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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에는 그런데, 이제는... (엡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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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그런데, 이제는... (엡 2:1-9)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인류역사는 둘로 나뉘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전 과 후로 말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몸을 입고 오신 사건은 절망에 빠진 인류에게  엄청난 소망을 안겨주엇습니다. 멸망당할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안겨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예수님을 만나기전과 후는 분명한 차이를 나타내주고 잇습니다. 예수님없이 살던 때와 예수님을 만나 영접하고 난 후는 인생의 전환기로 구분되고 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새롭게 변화되고 잇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마태의 전직은 세리였습니다. 예수님 당시 세리들은 법의 묵인 아래 많은 백성들의 재산을 착취하였고 또 그 돈으로 고리대금을 놓아 재산을 불리는 데 혈안이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리와 죄인과 창기는 전혀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하는 천민 계급에 속하였습니다.
  
마태와 같은 큰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새사람이 되고 예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큰 죄인이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일생 동안 자기 이름을 기록할 때 마태라는 이름 앞에 꼭 세리라는 단어를 붙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죄인 중의 큰 죄인인 세리가 마태가 되었다는 뜻으로 그는 세리라는 단어를 붙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라는 것을 일생 동안 잊지 않기 위해서 그는 세리라는 단어를 붙였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이야기입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2장 1절을 표준 새번역으로 읽어보니 '여러분도 전에는'이라고 시작됩니다. 3절에도 '우리도 전에는'이라고 반복하여 구원받기 이전의 모습을 열거해줍니다. 구원받기 전의 우리 형편과 구원 이후의 변화를 비교하여 보는 것은 구원의 감격을 되살리는 좋은 방법입니다.

1. 전에는 우리 형편이 어떠했습니까? (1-3)
  
1)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과 분리된채 살았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하지 못하고 육적인 존재로만 살았습니다. 영적인 축복에 대해서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상실한채 세상의 즐거움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2) 마귀의 자녀였습니다. 마귀의 무서운 형상을 닮은 존재였습니다. 거짓과 탐욕과 온갖 죄를 지으며 아무 소망없이 살았습니다.
  
3) 공중권세 잡은자에게 종노릇하였습니다. 우상숭배에 열심이었습니다. 세상의 풍속을 쫓으며 살면서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만 골라했습니다.  의의 도구가 되지 못하고 죄의 도구로 살았습니다. 공중권세 잡은 마귀 사단이 시키는대로 조종당하며 살았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우리의 의지로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마귀를 영원히 멸하기 위해 준비한 지옥에서 마귀와 함께 멸망당할 운명이었습니다. 
  
4)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었습니다. 저주가 늘 따라다녔습니다. 불행의 그림자를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무서운 저주가 3-4대에 이르며 대물림하게 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참으로 비참한 운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참 평안과 안식이 없었습니다. 진정한 행복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본래 하나님이 계획하신 아름다운 인생을 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괴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쉽게 허무함에 빠져 버립니다. 인생을 살 의욕을 잃어버리고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굳어진 마음을 가지고 매사에 부정적인 관점으로 보며 하나님이 주시려는 복과 은혜를 거부하며 살았습니다. 

존 뉴턴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때 포학한 노예 상인이었으며 이름난 탕자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예수 믿고 변화받아 목사가 된 후 40여 년 동안 주님의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존 뉴턴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주님이 나의 죄를 다 용서하셨다고 하지만 나 같은 노예 상인을 용서하셨을까? 정말로 나 같은 탕아를 용서하셨을까? 하고 문득 문득 과거의 죄가 떠오를 때에는 온몸에 소름이 돋고 두려움에 마음이 떨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벽에 이사야 43장 4절 말씀을 써 붙여 놓고 그 말씀을 되뇌이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노라.'
  
그는 일생 동안 구원받고 용서받은 것을 잊지 않으려고 이 말씀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82세로 숨을 거두면서 다음과 같이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 나라로 간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나라로 가면 아마 세번 놀랄 것이다. 처음엔 하나님 나라에 오리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 나라에 가면 반드시 만나리라 기대했던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고, 세 번째는 노예 상인인 내가 그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세리가 마태가 된 것과 뉴턴이 새사람이 된 것은 너무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놀라운 사랑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 모두는 적어도 뉴턴이나 마태와 같은 죄인들입니다. 주의 사랑으로 변화받은 마태처럼 겸손히 죄인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2. 이제는 우리 형편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4-6)

예수 믿으면 우리에게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1) 구원을 받았습니다.(5)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멸망당할 위기에서 구출받았다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 주듯이, 불속에 갇힌 사람을 구출해 주듯이 하나님이 곧 멸망할 위험에 처한 우리들을 구출해 주셨습니다. 마귀 사단에게 눌려 신음하고 고통당하는 우리를 건져내어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4)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새로운 영적 형제 자매가 생겼습니다. 영적 가정인 교회에서 사랑을 받고 주며 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큰 사랑을 나타내 주셨고 앞으로도 풍성하게 부어주십니다. 
  
3)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5)  죄와 허물로 죽었던 존재였는데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돌같이 딱딱하게 굳었던 우리의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원한에 사무친 사람이 용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미움으로 가득차 모든 이들을 거부하던 사람이 용서하고 용납하며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저주가 사라졌습니다. 헛된 욕심이 사라졌습니다. 교만으로 가득찼던 사람이 겸손하여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에 찬 눈으로 바라보며 불신하던 사람이 믿음으로 충만하여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4)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미래의 문제도 다 해결되었습니다.(7) 과거의 죄문제가 다 해결되었을 뿐 아니라 현재 안고 살던 무거운 짐이 다 해결되었을 뿐 아니라 미래의 문제도 다 해결됩니다. 염려와 근심이 사라집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게 됩니다. 
  
