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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믿음이 크다 (마 1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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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믿음이 크다 (마 15:21-28)
   
브라질 출신의 유명한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한 쇼핑 몰에서 겪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는 마침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 바이올린 연주자인 우르슐라라는 여성과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며 물건을 사는 일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르슐라가 코엘료의 팔을 잡아당기며 한 번 소리를 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코엘료는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들려오는 소리라는 것은 단지 사람들의 발걸음소리, 서로 이야기하는 소리, 매장에서 들려오는 tv 소리, 아이들의 울음소리... 단지 그런 소음뿐이었습이다. ‘대단하지 않아요?’ 우르슐라가 그렇게 말을 할 때도 도무지 무슨 소리를 듣고 저런 반응을 보이나... 궁금하였습니다. ‘피아노 소리 말이예요...’ 그녀가 이렇게 말을 할 때에도 ‘어떤 매장에서 피아노 음반을 틀어 놓은 모양이로구나...’ 이렇게만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들어보니 누군가가 직접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습니다. 쇼팽의 소나타인 것 같았는데, 집중해서 듣다보니 다른 소음은 점점 작아지고 피아노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하여 다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을 헤치고, 바겐세일을 한다며 준비한 물건이 잔뜩 쌓인 통로를 지나서 식당가에 도착을 하니... 피아노 소리는 바로 그 곳에서 나고 있었습니다. 쇼핑몰에서 특별한 이벤트로 문화 행사를 열고는 하는데, 마침 그 날은 피아노와 피아니스트가 주제였습니다. 피아노를 치고 있는 연주자는 나이가 한 서른 살 쯤 되어 보였는데, 우르슐라는 그가 누군지를 알아 볼 정도로 국제적으로도 실력을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구 소련 영토인 그루지아 출신으로서 장래가 촉망받는 연주자였지만, 아쉽게도 길이 열리지 않아서 이제는 이렇게 들어주는 사람도 별로 없는 쇼핑 몰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그의 연주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식사를 하거나 쇼핑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단 두 사람... 코엘료와 우르슐라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연주에 몰두합니다. 마치 그곳이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이나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나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음악은 쇼팽을 지나서 모차르트로 이어지는데, 그는 홀로 모차르트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는 듯 그렇게 연주를 합니다. 그 연주가 얼마나 깊은 감동을 주는지... 우르슐라는 마침내 눈물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코엘료는 그가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언젠가 그가 갔던 한 성당에서 보았던... 들어주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지만, 노래에 열중하면서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려했던 한 처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그는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이나 시끄러운 소음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더욱 깊이 음악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주를 합니다. 그를 지켜보는 코엘료는 점점 더 깊은 감동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것을 우리에게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순간 내 마음속에서 그에 대한 깊은 경외와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그는 내게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일깨워 주었다. 우리 각자에게 실현해야할 신화가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타인이 우리를 믿어주든 말든, 비판하거나 무시하거나 봐주거나 상관없이, 우리는 그것을 수행해야 한다. 그것이 이 땅에 태어난 우리의 소명이고, 모든 기쁨의 원천이므로...’(‘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이제야 자기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는 코엘료는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그 연주자가 누군지... 그 후에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자기의 실력에 걸 맞는 길이 열리게 되었는지... 아니면 계속 그런 곳을 전전하면서 불안한 사람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기의 운명을 탓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어디서든지 자기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을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일인가... 하는 것을 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늘의 말씀을 함께 읽을 때에 느낌이 어떠하셨는지요? 결국 주님께 찾아 온 여성이 소원을 이루어서 귀신들렸던 딸이 정상으로 돌아 왔지만... 그 과정은 그렇게 편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를 대하시는 예수님의 태도는 평소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왜 이리 그녀를 무시하시고 마음에 상처를 주시는지요... 이야기를 읽으면서 혹시 그녀가 상처만 잔뜩 입고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 어떻게 하나... 그리고는 나가서 사람들에게 나사렛 예수란 사람이 얼마나 편협하고 인색한 사람인지... 그것을 마구 떠들고 다닌다면... 예수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불안하기도 하고 아슬아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 번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하는 것도 생각해봅니다. 나도 그녀처럼 그렇게... 자존심 같은 것은 다 팽개쳐버리고... 별로 교육도 많이 받지 못한 것 같고, 그렇게 잘나 보이는 구석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제자들에게까지도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면서...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건지... 사실은 좀 자신이 없습니다. 기왕에 고쳐주실 건데... 좀 부드럽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일이 진행되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 바로 오늘의 말씀을 읽을 때에 가지게 되는 느낌입니다.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v.28) 오늘 이야기의 마지막 대목에 나오는 이 말씀...  자기를 향한 냉담한 반응이나 경멸하는 듯한 눈빛들... 인격적인 모욕이나 도저히 견디기 힘든 언어의 폭력과도 같은 말들... 그것을 잘 견디어낸 그녀에게 주님이 말씀하셨던 이 말씀... ‘여자여, 네 믿음이 크다...’ 어쩌면 오늘 주님은 우리들 모두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요? ‘네 소원대로 되어라...’(v.28) 

