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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날] 명절과 안식일 (출 20:8-11, 막 2:23-24,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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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과 안식일 (출 20:8-11, 막 2:23-24,27-28)
  

오늘은 설날입니다. 오늘은 공교롭게도 명절과 주일이 겹쳤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대표적인 명절이 두 날이 있습니다. 하나는 설날이고 또 하나는 추석절입니다. 태양력을 사용하는 나라는 신정이 설날인데 우리나라는 태양력을 사용하면서도 신정보다 음력설을 중시합니다. 유신시대에 이것을 고쳐 보려고 애를 썼지만 허사였습니다. 음력설은 우리민족이 그만큼 끈질긴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설은 한해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추석은 추수에 대한 감사절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한국 명절의 의미

명절이 가지는 의미는 여러 가지 일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의미는 가족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명절날은 흩어졌던 가족들을 찾아갑니다. 부모를 찾아갑니다. 명절 때는 교통이 혼잡하여도 사람들은 기를 쓰고 고향으로 내려갑니다. 혈연과 가족 공동체를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입니다. 이 가족은 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그리고 하늘이 맺어준 운명적인 관계입니다. 이 세상에 무엇과 비교하고 바꾸겠습니까. 그런데 오늘은 이렇게 소중한 가족들이 자꾸만 해체되고 나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입니다. 명절은 이 가족 공동체를 다시 다지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또 명절 때 이루는 가족 공동체의 중심은 조상 제사입니다. 조상제사를 통해서 가족이 뭉치고 결속을 다지게 됩니다. 

그리고 어른께 인사하고 세배하면서 예를 갖추었고 이웃과 우의를 다지기도 합니다. 또 명절 때는 하늘에도 감사합니다. 예부터 명절 때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은 하늘에 감사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늘 개념이 막연하고 희박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늘개념이 조상숭배 개념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조상에 제사하고 감사하는 것은 곧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죽은 조상과 하늘 개념을 함께 보았던 것입니다. 또 이웃과의 나눔이 있었습니다. 명절 때는 이웃과 함께 하는 너그러움이 발로됩니다. 그래서 이웃과 나누고 서로 베풉니다. 명절 때는 누구나 인심이 후합니다. 이웃과 나눔 문화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명절은 이렇게 아주 좋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같이 도시화된 시대에는 모두 흩어집니다. 이렇게 의미가 퇴색되어 가는 시대에는 이 명절을 더욱 잘 지키고 더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의미를 되찾아야 합니다. 가족 간의 결속을 다지고 느슨했던 관계를 다시 조이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명절

성경에 보면 명절에 대해서 많은 말씀이 나옵니다. 성경의 명절은 대부분 구약성경에 나타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서 말하는 명절에는 아주 뚜렷한 특징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출애굽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고 또 모든 명절에는 구속사의 역사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명절은 단순한 명절이 아니고 명절 속에는 한결같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일상적인 삶에서 재현하는 거룩한 예식이 들어있습니다. 즉 한국의 명절은 가족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의미가 담겨 있다면 이스라엘의 명절은 구속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신앙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명절에는 하나님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5대 명절 

이스라엘에는 대표적으로 다섯 가지의 명절이 있습니다. 하나는 3대 명절 즉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입니다. 이 멸절을 큰 명절이라 해서 메이저 홀리데이(the Major Holidays)라고 부릅니다. 이 3대 명절은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매년 3차례 성전으로 올라가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먼 거리를 걸어서 오고 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순례 명절이라고도 부릅니다. 또 농사철과 직결되어 있어서 계절 명절이라고도 부릅니다. 백성들은 년 3차례 모여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확인하고 형제애를 확인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3대 명절의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나팔절(7월 1일)과 대 속죄일 (7월 10일)입니다. 이 두 명절은 즐기는 명절이라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내 놓고 회개하는 엄숙한 날입니다. 그래서 이 날을 엄숙한 날(the Solemn Days) 혹은 경외의 날(the Day of Awe)이라고 부릅니다. 그중에서도 나팔절은 오늘 이스라엘에서는 새해를 시작하는 즐거운 신년 명절로 성대하게 지키고 있고 속죄일은 모든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내 놓고 회개하는 날로 엄숙한 날입니다. 

세 째는 금식일입니다. 이스라엘에는 금식일이 년 4차례 있습니다(스가랴 8:19). 4월 금식 5월 금식 7월 금식 10월 금식입니다. 모두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될 때의 수치스러움을 금식으로 극복하는 명절입니다. 10월 금식은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기 시작한 것과 관련된 금식일(왕하 25:1-2, 렘 52:4)입니다. 4월 금식은 예루살렘 성의 파괴를 애도하는 금식일(왕하 25:334-34 렘 39:2,52:6-7)입니다. 5월의 금식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날을 애도하는 금식일(왕하 25:8 렘 52:12-15)입니다. 

