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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자녀 됨을 증명하기 (눅 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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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 됨을 증명하기 (눅 4:1-13)
    

<우리와 똑같이 시험 받으신 예수님> 

오늘은 사순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에 이르기 전 40일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을 명상하고 그 수난에 동참하는 절기입니다. 재의 수요일에 시작해서 성토요일까지 40일을 사순절로 지키는데 굳이 40일이라는 시간을 정한 것은 오늘 봉독한 누가복음 4장 말씀과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 받으신 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면서 마귀에게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사순절이 광야에서의 40일 유혹과 관계가 있다면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인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받으신 세 가지 유혹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신다는 “SONSHIP”입니다. 누가복음 1장 35절에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장차 태어날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을 예언합니다. 누가복음 3장 22절에 보면 예수께서 세례 받으신 후 하늘에서 들려온 제일성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절정이 바로 광야시험 사건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할 때 계속해서 쓴 말이 무엇입니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예수님이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렇게 해달라는 주문이지요. 그렇다면 마귀가 예수님을 세 번 시험했던 것은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신지 아닌지를 시험한 것이었고, 예수님이 이 시험을 다 이겨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입증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역시 이 세상사는 동안 하나님의 아들 혹은 딸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여러분 모두도 마귀나 세상이 여러분을 시험할 때마다 그 시험을 잘 이겨내시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시길 바랍니다!

먼저 예수님은 죄를 피하실 수는 있었지만 시험은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100% 참인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시험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시험의 긍정적 의미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할 때에는 떨어뜨리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공부를 얼마나 잘 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시험을 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시험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얼마나 준비가 되었는가를 알아보시기 위해 주시는 문제입니다. 

그런가 하면 둘째로 시험에는 부정적 의미도 있습니다. 마귀가 누군가를 시험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을 마구 유혹해서 넘어뜨리고 죄를 짓게 할 목적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부정적인 의미의 시험에 넘어가 죄를 짓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험은 절대로 강요가 아닙니다. 마귀가 우리를 유혹할 때 억지로 넘어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뱀도 억지로 선악과를 따먹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순전히 아담과 하와의 자유의지가 부패했기 때문에 스스로 넘어진 것뿐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마귀도 예수님으로 하여금 억지로 기적을 베풀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 때문에 나도 모르게 시험에 넘어갔다고 하는 변명은 옳지 않습니다. 설령 마귀가 우리를 시험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약하고 죄된 의지 때문에 넘어가는 것이지 마귀가 강압적으로 우리를 넘어뜨리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에서 마귀가 하나님께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저는 요즘 너무 따분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것뿐,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보 같으니라고. 네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빈둥거리고 돌아다니느냐. 네가 할 일은 사람들을 유혹해서 죄를 짓게 하는 것이야.” 그때 마귀가 한심하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참 하나님도 세상물정을 너무 모르셔. 제가 사람들에게 다가가 달콤한 유혹을 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먼저 넘어진단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마귀가 유혹을 하기도 전에 우리 스스로 넘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자유의지가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시험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이 시험을 잘 이겨내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입증해야 할 것입니다!   

<시험을 이기심으로 아들 되심을 입증하시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셨을 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이 말씀을 들으신 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에게 찾아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부인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자녀임을 포기하고 세상의 자녀로 돌아가도록 유혹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세 가지 유혹을 다 이겨내실 수 있었던 비결은 성령충만에 있습니다. 1절에서 거듭 강조하고 있는 사실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세례 받으신 요단 강에서 돌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받으신 후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소리를 들으신 후 줄곧 성령충만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에 오실 때에도 성령에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마귀의 시험과 유혹을 이기는 비결은 한 가지입니다.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에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떠나가시면 우리는 제 아무리 의지가 굳세고 인격이 고매해도 마귀의 유혹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받으신 세 가지 시험을 차례로 살펴봅시다. 마귀가 예수께서 40일 금식하시면서 심신이 가장 약해지셨을 때 예수님을 시험한 목적은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이 과연 세례 받으실 때 들으셨던 음성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가를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교묘하게도 이런 목적으로 예수님의 아들 되심을 테스트하려고 했을 때 예수님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들으시는지, 아니면 가장 취약할 때 가장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유혹에 가득 찬 인간의 말을 먼저 들으시는지를 떠보려고 했습니다.

첫째로, 마귀는 예수님께 돌들에게 명령을 내려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유혹했습니다. 40일을 금식하셨으니 얼마나 시장했겠습니까? 그래서 마귀는 예수님의 가장 약한 틈을 타서 가장 넘어지기 쉬운 유혹으로 다가왔습니다. 팔레스타인 광야에는 빵조각처럼 생긴 석회석이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너무도 배가 고파 어서 빨리 이 돌멩이를 빵으로 만들어 시장기를 면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겠지요. 여기서 마귀는 육적인 것을 영적인 것에 앞세우라고 유혹합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물욕 혹은 물질주의에 대한 유혹이 첫 번째 유혹이지요.

