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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암 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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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기억하십시오 (암 2:4-16)

< 나눔을 다짐하고 실천하십시오 >  

구약 시대에 희년(희열의 해, year of jubilee)이란 제도가 있습니다. 희년은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바로 다음 해인 50년 째 해를 뜻합니다. 희년은 사회적인 격차 해소를 위해 하나님이 설정한 제도입니다. 희년이 되면 빚은 탕감되고, 종들은 자유를 찾고, 땅은 원주인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때 절망에 빠졌던 사람들이 다시 희망을 가지고 일어섭니다. 결국 희년 제도는 정의와 평등 공동체 실현을 위한 사회적 안전장치입니다.  

왜 희년에 땅을 원주인에게 돌려주었을까요? 땅은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생명을 유지하는 양식을 내어주는 은혜의 매개였기에 땅을 사고파는 것조차 불경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땅을 팔면 가까운 친척이 그 땅을 사서 돌려주었습니다. 그런 친척이 없으면 도로 땅을 살 힘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 주고 땅을 도로 살 때는 그 땅을 산 사람이 그 땅을 사용한 햇수를 계산해 그 사용료를 빼고 나머지 값만 치렀습니다.  

그처럼 구약 시대에는 땅을 탐내고 빼앗는 것을 불의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땅에 대한 탐욕으로 세상을 전쟁터로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어서 50년마다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려는 희년 제도가 부자들의 탐욕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 가난한 자들이 땅을 뺏기는 일이 다반사로 생겼습니다. 지금도 그와 유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곳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 나눔과 돌봄의 가치관이 넓게 퍼져야 합니다. 밀어붙이는 저돌적인 삶보다는 나누고 소통하며 더불어 사는 삶이 행복과 축복을 가져다줌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땅의 소산은 ‘소유’와 더불어 ‘나눔’을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 나눔으로 어려운 이들에게 살 희망과 재미를 주어야 세상은 살만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제 나눔을 다짐하고 실천하십시오. 투기적 이익을 멀리 하고 나눔을 위한 소비 외에 사치스런 과소비를 주의하십시오. 또한 배고픈 이에게는 밥그릇을 밀어주고, 필요 이상의 물건은 나누고, 이자소득보다 노력소득을 더 추구하고, 토지보유세를 즐겁게 내면서 일상에서 희년의 삶을 실천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 복된 세상을 위해 필요한 삶 >   

선지자 아모스 때는 권력자와 부자의 횡포가 유난히 극심했습니다. 그때 아모스는 뽕나무를 재배하고 양을 치는 평범한 사람으로 있다가 부조리와 불평등으로 신음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그래서 아모스서를 보면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시정하려는 선지자의 외침이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본문도 그런 내용 중의 하나인데 세상을 정의롭고 복된 세상으로 만들려면 어떤 삶이 필요할까요?   

1. 말씀을 앞세우는 삶  

아모스 1장부터 2장 3절까지는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의 죄를 폭로합니다. 그러다가 본문 4절에서는 남 유다의 죄를 폭로합니다. 유다의 죄는 어떤 죄입니까? 말씀을 멸시하며 말씀대로 살지 않은 죄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거짓에 미혹되어 고난과 심판을 자초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이 유다에 불을 보내 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겠다고 했습니다(5절). 이 말씀은 말씀의 중요성을 잘 말해줍니다.  

요새 강단과 인터넷마다 설교가 넘치지만 왜 영혼의 목마름은 오히려 커집니까? 좋은 말씀을 찾기만 하고 실천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찾는 것 이상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행복을 찾으려고 하면 행복을 찾기 힘듭니다. 그러나 의를 찾으려고 하면 어느새 행복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처럼 말씀을 찾기만 하면 영혼의 갈증은 커지지만 말씀대로 살면 영혼의 갈증이 어느새 사라집니다.  

어느 날, 새끼 고양이가 자기 꼬리를 잡으려고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그때 엄마 고양이가 물었습니다. “얘야, 왜 그렇게 돌고 있니?” 새끼 고양이가 대답했습니다. “꼬리를 잡으려는데 안 잡혀요.” 그때 엄마 고양이가 말했습니다. “얘야, 꼬리를 잡으려고만 하지 말고 그냥 앞을 향해서 걸어가면 꼬리는 자연히 따라온단다.”  

