한다고 합니다. 취업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형수술이라도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요즈음 천국 문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는데 문지기가 생명책에 기록된 얼굴과 실제얼굴을 비교하는데 너무 성형을 많이 하여 대조하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지옥문 앞에도 사람이 길게 늘어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 때문에 지옥 내부 수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도 한국 사람들이 불가마를 많이 다녀 예전의 온도로는 지옥 형벌이 의미가 없어져 더 뜨겁게 하기 위해 내부 수리 중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이 땅에 살면서 무엇인가를 다 이루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럴 때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야곱도 그랬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간발의 차이로 둘째 아들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가졌을 때 이미 하나님께서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25:23)”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리브가의 뱃속에서 부터 큰아들 에서가 아니라 둘째 아들 야곱이 아브라함의 언약 계승자가 될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태어난 순서는 에서가 먼저 나왔지만 야곱에게 아브라함을 계승할 영적 장자권을 줄 것을 약속한 것입니다. 아마 이 사실을 어머니 품속에서 살았던 야곱은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매사 아버지는 형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은 고기를 좋아하셨는데 사냥꾼인 에서가 고기를 사냥해오면 그것을 잡수고 에서를 편애하였습니다. 내성적이고 욕심이 많은 야곱은 억울했을 것입니다. 

야곱이라는 이름 자체가 '뒤꿈치를 잡다, 빼앗다' 혹은 '약탈자' 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야곱은 에서에 대해 경쟁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장자는 부모로부터 다른 형제보다 2배의 재산을 물려받고, 가장으로서의 권한을 물려받게 됩니다. 아버지 뒤를 승계하여 가문의 대소사(大小事)를 처리 할 수 있는 주도권이 있습니다(창 27:1-45; 대하 21:3).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한 가정의 대표자로 가문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며,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영적 축복권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시간적 차이로 장자가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형 에서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장자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야곱은 ‘내가 장자라면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기에게 장자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빼앗을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어느 날 집에서 팥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그 때 형 에서가 심히 배고픈 상태로 집에 들어왔습니다. 형 에서는 야곱이 팥죽을 쑤는 것을 보고 그것을 달라고 합니다. 선천적으로 흥정을 잘하는 야곱은 이때가 기회라 생각하고 형과 흥정을 합니다. 팥죽을 줄 터이니 형의 장자의 명분을 자신에게 팔라고 했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기고 맹세하고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 먹고 팔아버렸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의 것을 경홀히 여깁니다.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교회의 직분도 영적 사명도 하나님의 축복도 하나님의 약속도 말씀도 소홀이 여깁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귀중히 여겼던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와 공모하여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을 얻어냈습니다(창 27:1-29). 

하나님의 약속을 귀중히 여기는 것은 좋았는데 방법이 잘못되었습니다. 속임수로 이것을 쟁취해 버린 것입니다. 약속한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지 못하였습니다. 자신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75세에 아들을 줄 것을 약속하시고, 100세에 자신의 아버지를 주신 것을 아마 들어서 알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40살에 결혼하였지만 20년 동안이나 기다렸다가 자신을 낳은 사실도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면 이루기까지 떠나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인 것을 간접 경험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다리지 못하고 아버지와 형을 속여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아 버린 것입니다. 형 에서가 장자의 명분도, 아버지의 축복도 동생 야곱에게 빼앗긴 사실을 알게 되자 아우 야곱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창 27:41) 그래서 죽지 않기 위해 도망가는 것입니다. 도망자 신세가 된 것입니다. 쫓기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광야의 도망자가 된 것입니다. 

1. 우리에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는 떠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10-15). 

