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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딤후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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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딤후 4:1-8)


존 하퍼 (John Harper) 목사는 1872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기독교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열네 살 적에 회심을 경험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런던에 있는 교회에서 목회하는 동안에도 충성스럽게 복음전도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열정적인 복음전도자였기에 시카고 무디 교회로부터 미국에 건너와 복음전도 집회를 인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하퍼는 영국의 사우샘프턴에서 미국행 이등석 표를 구매하여 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서른 두 살, 거대한 빙산에 충돌하여 침몰하는 배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퍼가 승선했던 배는 바로 타이타닉호였습니다. 

그 때 하퍼 목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준 사람은 몇 달 후, 온타리오 해밀턴 집회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어떻게 회심하게 되었는지 간증을 했던 스코틀랜드 젊은이였습니다. 젊은이는 배가 빙산에 부딪힌 날 밤에 차가운 바닷물 속에 떠다니고 있는 배의 잔해 조각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백했습니다. “갑자기 파도에 떠밀려 한 사람이 다가왔는데 존 하퍼 목사였습니다. 그도 역시 배의 파편 조각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여보게, 자네 구원을 받았는가?’ 라고 외쳤습니다. ‘아니요, 못 받았어요’ 라고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하퍼는 물결에 밀려가면서 내 뒤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이네’ 외쳤습니다. 

파도가 밀려와 하퍼 목사를 덮쳤으나 그는 다시 제 곁으로 휩쓸려 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제 구원을 받았는가?’ 물었습니다. 저는 ‘아니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또 다시 ‘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이네.’ 그런 후 하퍼 목사는 붙들고 있던 나무 조각과 함께 바다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날 밤 저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존 하퍼 목사의 전도로 회심한 사람들 중 마지막 사람이 되었습니다.” 청년의 간증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까지 영혼을 구원한 존 하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본서 디모데후서 4장은 전도자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처형을 당하기 전,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는 디모데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입니다. 이 편지에는 바울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 비장한 각오가 담겨 있습니다. 6절을 보면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라면서 마지막을 예견하고 디모데에게 간절한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편지의 내용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는 것입니다. 비장한 심정으로 디모데에게 복음 전도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글임과 동시에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 전도의 사명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말씀 전파 즉 복음 전도의 이유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전파할 이유는, 
  
첫째로 엄한 명령이기에

어느 백만장자가 아프리카 여행을 하다가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호리호리한 선교사가 어딘가로 가고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고 있습니까?” 라고 묻자 “예, 아프리카 나환자촌에 복음을 전하러 갑니다” 라고 선교사가 대답을 하였습니다. 부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나 같으면 백만 불을 준다고 해도 그런 곳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선교사가 대답합니다. “저 역시 그 정도의 돈을 받고는 가지 않습니다.” 부자가 더욱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그래요? 그럼 얼마나 받고 나환자촌에 가는 겁니까?” 그러자 선교사는 십자가 목걸이를 보여주면서 “돈을 받고 가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이 분이 가라고 명령을 해서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환자촌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기에 나는 가는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엄한 명령임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여기에서 부탁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엄히 명하노니’ 라고 바울은 적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유언적인 명령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본질적 의미는 전도를 위한 것입니다. 물론 예배 공동체의 역할, 친교 공동체로서의 역할, 봉사 공동체로서의 역할도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교회의 사명은 전도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적인 명령 즉 지상 명령이 바로 복음 전도였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복음 전도에 소홀히 하고 예수 믿는 성도들이 복음 전도에 소홀히 한다면 올바른 교회, 올바른 신앙인이 결코 아닙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집에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전도하는 일에 전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혹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가 되심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까?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열정도 부족하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함에 소홀하게 되었고, 비본질적인 일에 더욱 관심이 기울어져 버린 것이 아닙니까? 전도보다 교회에서 우선적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한 영혼을 그리스도 앞에 돌이켜 회개시키는 전도야말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엄한 명령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둘째로 항상 힘쓸 일이기에

