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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고후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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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고후 11:1)

전쟁의 영웅 나폴레옹이 하루 세 시간 밖에 잠을 자지 않았다는 속설은 거짓입니다. 사실은 그가 하루 일곱 시간을 자고도 오후에는 자주 졸았다고 합니다. 그가 아무데서나 쪼그리고 잔다는 데서 그런 말이 나돌았던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육군 사관학교 시절에 그의 성적은 58명 중 42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영웅이 된 것은 한 보조교사가 그의 새우 잠자는 습성을 두고 자네는 훌륭한 장군감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말 한마디에 그는 자기 성적이나 작은 키와 외모에 실망하지 않고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입니다. 

영국속담에 "선입감은 그 사람의 일부분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속담에 "남의 밥에 콩이 더 크게 보인다."는 말도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부존효과, 소유효과라는 경제학의 용어를 빌려서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가까운 사람을 인정하고 알아주는데 너무 인색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심리적 구조는 성장할 수 있는 많은 인적자원을 사장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자기가 자랑해 온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는 자신의 사도직의 정당성을 피력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습니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자신의 화려한 이력과 복음의 격전지에서의 고난을 자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고 했습니다. 재차 청컨데 나를 용납하라고 했습니다. 

옛말에 자식을 자랑하는 것은 칠푼이고 아내를 자랑하는 것은 팔푼이지만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12장 11절에 『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고 했습니다. 

이 말은 내가 나를 자랑하게 된 것이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그렇게 된 것은 고린도교인들이 거짓 스승들을 용납하고 참된 사도인 바울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린도교인들이 바울의 말에 칭찬(추천)과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말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짓 스승들의 가르침을 잘 용납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의 아니게 자신의 사도성과 복음의 정당성을 자랑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자신을 자랑한 자체가 어리석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 고린도교인들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 원컨데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데 나를 용납하라 』는 반복적인 말은 내가 말할 때 나를 따라 달라, 나를 지지해 달라, 나의 진정성을 알아 달라는 말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내가 말하기 전에 여러분들 스스로가 내가 전하는 복음과 내가 진정한 사도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선전해 달라는 말입니다. 

교회운동은 하나님의 택자를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총칼을 든 전쟁보다 더 치열한 것입니다. 전쟁 때 아군 아니면 적군이라는 흑백논리는 전쟁 승리를 위한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분명합니다. 
목사가 자신을 자랑하게 되므로 어리석게 만들지 말고 성도들이 먼저 목사를 신뢰하고 가르침을 용납하라는 말입니다. 

Ⅰ. 거짓 사도들이 전하는 다른 예수를 용납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본문 11장 4절에 『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라고 했습니다. 

여기 『 다른 예수 』는 잘못된 기독관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여기 『 누가 』라는 말은 유대주의 기독신자들입니다. 

2000년 기독교사에서 잘못된 기독론 때문에 이단이 된 수가 가장 많습니다. 
초기에는 ① 예수의 완전한 신성을 부인하는 에비온파(The Ebionites) ② 예수의 완전한 인성을 부인하는 영지주의파(The Gnostic), 중기에는 ① 예수의 신성의 일부분만 부인하는 아리안파(The Arians) ② 예수의 인성의 일부분을 부인하는 아폴리나리스파(The Apollinarian),

후기에는 ① 예수의 인성에 신성이 흡수되었다고 하는 네스토리우스파(The Nestoriaus) ② 예수의 신성에 인성이 흡수되었다고 하는 유티키안파(The Eutichians)가 있었습니다.

주후 451년 칼케톤(Chalcedon) 회의에서 예수는 한 인격 안에 인성과 신성 두 성품이 있다고 공표했습니다. 그리고 각 성품은 각각 완전할 뿐 아니라 이 두 성품은 유기적으로 불가분리하게 연합되어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 2위 되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Ⅱ. 거짓 사도들이 전하는 다른 영을 용납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본문 11장 4절에 『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라고 했습니다. 

여기 『 다른 영 』은 다른 예수에서 파생되어 나온 말입니다. 평강과 자유의 영(고후 3:17; 롬 14:17), 하나님의 영(요 4:24), 진리의 영(요 14:7), 주의 영(행 8:39; 고후 3:17-18), 예수의 영(행 16:7), 하나님께로 온 영(고전 2:12) 곧 보혜사 성령을 말합니다. 이상은 귀신의 영과 미혹하는 영의 반대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1절에 『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13장 1-3절에 『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찌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뜻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대언자들이지만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지 아니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을 예언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옛날에는 꿈이나 환상, 우림과 둠밈 등으로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 꿈꾸는 자 』는 거짓 선지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계시와는 무관하게 거짓으로 예언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된 지금은 각자에게 은혜의 방편으로 보여주시는 주관적인 계시는 주어진 자에게 국한된 것입니다. 

주관적 계시가 객관적인 계시(성경)를 앞서거나 동일한 계시적 가치를 부여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서 이적과 기사가 그들의 말대로 나타날지라도 그것은 거짓인 것입니다. 성경은 밝히 말하기를 거짓 선지자들에게 나타나는 기적과 이적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시험(Test)해 보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신 13:2-3).

