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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중심에 불 붙는 것 같아서 (렘 2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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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중심에 불 붙는 것 같아서 (렘 20:7-9)
 
 
중국 한 나라의 사마천이라는 사람은 130권이나 되는 역사서 ‘사기’를 써서 아시아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그가 방대! 한 역사서인 ‘사기’를 쓰는 과정을 
보면 참으로 대단한 열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사마담은 사관으로 근무하며 태사령이란 직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사마담이 병으로 눈을 감기 직전 아들 사마천을 불러놓고 자기가 사관으로 있으면서도 중국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의 발자취를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자기의 한을 풀어 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사마천은 부친의 뜻을 이루겠노라고 눈물로 서약하였고 그도 사관되어 3년 후에 부친의 뒤를 이어 태사령에 임명됩니다. 그는 황실의 도서관에 비치된 옛 기록들을 뒤지며 역사를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사마천에게 무서운 불행이 닥칩니다. 그것은 이릉 사건입니다. 이릉은 한 나라의 뛰어난 장군인데 흉노를 정벌하기 위해 5천명의 군사로 8만의 흉노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다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후에 이릉에 대한 여러 가지 모함이 있을 때  사마천은 이릉의 충성심과 정직함을 들어 그를 옹호합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사마천은 옥에 갇히고 끝내는 궁형이라는 극형에 처해집니다. 궁형이란 남자의 상징을 자르는 형벌로 어떤 면에서는 사형보다 더 가혹한 형벌입니다. 

사마천은 궁형을 당한 후에도 역사서를 기록하면서 이런 글을 씁니다. ‘이것을 마치지 못하고 죽는 것이 아깝다는 마음 하나로 궁형이라는 극형을 감수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심혈을 기울인 이 저술을 완성하여 한 벌을 명산에 감추어 영원히 전하게 하고 다른 한 벌은 수도에 사는 뜻있는 분들께 전할 수 있다면 나의 치욕은 씻겨질 것이며, 일만 번 사형을 받더라도 조금도 한이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중국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사명과 열정을 가지고 역사를 집필합니다. 19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그는 130권에 달하는 방대한 역사서를 기록합니다.  

사마천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 분명치 않습니다. 기록이 없다는 것은 그의 삶이 당시에는 그렇게 위대한 삶으로 평가되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그가 기록한 책에 ‘사기’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후세의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하고 붙여준 것입니다. 그당시 자신의 가치가 인정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삶의 목적과 사명감,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생을 마친 사마천은 후대의 사람들에게 ‘역사의 아버지’라는 위대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성경에는 열정을 가지고 살았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는 대단한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120년간 사막 한 복판에서 방주를 지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열정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도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갈대아 우르의 비옥한 땅과 부모 친척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으로 무조건 이동했다는 것은 믿음의 새로운 도전 정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열정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신약의 바울은 삶 자체가 열정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은 만나기 이전에도, 그리고 만난 이후에도 매우 열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삶의 최고의 가치인 율법을 위해 열정을 쏟았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그의 생애 전체를 예수님을 위해 죽기까지 열정적으로 섬기며 살았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때까지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생을 마친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에게 구약 성경에 나오는 또 한 사람의 열정의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했던 시기는 이스라엘이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놓여 있었던 시기입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부정과 부패가 판을 치고 악이 성행하였습니다. 영적으로는 지도자들이 혼탁한 생활을 했고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섬기며 우상이 이스라엘 전역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을 향해 회개하며 바른 자리에 설 것을 계속해서 권면하고 경고하시지만 지도자도, 백성들도 어느 누구하나 하나님의 말씀! 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 징계를 내리시는데 강대국 바벨론을 들어 이스라엘을 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징계를 받을 때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회개하며 바로 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을 동원해애굽을 의지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진노 앞에 회개할 것을 외칩니다.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할 것을 외칩니다. 바벨론을 들어 이스라엘을 치심은 이스라엘을 미워하심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사랑의 채찍임을 외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길 것을 권면합니다. 눈물로 호소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도리어 예레미야를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때리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레미야의 아픔과 소명에 대한 열정을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속이 상해 집으로 돌아와 문을 걸어 잠그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 ‘권유하셨습니다’라는 단어는 ’파타‘라는 단어로 유혹하다, 속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속이셨습니다. 선지자로 부르셨을 때 저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어린 아이와 같고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씀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강권하시며 함께하신다고 하시는 그 말씀을 믿고 나아가 외쳤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저는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 거리가 되었습니다. 얻어 맞고 옥에 갇히며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지 않으렵니다. 외치지 않? 막틈求?’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예레미야는 ‘아, 나의 마음 중심에 끓어 오르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 내 골수까지 사무치니 답답하고 견딜 수가 없습니다.’라고 외치며 밖으로 뛰어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명감을 도저히 접을 수가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밖으로 뛰어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애굽의 도움을 요청하고 애굽으로 피신하기 위해 이동하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 돌아서라고 쫓아가며 눈물로 호소합니다. 그러나 결국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롱하며 던지는 돌에 맞아 죽고 맙니다. 예레미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며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기에 사람들은 그를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가 흘린 눈물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타깝게 여기시며 흘리신 하나님의 눈물입니다. 그의 눈물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열정의 결정체입니다.  