1)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도망가다 지쳐 벧엘에서 돌을 베개 삼고 누워 자고 있는데, 꿈속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5)” 

얼마나 감동적인 말씀입니까?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2013년도 2번째 주일 예배입니다. 올 한해 우리에게 “김 집사야, 이 집사야, 오 집사야, 박 집사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라는 축복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는 결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실패하고 도망자가 되면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도 떠나 버립니다. 부도가 나고, 병이 들고, 실직을 하고, 낙방하고, 나이가 들고, 힘이 없어지면 외면해 버립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이루기까지 떠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받은 사명 이루지 못했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번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고 포기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야곱은 지금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장자권을 얻기 위해 팥죽으로 형을 속였지만 장자권이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도 잃고, 어머니도 잃고, 형도 잃고, 집도 잃고, 고향도 잃고 겨우 자기 목숨 하나 부지하기 위해 도망자 신세가 된 것입니다. 노숙자 신세가 된 것입니다.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지 모르는 정처없는 나그네가 된 것입니다. 그런 야곱에게 찾아 오셔서 함께 해 주신다고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외로운 삶의 현장에, 도피할 수밖에 없는 삶의 현장에, 밀려가는 삶의 현장에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 아무도 없고 홀로라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떠나고 나 홀로라고 외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2) 함께 하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이 꿈을 꾸었습니다.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습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입니다. 천사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위에 서서 야곱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3절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무엇을 이루어 주시겠다는 것입니까? 세 가지입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 아버지 이삭에게 약속한 것을 자신을 통해 이루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장자의 축복을 야곱을 통해 이루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도망자 신세가 된 그에게 약속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확신을 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야곱이 타향살이 20년 동안 그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20년 동안 낮에는 더위를 밤에는 추위를 이겨내면서 피눈물 나는 수고를 하면서(창 31:40)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이 이 약속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외삼촌 라반에게 열번이나 속임을 당하는(창 31:41) 아픔을 맛보았으나 그 때마다 마치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약속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야 같은 험악한 147년의 세월을 살면서도(창 47:28) 끝까지 그를 붙들어 주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사랑했던 어머니와 생이별하고 죽을 때까지 만나 보지못했습니다. 피를 나눈 형과 원수로 살아야 했습니다. 처음부터 뒤틀린 결혼을 해야 했고 그로 인해 계속되는 가정불화를 격어야 했습니다. 20년간을 처가살이를 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랑하는 부인 라헬이 죽는 비극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외동 딸 디나의 치욕을 경험해야 했고, 장자 르우벤과 첩 빌하 사이의 불륜관계를 목도해야 만했으며, 아들 요셉의 행방불명으로 노년을 한을 품고 살아야만했습니다. 7년 대기근으로 말년에 낯선 땅 애굽으로 이민을 가야만 했습니다. 얼마나 험한 인생입니까? 그래서 야곱은 바로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나그네 인생이라고 말하며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창 47:9) 

그런 인생을 살면서도 이 때 만난 하나님 체험과 하나님의 약속이 그의 인생을 흔들리지 않고 버티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히 11:21)"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평생 믿음으로 살게 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구체적으로 그 약속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지금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도망자 신세지만, 지금은 잠만 자고 가는 땅이지만, 지금은 잠깐 거쳐 가는 땅이지만 이 땅을 차지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면접만 본 직장이지만, 지금은 시험만 본 학교이지만, 지금은 얼굴만 본 사람이지만, 지금은 맛만 본 사업이지만 그것 반드시 네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손을 땅의 띠끌 처럼 많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홀로지만 수많은 후손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역사 속에서 그대로 이루어 주었습니다. 애굽의 왕 바로의 인구 억제 정책으로 모두가 죽을 뻔하였습니다(출1:15이하). 

앗시리아의 포로(BC722) 바벨론의 포로(BC586)를 통해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큰 민족과 나라로 발전되게 하였습니다(창21:2;출1:1-7,17,9,12,20)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민1-2장) 약속은 성취되었습니다(수23:14). 