5)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6) 이땅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신분이 바뀐 것입니다. 하늘 나라의 시민권을 소유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게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영화로운 보좌에 앉혀 주십니다. 

어느날 종교개혁자 루터에게 학생들이 찾아와서 "선생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많은 사단의 시험과 유혹을 쉽게 이길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루터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응, 사단이 자주 자주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면서 문을 열라고 소리칠 때가 있다네.  그럴때마다 내 마음에 계시는 예수님이 나가셔서 문을 열어 주신다네.  마귀가 `이 집에 루터가 살고 있지요?"하고 물어오면 예수님은 `과거에는 루터가 살았지, 그러나 지금은 그가 이사를 가고 내가 살고 있어'라고 대답하신다네.  그러면 마귀는 대경실색해서 도망가 버린다네.  내가 시험을 이기는 방법은 이것이라네."
  
그렇습니다.  예수를 마음에 영접하고 그분을 믿기만 하면 우리 마음에는 예수님이 함께 사십니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유혹에 약한 부분이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항상 우리 마음에 거하시기만하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 마귀가 두들기고 유혹해와도 우리 대신 주님이 모든 것을 감당해 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탓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발이 시험의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지켜주십니다.  당신에게 아무리 약한 부분이 있어도 걱정하지 마십시요.  다만 당신의 약한 부분을 주님이  대신 지켜주시도록  기도에 힘쓰십시요.  그러면 마귀가 아무리 우는 사자와 같이 당신을 향해 덤비고 쓰러뜨리려고 해도 당신을 쓰러뜨리지 못합니다.

레오 톨스토이는 [나의 회심]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5년전 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나의 전생애가 변했다. 이전에 욕망하던 것을 욕망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이전에 구하지 않던 것들을 갈구하게 되었다. 이전에 좋게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중요한 것으로 보이고 대수롭지 않게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중요한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나는 소위 행운의 무지개를 좇아 살았는데 그 허무함을 알게 되었다. 거짓으로 나를 꾸미는 것이나  여인들과의 타락한 생활이나 술취해 기분 좋은것이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예수를 만나고 목적있는 새 인생을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3. 어떻게 우리의 형편이 극에서 극으로 바뀔 수 있게 되었습니까? (8-9)
  
1)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이 임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람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잇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이 자신의 노력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2) 하나님이 선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값없이 고귀한 구원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너무나 사랑하기에 가장 귀한 선물을 값없이 주신 것입니다. 
  
3)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8)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
  
믿음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왜? 어떻게? 하며 따지려듭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 이유를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은 나를 왜 사랑합니까?" 하고 물어오면 뭐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응, 당신이 착해서", 또는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예쁘니까" 이런 대답은 옳은 대답이 아닙니다. 가장 정답에 근접한 대답은 "그냥, 좋아서"입니다.  사랑에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사랑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도 설명이 용이하지 않으니까 그냥 믿어라 하신 것 같습니다. '내가 사랑의 증거로 아들을 희생하지 않았느냐? 그걸 보고 내 사랑이 진실된 증거를 확인하고 그냥 믿어라.' 하시는 것입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삼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형은 목재 가구와 나무 십자가를 만들어 동생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여동생은 집안 일을 열심히 돌보았습니다.  그러나 남동생 춘팔은 도박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형이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날도 춘팔이는 도박판에 가서 어울리다 돈을 모두 잃고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형 춘삼이 크게 다칠 뻔한 위험에 처한 동생을 구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도박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춘팔은 형에게 애걸을 합니다. 도박빚을 갚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다고 거짓말을 하며 마지막 남은 통장을 달라고 조릅니다. 형은 할 수 없이 도박빚을 갚고는 삼남매가 행복하게 살자며 통장을 내어줍니다. 그 돈으로 도박을 하다가 운좋게 돈을 많이 땃지만 돌아오는 길에 따라붙은 깡패들과 싸우다가 살인을 하였습니다. 피투성이가 된채 집으로 뛰어들어온 춘팔이 공포에 질려 형에게 사실을 말하며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나 경찰이 집을 포위하고 스피커로 자수를 외칩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사형을 각오하며 걸어나가려는 춘팔을 돌려세우고 형 춘삼은 피묻은 옷을 벗겨 자기가 입습니다. 만들다 만 나무 십자가를 꼭 쥐어주며 춘삼을 달려 나갔습니다. 경찰의 정지 명령에도 마구 달려 나갔습니다. 

마침내 총성이 들리고 춘삼은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죽었습니다. 경찰은 후에 죽은 것은 살인자 춘팔이 아니고 형 춘삼이였음을 알게 되었으나 형이 대신 죄값을 치루었기에 춘팔을 사면해 주었습니다. 그 후에 춘팔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도박을 끊고 형대신 나무 십자가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볼품없던 십자가가 점점 형의 아름다운 작품을 닮아갓습니다. 그와 함께 그의 삶도 아름답게 변했습니다. 

어느날 형의 무덤을 찾은 춘팔은 두 개의 나무 십자가를 무덤에 꽂습니다. 하나는 형이 만들었던 것 하나는 자신이 만든 것입니다.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닮았습니다. 춘팔의 십자가에 편지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당신께서 사신 것이라. (갈2:20)" 이것은 오래 전에 샌프란시스코 차이나 타운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그와같이 의로우신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놀라운 사랑을 나타내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값없이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믿을 때에 우리에게는 구원의 선물이 주어지고 우리의 삶은 새롭게 변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에 감동하고 온전히 믿음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예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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