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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긍휼을 베푸신 은혜에 감사합시다 (느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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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을 베푸신 은혜에 감사합시다 (느 9:31)

(느 9:31)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한 아이가 학교에서 신발을 도둑맞았다합니다. 신발을 훔쳐 간 도둑 때문에 그 학급에서 소동이 일어났다합니다. 그러나 신발 도둑을 잡는 일은 아주 쉽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순진해서 훔친 신발을 그냥 신고 다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발 검사 결과 신발을 훔친 아이는 금방 드러났다 합니다. 신발을 훔치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그리고 훔친 신발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은 신발을 잃어버린 아이를 불렀다합니다. 아마도 이 아이는 집안 살림이 넉넉한 아이였던 모양입니다.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말했다합니다. “신발을 그 아이에게 주면 안 되겠니? 너는 부자라서 신발이 여러 켤레 있잖아?” 

선생님은 신발을 훔친 아이가 너무 가난해서 학교에 신고 올 신발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신발을 훔친 것은 나쁜 일이요 돌려주는 것은 정당한 일이요 그것이 ‘정의’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정의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의보다 더 큰 개념은 긍휼과 자비를 베풀고 품어 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히틀러가 특별히 신뢰하던 신복 중 하나인 알베르트 슈페르라는 사람은 당시 제2차 대전을 치를 때, 독일 군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독일의 모든 공장을 100% 가동시키는데 천재적인 지혜를 발휘했던 공학자였다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전범 24명이 재판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 슈페르도 있었다합니다. 다른 전범들은 모두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죄를 부인했는데 유일하게 슈페르만이 자신의 죄를 법정에서 인정하여 20년 형을 언도 받았다합니다. 그리고는 감옥에서 형을 살고 나오자마자 여러 권을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유명 인사가 되었다합니다. 

그런데 또 한 권의 책을 쓴 직후, 미국 ABC 방송 기자가 그와 함께 인터뷰를 한 일이 있었다합니다. 기자가 질문했다 합니다. 슈페르 씨, 당신이 초창기에 쓴 책을 보면, 나의 죄는 절대로 용서 받을 수도 없고, 용서 받아서도 안 된다는 말이 있던데요.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까? 슈페르가 아주 슬픈 기색을 띠며 대답했다 합니다. 나는 내 죄 값을 치르느라고 20년 형무소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죄 값을 다 치르고 석방이 되었습니다. 사실 나는 자유인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범한 죄는 절대 용서 받을 수가 없다고, 그리고 용서 받아서도 안 되는 죄라고 생각합니다. 2차 대전 때, 희생당한 수백만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 죄는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합니다. 그가 형무소에서 나오고 나서, 수십 년 동안 자신의 범죄를 철저하게 책임지려고 노력했고 처절하게 참회의 길을 찾고 있었지만, 죄책감에서 자유 할 수는 없었다합니다. 자신 힘으로는 죄책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고 결국 무섭고 잔인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인터뷰를 끝내고 몇 일 지나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합니다. 
  
사람이 스스로 자기 죄에서 빠져 나올 수 있습니까? 죄를 범한 후 양심에 남아 있는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유 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아무리 죄 문제를 내 스스로 처리하고 그것이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해도 자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나에게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이웃에게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께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죄 문제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으로 인하여  열방 사람을 통하여 심판을  내리시면서도 긍휼을 베푸시어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시며 광대하시고 능하심을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중에도 완전히 멸하지 아니하시는 은혜를 베푸신 것은  그들과 맺으신 언약과 인자를 지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 삼으시고 그들에게 복 주시어 구원과 복을 베푸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취소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감사를 고백하는데 많은 사실들을 순서대로 하나님께 아뢰며
  
부르시고 더 나은 나라에 대한 모형으로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긍휼을 말합니다.(느 9:7-8)
  
하이든의 96번 교향곡은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집니다. 그의 연주회의 청중들은 하이든이 연주를 끝냈을 때 홀린 듯 그의 주위에 몰려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천정의 거대한 샹들리에가 떨어져 박살이 났으나 객석은 비어 있어 다친 자가 없었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기적이다"라고 외쳤다는 것입니다. 

