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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착하고 충성된 종처럼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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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충성된 종처럼 (마 25:14-30)


오늘은 우리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가 설립된지 만 2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제가 우리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를 시작하면서 약속하였던 담임목사 자리에서 내려와 처음부터 말씀드렸던 이원석 목사님에게 그 자리를 넘겨 드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자꾸 버리고 떠나고 내려오려고 하는가를 묻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제가 어떤 영웅심리로 그렇게 하는가라고 의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마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면도 없지 않을겁니다. 그래서 늘 조심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통의 경우 머물며 누리려고 할만한 자리와 시간에 그곳을 떠나 버리고 내려오는 까닭은 그래야만 나와 교회가 건강하게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상적인 의미의 성공도 부정하거나 부인하지 않습니다. 저를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는 '깨끗한 부자'와 '고지를 정복하라'입니다. 세상적으로 부해지고 성공하여 출세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처럼 오해받기 딱 좋은 말들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오해를 많이 받고 오해 뿐 아니라 어떤 때는 감당하기 어려우리만큼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저는 세상적인 부와 성공만을 좋은 도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들도 잘 쓰면 좋은 무기와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와 같은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있어서였는지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기준으로만 본다면 제법 적지 않은 성공을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안교회에서의 목회와 높은 뜻 숭의교회에서의 목회가 대표적이라고 혹 할 수 있을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두 곳 모두 서둘러 떠나게 하셨습니다. 내려오게 하셨습니다. 두 번 다 멋모르고 얼김에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려와 보니 두 번 다 결과가 좋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저에게도 좋았고 보다 중요한 것은 교회에게도 좋았습니다. 가끔씩 생각해보곤 합니다. 나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그냥 머물러 있었다면 어땠을까?

두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첫째는 손해였겠다는 생각이고 둘째는 위험했겠다는 생각입니다.

제 나름 첫번째 성공이었다고 할 수 있는 동안교회에 그냥 머물러 있었다면 그에 못지 않은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높은 뜻 숭의교회는 저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번째 성공이었다고 할 수 있는 높은 뜻 숭의교회에 그냥 머물고 내려오지 않았다면 제 인생의 최고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강한 교회의 분립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떠남과 버림과 내려 옴을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떠날 때와 버릴 때와 내려 올 때를 놓칩니다. 그러나 그게 사탄에게 속는 것입니다. 떠남과 버림과 내려 옴이 이익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더 크고 새롭고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들이 창조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위험했겠다는 생각입니다. 내려오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면 손해를 넘어 위험했을 겁니다. 저도 위험하고 교회도 위험했을겁니다. 저도 건강을 잃고 교회도 건강을 잃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공과 고지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저는 성공과 고지가 매우 위험한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전에도 설교 중에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만 에베레스트와 같은 고산을 정복한 사람들은 절대로 그곳에 머물지 않습니다. 고지 정복이 주는 쾌감에 사로잡혀서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내려 올 타이밍을 놓치게 되고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걸고 올라간 정상에서 저들이 머무는 시간은 몇 시간이 아니라 몇 분입니다. 저는 세상의 고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성공의 자리는 우리의 생명을 노리는 덫이 될 수 있습니다. 산은 올라가는게 목적이 아니라 올라갔다가 내려오는게 목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등산의 목적이 정상에 오르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정말 목적이 되면 등산하는 모든 사람은 다 조난을 당하여 죽게 될 것입니다. 등산의 목적은 하산입니다. 안전한 하산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높은 고지에서 조난사를 당하고 있는 교회처럼 보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선교 100여년 만에 세계선교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부흥을 하였습니다. 모든 교단과 교파를 불문하고 세계최대의 교회가 다 한국에 있다고 하리만큼의 부흥과 성장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는 그 부흥이 교회의 무덤이 되고 말았습니다. 죽기 살기로 목회하여 성공한 목회자들이 그 성공의 덫에 걸려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로, 공로, 명예, 은퇴 더 나아가 세습........

자기만 죽는게 아니라 교회까지 죽고 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러면 처음부터 올라가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올라가지 않으면 내려 올 수 없습니다. 내려오지 않으면 내려움이 주는 축복을 받을 수도 누릴 수도 없습니다.
제가 정말로 쉽지 않지만 열심히 버리고 내려오려고 힘쓰는 것이 자리 말고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돈입니다. 저희는 돈 정말 잘 모읍니다. 제 아내는 돈 모으기 선수입니다. 부자는 잘 버는 사람이 되는게 아니라 잘 모으는 사람이 됩니다. 