말씀을 추구만 하지 말고 말씀대로 살아야 행복도 주어지고 하나님의 역사도 나타납니다. 그때 치우침도 없게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율법이나 은혜 어느 쪽으로도 너무 치우치면 안 됩니다. 은혜는 ‘의롭다 함’을 얻게 하는 것이고 율법은 ‘의롭다 함을 얻은 자의 의무’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의도 중요하지만 의무도 중요합니다. 은혜를 내세워 방종으로 흐르면 안 됩니다. 그처럼 정의롭고 복된 삶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바로 말씀을 앞세우는 삶입니다.
  

2. 은혜를 기억하는 삶   

남 유다의 죄 다음으로 아모스는 북 이스라엘의 죄를 폭로합니다. 어떤 죄입니까? 그들은 은을 받고 의인을 팔고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았습니다(6절). 또한 힘없는 자에게 강제노역을 시키며 괴롭혔고 연약한 자를 학대했고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을 취하는 성적인 범죄도 저질렀습니다(7절).

당시 가난한 자에게 옷은 밤에 추위를 막는 주요 수단이었기에 모세 율법은 전당잡힌 옷을 해 지기 전에 돌려주라고 했습니다(신 24:12-13). 그러나 부자들은 그 율법을 무시하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옷을 전당 잡고 번 돈으로 신전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즐겼습니다(8절). 그런 무자비한 일들이 제단 옆과 신전에서 자행된 것은 당시 지배층들의 신앙과 삶이 완전히 괴리된 상태였다는 뜻입니다.  

그런 무자비한 부자들을 향해 하나님은 과거의 은혜를 상기시킵니다. 즉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 그곳에 살던 강한 아모리 족속을 진멸해 그 땅을 차지하게 했고(9-10절), 그들 후손 중에 선지자와 나실인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11절). 왜 그런 은혜를 상기시켰습니까? 그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가난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요단강 서편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요단강 동편 땅을 12지파 중에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먼저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요단강 서편의 가나안 정복전쟁에서는 선봉에서 열심히 싸우라고 했습니다. 그처럼 먼저 편하게 잘사는 은혜를 받았으면 힘들게 사는 동족을 잘살게 해줄 책임이 있습니다. 결국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레가 6살 때 집에 큰불이 났습니다. 그때 그가 간신히 구출된 직후에 바로 지붕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사건을 웨슬레는 평생 잊지 않고 자신을 ‘타다 남은 불 꼬챙이’로 여겼습니다. 그렇게 계속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며 살자 ‘타다 남은 불 꼬챙이’가 ‘타오르는 불방망이’가 되어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은혜를 계속 기억하면 은혜가 계속 넘치게 됩니다. 그처럼 은혜를 아는 사람이 많아져야 세상은 정의롭고 복된 세상이 됩니다.
  

3. 힘써 나누는 삶  

하나님이 은혜로 가나안 땅을 주셨고 인물을 주셨는데 그 인물들을 부자와 권력자들이 타락시키면서 나실인은 포도주를 마시게 했고 선지자들은 예언하지 못하게 했습니다(12절). 그처럼 부자와 권력자들의 술수에 영적인 리더까지 타락하면 그 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게 됩니다. 결국 곡식 단을 가득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하나님이 그들을 누르는 심판이 임합니다(13절). 이 심판은 지진의 심판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무섭고 신속한 심판을 누구도 피할 수 없다고 생생한 언어로 묘사합니다(14-16절).  

이 말씀은 부자와 권력자에게 영합했던 영적인 리더가 회개하고 또한 부자들도 나눔을 선도해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그처럼 부자들은 힘들게 사는 사람들과 좋은 것을 나눌 책임이 있습니다. 결국 부자들이 제일 금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투기와 이자놀이입니다. 저축은 서민이 하는 것이지 부자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는 저축보다 나눔과 좋은 투자를 잘해야 합니다. 좋은 투자는 일종의 나눔입니다.  