하이든의 피아노소리보다 아름다우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는 자들에게는 오늘도 구원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인생은 저마다 부르심에 응답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순종과 불순종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부르심의 은총을 거역하고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인간을 유혹하여 멸망에 떨어뜨리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또한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한 하나님의 선하신 복을 잃지 않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삶을 돌이켜 보아도 그때 그 당장에는 견디기 힘들어 불평도 하고, 너무 억울하여 좌절하고 낙심도 했었지만, 지금에 이르러 생각해보면 과거에 있었던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게 되고, 감사할 일로 바뀌어진 것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의 생활은 언제나 만사형통의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임을 이 시간 확신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며 언약의 성취를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조지의 할머니는 조지에게 우표 책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주시지 않았다합니다. 그런데 친구가 와서 조지의 물건을 볼 때마다 조지는 "할머니는 나에게 우표 책을 주셨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합니다. 어머니는 이상해서 그에게 물었다합니다. "조지야, 넌 할머니에게 우표 책을 받지도 않았는데 왜 친구한테 그렇게 말하니?" 그는 대답했다합니다. "엄마, 할머니가 이미 약속하셨는걸요. 그건 제가 이미 받은 거나 같다고요."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 우표 책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합니다. 하루는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말했다 합니다. "조지야, 할머니가 이미 그 약속을 잊어버리신 것 같구나." 조지는 즉시 대답했다합니다. "아니에요 엄마. 잊어버리실 리 없어요. 그리고 엄마, 나 지금 할머니께 감사의 편지를 쓰면 어떨까요?" 오래지 않아 답장이 왔다합니다. "사랑하는 조지야, 나는 네게 주기로 약속했던 우표 책을 잊지 않았단다. 네가 원하는 모양의 우표 책을 이곳에서는 살 수가 없어서 뉴욕에 우편 주문을 했단다. 그러나 보내온 것이 너무 오래돼서 다시 시카고에 우편 주문을 했다. 너를 사랑하는 할머니." 

조지는 편지를 다 읽고 승리에 찬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했다합니다. "엄마, 제가 말했죠? 할머니가 약속한 것은 제가 이미 받은 것과 같다고요." 그의 마음속에는 전혀 의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우표 책을 받으리라고 깊이 믿은 것은 할머니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었고 오래지 않아 믿음은 사실이 된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더욱 신실하게 약속을 이루시는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광야에서 보호하시고  구원하시고 인도하신 긍휼을 말합니다.
1788년 메사추세스에서 출생한 아도니람 저드슨은 목사님의 아들로서 어려서부터 명석하였습니다. 미국의 명문 브라운 대학에 다닐 때 회의론자 친구 제이콥 에임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이 훨씬 이성적이고 지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졸업한 후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버지의 교회에서 예배도 드리고 봉사도 하였지만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아도니람은 자유롭게 살기 위하여 집을 떠나 뉴욕으로 갑니다. 뉴욕에 가서 연극 각본을 쓰면 명예와 돈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고 자신하였습니다. 그러나 뉴욕에서 행운은 따라 주지 않았습니다. 실패한 후 집만 빼고 어디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무작정 서쪽으로 가다가 날이 저물자 한 모텔에 들게 되었습니다. 방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모텔 주인이 대답합니다.  “방이 하나 있지만 옆방 손님이 너무 아파서 죽을지 모릅니다. 시끄러울 수도 있는데 그래도 괜찮다면 그 방을 쓰세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 방에서 잠을 청하였는데 옆방의 신음 소리가 무척 처절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카운터에 갔을 때 그 옆방 사람이 밤새 고통하다가 운명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은 사람이 자기와 가장 가까이 지냈던 제이콥 에임스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엄청난 충격으로 말을 잃었습니다. 아도니람은 인생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던 제이콥의 영혼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아무도 돌보는 사람 없이 쓸쓸히 죽어 떠난 친구의 영혼은 과연 없어지고 마는 것인가? 집으로 돌아온 아도니람은 깊은 묵상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연구할수록 하나님의 존재를 도무지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안에 큰 평안을 느끼면서 그의 남은 생애를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하였습니다. 큰 교회의 초청을 마다하고 결혼한 지 12일 만에 신부와 함께 지금의 미얀마인 버마로 떠났습니다. 찬란한 불교문화의 꽃을 피우던 버마에서 그는 열심히 사역하였습니다. 1년, 2년이 지나 5년이 지나도록 열심히 전도하였지만 한 사람의 결신자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6년 만에 첫 결신자를 얻게 되었습니다. 영국과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스파이로 오인되어 21개월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가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도니람은 끝까지 미얀마를 사랑하며 헌신했습니다. 그의 사역은 점점 커져 갔고, 62세의 나이로 죽던 해 아도니람은 미얀마어로 된 성경과 미야마-영어 사전을 남겼습니다. 아도니람 저드슨 사망 100주년 기념일에 미얀마에서 선교대회가 열렸을 때 그 불교의 땅에 그리스도인이 21만 명이 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미얀마 전인구의 2%에 가까운 엄청난 숫자였습니다. 하나님의 건지시고 구원하시어 인도하심이 함께하신 줄믿습니다.
  