저는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참 열심히 그리고 중요한 것은 꽤 많이 모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가난 때문에 고생하는 분들과 특히 가난하게 목회하시는 분들에게 상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큰 상처는 제가 받습니다. 그런 줄 알지만 저는 보통 그것을 숨기지 않고 말을 잘 합니다.

하여튼 저는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적지 않은 돈을 모으는데도 성공한 흔치 않은 사람입니다. 저는 부자의 부함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의 성공적인 부 역시 우리의 건강한 생명을 노리는 덫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돈을 모음도 저는 등산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 죽어라 벌고 모아서 서둘러 버려야 합니다. 써야 합니다. 돈 맛에 눈이 어두어 머뭇거리면 위험합니다.

평생 훈련하고 연습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돈 잘 모으기와 돈 잘 쓰기 입니다. 쉽지 않았지만 그것도 자꾸 연습을 하니까 조금씩 쉬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연습을 해서 쉬워지는 부분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쓰는 것이 손해인 줄로 알지만 해보니 그게 훨씬 이익입니다. 동안교회를 떠났더니 높은 뜻 숭의교회가 생기듯 돈도 마찬가지로 버릴 때 버렸더니 언제나 그만한 돈을 버릴 수 있는 돈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말 장난 같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것을 돈으로 산 셈이 되었습니다.

동안교회 건축 때 저로서는 힘에 부치는 헌금을 작정하고 내었습니다. 그 헌금을 하려면 당시 제 생활수준으로는 겨우 밥만 먹고 살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가난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그 정도의 헌금을 할 수 있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더 정직히 말씀드리자면 그 정도의 헌금은 크게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그냥 간증으로 좋게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재산인 용인 땅이 팔릴 것 같습니다. 저만 오케이하면 계약이 되게 되었는데 어제 저녁 아내와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그것이 팔리면 정말 100% 헌금할 작정입니다. 조금 떼고 드릴까 하는 생각도 잠시 있었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작년에 팔리면 다 드리겠다고 작정한 것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손을 대는 것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같은 행동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세금만 6억 이상을 내야 한다니 제게는 큰 재산입니다. 세금도 편법쓰지 않고 정직하게 다 낼 작정입니다. 저는 나라에 세금 내는 것 정말 아깝지 않습니다. 나라가 있어서 제가 이만큼 되었는데 정말로 세금 내는 것 아깝지 않습니다. 그만한 세금을 낼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그래도 남는 돈이 세금보다 많지 않겠습니까? 그 돈은 말씀드린 바와 같이 10원도 손대지 않고 헌금할 작정입니다. 그 대상은 재단과 교회가 될 겁니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모아 열심히 드리는 것을 연습하다가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그 돈이 없어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여건과 능력을 축복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저 이번에 그 돈 드려도 사는데 아무 지장없습니다. 제 노년도 큰 문제 없구요. 교회에서 원로목사되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돈이 없어도 우리 아이들 사는데 아무 문제 없다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김목사는 아직도 돈을 많이 쌓아 놓고 있는가보다라고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게 아닙니다.

내려놓는게 재미있습니다. 이런 헌금 하는게 정말 재미있습니다. 너무너무 재미있습니다.저는 여러분들도 이런 재미를 보시고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 동안 내려오려고 힘썼던 동안교회 담임목사 자리와 높은 뜻 숭의교회 담임목사 자리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다섯 달란트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땅에 묻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땅에 묻고 그 땅 속에 나를 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묻지 않고 그것을 자본으로 장사를 하여 높은 뜻 숭의교회라고 하는 또 다른 다섯 달란트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럴 수록 하나님은 더 많은 것을 저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저는 점점 더 큰 장삿꾼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보이지 않으십니까?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점점 더 큰 헌금을 드릴 수 있는 점점 더 큰 장삿꾼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러셨습니다. 아마 이제 저는 더 큰 헌금을 하나님께 드릴 힘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 자식들이 더 큰 헌금을 드리며 살 수 있도록 해 주실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지 않고 열심히 장사하여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말씀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에게는 열 달란트를 맡기셨고, 두 달란트를 남긴 사람에게는 네 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에게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영광의 면류관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땅에 묻은 사람은 있는 것까지 빼앗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심판이 주어졌습니다.

저는 우리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 교인 여러분들이 모두 다 착하고 충성된 종처럼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착하고 충성된 종이 받는 축복을 받고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축복의 증인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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