이 말씀은 우리 모두가 주님으로부터 듣고 싶어 하는 참 매력적인 바로 그 말씀이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네 믿음이 크다...’ 이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주님은 오늘 우리들 모두에게도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느냐?’(마태14:31) 사람들은 이전에 예수가 말씀하셨던 이 말씀을 서로 연결 지어서 생각하기도 합니다. 좋은 대조가 됩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아...’ 예수는 어떤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시더니 오늘 주님을 찾아왔던 한 여성을 향하여서는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이렇게 말씀하시니 말이지요. ‘믿음이 적은 사람아...’ 

예수로 부터 이런 꾸중을 들었던 사람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그는 다름 아닌 베드로였습니다. 그렇다면 좀 놀랍기도 합니다. 예수에게 찾아왔다가 온갖 수모를 다 당한 이방의 여성은 ‘네 믿음이 크다...’ 이렇게 칭찬을 받았지만... 오랜 시간을 주님 곁에 머무르면서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앞서간다고 하던 베드로는 ‘믿음이 적다’는 책망을 듣게 됩니다. 
   
베드로를 생각해 봅시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캄캄한 밤에 표류하던 자기들의 배를 찾아오신 예수님... 그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고.. 이런 예수라면 무엇이든 할 수가 있을 것 같아서 자기도 물로 뛰어들었습니다. 몇 걸음 걷기는 했지만... 바람이 불어 왔을 때...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히더니 다시 물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그를 붙잡아 주신 주님이 하신 말씀이 바로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믿음이 적다는 것... 사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 수가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우리는 잘 모를 때... 성경도 잘 모르고... 기도도 유창하게 할 줄 모르고... 교회의 질서나 전통이나 신앙적인 상식도 잘 알지 못할 때... 소위 말하는 체험도 별로 하지 못하였을 때... 속된 말로 가방끈이 짧을 때... 믿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모든 것이 서툴고 어설플 때... 난 믿음이 없어... 난 믿음이 적어... 나도 좀 많이 알고 많이 많이 체험해서 믿음이 좋아졌으면 좋겠어... 우리는 이런 상태를 믿음이 적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조건이라면... 어찌 베드로가 믿음이 적은 사람일까요? 처음부터 예수와 같이 시작한 이른바 창립 멤버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수제자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아는 것도 많고 체험은 또 얼마나 많이 하였을까요? 이런 사람이 믿음이 적다고 한다면... 아마도 오늘 우리들은 아예 믿음이라는 게 전혀 없다고나 해야 할는지... 주님이 보시는 기준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다시금 주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 예수님이 믿음이 적다고 말하는 기준... 그것은 의심이 아닐까요? 많이 안다는 것... 많이 체험하였다는 것...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요? 만일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을 의심한다면... 조금 전 만해도 자신이 있었고, 믿음이 충만했는데... 그래... 주님과 함께라면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도 조금도 문제 될게 없어... 그러던 베드로였는데... 그 믿음이라는 것이 불어온 작은 바람에 그만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의심이 고개를 슬며시 들고 나옵니다. 믿음이 적다는 것... 그것은 의심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함께 하심을 믿지 못하고... 마음이 흔들리는 상태를 말하는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이 적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적을 때... 사실은 그것이 우리들에게는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렇게 자신 있던 베드로였지만... 바다에 빠져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가 남다른 능력이 있어서 지금 바다를 걷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실없는 소리가 있지요. 아주 쉽다고... 이쪽 발이 빠지기 전에 다른 쪽 발을 물에 집어  넣으면... 물위에서도 얼마든지 걸을 수가 있다고... 한 번 해보십시오. 
   
바다를 걷는 일... 성난 파도를 헤쳐 나가는 일... 그것은 오로지 믿음으로만 할 수가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너무나 적습니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와도... 내 삶의 자리가 조금만 흔들려도...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우리의 믿음은 사라지고... 우리는 하나님을 의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하나님이 나를 조금이라도 소중히 여기신다면.. 이런 일은 내게 생기지 않을 텐데... 이렇게 하나님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베드로처럼 여지없이 세상이라는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맙니다. 

