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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의(義)를 구하라 (마 6: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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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그리스도인의 평생의 목표는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밤낮 기도하고 추구해야 하는 제목은 ‘예수님을 닮아가자’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불러 자기 아들의 형상을 닮게 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예수님은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주님이 의로우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의를 추구해야 합니다. 스데반의 설교 중에도 ‘선지자들은 의인이 오시리라고 예고했다’고 했는데, 그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의를 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최고의 과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부분에게 그 의미가 불분명한 것 같습니다. 과연 ‘의(righteousness)'란 무엇입니까?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본문의 앞부분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두 가지를 먼저 구하면 우리의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3절).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훌륭한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나의 삶에 왕으로 모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나를 통치하시도록 자신을 내어맡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란 무엇입니까? 아마도 명확한 답을 하는 분을 잘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저하면서 거룩함(to be holy), 순수함(to be pure), 계명 순종(to obey commandments) 등등 여러 가지로 대답할 것입니다. 성경의 여러 개념들 가운데 가장 분명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의’입니다. 

성도가 먼저 해야 할 것이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인데, 의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먼저 그의 의를 구하는’ 성도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먼저 그의 의를 구해야 하는데, 거기에 더하여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  

예수님에 따르면 이 의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필수적인 것입니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분명한 이해를 하게 되기를 바라며, 의로우신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의에 관한 성경의 용례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신구약 성경에는 의에 관하여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지막 시대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다니엘서에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의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의로 이끌려면 자신이 먼저 의로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많은 소득을 원하십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많은 소득과 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소득에 관한 잠언의 가르침을 보면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잠 16:8)고 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의란 불의의 반대, 즉 정의(justice)를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1장에 보면 세례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의인이라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눅 1:6). 즉 의란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의를 상 주시는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공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함으로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모든 법도를 내 앞에 두고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내가 또 그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의 눈앞에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삼하 22:21-25). 하나님은 다윗의 의에 대하여 상 주시는데, 여기서 의는 깨끗한 손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관심은 이처럼 우리의 의로움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며 우리의 삶이 더욱 의로워지기를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의와 심판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시 9: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사 56:1=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도다”

계 19:11=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로우신 주님은 우리도 주님을 닮아 의롭게 되기를 원하고 계심을 이처럼 성경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의를 본받는 일에 더욱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2. “의를 구하라”의 구체적 의미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본절은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직설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잠시 살펴본 것처럼, 여기서 ‘나라(바실레이아)’는 절대 군주가 통치하는 왕국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뜻을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의 의’란 것도 인간적인 기준에 있어서의 의가 아닌 순전히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의를 가리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당시 율법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바리새인처럼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 외형적인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산상수훈에서 거듭 강조되고 있는 내면적이며 절대적인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있어서 그밖의 모든 것은 방편적이며 종속적인 것으로 여겨지므로, 그의 인생의 모든 초점은 하나님께 맞추어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전력을 다해 구해야 할 하나님의 의는 결코 추상적 개념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의’는 옳은 일을 행하는 것(doing the right thing)을 가리킵니다.  

“의를 구하라”는 것은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안에서 옳은 일, 의로운 행위를 추구하고 연습하라는 말씀입니다. 

의로운 행위란 무엇을 말합니까? 여기서 말하는 의로운 일이란 인간의 도덕이나 윤리적 기준, 인간의 양심을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자세히 계시되어 있는 하나님의 양심, 하나님의 기준을 의미합니다. 많은 경우에 양자는 일치하지만 때로는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언약의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하여 실패하자 다시 언약 관계를 세우시고 보존해 주십니다. 이 관계를 발전케 하고 친밀케 하는 모든 행위는 옳은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주님은 언약의 모든 약속들을 끝까지 신실하게 지키시고 보존하십니다. 이를 위해 주님은 우리에게 의로운 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신 법은 때로는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조상을 숭배하고 조상신 앞에 절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미풍양속이라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불의한 일(unrighteous thing)입니다.

주말(Holiday)에 피곤한 심신을 쉬게 하기 위해 들로 산으로 나가 레저를 즐기는 것은 현대인의 문화로 정착되고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거룩한 날(Holy Day)을 더럽히고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손상을 입히는 불의한 일입니다.

