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거룩히 구별하여 드리라 (출 13:1-16)

첨부 1


거룩히 구별하여 드리라 (출 13:1-16)

1. 하나님께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내보내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애굽 바로 왕은 9번씩이나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마다 재앙을 내려 명령에 따르도록 했지만 바로 왕은 계속해서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재앙의 강도를 점점 높여 회개하고 뜻을 돌이키도록 하셨지만 오히려 바로 왕은 더욱 더 완악하고 강퍅해져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이제 한 가지 최후의 재앙만이 남았는데 그 재앙을 당하고서야 바로 왕이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1:1을 보겠습니다.

(출1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서 반드시 다 쫓아내리니 

여기 “한 가지 재앙”은 애굽 사람에게 속한 것으로서 사람과 생축의 처음 난 것, 곧 그들의 장자와 초태생이 죽게 되는 열 번째 마지막 재앙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두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출11:4)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라는 말씀은 지금까지의 재앙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모세와 아론이 대신 집행한 것이었지만, 이제 마지막 재앙만은 하나님께서 친히 실행하실 것임을 나타낸 말씀입니다. 이는 마지막 재앙이 애굽 모든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재앙이 될 것을 암시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끝까지 완악하고 강퍅한 자에게는 파멸만이 남았다는 것이며, 이스라엘은 이제 완전하게 구원될 것을 암시하시는 말씀입니다. 가부장 중심의 사회를 형성했던 애굽에서 장자권은 크게 존중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장자는 가계를 잇는 계승자임과 동시에 한 가문의 대표자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장자에게는 다른 형제들보다 막중한 책임과 동시에 더 많은 권위와 재산이 주어졌습니다. 그런 면에서 장자는 한 가계의 운명이 걸린 고귀한 존재였기 때문에 장자의 죽음은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장자 죽음의 재앙은 애굽 사람뿐만 아니라, 생축의 처음 난 것도 죽임을 당하는 생명 전반에 걸친 재앙입니다. 

따라서 처음 난 것이 모두 죽는다는 것은 곧 애굽의 종교와 경제와 문화 전반에 걸친 엄청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애굽 사람이 신뢰하며 아끼고 소중히 여기던 것들에 철퇴를 가하심으로써 그들의 삶 자체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이 장자 재앙으로 애굽 전역에 걸쳐 큰 곡성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곡성은 단순히 장례식 등에서 볼 수 있는 큰 울음소리 정도가 아니라, 애굽의 모든 가정에서 동시에 부르짖는 통곡으로 ‘전무후무한’ 곡성이 될 것이었습니다. ‘전무후무한’ 곡성이 들릴 때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주위에 가장 민감한 것이 개이고, 어떤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청각과 후각이 발달한 개부터 짖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러나 애굽의 큰 곡성과는 완전히 상반되게 이스라엘 각 집에서는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애굽은 처음 난 것들이 모두 죽음으로 큰 곡성이 진동할 것이지만, 이스라엘은 이와는 정반대로 평온할 것입니다. 이 사실을 통해 바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별하여 보호하신다.”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될 것입니다. 출애굽기11:6-7입니다.

(출11:6-7) 애굽 온 땅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으리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대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 사이를 구별하여 애굽 바로 왕의 장자로부터 가장 미천한 자의 장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애굽의 모든 생축의 초태생에 장자 죽음의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 재앙으로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에게 있어 가계의 대들보이자 소망인 장자를 잃은 것은 무엇보다 큰 슬픔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통곡의 밤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개조차 그 입을 봉하고’ 고요히 잠든 평안의 밤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애굽 전역에 내려진 장자 죽음의 재앙에서 이스라엘 백성만은 그 재앙을 당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출11:7)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 

그리고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출애굽12:1-14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 가족 단위로 흠이 없고 1년 된 수컷으로 어린 양을 한 마리씩 잡아, 그 피는 그 양을 먹을 집의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고기는 불에 구워서 쓴 나물과 누룩을 넣지 않은 떡과 함께 먹으라. 그리고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띠를 두르고 신발을 신고 지팡이를 든 채 급히 먹어라. 이것은 나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그 날 밤에 내가 애굽 땅을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가리지 않고 애굽에서 처음 난 것을 모조리 죽이고 애굽의 모든 신들을 벌할 것이니라. 그 피는 너희가 살고 있는 집의 표시가 될 것이니라. 내가 피를 보면 너희를 넘어가겠노라. 내가 애굽을 벌할 때에 너희에게는 아무 해가 미치지 않을 것이니라. 너희는 이 날을 나 여호와가 행한 일을 기념하여 하나님의 절기로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여기 “하나님께서 행한 일을 기념하여 하나님의 절기로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켜야 할 규례가” 바로 “유월절”(Passover)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장자 재앙을 내리실 때,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 양의 피가 보이면 그 집을 ‘넘어가셨다.’는 뜻에서 붙여진 절기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 장자 죽음의 재앙을 내린 그 날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완전히 인도하여 내셨습니다.(출12:51) 