이렇게 베드로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예수가 그녀에게 하셨던 말씀...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이렇게 말씀하셨던 이유도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결코... 이것은 신앙의 연륜이나, 신앙적인 지식이나, 경험이나, 교회에 대한 익숙함이나... 이런 것들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이 가나안 여성은 베드로와는 전혀 비교를 할 수가 없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예수에 대해서 아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아마도 오늘 예수를 본 것이 거의 처음 있는 일이겠지요. 예수가 이렇게 경계를 넘어서 이방인들이 사는 두로와 시돈 지방을 찾으신 것이 거의 없었던 일이니까요? 따라서 예수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도 거의 없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그녀를 향하여 믿음이 크다고 하시니... 예수가 그녀에게서 본 것은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그녀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의심하였기에 믿음이 적은 사람이었다면... 이 가나안 여성은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믿음이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실은 얼마든지 주님을 의심하고 기대를 접을 수밖에는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녀가 예수와 제자들에게서 받은 대접은 우리가 입으로 올리기에도 좀 민망합니다. 그녀는 자기의 딸이 귀신에 들려서 괴로워하고 있어서 주님을 찾았습니다. 예수에 대한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어떤 병도 고쳐주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자기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절대로 그냥 돌려보내는 법이 없는 분이시다... 이런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여성은 예수를 찾아 간 것이지요.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딸이, 귀신이 들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v.220 이렇게 주님께 다가갑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여기서 우리는 그래도 그녀가 예수를 향하여 깊이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로부터 오는 반응은 아주 냉담합니다. 아예 예수는 그녀의 말에 대하여 침묵으로 일관하십니다.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을 하셨는지... 그녀를 무시합니다. 제자들이 예수에게 한은 말은 그녀를 아프게 합니다. ‘저 여자가 우리 뒤에서 외치고 있으니, 그를 안심 시켜서 떠나보내 주십시오.’(v.23) 

자꾸만 우리를 귀찮게 하고 시끄럽게 구니... 대강 몇 마디 하셔서 보내버리십시오... 도대체 그녀가 왜 이렇게 예수를 향하여 소리를 지르는지... 그녀의 딸의 상태가 어떤지... 아마도 그녀 생각에는 이런 것을 친절하게 물어 보리라 기대하였는데...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였습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의 길을 잃은 양들에게 보내심을 받았을 따름이다.’(v.25) 예수가 마침내 입을 열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그녀를 아프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유대인들에게나 있지 이방인들은 전혀 자신이 돌 볼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가나안 여인에게는 정말로 아픈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겠지요. 평소에 유대인들이 자기들 가나안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어쩌면 예수가 나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기는 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예수가 그렇게 나오니 그녀는 참 마음이 아픕니다. 순간적으로 그냥 돌아갈 까? 생각도 하였지만... 그녀는 더욱 낮게 주님에게 다가갑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나아와서, 예수께 무릎을 꿇고 간청하였다.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먼발치에 서서 소리나 지르며 어떻게 자기의 목적을 이루고 싶었던 그녀였는데... 이제는 예수께 가까이 다가섭니다. 무릎을 꿇고서는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사정을 합니다.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그러면서 주님이 마음이 달라지기를... 주님이 생각을 바꾸어서 자기의 사정을 들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대답은 그녀로서는 정말 참기 어려운 모욕이었습니다. 아마... 그 말을 곁에서 들었던 제자들도 주님을 다시 보지 않았을까요? 안타까운 사정을 가지고 자신을 찾은 여성을 향하여 이렇게 말해도 되나? 아무리 이방인 이라고 해도... 예수님의 말씀은 옮기기에도 참 민망합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v.26) 정말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개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모욕하고 멸시하며 지칭하는 말인데... 예수는 그녀에게 이렇게 대놓고서 그 말을 사용하시니... 한 번 한 말을 돌이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마 이정도 했으면... 가나안 여성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벌떡 일어나서 화가 난 모습으로 한 마디 내뱉고서 돌아갈 것이다... 예수나 제자들이나 그렇게 생각을 하였겠지요. 
   
