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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로 전파하며 감사합시다 (눅 4: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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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전파하며 감사합시다 (눅 4:18-19)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눅 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남아프리카에서 37년간이나 선교사로 일했던 '루이자 스테스' 여사는 본래부터 선교사로 헌신한 것이 아니었다합니다. 그녀가 선교의 뜻을 발견하게 된 것은 1879년 여름 남편 '스테스'와, 딸 '릴리' 이렇게 세 식구가 바닷가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다가 물에 익사하는 한 소년을 구하러 들어간 남편이 소년과 함께 죽은 후 부터였다 합니다. 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1주간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비통에 잠겨 기도하기 시작했다합니다. '주님 왜 이런 일이 있어야 합니까?' 그녀의 기도에 주님은 조용히 '구주 예수 의지함'이라는 찬송으로 응답을 해주셨고, 그 후로 자신은 물론 많은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게 되었다 합니다.

많은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자신은 아무에게도 아무 것도 베풀지 않는 삶은 얼마나 척박한 것인가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며 베푸는 자가 되어야 활 줄 믿습니다.

예수께서 공생애 초기에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안식일에 강론하시기 위하여 순서에 따라 예언서 중 이사야 61:1-2을 낭독하시는 장면으로서, 메시아가 세상에 와서 할 일을 말하고 있는 내용으로 메시야가 와서 불행과 죄로 인해 고통당하는 자들을 해방 시킨다는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 61:1-2)라고 합니다.
  
이 예언은 일차적으로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귀환에 적용될 수 있지만, 실제적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실 사역을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는 예언이라고 봅니다(Barnes, Spence). 이때 당시 백성들은 본문의 예언이 보통 포로에서 돌아온 상태를 언급한다고 알고는 있었으나, 아직 그 위대한 예언에 묘사된 찬란한 모습들은 미처 보지 못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대다수는 흩어져 있었고, 고국은 로마의 식민지였으며, 백성들은 학정과 가난으로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Spence).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선지자와 제사장이 기름으로 부음 받은 것같이 성령으로 부음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 즉 마음이 상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 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백성들이 대망하던 마지막 때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이 메시지는 마지막 때의 완성을 전합니다.

예수께서는 사61:1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켰고 그와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 전파됩니다. '복음'즉 기쁜 소식은 그의 태어나심 자체이며, 그의 오심, 사역, 죽으심은 평화의 위대한 선포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택하신 것은 자신이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한 메시아임을 증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21절). 그러므로 메시아의 사역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속 사역의 중요한 요소를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눅4:18)라고 시작하심으로 '성령의 임재'(18절)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메시아의 구속 사역 전반이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임재 없이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벧후 1:20-21)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령의 임재 없이 이해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전파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고전 2:4) 했다고 말했습니다.
  
어거스틴이 성령의 조명을  설명하기 위해 알아듣기 쉬운 비유를 한 가지 들었습니다.
"우리가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물을 보기 위해서 는 빛이 필요합니다. 빛이 비치기만 하면 우리는 눈을 뜨고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 음의 눈은 우리 스스로 떴다 감았다 하지 못합니다. 마음의 눈은 성령이 오셔서 열어 주셔야만 합니다. 이것 을 '조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열어 주시지 아니하면, 성령이 감동 하셔서 열어 주시지 아니하면  우리 는 성경을 천 번을 읽어도 그  속에  있는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미국이 낳은 위인 부커 워싱턴은 어려서 노예로 있을 때 낡은 오막살의 청소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깨끗이 청소를 해도  주인은 더 잘 하라고 꾸짖는 것이었습니다.  부커는 세 번 퇴짜를 맞은 후에 이제는 자신을 가지고 주인을 오막살이로 데려왔습니다. 주인은 들어서자마자 고함을 질렀습니다. "창문은 왜 닦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있으면서도 그 오막살이에 창문이 있는 것조차 몰랐던  것입니다. 