2. 장자 죽음의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첫 번째 말씀이 “(출13:2)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이 절기를 지키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13:11-13)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 

애굽의 초태생이 다 죽었던 유월절 밤에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초태생은 사람이나 짐승 할 것 없이 모두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그 초태생은 당연히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돌리라는 것입니다. 
(민3:13) 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태어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하게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하나님이니라 

(민8:17) 이스라엘 자손 중에 처음 태어난 것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내게 속하였음은 내가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태어난 자를 치던 날에 그들을 내게 구별하였음이라 

애굽 전역에 내린 장자 죽음의 재앙에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하시는 표시가 바로 어린 양의 피였습니다. 그 피를 보시고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여 애굽 사람 집에는 죽음의 재앙을 내리셨고, 이스라엘 사람의 집은 그 피를 보시고 넘어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 어린 양이 대신 피 흘려 희생당한 것입니다. 이른바 아무 죄도 없는 어린 양이 대속(代贖)의 피를 흘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어린 양이 흘린 대속의 피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를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드로전서1:18-19입니다.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어떠한 행위나 노력 등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대속의 피를 흘린 어린 양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소개할 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장차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는 말씀대로 순종한 사람들은 ‘유월절’의 은혜를 받아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희생하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구원받고 그렇지 아니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장차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기준은 어린 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있습니다. 요한계시록7:14입니다. 

(계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깨끗함을 입은 사람만이 ‘큰 환난에서 나와’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히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요일1: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을 세상 사람들과 구별하십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제 세상과 구별되게 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이십니다. 이 ‘유월절’에서 어린 양의 피의 대가로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초태생이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생명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 여러분은 여러분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고린도 전서3:23입니다. 

(고전 3: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이제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 거룩히 구별하여 바쳐야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유월절’ 어린양의 대속의 피로 구원받은 이스라엘 사람과 같습니다. 영적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영적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성도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처럼 누구를 막론하고 구별하여 거룩히 바쳐진 하나님의 것입니다. 다시 말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삶으로 살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과 애굽 사람 사이를 구별하셨듯이 애굽 사람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유월절 양을 먹되 애굽 사람들처럼 날 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불에 구워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유교병, 다시 말해 발효된 음식을 먹지 말고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유교병’은 부패한 옛 생활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옛 애굽의 음식을 상징하는 것이 유교병입니다. 그래서 무교병을 먹어 유월절을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무교병’은 효소의 역할을 하는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떡인데, 누룩은 죄와 옛 생활의 상징이기 때문에(고전 5:5-7), 무교병은 구속받은 거룩한 자가 먹을 신령한 음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쓴 나물’은 애굽의 쓰라린 종되었던 생활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것을 먹을 때마다 애굽의 쓰라린 옛 생활을 겸손히 돌아보고 그곳으로부터 피흘려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여 감사하는 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신 5:15, 신15:15) 

특히 유월절을 기념하라는 말씀을 “애굽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라고 하셨습니다. 이 표현의 사용 목적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과거 애굽에서의 비참한 신분 및 생활을 기억케 하여 크신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늘 감사케 하려는 데 있습니다. 한편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 역시 과거에는 사탄의 종된 신분이었습니다. 에베소서2:1-5을 보겠습니다. 

(엡2:1-5)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한 이 유월절을 영원히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념하라.” 는 것은 ‘기억하라, 암송하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역사를 배은망덕하게 잊거나 경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경건히 삼가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실로 올바른 신앙생활의 출발점은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나를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데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구원받은 성도 여러분은 이제 모든 생활에서 세상과는 구별되어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사람과 ‘구별하셨다’는 것은 ‘거룩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분리’, ‘구별’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별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분리하여 구별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하기 위해 모세를 바로 왕에게 보내 이렇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출9: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시려고 구별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레20:26)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하나님의 소유된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하게 살아야만 합니다. 거룩하게 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성민(聖民)’이라고 부르십니다.

(신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신26:19)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말씀하신 대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소유된 거룩한 백성”, “하나님의 성민”입니다. “하나님의 성민”은 모든 삶에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민은 언행심사(言行心事), 말과 행동과 마음 씀씀이가 거룩해야 합니다. 