일전에 삼성그룹이 쌓아놓은 현금만 80조란 뉴스를 봤었습니다. 어려울 때를 대비한 예비금은 필요해도 너무 돈을 쌓아놓는 것은 죄입니다. 그 돈을 좋은 곳에 투자하면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생겨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겠습니까? 여호수아가 요단 동편 땅을 먼저 차지한 2지파 반 사람들에게 가나안 정복전쟁의 선봉에 서서 나머지 지파들을 도우라고 하자 그들은 “우리가 그대로 행하겠다.”고 하며 여러 번 ‘우리’를 강조했습니다(수 1:16). 그런 ‘우리 의식’을 가지고 먼저 잘살게 되면 가난한 형제와 나누려고 해야 전체가 다 살게 됩니다.  

암이 무엇입니까? 한 조직세포가 자기만 무한정 커지려다가 생기는 것입니다. 결국 그 커진 조직 때문에 전체 생명이 다 죽습니다. 요새 재벌처럼 계속 자기만 커지려고 하면 전체 한국을 죽일 수 있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그 재벌을 끊어내야 합니다. 재벌들이 “우리를 어떻게 죽여! 대마불사야!”라고 하겠지만 권력이 죽이려고 작정하면 살아남을 재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말 자체가 재벌이 어떤 면에서 은혜를 입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재벌은 스스로 나누고 좋은 곳에 투자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이 된 것은 자기 수완 때문만은 아닙니다. 80% 이상은 그들에게 유리하게 펼쳐진 사회적인 환경과 전체 한국민의 일정한 양보와 희생으로 이뤄진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사회적 책임으로 승화시키지 않으면 배은망덕의 죄로 더 비참해집니다. 그런 시대상황을 외면하고 나누지 않는 재벌은 반드시 도태될 것입니다.
  

< 은혜를 기억하고 나누십시오 >   

10남매를 둔 한 가난한 가장이 있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자녀 모두를 잘 먹이거나 잘 교육 시킬 수 없었기에 결국 엄한 가장은 공정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똑똑한 한 자녀를 선택해 키우자고 작정했습니다. 그 자녀가 성공해서 다른 자녀들을 도우면 모두가 그런 대로 잘 살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결국 비교적 똑똑한 둘째 아이만 공부시키고 다른 9명의 자녀는 중학교 때부터 공장을 보내 돈을 벌게 했습니다. 다른 형제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둘째는 좋은 대학을 나와 회사를 차려 결국 100억을 가진 대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성공은 모든 가산을 그에게 몰아주어 교육시켰고 나머지 자녀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진 성공이었기에 그는 성공한 후에 다른 형제들을 최선을 다해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얼마를 도와야 할까요? 공정하게 나누려면 다른 형제들에게 10억씩 나눠줘야 하지만 사람이 완벽하게 공정할 수는 없고 또한 둘째의 땀과 실력과 수완도 100억을 버는데 큰 기여를 했기에 둘째가 어느 정도는 더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5억 정도는 나눠주고 본인은 나머지 55억을 가져야 사리에도 맞고 다른 형제들의 불평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가장도 둘째를 선택해 잘 키웠다고 뿌듯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둘째가 혼자 다 차지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형제들이 불평했습니다. 가장도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둘째가 받은 은혜를 기억할 줄 믿고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둘째는 나누지 않았습니다. 점차 가장은 스트레스로 화병까지 생길 정도였고 이웃들도 “자식을 잘못 키웠다!”고 욕했습니다. 결국 가장이 둘째를 불러 “형제들과 나누고 경제민주화를 하라!”하고 따끔하게 야단치고 그래도 계속 말을 안 들으면 강제로 매를 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불의의 사고로 가장이 죽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엄한 아버지가 자신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기에 아버지의 말이라면 꼼짝 못했는데 그 아버지가 죽자 그의 안하무인은 극에 달했고 다른 형제들을 거의 외면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에게는 천만 원 정도만 적선하듯이 쥐어주고 나머지 99억 원은 다 자신이 가졌습니다. 그러자 다른 형제들이 불평했습니다. “우리의 희생으로 그렇게 성공했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야박한가? 너무 했다.”  