7월 금식은 느브갓네살왕에 의해 임명된 유다 총독 그달리야의 죽음과 관련된 금식(왕하 25:23-25 렘 41:1-3)입니다. 오늘은 5월 금식일만 지키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부림절과 수전절입니다. 이 명절을 “작은 명절”(the Minor Holidays)라고도 부릅니다. 이 두 명절은 모두 이스라엘민족이 생존의 위기 때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여 구출 받은 감격을 기념하는 의미로 만들어진 명절입니다. 부림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만의 학살에서 건짐 받은 날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그리고 수전절은 기원전 168년 수리아 왕이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워 더럽혔을 때 마카비 유다가 예루살렘 탈환하고 성전을 정화한 날입니다. 이날 모두 하나님의 극적인 개입으로 민족이 구원받은 날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명절은 모두 하나님의 구원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안식일 

다섯 번째는 안식일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우리들이 그냥 지키는 주일 개념과 차원이 다릅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안식일은 모든 명절의 기본이고 뿌리입니다. 이 안식일은 하나님이 특별히 제정하신 특별한 날입니다. 본문은 안식일을 하나님께서 직접 제정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 원리는 안식일 날은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안식일은 오늘 주일에 해당하는 날인데 유대인들에게 이 안식일은 삶과 신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특별한 날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안식일 날로 일주일을 시작하고 일주일을 끝냅니다.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에 시작해서 토요일 저녁에 끝이 납니다. 안식일을 기준으로 안식일 다음날 일요일을 제 1일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일요일을 안식 후 첫날이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 날이 월요일인데 이 날을 제 2일이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보면 안식일 날은 제 7일 날이라고 해야 하는데 유대인들은 제 7일이라고 하지 않고 안식을 의미하는 “샤밭”이라고 부릅니다. 

안식일은 일주일 단위를 이끌어가는 중심이고 다른 날과 구별되는 특별한 날임을 알려주는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안식일 날이 시작되면 모든 일을 중단하고 쉽니다. 이 쉰다는 의미는 엄숙한 의미입니다. 6일 동안 창조사역을 마치신 하나님께서 제 7일 안식일 날에 쉬셨다는 성경에 근거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6일간은 당일 먹을 만나를 준비했지만 금요일 날에는 안식일 것까지 이틀 분을 거두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 날을 이렇게 소중하게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갑니다. 바벨론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안식일을 지키는 일이었고 두 번째는 할례를 준수하는 일이었습니다. 포로로 잡혀 가 있는 동안에도 이 할례는 반드시 행하였습니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 백성이 아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할례는 이스라엘의 공동체 성을 상징하는 표시였고 자격이었고 흔적이었습니다. 또 유대인들은 안식일 날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유대인들은 얼마나 철저하게 지켰는가 하면 안식일 날에는 전쟁이 나도 나가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칼에 맞아 죽는 쪽을 선택(마카비 1서 2:31-38)하였습니다. 랍비들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경에 기록된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킬 때 메시야가 온다고 가르쳤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이 안식일 날에는 불을 켜고 불을 끄는 것도 금지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는 유대인 촌에서는 지금도 전기 끄는 것을 잊어버리고 전기를 끄지 않았으면 밤새 켜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 촌에는 자동적으로 저녁이 되면 불이 꺼지는 자동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자동 시스템이 없는 지역에서는 이웃 사람을 불러서 불을 꺼 달라고 합니다. 이런 생활 구조가 결국 율법주의를 낳은 것입니다. 이 율법주의화가 체질화 되어 나중에는 이것이 형식주의 낳았고 이 형식을 지키다 보니까 안식일날 우물에 빠진 양을 건져내지도 못하고 죽도록 내 버려 둘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들을 혹독하게 비판하셨던 것입니다(막2:). 