오늘 날로 말하면 지금은 부족한 실력이지만 실력있는 사람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작은 사업이지만 창대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다 잃은 것 같지만 하나님이 풍성하게 채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복의 근원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 이삭에게 주신 약속입니다(창12:1-3;창26:4, 24) 

계속적으로 약속해 주신 언약입니다(창32:12, 창35:11, 창48:4) 결국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약속해 주신 복의 근원이 되는 후손은 누구이겠습니까? 갈3:16절을 보십시오(신약 305쪽). 중요한 말씀이니까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갈 3:16)”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음의 백성 많아지고 예수님을 통하여 복의 근원이 될 것을 말씀합니다. 갈3: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롬4:11에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 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롬4:13에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땅의 모든 족속이 우리를 인하여 복을 얻을 수 있도록 불렀습니다. 

출애굽기 19장 6절에서는 제사장의 나라로 불렀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출 19:6) 신약 공동체에게 주시는 말씀을 보십시오. " 

행3:25절에는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베드로가 어떻게 말씀해 주시는지 읽어 보십시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이루어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아야 합니다. 내 한 사람이 기도로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고 찬양으로 말씀으로 헌신과 봉사로 전도로 축복의 통로가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열린 교회가 이곳에 세워진 것은 우리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아닙니다. 

교회가 여러분의 가정을 행복하게 하고 이 사회를 행복하게 하여야 합니다. 만만만 생명 운동(월드 라이프)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을 주어야 합니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복을 주어야 합니다. 장애인들에게 복을 주어야 합니다. 세계 어려운 나라에 100개의 교회를 건축하려고 시작했는데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우리가 축복받고 그 축복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새들백 교회의 담임 목사인 릭워렌이 쓴 목적이 이끄는 삶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아버지는 50년 이상 목사로 사역하셨고, 대부분 시골 중소 도시의 교회를 섬기셨답니다. 아버지는 평범한 설교자셨지만, 사명감을 가진 분이셨답니다. 아버지가 가장 애착을 보이신 것은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해외에 작은 교회 건물을 지어주는 일이었답니다. 아버지는 평생 동안 전 세계 150개 이상의 교회를 지으셨답니다. 아버지는 노년에 암 선고를 받으셨답니다. 

이 땅에서의 마지막 1주일 동안은 거의 24시간을 의식이 반밖에 없는 상태로 깨어계셨답니다. 아버지는 꿈을 꾸시면서 그 꿈에 대해 크게 말씀하시곤 했답니다. 아버지는 교회 건축 사업을 하나하나 회상하셨답니다. 아버지가 숨을 거두실 무렵, 그와 그의 아내와 조카는 아버지 곁에 있었답니다. 아버지는 갑자기 생기가 돌아오셨고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애쓰셨는데 아내는 이렇게 여쭤보았답니다. "아버지, 뭘 하고 싶으세요?"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야 해 !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야 해 !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야 해 !" 아버지는 계속 반복하셨다. 그 후 한 시간 동안 아버지는 그 말을 백 번 정도 하셨다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야 해 !" 릭워렌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믿음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합니다. 바로 그 순간 아버지는 마치 명령을 하시듯, 약한 손을 뻗어 내 머리에 얹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라!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라!" 그 후 릭워렌 목사는 그것을 자신의 남은 삶의 주제로 삼았다고 합니다. 삶의 초점이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영혼 구원을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2.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이루어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16-22절).

1)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야곱은 부모님으로부터 말로만 듣던 하나님의 임재를 실제적으로 체험하고 잠에서 깨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6절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말씀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이제 모두가 자신을 떠나 버리고 자신 홀로 남은 것 같았는데 하나님은 그 실패의 현장에 고독한 현장에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홀로 있는 자신을 밤새도록 지켜 주심을 깨달은 것입니다. 바로 자신이 있는 곳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만나는 장소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실패한 자리가, 고독의 자리가, 쫓겨나는 자리가, 부도난 자리가, 병든 자리가, 오해받는 자리가, 고난의 자리가, 소외된 자리가, 멸시받는 자리가, 굶주린 자리가, 가난한 자리가 바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는 자리입니다. 