그런 불평을 둘째는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점점 세월이 지나면서 둘째와 다른 형제들의 경제력 격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자산이 5백만 원으로 줄었지만 둘째의 자산은 5백억으로 늘었습니다. 그런 부조리와 불평등을 보다 못해서 많은 지인들과 지식인들이 둘째에게 “그러면 못 쓴다! 형제들과 나누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래도 엄한 아버지가 세상에 없으니까 둘째는 누구 말도 안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똑똑해서 성공했다는 착각에 빠져 살면서 형제와 나누지도 않고 더 나아가 투기도 하고 상속세도 빼돌리고 골목 상권도 침해하며 계속 재산을 불려나갔습니다. 그처럼 점차 통제할 수 없는 폭주기관차가 되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분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도 이미 힘이 커질 대로 커진 둘째를 누구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반전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엄한 아버지의 막내딸이 아버지가 죽은 지 33년 3개월 만에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막내딸에게는 한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둘째 문제로 사람들로부터 자식 잘못 키웠다는 욕을 먹고 화병을 키우다가 불의를 바로잡지 못하고 갑자기 죽은 것이 한이었습니다. 그래서 막내딸은 못된 둘째 문제를 처리해서 아버지에 대한 비난도 줄이고 아버지가 생전에 가졌던 건전한 투자와 소득의 분배를 통한 경제민주화의 꿈을 이뤄야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안하무인이었던 둘째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5년, 아니 레임덕을 예상해서 3년만 버티자고 시간 끌기와 눈치 보기에 돌입했습니다. 막내딸은 그런 시간 끌기에 당하면 아버지의 한을 영원히 못 풀 것으로 여기고 영국의 철혈 여수상 <대처>처럼 과감히 대처해서 경제민주화를 밀어붙였고 결국 둘째는 욕을 먹을 대로 다 먹은 채 파산했습니다. 그 후 둘째의 소유는 다른 형제들에게 공평하게 재분배되었습니다. 나누지 않으면 언젠가는 빼앗기지만 나누면 언제라도 빼앗기지 않습니다.  

어떤 비유인지 짐작했을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나라가 6.25의 폐허에서 경제를 일으키려고 할 때 그때는 잘 분배하고 싶어도 분배할 것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박정희 대통령이 일부 기업을 집중해서 키우고 나중에 그 기업이 잘 나누게 하자는 의도로 불공평하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몇몇 기업을 키웠습니다. 그래서 대출혜택과 세금혜택과 일감 몰아주기 혜택을 주었고 외국차관도 몰아주었습니다. 그래서 삼성, 현대 등이 생겨났습니다. 그 기업들은 회장이 잘나서 스스로 큰 것 같지만 사실상 박정희 대통령이 키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정책으로 거대 재벌들이 생겨나면서 점차 나눌 여력도 커졌지만 재벌들은 잘 나누지 않았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보기에 얼마나 괘씸했겠습니까? 어떤 분 말에 의하면 박 전 대통령이 1979년에 갑자기 죽지 않았다면 516 군정과 유신 독재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81년쯤에는 재벌들을 손보고 경제민주화 문제를 풀려고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이 갑자기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재벌들은 받은 은혜 때문에 눈치 봐야 하는 대통령이 사라지자 그때부터 안하무인으로 “내가 똑똑해서 컸다.”고 하며 나누지는 않고 오히려 거대자본 및 재테크를 이용해 이익을 불려나갔고 편법적인 유산 상속으로 나눔과 정반대의 길로 갔습니다. 그런 재벌들의 행태를 죽은 박 전 대통령이 보았다면 통탄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 문제를 지적해도 재벌들은 말을 듣지 않습니다. 부채의식을 가진 사람이 이미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재벌의 욱일승천의 기세가 이명박 정부 때는 극에 달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재벌의 머슴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전 대통령은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주관으로 열심히 일한 것이 더 문제였습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후진국형 기업 리더’로는 맞을지 몰라도 ‘21세기형 국가 리더’로는 별로 맞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CEO 출신 대통령이라서 경제를 살릴 줄 알았지만 그는 다수의 희생을 강제해 일부 똑똑한 사람만 키우는 모델로 성장을 추구한 CEO였기에 그의 사고 속에는 그런 편향적 성장논리가 강했습니다. 그 사고체계를 따라 재벌들에게 엄청나게 퍼주었습니다. 물론 재벌들이 나누기를 기대하고 그랬겠지만 그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입니까? 결국 재벌들은 나누지 않고 독점 상태만 키우면서 빈부격차만 심해진 것입니다.  

