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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창 1:1, 히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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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창 1:1, 히 11:3)


현대사회에서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는 가장 큰 도전은 ‘진화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화론이 등장하여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세계관, 가치관, 인생관을 심각하게 뒤흔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의 핵심은 다윈이 쓴 [종의 기원]에서 강조하고 있는 “자연선택”(natrural selection)이라는 개념입니다. “생물 개체가 같은 종이라도 환경에 적응하여 여러 가지 변이를 나타내게 되는데, 이 변이 중에서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변이가 선택되어 후대로 전해져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숭이가 항상 그 원숭이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환경에 적응해서 진화해 간다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는 다른 원숭이로 진화해 가기도 하고, 또 어떤 환경에서는 유인원으로 진화해가기도 하고, 또 어떤 환경에서는 인간으로까지 진화해 간다는 것입니다.

이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이 기독교 신앙에 중대한 도전이 되어왔습니다. 
우선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자연 스스로가 선택의 과정을 거쳐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저 하등 동물에서부터 자연선택의 과정을 거쳐서 되어 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화론자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이렇게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면서 하나님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세속주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중심의 세상이 아닌 인간 중심의 세상을 만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인본주의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아니라 과학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이것이 과학주의입니다.

진화론의 위험성이 바로 이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니 세속주의가 싹을 트고, 세속주의가 만연하면서 인본주의가 나타나고, 인본주의가 번창하면서 과학주의가 창궐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창세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창세기는 모든 시작에 관한 것을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우선 창 1-2장에는 우주만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해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고, 또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창 3-11장에는 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해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서 죄가 시작되었고, 이 인간이 저지른 죄 때문에 죽음이 세상에서의 삶과 또한 죽음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 12장 이후에는 구원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해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조신앙이 우리의 신앙의 출발점이요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신앙을 굳건하게 지키는 일이 정말 중요합니다. 창조신앙이 굳건하게 서야 인간의 죄의 심각성을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창조신앙이 굳건하게 서야 하나님의 그 놀라우신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고백의 정수인 사도신경에도 이 창조신앙이 첫 번째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이 창조신앙에 대한 고백을 간단히 줄여보면 이렇습니다. “나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의 첫 번째 구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을 믿으면 성경 전체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믿지 못하면 성경 전체를 믿을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이 ‘아멘!’으로 받아들여지면 기독교 신앙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아멘!’ 할 수 없으면 기독교 신앙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본문은 이 말씀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를 설명해 주는 구절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한 마디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증거를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이 말씀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이 믿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 말씀에 ‘아멘!’ 할 수 있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믿게 해 주신 사람들만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창조신앙을 고백한다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1.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창조신앙을 가지게 되면 우선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창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시고 맨 마지막에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사도 바울은 엡 2:10에서 더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창조신앙을 굳게 하면 우리 자신을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존재라는 점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정성을 다해 지으신 하나님의 소중한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안타깝게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사람들이 여럿 나타납니다. 

삼하 9장을 보면 므비보셋이라는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8절을 보면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자신을 ‘죽은 개 같은 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므비보셋이 자신을 이렇게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선 그는 장애인이었습니다. 사울왕가가 몰락하면서 정변이 일어나 사울왕족이 피신을 할 때, 유모가 다섯 살 된 므비보셋을 안고 도망치다가 그만 떨어뜨려 다리가 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몰락한 왕손으로 버림받은 채 살고 있었습니다.

므비보셋은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니 정말 처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자기 자신은 마치 죽은 개 같은 존재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자아상을 키워갑니다. 그래서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신감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신에 대해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 13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한 보고가 기록되어있습니다. 33절을 보면 10명의 정탐꾼이 이렇게 보고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정탐꾼들이 가나안 거민들을 두루 정탐하면서 특히 아낙 자손들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들의 신체가 크고 장대합니다. 저들이 쌓아놓은 성이 거대합니다. 저들이 차고 있는 무기들이 대단합니다. 그래서 저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메뚜기 같다고 비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남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에 대한 부정적 자아상을 키워갑니다. 그래서 위축되고 좌절합니다. 자신에 대해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창조신앙으로 우리 자신을 보면 달라집니다. 시편을 보면 많은 시편 기자들이 창조신앙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노래합니다.

