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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 (창 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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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지 않은 사람들 (창 3:8-13)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를, 영어로 Genesis라고 한다. 이는 헬라어 ‘게네시스’에서 유래된 단어다. 그 뜻은 ‘기원 또는 시작’이다. 그래서 창세기는 ‘기원의 책’ 또는 ‘시작의 책’이라고 불린다. 창세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시작과 기원을, 밝히고 있다. 

1장은, 천지와 만물의 시작을, 2장은 결혼과 가정의 시작을, 3장은 죄의 시작을 밝혀준다. 물론 ‘죄’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이때 죄가 세상에 들어왔으며, 이때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오게 되었음을, 성경은 말한다.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성경은 한 사람, 곧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밝히고 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했는데, 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죄가 세상에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고, 죄가 들어오도록 허용했는가?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이 세상에 죄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죄인에게 은혜를 베풀고, 죄인을 용서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겠는가? 
죄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히 알 수 있고, 죄를 심판하는 공의의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과 공의를, 뚜렷하게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은 잠시 동안만, 죄를 이 세상에 허용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완성되는 순간, 그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그 때는 우리를 미혹하는 사탄과, 그 수하에 있던 귀신들은, 전부 불 못에 영원히 던짐을 당한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도, 모두 유황으로 타는 불 못에, 영원토록 던짐을 당한다. 그 때는, 옛 하늘과 옛 땅은 사라진다. 그 대신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한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죄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그 때가 되면, 죄는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단지 그 때까지만 하나님이, 한시적으로 죄를 허용하실 뿐이다. 에덴동산에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 좋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동산 각종나무의 열매를 임의로 먹게 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못하게 하셨다.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했지만, 뱀의 꾐에 빠진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먼저 따먹었다. 그 후에 하와는, 자기 남편인 아담에게 주어서 먹었다. 
두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었다. 그러자 그들에게 가장 먼저 나타난 현상은,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 그들은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치마를 하였다. 그런 가운데, 저녁이 되었다. 하나님은 평소처럼, 동산을 거니셨다.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은, 아담과 하와는, 예전처럼 하나님께 달려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사이에 숨었다. 하나님은,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를 찾아와, 그들에게 회개를 재촉하심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회개하지 않았다. 
결국엔 아담과 하와는, 공의의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야 했다. 오늘도 사랑의 하나님은 찾아오시니, 우리는 죄를 숨기지 말고,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며, 회개해야 한다. 우리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서, 우리 죄를 다 씻어주고, 용서해 주신다. 이런 은혜가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1. 아담이 회개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사이에 숨은지라.” 
바람이 불 때(르루악 하욤)는, ‘영혼을 위한 그 날에’라는 말이다. 거니시는(미트할라크)는 분사로, 계속 동행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함께 하기 위해, 계속 걸었다. 이 소리를 아담은 들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 쪽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있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소리만 나면,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달려갔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피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악을 행했기에, 면목이 없었고, 심판도 두려워서, 숨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죄를 범한 아담을 포기하지 않고, 찾아와 부르셨다. 이것이 바로 은혜다.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아예카 아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다. 왜 아담을 부르시면서, “네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시는가? 죄를 고백하면서, 회개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부드럽게 말씀했다. 

하나님이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에, 묻는 질문이 아니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이리 나와서, 솔직하게 털어놓으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하나님은 그들이 죄를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기를 원했다. 아담은 어떻게 대답했는가?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고 싶었는데, 하나님이 찾아와 부르자, 어쩔 수 없이,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대답에는, 죄에 대한 고백도 없었고, 회개도 없었고, 죄를 용서해달라는, 간구도 전혀 없었다. 

그들은 죄를 범하기 전에는, 악을 알지 못했다. 선만 알고, 진실했다. 하나님은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를, 그 즉시 심판하지 않고서, 왜 그들을 찾아왔나? 회개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하나님은 아담에게, 2가지를 질문했다. ①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아무도 그들에게 그들의 벗었음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면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의 벌거벗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스스로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금하신 나무의 열매를 먹자, 눈이 밝아져, 벗은 줄 알게 됐다. 

(창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이처럼 그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벌거벗은 모습으로 살았다. 그렇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금지된 선악과를 먹자마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따라서 아담의 대답은 이렇게 말해야 했다. “아무도 우리의 벌거벗었음을 알리지 않았다. 우리가 스스로 벌거벗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기 죄를 고백하면서, 회개하기를 바랐다. 

②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은 죄를 고백하지도 않고, 죄를 회개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두 번째 질문을 했다.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다는 사실을 몰라서, 이렇게 물으신 것이 아니다. 아담이 그들의 죄를 회피하니까, 하나님은 아담의 입에다, 그가 대답할 말을, 직접 넣어주셨다. 이 질문에 대한, 아담의 대답은 무엇이라야 하는가? 

“예, 하나님이 제게 먹지 말라 명하신, 그 나무의 열매를, 내가 먹었나이다.”했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연속적으로 질문했다. 하나님은 아담의 말씀을 듣고, 자기 죄를 스스로 고백하며, 용서받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때 아담이 그의 죄를 고백하며, 진심으로 회개했다면, 벌을 감해주거나, 용서해 주셨을 것이다. (잠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 죄를 겸손하게, 자백하기를 바라신다. 
따라서 죄를 숨기지 말고, 사랑의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죄를 겸손하게 자백하자. 그러면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실 것이다. 이런 은혜가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변명만 하는 아담(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이렇게 책임을 전가했다. 