박 전 대통령 때는 재벌들이 대통령에게 부채의식도 컸고 대통령이 힘도 있었기에 그나마 국민들에게 나눠주려는 몸짓을 했습니다. 투자 없이 재테크만 하면 대통령에게 반쯤 죽으니까 공격적인 투자도 했고 공장도 지으면서 실제로 경제발전에 도움을 주는 책임적인 투자도 꽤 했습니다. 그래서 일자리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익이 적어도 재벌이 투자해야 할 분야는 투자하겠다는 책임적인 투자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런 재벌들에게 이명박 정부가 부를 몰아준 것입니다. 물론 책임적인 투자를 하라는 바램으로 그랬겠지만 대통령은 그렇게 하도록 이끌 감동도 못 주었고 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5년 만에 대통령 자리를 물러났습니다. 결국 지난 5년 동안 재벌들은 단물만 빨아먹었고 대통령은 재벌들에게 퍼주면서 국민들에게는 나눠주지는 못한 채 열심히 헛물만 켜다가 청와대를 나온 것입니다. 재벌들 입장에서는 <무궁화 대훈장>을 받기에 마땅한 사람입니다.  

CEO 출신 대통령이라서 경제를 일으켜 국민을 잘살게 해줄 줄 알았는데 결국 출신을 속이지 못하고 CEO를 잘살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그도 국민들을 잘살게 해주려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의 사고 체계가 구시대적인 희생적 경제개발 논리였기에 애초에 국민 전체를 잘살게 해줄 수 있는 그릇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것을 보고 자라는가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번에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결국 이명박 정부 때 재벌은 더욱 통제가 안 되는 폭주기관차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마지막 운명이 다가오면 폭주가 심해지다가 갑자기 폭주가 탁 끝납니다. 역사는 돌고 돕니다. 이번에 국민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졌던 ‘박 전 대통령’의 딸이 새로 ‘박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재벌들이 정신을 차리라는 엄중한 경고일 것입니다. 이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경제 민주화의 몽둥이로 크게 맞을 것입니다. 재벌을 질투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러면 결국 다 뺏기는데...”라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는 말입니다.

이번에 정신 차리고 진정으로 나눔을 선도하는 재벌은 기업이미지도 좋아지고 후대까지 좋은 영향력을 끼치겠지만 정신 차리지 않고 지금처럼 하는 재벌은 경제민주화의 몽둥이를 맞고 쓰러지면서 결국 나눔과 건전한 투자를 외면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될 것입니다. 지금 재벌들은 <선한 이미지 창출 및 책임적인 투자 팀>을 발족시켜 화두가 된 경제민주화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하려고 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지 않으면 국민과 정권의 심판을 받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새로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도 이번에 경제민주화를 잘 실천하지 않으면 경제민주화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한도 못 풀고 역사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국민 절반의 비난을 잠재울 기회도 더 이상 못 얻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지금의 빈부격차 문제를 공의롭고 지혜롭게 잘 해결해줄 줄 믿고 싶습니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우리 분당 샛별교회의 할 일은 무엇입니까? 나눔을 선도하는 인물을 배출하는 일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꿈은 죽지 말아야 합니다. 80세 이상은 나눌 줄 아는 인물이 나오도록 열심히 기도해주시고 80세 이하는 나눌 줄 아는 인물의 꿈을 가지고 열심히 정진하십시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빛나면 우리나라도 빛날 것입니다. 그처럼 인물의 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며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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