우리 예수님이 이 마귀의 유혹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4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신 8장 3절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응수해서 첫 번째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입증하셨습니다. 육적인 것이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먼저 영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보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주의가 왜 망했습니까? 유물론, 사람이 빵의 문제만 해결되면 다 된다는 그릇된 생각 때문이 아닙니까? 빵의 문제 이전에 인간의 근원적인,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은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 역시 하나님의 자녀라면 영적인 것을 육적인 것보다 더 귀하게 여기십시오! 마귀가 유혹하는 소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마귀는 예수님이 자기에게 절을 하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유혹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데로 끌고 가서 그야말로 순식간에 파노라마처럼 온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에게 절만 하면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예수님께 그대로 넘겨주겠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아닌 세상 권세와 영광을 섬기라는 유혹입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섬기지 말고 마귀와 결탁해서 세상의 부귀영화 권세를 마음껏 누리라는 주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이 사탄의 두 번째 유혹을 어떻게 물리치셨습니까?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8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신명기 6장 13절의 말씀을 인용해서 마귀의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이번에도 예수님은 적어도 하나님의 아들은 그 어떤 달콤한 말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듣는다는 사실을 입증하셨습니다! 온 세상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이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것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여러분 역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신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의 유혹에 앞세우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보다 세상의 그 어떤 부귀영화 권세도 앞설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십시오! 

셋째로, 마귀는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땅에 떨어지도록 유혹했습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천사들이 붙들어 발이 다치지 않도록 지켜준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유혹을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마귀도 눈치가 있는지라 달콤한 마귀의 말이나 세상적인 유혹으로는 예수님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유혹에는 전략을 바꿉니다. 예수님과 똑같이 말씀으로 유혹합니다. 10절과 11절을 보세요.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서 마귀는 시편 91편 11절과 12절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떠봅니다. 

마귀의 이 세 번째 유혹은 인기와 허영심에 대한 유혹이지요. 성전꼭대기에서 쇼맨십을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과 귀나 적당히 즐겁게 해주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라고 유혹합니다. 어떤 진리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감각적으로 즐겁게 해주는 인기배우가 되라는 유혹입니다. 사람들을 자유자대로 울고 웃게 마드는 인기 부흥강사들이 주의해야 할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려는 감각주의에 치우쳐서 안 됩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성전 꼭대기에서 땅에 떨어져도 발이 다치지 않을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전 꼭대기에 서지 않으셨고 십자가 꼭대기에 서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의 수치와 수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셨지 어떤 쇼맨십을 통해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앞에서의 두 가지 유혹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에 대응하셨습니다. 신명기 6장 16의 말씀을 인용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대응하셨습니다. 우리는 절대 자유와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을 하나님 그대로 인정해야지 시험해서 안 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나 안 들어주시나가 하나님을 믿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마치 인기 탤런트나 코미디언 같이 잘 웃기고 잘 울리는 부흥사를 좋아합니다. 그리하여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예수 쇼"가 설교와 예배라는 이름으로 유행하는 것을 봅니다. 또한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그저 예수만 믿으면 세상의 온갖 물질적 축복과 성공과 건강이 저절로 찾아오는 것처럼 광고합니다.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은 물질적인 것 그 이상의 영적인 축복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눈과 귀만 즐겁게 하는 감각적인 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세 가지 유혹을 다 이기도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심을 입증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마귀나 인간이나 세상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확신이 든다면 마귀나 인간이나 세상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 살 때 이 세 가지 기본적인 유혹을 비롯하여 수많은 유혹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할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이기려면>

이제 결론을 맺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세 가지 유혹은 요한1서 2장 16에 그대로 요약되어 있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첫 번째 시험은 육신의 정욕대로 살라는 유혹이지요. 마귀에게 절만 하면 온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는 시험은 안목의 정욕입니다. 성전 꼭대기에 뛰어내려서 천사들이 떠받치게 하라는 시험은 이생의 자랑입니다. 

릭 워렌 목사님은 이것을 “Three P”라고 했는데 “Pleasure쾌락,” “Possession소유욕,” “Position명예욕,”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세 가지 욕심과 싸워 이길 때에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입증할 수 있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은 이와 같은 세 가지 유혹을 극복하기 위하여 세 가지 미덕을 강조합니다. 

첫째로, “humility겸손”입니다.

잠 18: 12은 말씀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 29: 23도 말씀합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우리가 겸손해지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이길 수 있습니다.

둘째로, “integrity성실성”입니다. 안에서나 밖에서나 한결같은 사람이지요.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나 가정에서나 세상에서나 차이가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쾌락, 소유욕, 지위 명예욕을 이기기 위하여 성실성이 중요합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흔들림이 없는 견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로, “generosity베푸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행 20: 35). 우리가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베풀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떤 유혹과 시험을 받더라도 마귀나 인간이나 세상의 말을 듣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입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성령이 충만해야 하겠고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아야만 합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고 언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아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온 세상에 나타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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