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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를 바라보세요 (히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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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바라보세요 (히 12:1-2)
  
사람의 키라는 것이 그 사람이 어떤 형편에 있는가... 여기에 따라서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대학의 강의실에서 어떤 남자를 학생이라고 소개하고는 키를 물어 보았더니 학생들이 그의 키를 대략 165센티미터로 추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같은 사람을 다른 강의실에서 강사로 소개하였더니 2.5센티미터가 늘어나더라는 것입니다. 전임강사로 소개하였더니 거기서 2.5센티가 더 커졌습니다. 그를 교수로 소개하였더니 그의 키를 학생들은 175센티미터로 보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어떤 사람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그가 가진 직업이나 조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 가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키 높이라고나 할까요? ‘작은 거인’이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는데요, 남들은 그를 다 작게 보더라도 만일 그가 자기를 크게 여긴다면... 자기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큰 꿈과 목표를 향하여 부지런히 다가가려 한다면... 누가 그를 작은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오히려 겉으로는 커 보이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뭐라고 부르는 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저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은 우리 교회의 청장년들 사이에 있으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키이지만, 자랄 때만해도 키가 꽤나 큰 축에 속했는데... 그것이 참 부담스러웠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선배들이 육상부에 들어오라고 하루가 멀다고 찾아오고... 선생님들은 일부러 짓궂은 장난을 걸어오기도 하고...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키가 가장 큰 편에 속했는데, 조회 시간이나 교련 시간이 참 싫었습니다. 조회 시간이면 가장 앞줄에 서야했고... 대열을 이루려면 저더러 꼭 기준을 하라는 것인데... 그것이 참 부담스러웠습니다. 이런 큰 키에 대한 부담은 군대에 가서도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좀 지적인 일을 하고 싶었는데, 키가 크고 덩치가 있으니까 힘도 굉장히 쎈 줄 알고 힘든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뽑혀가곤 하였습니다. 
  
목회를 하면서도 한동안은 이런 마음과 외모의 부조화가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죤 웨슬리 목사님처럼... 하나님께서 정말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이 둘이 조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어떻게 우리가 키를 조금이라도 더 자라게 할 수가 있을까요? 신체적인 키는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저도 지금은 한 2센티미터 정도 줄어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고후4:16b)라는 바울의 깨달음과 고백처럼, 오히려 우리는 마음의 키를 높이고 마음을 새롭게 하는... 그래서 누가 뭐라고 하여도 당당하고 속이 가득 찬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그것은 얼마나 멋지고 존귀한 삶일까요? 우리 모두의 삶이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 비결을 다름 아닌 나사렛 예수를 통해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5:17a) 옛 것은 넘어서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분... 그 분이 바로 그리스도시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가운데는 우리가 정말 마음 깊이 새겨 두어야할 소중한 신앙적인 권면을 우리에게 하여 주고 있습니다. ‘미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히12:2a)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그렇게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여기서 히브리서를 기록하신 분이 바울처럼 그리스도라고 말하지 않고, 예수라고 말한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과 예수라는 말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물론 우리는 이 두 말을 분리해서 사용하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 또는 그리스도 예수 이렇게 하나로 이어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주님을 부를 때에 사용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분을 부르면서 그리스도라고 할 때에... 그 속에는 주님이 가지신 인간적인 이미지보다는 하늘의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이럴 때에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으로서 하나님과 같은 본성(빌2:6) 을 지니신 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비해서 우리가 그분을 예수라고 부를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완전한 인간이신 분입니다.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물론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이름이기는 하지만... 같은 이름을 가지고 살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그 분을 나사렛 예수라고 해서 그가 자라난 고향을 앞에 붙이는 것은 그 예수를 다른 평범한 예수들과 혼동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에 여기에는 다분히 인간적인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는 숨 쉬며 살았던 인간으로서의 예수 말입니다. 아마도 히브리서의 기자가 ‘그리스도를 바라보세요.’ 또는 ‘주님을 바라보세요’ 이렇게 말하지 않고, ‘예수를 바라보세요.’ 이렇게 말하였을 때... 그가 우리에게 소개하고 싶은 예수는 아무런 신적인 권위나 옷을 입지 않고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살았던... 어쩌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셨을... 인간적인 냄새와 체취가 가득한 예수입니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히브리서의 기자가 사용한 호칭... 예수라는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를 생각할 때...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 나도 예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믿음의 길... 그것은 인간 예수가 걸어 가셨던 길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 길은 그가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v.1a)이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예수 이전에도 수 없이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걸어갔던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을 그는 ‘달음질’이라고 표현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마치 마라톤 경주와도 같다는 의미로 우리는 읽을 수가 있겠습니다. 차라리 100미터 달리기라면 좀 낫겠습니다. 조금만 고생을 하면 되니까요. 우리가 100터 경주를 하는 동안... 무슨 고민이나 갈등이 있겠습니까? 불과 2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밖에는 걸리지 않는데요... 그야말로 단숨에... 해치워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마라톤 경주라면... 마라톤 경주를 넘어 서서 평생을 달려 가야하는 일이라면... 거기에는 얼마나 많은 고비와 갈등과 유혹이 있는 것인가요? 우리가 가는 신앙의 여정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말이지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들 보다 앞서서 마치 선구자처럼, 개척자처럼... 더 어렵고 힘든 길을 가신 분들이 있기에... 우리들은 그분들이 닦아 놓으신 길을 밟으며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가짐이 좀 가벼워야 할 거라고... 마라톤 경주를 하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걸 맞는 차림을 해야 한다고 그는 권합니다. 그것은 몸과 마음을 좀 가볍게 하는 일입니다.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v.1b) 이렇게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몸과 마음을 좀 가볍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픈 기억들... 좋지 못한 경험들... 이런 모든 것들을 다 가지고 가기에는 우리는 힘이  많이 부족합니다. 여전히 과거에 나를 힘들게 하였던 기억이나 감정에 얽매이다가 보면 우리는 조금도 앞을 향해서는 나갈 수가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바라보아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오늘 우리에게 예수를 가리켜서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창시자라... 여기에는 시작하신 분... 또는 개척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데 믿음의 여정을 출발할 수 있도록 믿음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신 분이 바로 예수라는 말씀입니다. 