시 2:7-9을 보면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시 8:4-5를 보면 이렇게 노래합니다. “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창조신앙을 가지게 되면 우리 자신에 대해 올바로 알게 됩니다. 긍정적 자아상을 가지게 됩니다.

2.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창조신앙을 가지게 되면 다음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알게 됩니다.
창 1:2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저들에게 사명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를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따지고 보면 잘못된 세계관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생명체들이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가?”에만 관심을 집중시켜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명체들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생명체의 존재 목적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현대 진화론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리차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자신의 진화론적 세계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인간은 ... 아무 것도 아니다. 그냥 인간의 이기적 유전자를 번식 시키기 위해 여기 던져져 있을 뿐이다. 인생에 보다 높은 목적 따위는 없다.”
한 마디로 “인생 뭐 별거 있냐?”는 것입니다. 먹고 살다가 자식 키우고 죽는 것이 전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화론자들은 대체로 허무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인생을 바라보니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뭐하나 좋은 대학 들어가겠지. 좋은 대학 들어가면 뭐하나 출세하겠지. 출세하면 뭐하나 돈 많이 벌겠지. 돈 많이 벌면 뭐하나 소고기 사먹겠지...’ 뭐 이런 식입니다.

오프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는 미시시피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초라하고 불행한 흑인 소녀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됐고, UN이 선정한 ‘올해의 지도자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그리고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명 중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가장 성공한 사람이요,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이 된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될 수 있던 원동력이 ‘사명감’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자신의 삶을 롤 모델을 모세로 삼았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사명을 위해 살았던 것처럼 자신도  자신이 발견한 사명을 위해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자서전을 출간했는데 그 제목이 [이것이 사명이다]입니다. 이 자서전에서 주목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둘째, 남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셋째, 남보다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넷째, 남보다 부담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짐이 아니라 사명이다. 

한 마디로 자신이 겪는 그 모든 것에서 사명을 발견했고, 그 사명감으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오늘의 자신이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창조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목적을 찾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창조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나름대로 삶의 목적과 존재 이유를 찾아갑니다. 

바로 이것이 사명입니다. 그리고 이 사명을 위해 달려갈 길을 달려갑니다. 

3.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창조신앙을 가지게 되면 또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알게 됩니다.

창 1:2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께서 다른 피조물과 달리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분명히 다른 피조물과 다르게 창조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다움’입니다. 창조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이 인간다움을 깨닫게 되고 인간답게 살아가려고 힘쓰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역시 이것도 잘못된 세계관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인간과 동물은 차이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에게만 특별히 양심이 있다든지 도덕과 윤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인간다움이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2차 대전 중 독일군이 유대인 6백만 명을 학살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독일군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인간의 양심이었습니다. 인간의 양심을 가진 사람에게 600만 명을 죽이게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독일 군부는 독일군의 마음속에 있는 그 양심을 무디게 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3만 명이 넘는 유대인 수용소에 화장실을 하나만 만들어두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을 할 수 없이 아무데나 배설을 했습니다. 그리고 배설물과 뒤엉켜 살아야 했습니다. 그 모습을 인간이라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독일군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들을 자기들과 같은 인간으로 보려는 마음이 점점 사라져갔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 같은 유대인들을 향한 양심이 무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대량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인간다움이 무너지면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을 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독일군부의 계략으로 눈에 보이는 인간다움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독일 군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다움이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600만이나 되는 유대인들을 학살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모습은 인간이나 그 안에 하나님을 닮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우선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어려운 이웃들을 불쌍히 여기며 저들을 돌아보는 삶을 살아갑니다.

다음으로 평화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갑니다. 갈등을 극복하고 싸움을 멈추도록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창조적 삶을 살아갑니다. 공동체에 덕을 세웁니다. 보다 나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힘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창조신앙을 더욱 굳건히 세워가야 하겠습니다. “나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보다 뜨거운 신앙고백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 창조신앙의 고백이 우리가 누구인지 올바로 알고 살게 해 줍니다. 긍정적인 자아상을 세울 수 있게 해 줍니다. 이 창조신앙의 고백이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살게 해 줍니다. 사명의 삶을 살게 해 줍니다. 이 창조신앙의 고백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살게 해 줍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을 닮은 삶을 살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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