예레미야의 삶이 고되고 힘든 삶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산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생애에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위해 열정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그 사명을 생각하기만 하면 가슴에 불이 붙었고 그 일을 하지 못하면 골수에 사무치고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burn out'한 열정의 사람입니다. 

열정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보람있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될 때 일어납니다. 신앙의 열정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보람이 있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될 때 신앙의 열정이 생깁니다. 성경안에 열정을 가지고 산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위한 열정이 없습니다. 교회를 사랑할 때 교회를 향한 열정이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지 않으면 교회를 향한 열정이 없습니다. 우리 행복한 교회 성도들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해 세우신 교회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있기를 원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밀그램이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가를 실험해 보았다고 합니다. 뉴욕 번화가의 인도에서 실험 보조자 몇 명에게 인도에서 갑자기 발길을 멈추고 차도 건너편의 빌딩 6층을 올려다보게 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보조자의 수는 1명, 2명, 3명, 5명, 10명, 15명 등의 그룹으로 묶고, 각 그룹은 자연스럽게 움직이다가 한두 명씩 발길을 멈추고 일제히 차도 건너편의 빌딩을 올려다보게 한 것입니다. 그때 길 가던 사람들 가운데 과연 몇 명이 보조자들처럼 발길을 멈추거나 빌딩을 올려다보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이었습니다. 

이 실험 결과 보조자가 1명일 경우는 통행인의 겨우 4퍼센트만 올려다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조자의 수를 늘리면 늘릴수록 발길을 멈추는 통행인의 수도 많아졌다고 합니다. 보조자를 15명으로 늘리자 통행인 가운데 무려 40퍼센트가 발길을 멈추었다고 합니다. 발길을 멈추지 않더라도 걷는 속도를 늦추면서 보조자들처럼 빌딩을 올려다보는 사람의 비율은 86퍼센트였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어떤 일이든 직분을 맡은 직분자들은 교회를 행해 시선이 집중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리에 집중해야 합니다. 자신이 맡은 직분이 교회에 덕이 되도록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제직회 부서의 책임자들은 맡은 부서를 더 귀하게 섬겨서, 어떻게 하면 교회의 덕이 되고 힘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구역의 지도자들은 맡겨진 지구와 구역 식구들, 그리고 그 영역을 어떻게 하면 믿음 안에서 잘 세워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성장시키는 힘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가대는 성가대대로, 교사들을 교사들대로, 예배위원들은 예배위원들대로 교회 곳곳에서 맡겨주신 사역을 감당하며 주변에 함께하는 성도들의 믿음의 시선과 감사의 시선이 모아지도록 그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가 품고 있는 거룩한 꿈을 이루는데 힘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섬기는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섬김에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행복한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세운 거룩한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눔을 실천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를 세우는데는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의 마음이 그 꿈을 향해 하나로 모아질 때 가능합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그 꿈을 어떻게 하면 더 귀하게 이룰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며 기도하고 섬기는 일꾼들이 많을 때 그 꿈은 이루어집니다. 

한 사람의 힘보다  두 사람의 힘이 더 강합니다. 두 사람의 힘보다 세 사람의 힘이 더 강합니다. 한 사람의 열정보다 두 사람의 열정이 더 힘이 있습니다. 두 사람보다 세 사람의 열정이 더 힘이 있습니다. 우리 행복한 교회 모든 성도들이 교회를 위해 더 열심히 기도하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더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거룩한 꿈을 향한 소망과 섬김의 손길들이 더 귀하게 모아지는 사랑스런 교회의 모습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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