우리의 양심이란 것도 사실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의 양심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언약의 모든 규정 안에서 살도록 요구받았습니다. 열왕기와 역대기의 기록들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하면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이 뒤따랐고, 그렇지 아니하면 책망이 따라왔습니다. 전자의 경우 ‘다윗의 길로 가더라’고 했고, 후자의 경우 ‘다윗의 길을 떠나 여로보암의 길로 가더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언약 관계를 손상시키고 깨버렸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불의한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열국으로 흩어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그들의 불의를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은 이제 언약의 땅에서 쫓겨나 변방을 떠돌며 메시야가 오실 날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마침내 때가 차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언약의 씨로 오신 약속의 메시야이십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면서,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주님은 세례 받을 필요가 없는 분이시지만, 언약 안에서 주님은 죄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희생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주님은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벧전 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무덤을 깨뜨리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 좌정하셨습니다. 주님은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주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 의로움이 되셨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찾아 마셔야 하고, 주님처럼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데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3. 성도의 의가 나타나는 두 가지 수준

성도의 의는 두 가지 수준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두 가지 수준이라 함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와 언약공동체와의 언약관계의 수준을 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겸손히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이 제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자 되십니다. 하나님이 법을 주셨고, 하나님이 포상자가 되십니다. 이 모든 것을 겸손히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로운 성도는 하나님과 자신이 언약 관계에 의해 연결되어 있음을 겸손히 인정합니다. 

‘나는 하나님에 의해 불려나온 자다’, ‘나는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 없는 죄인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로 주셨다’ 는 것을 겸손히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회개하며 믿음을 다짐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과 동행하며, 그분의 보혈을 믿는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둘째는 언약 공동체와의 언약 관계를 기꺼이 수납하는 행위입니다. 여기 언약 공동체라 함은 교회(에크레시아)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불러 모은 자들입니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예수님을 정점으로 한 형제자매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며 확장해 나가십니다. 우리의 의는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헌신하며 그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태국에서 코끼리 쑈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얼마나 조련사가 훈련을 시켰는지 어떤 일에도 뭐라고 말을 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코끼리가 있었습니다. 조련사가 자신 있게 관중을 보며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코끼리를 눈물 흘리게 하는 사람에게는 만불을 주겠소.” 

한참을 지난 후에 어떤 사람이 “내가 한번 해보겠소” 하고 나섰습니다. 그분은 성도들이 돈을 모아서 겨우겨우 태국여행을 오게 된 한국의 개척교회 목사님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코끼리의 귀에 대고 개척교회시절에 힘들고 어려웠던 이야기를 눈물 흘리며 코끼리에게 말했더니 그 말을 듣던 코끼리가 그만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습니다. 

당황한 조련사는 “그래도 코끼리 앞발을 들게 할 수는 없을거요.” 하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앞으로 다가가서 뭐라고 한마디 했더니 코끼리가 앞발 뒷발을 다 들어버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놀란 조련사가 물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한거요?” 

“예, 코끼리 귀에 대고 이렇게 말했소. 나랑 같이 시골에 가서 개척교회 하지 않을래?” 

여러분, 교회는 무엇으로 만들어집니까? 존 러스키라의 책에 보면 교회 건축의 7가지 요소가 나옵니다. 교회를 이루는 재료인 철근, 시멘트, 나무, 흙, 기와, 벽돌보다 중요한 것은 '진리'이며 '아름다움'이라 했습니다. '애정'이 있어야 하고, '희생'이 있어야 됩니다. '순종'과 '땀'과 '꿈'이 있어야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순종과 땀과 희생의 피를 섞어서 교회를 만들어 가게 되는 것이며, 교회를 건축하는 사람들의 사랑과 믿음과 꿈을 담아서 교회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행위입니다. 주님은 교회 구성원인 성도들에게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타적 사랑의 행위입니다. 우리가 구하고 나타내어야 할 의는 바로 이 사랑의 행위입니다.

본문 33절을 다시 봅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성도의 의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를 통하여 나타납니다. 

누가복음 18장의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를 보면 예수님이 그 재판장을 불의하다고 정죄한 이유가 그 사람이 재판을 굽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데 있습니다. “···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눅 18:4). 

그가 불의한 재판장이라고 불린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마술사 엘루마가 총독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할 때, 사도 바울이 엘루마를 향해 외칩니다.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행 13:10). 마술사는 하나님의 길을 굽게 하는 자이기 때문에 ‘모든 의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합니다. 성도는 주님의 모습을 본받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인을 위한 곳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언약 관계(covenant relationship)가 완전히 회복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참으로 위대한 주님의 약속입니다. 주님은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은 우리를 의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겸손히 인정하여 순종하는 것이고, 언약 공동체인 교회와의 언약 관계를 기꺼이 수납하여 교회 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말씀과 기도를 주셨습니다.

말씀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기 위해 주신 철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기 위한 동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 목표는 여러분을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게 하는 것입니까? 그 목표만 생각하면 여러분의 심장을 뛰게 하는 감동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즉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안으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하늘의 별처럼 빛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각자가 먼저 하나님의 의로 충만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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