부커는 나면서부터 유리 창문이 있는 집에 살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 창문에 너무  먼지가 많이 앉아 눈에 띄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커는 부지런히 유리창을 닦았습니다. 그 순간 찬란한 석양빛이 오막살이의 어둠침침한 방안을 환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렸을 때의이 경험이 부커 워싱턴에게 유명한 말을 남기도록 하였습니다. "창문을 닦읍시다. 창문을 닦읍시다. '미래'라고 하는 창문을 닦읍시다. 양심의 창문, 신앙의 창문  거기에 먼지가 앉으면 암담할 뿐입니다. 미래도 보이고 현재도 밝아지도록 빛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창문을  닦읍시다.“

마음의 눈을 항상 밝게 하시는 성령이 충만하시므로 자신의 삶을 밝게 할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함으로 이웃들의 마음도 밝게 하시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런데 복음 전도의 대상은 '가난한 자'라고 합니다.
전도의 대상이 '가난한 자'로 되어 있는 것은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라기보다 '심령이 가난한 자'(마 5:3)를 뜻합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비율은 부한 자들보다 높긴 하지만 가난한 자들이라고 해서 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며, 부한 자라고 해서 복음을 다 거부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어떤 사람이든지 진심으로 겸손하여 어떤 신적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고 믿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이 곧 가난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일본 마쯔시다 전기의 창업자인 마쯔시다 고노스께는 몸이 약한 아이로 태어나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사람이라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불운하였던 처지를 불평하거나 비관치 않고 그런 처지를 오히려 감사함으로 받아들여 일본 최고의 기업인이 될 수 있었다합니다. 훗날 자신의 삶을 회상하며 다음 같이 말하였다합니다. “나는 신이 부여하신 3가지 은혜 덕에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허약한 몸으로 태어나게 하셨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이를 이기기 위해 항상 운동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나는 지금 90세 나이임에도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하나님은 나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게 하셨다. 그로인해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 온갖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세상일을 헤쳐나감에 둘도 없는 재산이 되게 되었다. 

셋째 하나님은 나를 초등학교도 갈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게 해 주셨다. 따라서 나는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밖에 없었다. 만나는 사람 전부를 스승을 삼고 그들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가며 그들이 아는 전부를 열심히 배웠다.” 자신에게 주어진 불운한 환경을 오히려 유익한 환경으로 바라보고 그렇게 바꾸어 나간 지혜와 용기, 분별과 성찰이 담긴 말입니다.(김진홍 목사의 아침묵상)

오늘도 복음은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고백하며 사모하는 심령 곧 가난한 심령에 전파됩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자유케 하고 다시 보게 하며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해서하고 합니다.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18절)전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면 피조물의 어떤 것에 포로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물욕의 포로로, 어떤 사람은 애욕의 포로로, 어떤 사람은 권력의 포로로, 어떤 사람은 명예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속박하는 이러한 모든 형태의 우상은 그 실체가 '죄'이며, 이 죄에서 해방될 때 비로소 인간은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습니다.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그리스도의 진리가 있는 곳에 자유가 있습니다.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인간의 참 자유는 대속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옵니다.
(요 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눌린 자를 자유케 합니다'(18절).
여기서의 '눌린 자'는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억압당하는 자들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 억압인 불안과 공포, 근심과 염려 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자유 하는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억압하고 있는 이러한 요인들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자유를 얻은 인간들이 사회적 여건과 제도를 부단히 개선해 감으로써 제거하여야 하며, 심리적인 억압 또한 속죄의 은총을 체험함으로써 제거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억압하는 모든 형태의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 하는 영에 의하여 구축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코카콜라 창업자인 아사 D. 캔들러라고 하는 사람은 본래 알코올 중독자였다합니다. 알코올, 이 술에 중독이 되어서 술을 안 먹으면 살 수 없고 술을 먹지 아니하면 정신이 들지 않습니다. 알코올 중독자 수용소에 끌려가서 오랫동안 여러 차례 고생을 했지만은 술에 대한 욕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렇게 비참하게 살아갔지만은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서부터 들려오는 강한 마음속에 있는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내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거절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속에서 가지는 이 악한 욕구, 이 욕망을 거절해야만 내가 자유인이 될 수 있다.' 