그러나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려는 열정은 알아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생활의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안식일을 지키려는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오늘 자신들의 삶을 하나님 말씀 아래 두고 살아가려고 하는 열정은 알아주어야 합니다. 또 긍정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오늘도 이스라엘 민족은 이 안식일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오늘도 올림픽 때 안식일 날 경기가 짜여 있으면 그 경기를 포기합니다.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 하고 말할 수 있지만 그들은 그것을 당연히 포기합니다. 오늘도 호텔에 가 보면 안식일 날에는 식당에 가도 먹을 것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모든 명절 모든 행사 안식일에는 이런 정신이 그대로 배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스라엘 인구가 500만 명인데 2-3억 명의 아랍인들에 둘러 싸여 있으면서도 유대인의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는 비결도 이 안식일 개념 때문입니다. 이 안식일은 모든 명절의 근본입니다. 오늘 유대인들이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도 이 이스라엘 고유의 안식일 정신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유대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이 공동체 의식이고 공동체 삶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동체의식을 확인하는 시간이 두 번 있습니다. 하나는 명절 때입니다. 이스라엘의 3대 명절은 모든 남자들은 년 3차례 예루살렘으로 모입니다. 모여서 민족 공동체를 재확인합니다. 또 하나는 안식일 식사 때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의 식사를 특별히 준비합니다. 다른 평일과 비교 안 되게 푸짐하게 준비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는 일주일 중에서 목요일 날 시장이 가장 붐빕니다. 

안식일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안식일 저녁 식사에는 모든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합니다. 평소 식사 대접을 하려던 이웃들이나 친척들이나 손님들을 초대합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 저녁 식사는 작은 규모의 축제입니다. 그 시간에 가장 큰 중심은 전체 가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축제를 이루고 가족 공동체를 이루는 시간입니다. 안식일 날 예배에 앞서 이미 가정에서 공동체 의식을 집행하는 것이고 예배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식사 후에 온 가족이 회당으로 가서 예배를 드립니다. 이렇게 오늘 이스라엘의 모든 삶과 명절과 행사와 안식일은 모두 출애굽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광야에서 살았던 삶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과 광야는 모두 하나님의 절대적인 인도가 있었던 곳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구속사와 연관되어 있었던 곳입니다. 그러니까 지난 4천년 역사가운데 3천년 가까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 없이 떠돌아다니며 살았더라도 오늘까지 유대인으로서의 중심이나 정체성이 그대로 남아 있고 유지되어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 의식과 정체성의 유지는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쉽게 유지되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지식할 만큼 고집스럽게 자기 정체성을 고집한 까닭입니다. 

그에 비하면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의 문화는 흩어지는 문화입니다. 명절 때만 되면 가족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데 이 마져 오늘 너무 쉽게 의미를 버리고 소홀히 여기며 흩어져 버립니다. 우리 사회가 산업화가 되면서 우리는 이 좋았던 전통과 정신을 너무 쉽게 파기하고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명절 때만 되면 결속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을 버리고 콘도로 해변으로 해외로 뿔뿔이 흩어져 나갑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은 생명처럼 지키고 있는데 오늘 예수 안에서 구속받았다는 그리스도인들은 주일날에도 놀러가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너무 쉽게 주일의식을 포기하고 타협하고 무너져 버립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현실이고 우리들의 모습이고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우리는 오늘 너무 소중한 것들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사회는 현대화는 이루어고 살아가고 있는데 소중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뿌리는 잃어버리고 전통도 상실하고 모습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설이고 명절입니다. 지금이라도 모이고 의미를 되새기고 잃어버린 것을 다시 되찾았으면 합니다. 그때 우리 가족들이 다시 결속될 것입니다. 이 나라가 다시 회복되는 은혜가 함께 주어질 것입니다. 명절은 하늘이 준 날입니다. 우리들이 명절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그 시대가 평화시대라는 말입니다. 민족이 평화를 잃어버리면 명절은 사라집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보면 백성들이 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해 질책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준 안식일과 명절을 빼앗으리라” 그 말은 내가 너희에게 무서운 환란을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 환란이 주어져 보십시오. 어디라고 안식일을 지키며 명절을 지킬 수 있습니까.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에게 가장 괴로운 날이 명절날이었습니다. 명절날에는 고향을 그리워하였고 고국을 그리워 고향 하늘을 바라보면서 울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이방인들은 우리에게 “악기를 연주해 보라, 노래를 불러보라 그러면 먹을 것을 주겠다, 입을 것을 주겠다” 하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발 강가로 나아가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어놓고 다리 뻗고 고향 하늘을 쳐다보며 울었다고 했습니다(시 137:). 

여러분 우리가 명절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우리들이 평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평안이 있다는 말입니다. 일제강점기 때에 우리에게 명절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 살고 있을 때와 같았습니다. 6.25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환란의 시대에 명절은 무슨 의미입니까. 명절은 하늘이 준 날입니다. 그래서 명절에는 먼저 가족 결속을 이루고 다음에 하늘에 감사하고 그리고 이웃과 함께 나누며 우의를 다지는 것이 명절의 의미입니다. 오늘 그런 의미가 주께로부터 주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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