욥이 고난의 과정을 경험하고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라고 고백했듯이 고난의 파도를 겪으면서 하나님의 실재를 본 것입니다. 욥은 재산도, 자식도, 건강도 잃고 진정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권력도, 명예도, 부도 다 잃고 광야에서 떨기나무 불 가운데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체험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신앙체험을 한 것입니다. 삶의 변화는 이 때 오는 것입니다. 

지식이나 깨달음이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실존적 만남을 가진 것입니다. 내게 다가온 어려움을 모든 것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로 삼는다면 이 보다 값진 것은 없습니다. 세상에 하나님 보다 더 귀중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하나님 체험을 하지 못하니까 하나님을 부정하고 세상에 취해 사는 것입니다. 

‘무신론의 심리학(아버지의 부재와 무신론 신앙)’라는 책을 쓴 폴 비츠 교수가 있습니다. 뉴욕 대학 심리학과 교수입니다. 그분도 철저한 무신론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30대 후반에 하나님을 체험하고 신실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무신론은 최근에 발생한 매우 독특한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 이전 유럽과 미국에 알려진 무신론자의 숫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역사학자 제임스 터너는 “만유인력을 믿지 않는 것만큼이나 설득력 없는 일이었다.”라고 말합니다. 인격적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해서라는 것입니다. 근대 서구 사상계를 주도해온 유명한 무신론자들의 전기적 사실을 두루 살피면서, '결함 있는 아버지 가정'이 그들의 무신론적 사상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즉, 아버지의 부재, 무기력, 죽음, 학대에서 유발된 트라우마와 결핍이 하나님 이미지를 왜곡시켜 하나님에 대한 거부와 불신앙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일단 육신의 아버지에 대해 실망하거나 존경심을 잃게 되면 하늘의 아버지에 대한 믿음도 불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무신론자의 경우 자기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무의식적으로 신에 대한 부정을 정당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무신론자를 실험집단으로 그리고 신자들을 통제집단으로 삼아 전기적 일대기를 읽으며 그의 논지를 입증했습니다. 아버지가 자녀의 생애 중 일찍 죽은 경우일수록 더 심각한 결함 있는 아버지가 된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때는 아이가 세 살에서 다섯 살 사이인데 이 때 심리 발달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이때가 아이의 성 정체성뿐만 아니라 초자아(아버지로부터 파생되는 윤리체계)를 확립하는 결정적인 시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프리드리히 니체는 루터교 목사의 아들이었지만 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흄은 두 살 때,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쓴 러셀은 4 살때, 사르트르는 15개월에 각각 아버지를 떠나보냈고, 쇼펜하우어의 아버지는 그가 17세 때 자살했습니다. 

스탈린은 "부당하면서도 가혹한 매질 때문에 요시프는 아버지처럼 거칠고 무자비한 사람이 되어갔다. 다른 사람에게 권력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요시프의 눈에는 아버지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는 자기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복수심을 품었다."라고 말합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아버지는 나이 어린 아내와 어린 자식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전혀 없는 무정하고 강퍅한 다혈질의 남자였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아돌프는 열 네 살 이었답니다. 그때 이후 아돌프에게는 아버지를 대신하는 존재가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마우쩌뚱의 아버지는 가정의 폭군이었답니다. "분명히 그는 아버지를 증오했으며 혁명과 반항의 기초를 바로 자신의 가정에서 배웠다."라고 말합니다. 20세기 말 저널리스트인 러셀 베이커는 자서전에서 5살 때 아버지가 숨을 거두자, "하나님이 저를 정말 사랑하신다면 왜 아버지를 죽게 하셨나요?"라고 물으며 신앙에서 떠났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살아도 유약하고 학대하는 아버지에 의해 볼테르는 이신론자가 되었고, 지그문트 프로리트는 자기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없을 정도로 약하고 성도착자였던 아버지를 증오함으로 종교적 믿음을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통한 하나님 체험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대에 살았던 파스칼이나 멘델스존, 윌리엄 윌버포스, 키에르케고르, 알베르트 슈바이처 등은 좋은 아버지로 인하여, 설령 일찍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성인 남자가 있음으로 인해 아버지의 부재에서 오는 문제를 보완했다는 것입니다. 