(1) 그 여자가 

원어에는 아담의 답변 중에, 맨 처음 나오는 단어는, ‘그 여자가’다. 여기서 그 여자는, 물론 아담의 아내인 하와를 말한다. 아담은 자기가 선악과를 먹게 된 책임을, 먼저 아내 탓으로 돌렸다.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아담은 하와가 건네주는 선악과를 먹은 것이 사실이었다. 핑계대면, 아담에게 면죄부가 주어졌는가? 
하나님이 아담의 변명을 들으시고, 아담에게 더 이상 묻지 않으셨나?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아담은 하와의 머리다(고전3:11). 따라서 하와가 죄를 범했다면, 아담은 하와를 책망하면서, 하와를 데리고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아담은 하와가, 죄를 범한 것을 알고도, 하와의 말을 듣고, 같은 죄를 범하고 말았다. 알고도 짓는 죄인, 고의로 짓는 죄다. 

(2) 하나님이 주셔서 

‘당신이 주신’ 그 여자라고 했다. 아담은 당신이 주신 그 여자가, 선악과를 주었으니, 선악과를 먹게 된 궁극적인 책임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 왜 내게, 그 여자를 줬나요? 내가 언제 하나님에게, 그 여자를 달라고 했나요? 하나님이 내게 그 여자를 주지만 않았더라도,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차라리 나 혼자 있는 것이 훨씬 더 나았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와를 선물로 주셨을 때, 아담이 얼마나 기뻐했나? 그런데 아담이 죄를 짓고 나니까, 사탄이 의도한 대로, 아담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그 결과 하나님을 향한 그의 감사가, 원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아담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3) 내가 먹었나이다. 
이 말이 아담의 답변 맨 끝에, 위치한다. ‘네가 먹었느냐?’는 하나님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아담이 어쩔 수 없이 ‘내가 먹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담은, 자기 죄를 회개하는 심정으로, 그와 같이 대답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이 다 알고서 물으시기에, 아담은 더 이상, 감추거나 부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지못해서, 자기가 선악과를 먹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아담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먹었다. 

그 후에 아담은, 자기의 죄를 어떻게 처리해 나갔는가? 일차적으로 그는, 자기의 죄를 숨기려고 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그의 죄를 지적하시니까, 아담은 이차적으로 죄에 대한 책임을, 남들에게 전가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먹었다고 답변했다. 

3. 변명하는 하와(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라며, 책임을 전가했다. 

(1) 하나님의 질문 
아담은 하와의 머리였다. 따라서 아담은, 자기 아내 하와를 보호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아담은 자기 아내 하와를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녀를 탓하며, 책임을 전가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와에게 직접 물었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왜 하나님은 하와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는가? 지금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을, 대질 신문하고 계신 것이다. 공평한 판결을 위해, 두 사람의 말을 모두, 듣기 원하셨다. 

(창4: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하나님은 가인이 그 아벨을 죽인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셨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한다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명백히 알 수 있다. 
단지 하나님은 가인이, 자기 입으로 자기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질문을 가인에게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와가 회개하기를 바라면서, 하와에게 같은 질문을 하셨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자기의 죄를 자백하지 않았다. 

(2)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다(13下). 
“…(그)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와는 자기가 선악과를 먹은 이유가, 그 뱀이 꾀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만드신, 그 뱀이라는 복선을 깔고 말하는 내용이다. 
하와의 말에는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지만, 간접적으로는 하나님에게 그 탓을 돌리고 있다. 하나님도 원망하고, 그 뱀도 원망하는 모습이다. 그러면 이것이 타당한 이유가 될 수가 있나? 절대 그럴 수 없다. 설령 뱀이 하와를 꾀더라도, 하와는 뱀의 꾐에 빠질 이유가 전혀 없었다. 

에덴동산에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따라서 하와에게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하와는, 선악과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는 자기 욕심 때문에, 그것을 먹고 말았다. 하와의 말속에는, 이런 의도가 담겨져 있다. 
“왜 하나님은 뱀을 만들고, 왜 하나님은 뱀이, 에덴동산에 활동하도록 허락했나이까? 그래서 내가 뱀에 꾐에 빠지고 말았나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를, 진솔하게 고백해야 옳았는데, 자신들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면서, 계속 자신들을 정당화시키려고 했다. 

그 결과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회개하기를 바랐기에, 그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셨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들의 죄를 진솔하게 자백하며, 회개해야 옳았다. 그러면 얼마든지 용서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아담과 하와는 계속해서, 변명만 늘어놓았다. 하나님은 그들의 변명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전혀 대꾸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뿐이었다. 

이제 말씀을 맺겠다. 우리 모두 언젠가, 하나님이 위에서, 우리를 부르는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세상을 탓하면서, 환경을 탓하면서, 남을 탓하면서, 변명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도록, 이끌어 가신다. 
(사1:18-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계속될 때, 우리의 모든 죄를 자백하며 회개하자.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손을 붙들고, 우리를 축복의 동산으로 인도하며, 우리에게 젖과 꿀이 넘치는, 풍요로운 삶을 허락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를 잊지 말자.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우리에게 보응하신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사탄의 시험을 모두 이기며,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의 복 된 삶이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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