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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지조 (눅 1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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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지조 (눅 12:1-12)   
 
다니엘은 십대 중반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 왕실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성공과 출세가 보장된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왕실학교에 다니면서 왕이 하사해 준 음식이 우상의 제물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음식으로 자기의 몸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뜻을 정했습니다. 

<단 1:8~9>“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십대의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앙의 지조와 절개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사람이 줏대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기웃거리고 저기 기웃거리면 안 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면 안 됩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 안 됩니다.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에게 질질 끌려 다니면 안 됩니다. 신앙이 모호하거나 흐리멍텅하면 안 됩니다. 믿는 둥 마는 둥하면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선명하고 분명해야 합니다. 원색적이어야 합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확실해야 합니다. “신앙의 지조를 지키자!” 오늘 봉독한 말씀을 보면 

첫째, 누룩을 주의해야 합니다.

본문 1~3절을 보겠습니다. “그 동안에 무리 수 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누룩이란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하는 발효제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의 외식을 누룩으로 비유하신 것은 그들의 나쁜 영향력이 누룩만큼 크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누룩을 주의하라는 말씀은 나쁜 영향을 받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외식은 고직적인 병폐였습니다. 그런데 이 외식의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외식이 일반 백성에게도 누룩처럼 삽시간에 퍼져나갑니다. 전염성이 아주 강합니다. 좋은 것은 잘 퍼져나가지 않아도 나쁜 것은 빠르게 퍼져나갑니다. 

열두 정탐꾼의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 60만 명은 열 명의 부정적인 사람들에게 하룻밤 사이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다 망했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누룩처럼 하룻밤 사이에 쫙 퍼져나갔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주변에 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만나고 교제하는 사람들로 인해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따라서 내가 누구를 만나서 누구와 교제를 나누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신앙의 지조를 잘 지키고 살려면, 죄악 많은 세상에 나가 살 때 나쁜 영향을 받으면 안 됩니다. 세상의 영향을 받으면 우리 신앙이 변질되고 세속화 되고 결국 타락하게 됩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선한 영향을 끼치며 살아야 합니다. 

아내가 믿지 않는 남편에게 영향을 받으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남편이 직장에서 불신자들에게 영향을 받으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바다를 짜게 하는 것은 3퍼센트의 소금입니다. 대단한 영향력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라고 했습니다.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무하마드 유누스는 미국 밴더빌트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1972년 조국 방글라데시로 돌아왔습니다. 그에게는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직접 찾아다니다가 조부라 마을에서 대나무 의자를 만드는 여성 수피야 베굼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열심히 일했지만 사채업자의 고금리로 인해 겨우 이자를 갚고 남은 2센트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고국의 빈곤 문제를 일으키는 사회적 환경을 4년 동안 집요하게 연구하여 그라민 은행을 설립했습니다. 

그라민 은행은 작게 시작했지만 방글라데시에 혁명적인 변화를 주었습니다. 30년 동안 대부분 가난한 여성이었던 250만 명에게 돈을 빌려 주어 자립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세상의 영향을 받으면 우리의 신앙은 변질되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본문 4~7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또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예수님은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해서는 안 될 대상은 4절에 ‘몸을 죽이고 그 후에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이고,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5절에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마10장 28절에는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권세를 가진 자들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도 귀하게 여기시는데, 하물며 우리는 참새보다 더 귀할 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 8:13>“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지리산에 안식교가 기도원을 차려놓았는데, 전국에서 암환자들이 찾아갑니다. 그 중에는 목사 장로도 많다고 합니다. 암을 치료해보겠다고 신앙의 지조를 버리고 이단인 안식교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의 남자가 나며 죽이고 여자가 나면 살려주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산파들은 애굽 바로 왕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출 1:17>“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이들을 살린지라.” 

엘리야는 아합 왕의 핍박이 있었던 어두운 시절에 올곧게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아합 왕과 이세벨이 그를 죽이려고 했을 때 그는 ‘오직 나만 남았다’고 탄식했습니다(왕상 19:10, 14).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왕상 19:18>“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이렇게 신앙의 절개와 지조를 지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자 존 녹스는 스코틀랜드에서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묘비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결코 인간을 두려워한 일이 없는 자가 여기 잠드노라.” 그는 수많은 대적자들과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두려워함으로 담대하게 종교 개혁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예수님을 담대히 시인해야 합니다.

본문 8~12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려왔을지라도 그들 앞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시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시인하고 고백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롬 10:9~10>“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속으로 믿는 예수님을 담대하게 고백하고 시인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는 헤성교회 지체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초대교회가 놀라울 정도로 부흥했습니다. 그 당시 가장 위협을 느꼈던 세력은 유대교였습니다. 유대교의 산헤드린 공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체포해서 감옥에 가두고 그들을 위협하고 경고했습니다. <행 4:17~18>“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 4:19~20>“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들은 산헤드린 공회의 협박과 위협 앞에서도 담대하게 예수님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도 산헤드린 공회에 가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복음을 전했고 신앙의 지조를 지켰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에 보면,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되었습니다. 그 때가 AD 90년 대였는데,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의 엄청난 박해와 핍박이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 당시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이사(로마 황제)가 주님이냐 예수가 주님이냐”고 요구했습니다. 가이사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면 살지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면 죽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목숨 걸고 예수님을 시인했고, 신앙의 지조를 지켰습니다. 조그만 유혹과 시험 앞에 넘어지면 안 됩니다. 담대하게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함으로 어떠한 유혹과 시험도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 최대 석유회사 사장이 외국에 지사를 세우고 관리자를 찾았습니다. 적임자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얼마 후 한 사람이 회사를 찾아왔습니다. “당신 회사에서 찾는 적임자를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는 현지 선교사인데 연봉 천만 원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자 사장이 말했습니다. “만일 그가 우리 회사에 온다면 연봉 이천만원까지 줄 수 있소.” 사장은 그 선교사에게 거액의 연봉을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그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 말에 사장이 의이하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제안한 연봉이 굉장한 금액이 아닙니까?” 그러자 그 선교사는 말했습니다. “예. 제안하신 연봉은 엄청난 금액입니다. 하지만 그 일은 너무 작은 일입니다. 이천만원을 받고 이곳 사람들에게 석유를 판매하는 일보다는 지금처럼 천만원을 받고 이곳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이 훨씬 큰일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신앙의 지조가 있어야 합니다. 분명하고 확실하고 선명하고 원색적인 신앙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신앙이 모호하거나 흐리멍텅하면 안 됩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 신앙이 변질되고 세속화되고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의 지조를 지키려면, 첫째, 누룩을 주의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셋째, 담대하게 예수님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들의 믿음이 자라고 여러분들이 섬기시는 교회가 아름다운 향기를 내고 열매가 맺혀질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고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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