파스칼은 어머니가 세 살 때 떠났지만 신앙 좋은 판사 아버지는 어린 파스칼과 누이들을 전력하여 교육시켰답니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아홉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지만 믿음 좋은 삼촌으로부터 양육받았고 그의 아들 네 명은 좋은 신앙인이 되었고 그 중 세 명은 목사가 되었답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교양 있는 독일 개신교 목사로 아들로 자랐고 그가 말하길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기에 그것이 부담스럽기까지 했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어린 시절 행복한 가정에서 살았답니다. 아버지의 역할을 보완해 주는 할아버지, 삼촌, 목사, 신부 ,학교 교장 또는 선생님이 무신론에 대한 강력한 해독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면 세계관이 달라지고 인생관이 달라집니다.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이론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간접 경험이 아니라 직접 경험을 하면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한나가 아니를 낳지 못하다 기도를 통해 아이를 낳자 인생이 달라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인생이 바뀐 것입니다. 


2)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서원합니다.

18절 보십시오. 이제 어제의 야곱이 아닙니다. 쫓기는 야곱의 아닙니다. 
야곱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어제의 태양이 아닙니다. 동녘에 솟아오르는 광명한 태양을 바라보면서 말할 수 없는 희열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밤새 베개하였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가지고 가던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것은 성별의 의미 또는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상징일 것입니다.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혼돈이라는 루스를 하나님의 집이라는 벧엘로 고쳐 부른 것입니다. 인생의 방향이 확실하게 정해진 것입니다. 세계관이 바뀐 것입니다. 물질관이 바뀐 것입니다. 축복관이 바뀐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명쾌해 진 것입니다.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곳이지만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에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 가지 서원기도를 합니다. 편안히 아버지 집에 돌아오게 하시면 첫째, 여호와께서 그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21하반절). 둘째, 야곱이 기둥으로 세운 곳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22상반절). 셋째,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22하반절). 야곱은 세계관이 변하였습니다. 그는 인생관이 변하였습니다. 그는 물질관이 변하였습니다. 축복의 개념이 달라졌습니다. 형의 장자권이 단지 아버지 상속을 받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히브리서 11:21에서는 야곱의 인생을 단 한 절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삶의 과정을 통해 철저히 변하였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갖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철저하게 계산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노년이 되어 참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성숙한 믿음을 가지고 살다 죽는지를 성경에서 보십시오.

(1)욕심의 노예에서 벗어납니다. 창43:1-2을 보십시오. 큰 기근입니다. 그런데 적은 식량이라고 말합니다.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먹일 소와 양이 많고 자손과 종이 많은데 탐심이 없어진 것입니다.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창46:6)

(2)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창43:14을 보십시오. 아들이 인질로 잡힐 위기에 처했는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버립니다.

(3)제단 중심 생활을 합니다. 경건하게 제단을 쌓습니다(창45:28-46:1)

(4)세상의 소망 보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소중히 알고 현재의 일보다 미래의 일에 더 생각합니다(창49:18)

야곱은 받은 벧엘에서 약속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은 자신의 인생을 통해 신실하게 응답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 일평생 이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은 사람들은 이루어 주신 하나님을 믿고 이룸을 받으면 그것으로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울 "(고전15:10)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푸셨던 은혜에 대해서 얼마만큼 신실하게 응답하였습니까?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바울은 자기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살든지 죽든지 오직 그리스도만을 영화롭게 하기를 원하였습니다(빌 1:20,21). 

하나님께서 끝까지 우리와 함께하여 주신 사명 이루게 하면 그 이룬 것을 통해 하나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가장 가치 있는 삶입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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