나아가서 예수를 ‘완성자’라고 고백할 때... 예수는 이루에게 믿음의 여정을 시작하도록 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는 이끌어 주셔서 길고 긴 마라톤과 같은 신앙의 여정을 온전히 마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의 믿음의 여정은 예수를 통해서 시작하여서 예수와 더불어 마치는 것이라고 할까요? 예수가 없이는 도저히 이루어 질 수가 없는 것이 바로 믿음의 길인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깨닫게 됩니다. 
  
설혹 우리가 예수에 대해서 잘 모르더라도...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잠시 예수를 잊고 살았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상처와 고통 때문에 마음이 많이 위축되었다고 하더라도... 예수를 바라보는 일은 참 중요합니다. 예수는 이러한 우리의 연약하고 흔들리는 마음까지 붙잡아 주셔서 확고한 믿음으로 이 길을 걸어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주간에 새벽기도 시간에 말씀을 나누면서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은 9장에는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예수를 찾아 온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미 한 차례 좌절을 겪었습니다. 예수가 없는 동안에 제자들에게 부탁하였지만,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실망스런 마음을 예수에게도 드러냅니다. ‘하실 수 있으면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막9:22) ‘할 수 있으면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막9:23) 

예수는 이렇게 믿음이 흔들리는 아버지를 향하여 말합니다. 아버지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 그가 이렇게 고백하자 예수는 그의 아들을 고쳐 주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이십니다. 겉으로는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꾸짖고 책망하시지만... 그러면서 믿음이 없는 이들이 믿음이 생기도록... 우리의 연약한 믿음이 온전하도록 도우시는 분이 주님이시로구나... 하는 것입니다. ‘네가 믿음이 없구나... 너는 아직 나에게 올 자격이 없으니... 어디 다른 곳에 가서 믿음을 좀 보총해 오너라...’ 

이런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흔들리고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예수를 찾아옵니다. 예수님에게 꾸중도 듣습니다. ‘너는 왜 믿음이 항상 그 모양이냐? 그런 믿음가지고 무엇이 바뀌겠니?’ 이렇게 책망 하시지만... 그래도 우리가 예수를 찾고 그분을 바라볼 때에... 어느덧 우리의 연약한 믿음이 온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청년 시절에 읽었던 글귀가 생각납니다. ‘큰 나무 사이를 걷다 보니 어느덧 나도 키가 커졌다...’ 많이 부족하지만... 힘들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다른 곳에 한 눈을 팔 때도 많지만... 그래도 우리를 이런 멋진 믿음의 길로 초대해 주시고, 오늘도 우리가 더욱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힘을 주시는 예수를 바라볼 때마다... 그만큼 우리들은 더욱 힘을 얻게 되고 흔들리지 않는 멋진 믿음의 사람으로 커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그런 믿으므로 뭘 하겠니?’ 

그렇게 우리를 책망하시는 것 같아도... 주님은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온전하게 하셔서 결국은 큰 믿음의 사람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며. 어떤 경우에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잃지 않는 넓고 큰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예수가 주시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가 우리에게 주시는 소중한 신앙의 충고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v.2) 지금 눈앞에 직면한 고통스런 일들을 생각하면서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그것 너머에 있는 하나님 나라라는 영원한 기쁨을 바라보신 분이 예수이시고... 그것이 바로 예수가 터득하신 신앙의 비결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세상이 현실을 넘어 선 저편에 있는 것을 알기에... 부끄러움도 개의치 않게 되고... 십자가의 고통도 극복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는 영원불변한 기쁨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곧 우리에게 오실 예수이십니다. 예수가 계시기에... 예수가 우리에게 주시는 진정한 기쁨이 우리 앞에 있기에... 우리도 예수처럼 어떤 고통이나 어려움이 있어도... 개의치 않고, 참고 견디며 앞을 향하여 나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맞이한 대강절... 다시 오시는 주님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오실 예수를 향하고 오직 예수만 바라보는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대강절의 초가 하나씩 빛을 발하듯, 우리의 마음이 예수로 밝아지고, 마침내는 하늘의 빛과 기쁨으로 채워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시간을 살았던 초대교회의 한 신앙인... 자신의 신앙의 비결을 나사렛 예수에게서 찾았습니다. 참 힘들고 어려웠는데... 이 길을 예수가 앞서서 가신 것이라고 생각하니... 나처럼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다 겪으신 예수가 내 곁에서 나를 붙잡아 주시고 위로하시고 힘을 주신다고 생각하니...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우리에게 오늘도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를 바라볼 때 믿음이 생기고 희망이 생기고 기쁨이 찾아옵니다. 우리를 참된 생명의 길로 초대하시고... 믿음을 더하여 주셔서 온전하게 하시고, 영원한 기쁨을 주시는 예수를 바라보면서, 오늘도 기쁘고 즐겁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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