그는 깊이 깨닫고 집에 돌아가 아내의 손목을 잡고 자기가 깨달은 바를 고백하고 같이 울며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합니다. 자유인으로 시작합니다. 술의 노예가 되었던 사람이 이제는 자유인으로 그 양심도 그 영혼도 모든 악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자유인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바치면서 코카콜라라고 하는 큰 기업을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18절) 전파하게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눈먼 자라 함은 육체적으로 소경인 자를 말하기도 하지만 영적인 세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을 주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인간을 대표하는 것은 영혼이지 육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육체는 영혼의 집이며 영혼의 형식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공생애 활동에서 인간들과의 대화는 그들의 육적이고 물질적인 질문이나 관심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언제나 그 배후에 있는 실체를 깨우쳐 주심으로써 영적인 세계를 깨닫게 하는 데 힘쓰셨습니다. 인간은 원래 영적인 존재이나 죄로 인하여 육적인 존재로 타락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영적인 존재로 다시 각성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소경을 고쳐 주신 일들은 그 치유를 통하여 영적인 세계를 보게 하는 데 큰 목적이 있었습니다.
  
미국에 우리 교포들이 모이는 교회 가운데 가나안 교회에 아주 좋은 사찰 집사님이 한 분 계신다 합니다. 원래는 미국에 유학을 와서 대학원에 박사코스까지 밟은 그런 분이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갑자기 눈이 나빠지기 시작하는데 아무도 고치지를 못합니다. 점점 눈이 어두워져 가지고 바로 앞에 있는 것 밖에는 못 봅니다. 책도 못 보게 되었고 심지어는 사람도 못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 교회에서 청소를 하면서 그럭저럭 밥을 얻어먹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한 2년이 지났어요. 하루는 그가 차를 타고 나갔는데 그만 차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꽝'하고 부딪치는 순간, 갑자기 그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왜 TV같은 것 안 나올 때에 한 번 크게 탁 치면 잘 나올 때가 있잖아요? 아와 마찬가지로 한 번 크게 부딪친 덕분에 뇌에 충격요법이 가해져서 눈이 환하게 밝아졌어요.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 밝은 눈을 가지고 내가 어떻게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귀한 마음으로 사찰 일을 계속하고 있다 합니다.(소망의 말씀, 426, 4p)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합니다(19절).

'은혜의 해'는 구약에서의 희년을 가리킨 것으로서(레 25:8-17), 노예의 해방, 부채의 탕감, 전토의 환속 등이 이때에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베푸실 구원의 은혜에 대한 상징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며 구원을 직접 성취시킨 메시야의 구원 사역에 연결됩니다.

예수님에 의해 새롭게 선포된 이러한 풍성한 은혜는 예수님의 공생애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림까지 계속될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의 선한 생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의로운 생활을 통해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이 땅에서 행해야 할 아름답고 은혜롭고 기쁜 구원의 소식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어떤 죄인일지라도 우선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와 은혜를 먼저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값없는 용서와 자비와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래야 진정 회개하는 역사도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흘리는 회개의 눈물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얼음은 따스한 햇빛으로만 녹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되 항상 주님의 은혜로운 복음부터 전하고 그 은혜가운데서 온유하게 회개로 이끄는 지혜로운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인도 방갈로르의 한 신학교에서 강연했을 때였다. 강연 후 한 수녀가 질문을 던졌다합니다. "테레사 수녀님, 당신은 가난한 이들에게 모든 것을 공짜로 주어서 그들을 버릇없는 사람들로 만들고 있습니다." 청중이 이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이 나올지 숨을 죽인 채 쳐다보았다합니다. 

테레사가 조용히 대답했다 합니다. "사람들을 버릇없게 만드시는 분이 있다면 하나님을 따를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안경을 쓰지 않고도 잘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공짜로 시력을 주셨기 때문이지요.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세상을 볼 수 있는 시력을 주신 것에 대해 돈을 지불하라고 한다면 얼마나 많이 내야 하겠습니까? 뿐만 아닙니다. 대기에 있는 산소를 공짜로 주셨기에 우리는 아무 값도 치르지 않고 마음껏 숨을 쉴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너희가 네 시간 일한다면 두 시간 동안 햇빛을 주겠다고 말씀하신다면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테레사의 대답이 떨어지자 질문을 던진 수녀는 물론이고 아무도 대꾸하지 못했다합니다.

우리야말로 무수한 은총의 선물들을 무상으로 받고 또 받는, 버릇없는 자들입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교회설립 80주년을 맞아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되 부흥성회를 준비하며 은혜로 전파하며 감사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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