하지만... 예수 앞에 무릎을 꿇은 그녀는 미동도 하지를 않습니다. 그리고는 예수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저는 개가 되어도 좋습니다. 주님이 저를 개가 아니라 그것보다 더 못한 것으로 부르셔도 좋습니다. 저는 단지 주님께서 마음속에 품고 계신... 주님께서 마음 깊은 곳에 감추고 계신 그 사랑과 자비를 받고 싶을 뿐입니다. 부스러기라도 좋으니... 제게도 주님의 긍휼과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더 이상 주님은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가장 낮은 모습으로 주님 앞에 자기를 내던지는 그녀에게 예수는 그가 감추고 있었던 속마음을 드러낼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결국은 그녀의 소원대로 되었습니다.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 네 믿음이 크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때, 그 믿음은 바로 가나안 여인을 두고서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가나안 여인처럼 하는 것이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고, 자신의 소원과 목적을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루는 사람입니다. 그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조금도 주님을 의심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은 아름답게 마무리가 되었지만...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조마조마합니다. 언제... 가나안 여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예수님의 입장을 얼마나 난처한 것이 됩니까?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 그렇게 속이 좁으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피조물인데... 유대인이 아니라고 해서 그렇게 상처만 주고서는 돌려보내다니... 하나님 아들답지 못한 처사야... 예수님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이것은 정말 모양새가 좋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더 마음을 졸이신 분은 다름 아닌 예수가 아니셨을까요? 이 낯선 가나안 여인이 소리를 지르며 예수를 찾아 왔을 때부터... 예수에게는 그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게 우리가 믿고... 우리가 아는 예수입니다. 예수 앞에서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 여자라는 것... 예수를 알지 못한다는 것... 믿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 가진 것이 없다는 것... 이런 것을 결코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녀를 대할 때에 주님의 마음은 오로지 긍휼히 여기심과 사랑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는 그녀의 아픈 곳을 마구 건드리시면서... 이 여자가 견디다 못해서 그냥 가버리면 안 되는데... 그런 조바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이렇게 자신이 가진 마음과는 반대로 그녀를 대하시면서 우리들에게 말하고 싶어 하는 소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을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정 속에 담겨진 강한 긍정... 겉으로는 그녀를 부정하시고 무시하십니다. 이방인이라고... 여자라고... 그렇게 그녀를 대하십니다. 하지만, 그게 예수님의 속마음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믿음이 큰 사람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말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정 속에 담겨진 강한 긍정을 읽는 마음입니다. ‘저분이 이렇게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모질게 대하시고, 나에게 마구 상처를 주시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뿐이지, 속마음까지 그렇지는 않아. 속으로는 나와 내 딸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정말로 사랑하고 계셔...’ 사랑하는 여러분... 가나안 여인이 예수를 떠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님이 칭찬하시는 큰 믿음은 바로 이런 믿음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믿음이 바람이 불어오는 바다에서도 우리가 실족하지 않게 하고, 끝까지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지는 않을 텐데... 우리는 얼마나 자주 실망스런 현실을 직면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또한 나를 향하여 들려오는 소리들은 얼마나 내게 아픔을 주고 상처를 주는 말들이던가요? 그럴 때에 우리들이 가진 믿음은 여지없이 흔들릴 수밖에는 없습니다. 거침없이 바다를 걷다가 작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바다 속으로 빠져드는 베드로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나안의 여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실망스런 일들이 생겨나더라도... 자기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말들이 들려오더라도... 그녀는 그 이면에 담겨 있는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자기를 생명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지요. 오늘 우리들 모두가 가진 믿음이 가나안 여성이 가진 것 같은 그런 믿음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믿음이란 다시 말씀드리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부정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강한 긍정을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겉으로는 나에게 냉담하시고, 나를 거부하시고, 나를 향해 문을 닫으신 것 같기만.... 그 속에 얼마나 강한 사랑이 담겨 있는지... 그것을 믿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실망스런 일들이 자꾸만 일어나고... 내 힘으로는 그것을 다시 수습하기가 쉽지 않지만... 이렇게 무너뜨림을 통해서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 이전의 모습보다 더 멋지고 근사하고 강하게 나를 세우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기에 자기를 추스르고 미래를 희망하면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행전에서 그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계획하고 추진하는 길을 성령님이 막으시고...(사도행전16:6) 주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다고...(16:7) 그래서 그가 직면한 곳은 드로아라는 항구였습니다. 막다른 골목이었지요. 아 이제는 더 이상 나갈 수가 없구나...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부정... 하나님의 no 앞에서 그는 낙심할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결국 그가 생각하지 못한 더 넓고 광활한 유럽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나가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겉으로는 ‘아니오’를 말씀하시는 것 같았지만, 실상 그 이면에서 바울이 생각하지 못한  더 크고 광대한 ‘예’를 준비하여 놓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아니오 속에 멋진 예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겉으로는 우리를 넘어지게 하시고 무너뜨리시는 것 같지만, 그 손길은 우리를 더 아름답고 근사한 모습으로 세우십니다. 
   
겉으로는 나의 생각, 나의 길, 나의 계획을 막으시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서 더 좋고 멋진 길을 열어 놓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기에...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을 향하여 주님은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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