6.25 동란 전에 한 인민군 장교 부인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장교는 기독교가 못마땅해 아내를 핍박하였습니다. 또 아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위험이 뒤따르므로 예수 믿지 말라고 사정도 해보고 협박도 하였지만 아내는 더 열심히 교회에 나가 남편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남편이 잠들 때엔 그의 손을 잡고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하며 찬송을 항상 불렀습니다. 6.25 전쟁이 나자 그녀의 남편은 전쟁터에서 포로가 되었습니다.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군목이 기독교 신자가 있으면 나오라고 했습니다. 군목은 한명씩 찬송가를 시켜 보았습니다. 인민군 장교는 아내가 매일 밤 들려주던 찬송이 생각났습니다. 찬송을 부르다가 자신도 모르게 감동을 받아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포로수용소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항상 힘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여기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라는 원문의 의미는 상황이 좋을 때뿐 아니라 불리할 때라도 전하라는 것입니다. 상황의 긴급함을 보여 줍니다. 잠시라도 늦출 수 없는 복음전파라는 예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전파하는 일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합니다. 복음은 생명이기에 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억지로라도 전파해야 합니다. 죄에서 구원받고 지옥에 갈 영혼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항상 힘써야 될 일입니다.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든지 안 들든지. 또 때가 좋든지 안 좋든지 가리지 말고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항상 힘써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유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숨이 끝나는 날까지 복음 전도를 위해 항상 힘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감당할 직무이기에 

마틴 니묄러 (Martin Niemueler)목사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잠수함 함장이었습니다. 늦게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어 반 나치 운동을 전개하면서 어려움을 많이 당했습니다. 반핵 운동의 중심에 있으면서 대사회적, 정치적인 운동을 하였으나 교회의 본질과 그리스도인들의 중심적인 사명은 복음전도여야 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체험적 고백이 그 동기였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꿈을 꾸었는데 천국문 앞에서 사람들이 심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어떤 사람에게 추궁을 하였습니다. ‘당신은 왜 예수를 믿지 않았느냐?’ 그러자 그 사람이 ‘나에게 아무도 예수를 믿으라는 사람이 없었기에 안 믿었다’ 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항변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고개를 힐끗 돌리는데 그는 다름 아닌 히틀러였습니다. 니묄러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습니다. 그 꿈을 통해서 그는 크게 회개를 하였습니다. 히틀러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해 암살 운동까지 펼쳤지만 진정 히틀러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독일이 역사의 죄를 짓고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게 된 이유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도야말로 자신이 행할 직무였던 것이었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바울은 평생 복음을 위해서 살았고 복음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았고 복음을 위해서 귀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그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방인들로 구원의 반열에 서게 하기 위해 복음전파에 평생을 바쳤던 것이었습니다. 

이 시간 전도한 사람이 함께 예배드리고 있는 지 돌아보고 만약 없다면 직무를 다시 깨달아야 합니다.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은 지 수 삼년, 수십년이 되었음에 불구하고 전도의 열매가 주변에 하나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전도는 멀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부터 동심원을 그려나가면서 전도의 폭이 점차 넓혀져 가야 합니다. 

설교자 스펄전(C. H. Spurgeon) 목사도 전도 대상자 100명을 놓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96명은 그의 생전에 예수를 믿었으나 마지막 4명은 안 믿었습니다. 결국 스펄전 목사가 죽고 나서야 4명이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모름지기 전도는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할 중요한 직무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죽어서 천국에 가면 예외 없이 두 가지 질문을 받게 됩니다. 첫 번째 질문은 “당신은 혼자 오셨습니까?” 그렇다고 대답을 하면 두 번째 질문이 더 심각해집니다. “어떻게 혼자 올 수가 있습니까?” 천국 문에 들어가려 할 때 이같은 엄중한 추궁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전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감히 천국에 혼자 들어갈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떤 죄수가 감옥에서 제비가 하루 몇 번 새끼에게 먹이를 날라다 주는가 세어보았더니 250번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몇 번이나 찾아다녔습니까? 

하나님께서 전도의 사명을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성도의 성도됨은 복음 증거에 있습니다. 불은 타오를 때 불입니다. 타지 않는 불은 더 이상 불이 아닙니다. 교회는 전도의 불이 타오를 때 비로소 교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전도대상자를 작정하여 전도하는 일을 신앙생활의 우선순위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부디 말씀을 전파하는 전도가 하나님의 가장 엄한 명령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도에 항상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전도가 가장 귀한 직무임을 깨달아 잘 감당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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