오직 하나님을 순종하고 그들을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복종하라고 했습니다(신 13:4).

거짓 선지자와 꿈꾸는 자는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배반케 하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도에서 꾀어내려고 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신 13:5).

다른 영은 사탄의 영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4절에 『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라고 했습니다(벧후 2:4; 유 6)
.
베드로후서 2장 4절에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라고 했습니다.

인간들은 가장 가까운 혈육관계나 친밀한 자나 사회활동에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는 자의 말에 쉽게 동화됩니다. 이러한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을 이용하여 사탄의 유혹도 가장 친밀한 자에 의해서 시작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4절에 『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역시 동일한 말을 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1절에 『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표적과 기사가 아니면 도무지 믿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요 4:48).

거짓 영을 받은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거짓말 하는 자들입니다(렘 14:14). 하나님이 용납하지 아니한 것을 인간이 용납하면 반역이며 죄악입니다.

신명기 18장 20절에 『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4장 1절에 『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6절에 『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6장 14절에 『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고 했습니다.


Ⅲ. 거짓 사도들이 전하는 다른 복음을 용납해 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본문 11장 4절에 『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라고 했습니다.

다른 복음은 다른 예수, 다른 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하게 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7-9절에 『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공교(꾸며서 만듦)하게 하는데 주의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16절에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2장 4절에 『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6장 18절에 『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데는 아무리 평이한 성경구절이라도 반드시 교리적 틀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성경이 해석해야 된다는 대전제를 존중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이 해석하고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이 해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구약에서 신약을 내다볼 수 없으면 잘못된 성경관입니다. 반대로 신약에서 구약을 쳐다볼 수 없으면 잘못된 성경관입니다. 기독교회사는 성경관이라는 잉크로 기록해야 합니다. 
구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가 아니라 구속사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자신의 설교에서 광야교회라고 했습니다(행 7:38).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성경제일주의가 빚어낸 신행일치의 행동화로 나타나는 신앙인격이 개혁주의의 가치입니다. 

성경에 근거했다고 해서 신학과 신앙이 개혁주의는 아닙니다. 성경에 근거한 신학사상은 이 땅에 많이 있습니다.
개혁주의와 비개혁주의의 구분은 성경해석이 어떠한 신학원리에 따라서 해석되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전통에 따라 성경을 해석해야 합니다. 개혁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신학체계와 다른 신학과 차별화를 위하여 신앙고백서를 제정했던 것입니다.

그 예가 개혁주의자들은 그들의 신학과 신앙체계가 루터란(Lutheran)과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작성했습니다.

화란의 개혁자들은 그들의 신앙이 알미니안주의자(arminianism)와 다르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도르트(Dort)신조를 작성했습니다(이상규 저, 교회개혁과 부흥운동, P.159). 따라서 신학전통과 신앙전통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8절에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7절에 『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고 했습니다.

성경을 기록함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주권적입니다.

요한복음 20장 30-31절에 『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입니다.

이사야 34장 16절에 『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는 계시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신앙과 생활의 원리를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시의존사색만이 우리가 가야 할 궤도가 됩니다. 이단들로 인한 교회의 아픔은 기독교 역사와 같이하고 있습니다.
이단異端은 하이레시스( , hairesis)에서 유래했습니다. 그 뜻은 "음흉한 당파"라는 뜻입니다. 이단은 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이단연구가 "모리야마 사또"씨가 우리나라에 와서 강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만 원권 지폐를 들고 세종대왕의 수염하나만 없어도 위폐라고 했습니다. 
이단은 기독교 부흥과 비례해서 나타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단이 가장 많이 나타난 것은 시기적으로 일제강점기입니다.
당시 교권은 정권과 타협하여 정권은 교권의 사회적 존재 양식을 규정해 주고, 교권은 정권의 지배 정당성논리를 제공했습니다.

일제는 어떤 종교이든 그것이 국책에 반하지 않고 개인의 현실적 문제 해결이나 수양 등에 도움이 된다면 상관없다는 종교적 관용주의를 뿌리내리게 했습니다.

이러한 종교정책이 신흥종교와 이단이 쉽게 발생할 수 있었던 온상이 된 것입니다. 이단은 허구지만 오늘날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이단은 사람들의 소원을 만족시키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이단은 전도에 총력을 기울입니다.

성경 이외의 계시(주관적 계시)를 성경(객관적 계시)보다 앞세웁니다. 이단의 지도자들은 메시야적인 지도력을 주장합니다. 성경을 재해석하여 기성교회가 못한 특별한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기성교회를 비난하고 조직의 틀에 철저히 묶어버립니다.

성도 여러분!

부산 수영로교회 정필도 원로목사님이 경향교회 부흥사경회 인도 차 오셨을 때 일입니다. 자기 교회 성도들에게 전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는데 "우리교회 좋다", "한번 와보라", "우리교회 목사님 서울대 나오셨다" 하라고 한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고 했습니다(마 10:36).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16-17절에서 『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고 했습니다. 『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라고 했습니다. 『 오직 너희를 이간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내게 하려 함이라 』고 한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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