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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대상 29: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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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대상 29:10-13)  
 
오늘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건축을 위하여 물품을 가져올 것을 부탁하고 그 결과로 넘치는 헌물에 대한 감격을 찬양하고 있는 내용이다. 결국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인류의 모든 것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고백이며 감사이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 곧잘 [주님]이라고 고백한다. OT에서 여호와[YHWH]를 너무 신령하게 여긴 나머지 70인 역이라고 하는 헬라어로는 주[kyrios]로 번역하였다. 

무엇보다도 NT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고백을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主)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본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주인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은 여기에 머무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받아들이건 그렇지 않건 하나님은 이 역사 속에 존재하는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의 주인이시다. 이것을 불신의 사람들이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성경 속에서는 주님의 종들을 통하여 여러 번 이러한 사실을 증거하고 있고 사실적으로 그런 일들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오늘 본문 v11에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창세기 41:44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당시 세상역사를 지배하는 실제적인 권력은 바로였었고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바로의 권력을 잡은 요셉에게 바로는 인정하고 있는 표현이다. 물론 이 바로의 권력조차도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 그리고 자신의 백성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사용하셨다. 

모든 세상의 보이는 권력과 권좌조차도 사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신약성경에서도 증언해 주고 있다. “…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13:1) 하였다. 

이렇게 주님으로부터 주어진 권력이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는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벧전2:13) 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여기에서 다시 베드로 사도의 권면을 들을 필요가 있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1: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을 알고 인정한다면 그분의 주권 아래서 경외함으로 살 필요가 있는 것이다. 

Ⅰ. 유독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다.(13)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이것은 하나님처럼 선택의 권한을 주셨다는 말씀이다. 그럼에도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작은 제한이 있었지만 아담은 그 제한조차도 넘어서 버림으로 사실 자유를 잃고 만다. 

죄 아래 매인 사람들은 많은 것에 얽매어 사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자유롭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오늘도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지만 거기에는 책임이 주어져 있다. 우리의 선택은 결과가 자신에게 오기 때문에 바른 선택이 필요하고 그래서 우리의 바른 선택을 위하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십자가 이전에는 사실 인간에게는 죄의 종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십자가 이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6:17~18) 

이렇게 새로운 소망적 선택이 가능해졌음에도 경계는 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무엇을 선택하든지 그 결과에 따르는 책임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0)는 말씀도 순종의 대상을 선택하려 할 때 늘 마음에 두어야 할 말씀이다. 

이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 때문에 우리 각자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허수아비로 세우지 않으시고 주님의 범주 안에서 자유를 주셨기 대문이다.[Cruise passenger] 

우리는 행한 결과에 책임을 저야 하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원 아래 있기 때문이다. 


Ⅱ. 하나님의 주권을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삶이 요구된다.(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인생의 많은 자유와 경험을 하고 난 솔로몬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19:21)는 고백을 드리고 있다. 

①하나님은 나의 계획을 제한하시는 이유는 그분이 주권자이시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가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그 계획은 바뀔 수 있고 주님은 그보다 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들이 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②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죄, 질병, 죽음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확신은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약1:13) 하나님은 좋지 못한 일로 우리를 이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문제를 일으킬 뿐이다. 

그럼에도 때로는 더 좋은 목적을 마음에 두시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허용하신다. 여기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나쁜 일조차도 더 큰 좋은 목적을 위해 사용하신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이것을 확신한다면 비극이라고 하는 상황에서도 소망과 기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창세기의 요셉(창45:5~8, 50:20), 홍해까지 좇아오는 애굽의 군대, 욥의 고난(1:21), 바울과 실라의 빌립보 감옥, 바울의 로마감옥 등등 이들이 위대한 것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주권, 즉 다스리심을 알았다는 사실이다.)] 

이래서 사탄의 활동조차도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만 가능함을 성경에서 보게 된다. 

그래서 ③우리의 계획은 하나님의 주권아래 그분의 뜻 아래에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주님께서 기도의 모범조차도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 라고 가르치셨고 마지막 죽음 앞에서조차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막14:36) 라며 모범을 보이심을 본다. 


Ⅲ. 하나님의 주권만이 설 것이다.(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우리는 때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나고 “하나님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라고 항의 하는 기도를 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오늘 내가 당하는 어려움과 고난 조차도 때가 되면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는 말씀은 우리에게 듣고 기분 좋으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사실적인 말씀이다. 

남에게 상처를 입을 때도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 때도 까닭 없이 미움을 받을 때도 이 고난을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찾고 믿음으로 더 먼 미래를 바라보며 이루실 선하신 목적을 내다 본다면 같은 대항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왜 사랑하는 이가 암에 걸려야 하고 그렇게 일찍 죽어야 하는지, 어떤 아이는 선천적인 불치의 병을 가지고 태어나는지, 교통사고는 왜 나는지, 사업이 망하고 직장을 잃게 되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고난을 통해서 더 선하신 목적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만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주권이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우리 인생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고, 삶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찾고 싶지 않을 때도 있게 된다. 우리가 이해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때가 이르면 우리의 얕은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대로 선하신 목적을 이루실 때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믿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판단해 버리고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은 나 자신이 주권자가 되는 것과 같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때에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믿으며 순종한다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는 결과를 만나게 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믿음의 사람들조차 육신적인 간구는 하면서 영적인 간구는 별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인생에 있어서 덜 중요한 것들이 영원을 향해 가는데 장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세상에 없어질 것들은 영생과 비교해보면 하찮은 것들임에도 우리는 항상 영적인 것들보다 세상적인 것들에 더 관심을 많이 둔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원의 약속에 대한 것들이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4:17~18)는 바울 사도의 고백을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각자의 계획이 절대적 주권자이신 주님의 약속 안에 세워져야 하고 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자아를 믿음으로 단속하고 기도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구할 때 주님의 주권이 우리의 삶을 보다 먼 영원의 영광에까지 원만히 이끌어 가실 것이다. 

하나님은 넉넉히 우리의 환경과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실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 해볼 수 없는 문제들을 겪는 경우에도 주님의 능력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는 절대로 없다. 그래서 사실 주님이시다. 당하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믿고 기도로 주권에 호소 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기도와 순종이다. 하나님은 이 역사를 주관하는 왕이시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손안에 들려 있음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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