모세가 바란 광야 가데스에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12명의 정탐군을 보냈습니다. 12명의 정탐군이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왔었는데 이중 10명이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은 기골이 장대하여 그에 비하면 자신들은 메뚜기에 지나지 않으며, 그 곳 성읍들은 철옹성같이 견고하여 도저히 점령이 불가하다.”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믿음 없는 부정적인 보고를 했고, 이에 동조한 백성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모세와 하나님께 원망 불평을 퍼부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탐지한 날 40일을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하여 40년간 광야 생활하도록 징계하셨고, 믿음 없는 보고를 했던 10명의 정탐군은 재앙으로 죽임당했고, 원망 불평을 퍼부은 무리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음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해서 광야 이곳 저곳을 돌고 돌아 38년만에 바란 광야 가데스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뼈아픈 교훈을 겪은 그곳,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바란 광야 가데스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38년간의 징계를 당하고 돌아왔지만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전히 불모의 땅, 물 한 방울 없는 삭막한 광야 그대로였습니다. 함께 출애굽했던 출애굽 세대들은 모두 죽고 시퍼렇게 젊은 광야 1세대들을 이끌고 백발이 성성한 120세가 되어 원점으로 돌아온 모세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이 광야 1세대 백성들은 부모들이 겪은 통한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38년 만에 돌아온 이 곳 바란 광야 가데스에 마실 물이 없자 그들 부모들과 다를 바 없이 원망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 부모들은 애굽 생활을 완전히 털어버리지 못해서 그렇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이들은 광야에서 태어나 날 때부터 광야 생활에 익숙한지라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역시 그 부모에 그 자식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부모들보다 더 한층 사나웠습니다. 

민수기20:2을 보면, “회중에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적의를 품고 반란을 일으킬 자세로 모세와 아론에게 대들면서 원망했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38년 전 사건을 분명히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원망 불평하는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차라리 그 때, 즉 40년 전 그 때 죽었더라면 좋을 뻔했는데 이렇게 뺑뺑이 돌다가 여기 이 악한 곳에서 죽게 만드느냐?”(민20:3-4) 

지난 40여년 동안 저들 부모들로부터 사사건건 원망 불평을 참아왔던 모세는 이번에도 성전에 나가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을 모아놓고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며 소리쳤습니다. 이는 분명 분기충천해서 내지른 소리였습니다. 모세의 혈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반석을 냅다 두 번 내리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세와 아론을 향해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충격적인 징계를 선고하셨습니다. 거룩함을 나타내라는 말씀은 어떠한 경우에도 깨끗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입술이 거룩해야 합니다. 마음과 생각이 거룩해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생활이 거룩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 한 순간의 교만과 혈기로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나안 땅의 축복을 누리도록 끝까지 거룩함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거룩함을 나타내기 위해 먼저 원망 불평하지 않아야 합니다. 원망이 어디에서 시작되겠습니까? 

민수기 11:1을 보겠습니다. “백성들이 고생스럽다고 원망 불평하자 여호와께서 그들이 원망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분노하셔서 그들에게 불을 내려 진영 한쪽 끝을 태우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영 끝에서부터 불을 내려 태우기 시작했다는 것은 원망 불평의 진원지부터 심판하셨다는 뜻입니다. 진영의 끝은 은혜와 신앙생활의 중심에서 뒤처진 무리들을 상징합니다. 교회를 어지럽게 만드는 원망 불평이 대부분 뒤처진 무리들에게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망 불평은 후미, 뒤처진 곳에서부터 전염병처럼 전체로 번져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 끝에서부터 불로 태우셨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앵무새 두 마리를 각각 다른 새장에 두고 길렀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는 노래를 배우고, 다른 한 마리는 욕을 배웠습니다. 주인은 두 마리 앵무새를 함께 넣어두면 노래를 배우리라 생각하고 한 새장에 넣어두었습니다. 얼마 후 주인이 문 열고 들어갔더니 두 마리 다 “주인 새끼 온다.” 그러더랍니다. 욕을 배우고 말았던 것입니다. 어느 누구 한 사람이 원망 불평하면 전염병처럼 번져 자신도 망하고 다른 사람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원망 불평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원망 불평은 내 생각이 옳고 네 생각이 틀렸다고 판단하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고생스럽다고, 힘들다고 해서,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원망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없이 원망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내 생각과 계획과 다르다고,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수고한 만큼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원망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55:8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의로우신 분임을 믿고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생활입니다.(살전 5:18) 


4. 마지막으로 거룩함을 나타내기 위해 철저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신 광야 가데스에 이르게 되었을 때, 마실 물이 없자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와 이렇게 원망불평하며 거세게 항의합니다.

(민20:3-5) 여호와께서 우리 형제들을 죽이실 때, 우리가 함께 죽지 못한 것이 한스럽소! 어째서 당신들이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와서 우리 짐승들과 함께 우리를 죽이려 하시오? 무엇 때문에 당신들은 우리를 애굽에서 끌어내어 아무것도 없는 이 황무지로 데려왔소. 이곳에는 곡식도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심지어 마실 물도 없지 않소!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해주셨습니다.

(민20:8) 너는 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백성을 모으고 그들 앞에서 바위를 향해 물을 내라고 말하라. 너는 그 바위에서 물을 나오게 하여 백성과 모든 짐승이 마시게 하라. 

