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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날마다 눈 뜨라 (막 10: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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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눈 뜨라 (막 10:46-52)  

신학대학에 입학했을 때입니다. 급우들 대다수가 모태교인이요 대대로 목사 장로의 자손입니다. 저처럼 중간에 믿은 사람과는 차원이 다르리라. 대단한 기대를 합니다.  하지만 경건은 모양뿐이고 경건의 능력은 없음을 봅니다. 겉모습만 신자고 속은 불신자와 차이가 없어요. 소경처럼 눈은 있어도 못 보고 구원 받았어도 못 누려요. 

그런데 어떤 급우는 너무도 멋지고 능력 있게 삽니다. 마치 바디매오와 같아요. 당시 얼마나 많은 맹인이 비참하게 살았겠어요! 예수가 함께 계셨는데도 새 세상을 보고 누린 사람은 소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물론 많은 신자들이 천국을 받았음에도 빛을 못 보고 헤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아야만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눈을 떴는가? 

사람은 현실에 적응이 됩니다. 북한 사람들, 더욱 수용소의 사람들은 그 상황에 완전히 적응됩니다. 불편하지만 견딜만해요. 노예도 그렇고 감옥에 들어가도 그렇습니다. 맹인들도 적응이 됩니다. 별로 불편하지 않아요. 신앙생활 그래요. 자신이 영적 맹인인데도 답답하지만 그런대로 살아요. 다 그런 줄로 알아 세월을 낭비해요. 

당시 맹인은 다 구걸밖에 할 일이 없었어요. 그들은 성문 앞에 모여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기 때문이지요. 바디매오는 안 그랬어요. 그가 다른 맹인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요? 없어요. 단 하나. 보겠다는 염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선처럼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요 따라가면 됩니다. 

예수가 지나간다는 소리를 듣자, 행동합니다. 마음 준비가 되어왔습니다. 간절하지 않았더라면 기회가 와도 못 잡아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문제는 구원자 그분만 해결합니다. 그러나 상황도 주위 사람들도 못하게 만듭니다. 내 몸도 마음도 가기 싫어집니다. 그걸 넘어서야 구원을 만나고 천국을 봅니다. 

예수께서 부르신다는 말을 듣습니다. 겉옷을 벗어 던지고 소리 나는 데로 달려 나갑니다. 소원을 말합니다. “보기 원합니다.” 당신의 소원도 같기를 바랍니다. 눈앞에 하나님이 있어도 못 봅니다. 천국의 모든 복이 널려있어도 안 보입니다. 생명과 기쁨과 능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약함과 결핍 속에 눈이 멀었어요. 억울해야 합니다. 

예수는 문제 해결하려 앞에 계십니다. 가까와요. 내가 못 느낄 뿐입니다. 통로는 많아요. 가기 싫어요? 바빠요? 옆에서 막아요? 가도 잘 안 만나져요? 바디매오는 외칩니다. 끝까지. 예수는 그 후 다시는 여리고를 통과하지 않았어요. 우리 인생이 영원하지 않아요. 바쁘고 힘들수록 나와야 합니다. 나와야 열려요. 중단하지 마세요. 


2. 하나님께 접근하라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못 본단 말인가요? “나 예수 영접했고 구원 받았는데요.” “난 방언도 해요.” 그래요. 회개하고 구원 받은 것은 영원히 갑니다. 반복할 필요 없어요. 그러나 겨우 천국의 맨 밑 계단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나는 못 보는 자를 보게 하고 본다는 자는 맹인 만든다.” 예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왜 매일 아침 눈을 뜨나요? 보기 위해서입니다. 아름다운 삶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어제 보는 걸 오늘도 보나요? 불쌍한 사람입니다. 훨씬 더 지혜롭고 더 풍성해야지요. 영적으론 더욱 그래요. 성령 받은 사람도 반복해 눈 떠야 합니다. 나는 바디매오가 아닌가요? 우리도 매일 눈을 떠야 합니다. 보기를 간절히 원해야 해요. 

바울 같은 경지에 있는 분도 고백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너무도 간절해요.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를 더 알고자 하노라.” 누구든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면 바디매오 주위의 맹인입니다. 계속 눈 떠야합니다. 

바울이 그렇게 영적으로 성공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예배 흥미 없고 교회 일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 열심 내라고 혼내면 되나요? 죄의식만 늘어갑니다. 열심도 믿음도 능력도 모두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영적 지식이요 영적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쪽에서도 소원을 일으키고 행동해야 합니다. 아기는 울어야 젖을 먹어요. 

영의 여행은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분은 최고의 가이드입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피와 목숨으로 값을 치르셨어요. 그래서 나는 당당하게 받을 수 있어요. 바울처럼 매 맞고 욕먹고 감옥가도 감격 충만할 능력,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고 귀신 쫓고 병 고치는 능력도 얻어요. 하지만 나는 참여하고 따라야만 합니다. 


3. 간절한 만큼 선물도 크다 

하나님의 선물은 간절할수록 커요. 물론 간절한 마음도 영적이기에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 향한 믿음도 하나님이 주셔야 하고요. 그러나 적어도 내 쪽에 바디매오의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보기 원합니다.” 아무 요구 사항 없이 보게 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소원하는 게 믿음이요, 구원인 것입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작가는 마가렛 미첼입니다. 신문기자였는데, 26살에 사고로 다리를 절게 되자 해고됩니다. 얼마나 낙심했겠어요? 그러나 마음을 잡고 소설을 썼어요. 10년이나 걸렸습니다. 마치자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다닙니다. 바쁜 사장들이 무명작가의 소설을 읽겠어요? 3년 동안 원고가 다 해질 정도입니다. 

한 유명출판사 사장을 찾는 데 만날 길이 없어요. 그분이 여행하는 시간에 기차역에 나가 부탁합니다. “여행하시면서 한 번만 읽어주세요.” 시달리지 않으려고 그냥 받아서 가방에 넣었어요. 여행을 마치고 집에 오니 전보가 와있습니다. “원고 한 번만 읽어주세요. 미첼” 짜증내고 나갑니다. 얼마 후 다시 같은 전보가 또 옵니다. 

이제는 아무리 피해도 전보가 항상 따라다녀요. “딱 한 번만.” 성경에 나오는 과부와 재판관 이야기 같아요. “더 시달리기 전에 읽어치우자.” 그래서 읽기 시작했는데 완전히 빠집니다. 출판을 하자 하루에 5만 부가 팔립니다. 이때가 1936년 굉장한 사건입니다. 인간을 향한 간절함도 이처럼 놀랍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향해서야! 

하나님은 모든 복을 한없이 주고 싶으십니다. 그러나 그냥 주면 복인 줄 모릅니다. 교만해집니다. 결국 망합니다. 세상의 부자 부모들이 그래서 자식을 망칩니다. 하나님은 간절히 원해야 주십니다. 한없이 원하세요.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그렇게 자라납니다. 늘 바디매오 심정으로 매달리세요. “보게 하소서.” (김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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