하나님께서 분명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모세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지팡이를 들고 백성들에게 이렇게 소리칩니다. “이 반역자들이여, 우리가 당신들을 위해 이 바위에서 물을 내야 하겠소?” 그리고 지팡이를 들어 바위를 두 번 쳤습니다. 그러자 물이 분수처럼 솟구쳐 나와 백성과 그들의 짐승이 다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민20:12)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모세는 반석에게 물을 내라 명령한 것이 아니라 반석을 “두 번 치매”(11절) 그랬습니다. 모세가 반석에게 명령하라는 말과 치라는 말을 분간치 못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38년 전 이곳에서 물을 낼 때는 하나님께서 “반석을 치라.”(출17:6)고 말씀하셨고, 지금은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만과 감정 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놓친 것입니다. 혈기로 인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것입니다. 

모세는 홧김에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이 아무리 악다구니처럼 대들어도 끝까지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므로 과연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과연 하나님의 지도자는 다른 것을 나타내어 보여 주었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같은 모세의 행위를 믿음이 없는 행위,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행위로 지적하시고 이로 인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엄중한 벌을 내리셨습니다. 

지나온 40년 동안 온갖 원망 불평을 참아가며 극심한 마음고생을 겪으며 온유와 겸손으로 백성을 섬기며 이끌어온 모세와 아론에게 너무 중한 벌을 내리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모세 자신도 너무나 억울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에 보면 모세가 백성들에게 반복하여 “너희 때문에 내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고 있습니다.

(신 1:37; 4:21; 32:49-51). 얼마나 아쉽고 원통하고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여러 번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려 했지만 주어진 말씀은 “그만해도 족하니 이 문제로 다시는 말하지 말라”는 엄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신3:26) 너희들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나에게 노하셔서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다시는 말하지 말라. 

모세는 한 순간의 교만과 혈기로 반석을 내리쳐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반석에서 물을 내어 그 백성에게 마시게 하시고 모세와 아론을 징계하심으로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셨습니다. 인간의 허물과 실수가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거룩하게,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말과 행동이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벧전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정결법이 담긴 레위기를 보면, “밭에다 종자(씨앗)를 뿌릴지라도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고 옷을 입어도 두 재료로 직조한 혼방의 옷을 입지 말라”(레19:19)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께서 그만큼 혼합된 것을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없이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몸에 무늬를(문신, tattoo) 새기거나 그려 넣을지라도(레19:28) 너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너희 몸을 깨끗하게 구별하여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몸에 여기 저기 구멍을 뚫어 고리를 달고 다닐지라도 그같은 행위는 역사적으로 볼 때 노예들이 행했던 것을 깨달아(신15:12-17) 예수 믿는 너희들은 너희 몸을 거룩하게 보존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마시든지 자기 몸을 위하여 먹고 마실지라도 예수 믿는 너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먹고 마시라는 것입니다.(고전10:31) 

구약성경 레위기 1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수 있는 정한 것과 먹어서는 안되는 부정한 생물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짐승 중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만 합니다. 즉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레11:3)이어야만 합니다. 

굽이 갈라져야 한다는 것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고, 새김질해야 한다는 것은 새김질하는 동물들이 대부분 초식동물들로 다른 짐승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평화스러운 동물인 것처럼 사람들과 화평케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초식동물들이 새김질 하여 소화시키듯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온전히 신앙생활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레위기 정결법에 따르면, 생선 종류로서는 지느러미와 비늘, 이 두 가지가 반드시 있어야만 정한 것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물은 세상을 뜻하는데 예수 믿는 성도는 세상 물 흐르는대로 살지 말고 지느러미를 가지고 물을 거슬러 더욱 깨끗한 상류로 올라가는 삶을 살라, 불의하고 부정한 세상을 거슬러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라는 것이고, 비늘이 없는 물고기는 대부분 물 밑으로 기어 다니며 그 모습이 험상스러울 뿐만 아니라 공격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부정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먹는 음식까지도 정결한 것 부정한 것으로 구별하시는 이유는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면에서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구별되어 깨끗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5. 하나님께서 이렇게 모든 생활영역에서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되게 살라고 말씀하시는 목적은 그러한 거룩함을 나타내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믿어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에스겔38:16,23을 보겠습니다.

(겔38:16,23) 이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로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니라..이와 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존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바로 거룩함을 나타내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시므로”(고후 7:1) 

약속된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와 불법에서 나를 깨끗하게 하사 구원하신 것을 항상 기억하여 선한 일에 열심하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딛 2: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떠한 경우에도 철저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 하나님 앞에 거룩함을 나타내는 생활로 세상 사람들에게 상천하지에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심을 알고 믿게 하며(신4:39), 약속의 가나안 땅,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