연단을 통한 긍휼을 허락하십니다.

영국의 조지 왕은 형인 앨버트 빅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급히 왕위를 이어받은 뒤,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는 막중한 책임감과 살얼음을 딛는 것 같은 긴장된 생활에서 오는 불안으로 몹시 힘들어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작은 소도시의 한 도자기 공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도자기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그는 모든 일정을 마친 뒤,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도자기 공장을 둘러보았습니다. 도자기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방으로 안내된 그는 잘 만들어진 도자기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천천히 방안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두 개의 꽃병이 특별히 전시되어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유심히 살펴보니 두 개의 꽃병은 같은 원료와 같은 타일을 사용하였고, 무늬까지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윤기가 흐르고 생동감이 있는 예술품 모양을 하고 있는데 비해, 다른 하나는 투박하고 볼품없는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왕이 공장장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여기에 저렇듯 서로 다른 두 개의 꽃병을 나란히 두는 것이오?” 왕의 물음에 공장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는 불에 구워졌고, 하나는 구워지지 않았습니다. 시련은 인생을 윤기 있게 하고, 생동감 있게 하며, 무엇보다 아름답게 합니다. 저 두 개의 꽃병을 나란히 이곳에 전시해 둔 것은 그런 뜻을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와 같은 연단을 통해서도 역사하시는줄 믿습니다.

시내 산에서 율법을 주시고 가르치시고 구원하신 긍휼을 말합니다.(느 9:13 느 9:20 느 9:27-29)
탈무드 이야기입니다. 살란터 랍비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유월절이 다가오면 유월절 무교병을 굽는 법칙에 따라 무교병을 구워야 합니다. 생수로 반죽해야 하고 이방인들이 보면 부정 타기 때문에 몰래 구워야 합니다. 또 다른 것이 섞이면 안됩니다. 불은 반드시 나무로 피워야 합니다. 살란터 랍비의 임무는 제대로 무교병을 굽는지 감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을 며칠 앞두고 그는 병들어 눕게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감독관을 세워야 했습니다. 감독으로 선정된 제자들이 랍비에게 물었습니다. “랍비님, 감독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살란터 랍비가 병석에서 말했습니다. “제자들아, 무교병을 굽는 여인들에게 보수가 제대로 지급되는지 감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물질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가난한 여인들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감독이었습니다. 사랑이 율법입니다. 십계명도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에 대하여 말슴 합니다. /강문호 목사(갈보리선교교회)
  
친히 내려오셔서 저희와 더불어 말씀하셨습니다.

(신 4:33)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느냐
(신 4: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이스라엘이 반역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자신들 위에 쌓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이해 구속 역사를 하실 준비를 하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오래 전 선교사 한분이 중국에 가서 선교를 하다 어느 곳에 가보니 어떤 부인이 맨 손으로 10년 동안 우물을 파서 깊이 25자 넓이 10자의 큰 우물을 만들고 있었다합니다. 선교사 "왜 맨손으로 우물을 파느냐?" 고 묻자 부인은 "저는 명예도 돈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맨손으로 우물이라도 파야 어떤 덕을 쌓고, 자손들에게도 이 공적을 통해서 축복의 유산을 넘겨주려고 우물을 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합니다. 

선교사는 "맨손으로 아무리 수백자 우물을 파도 그것으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고 말씀에 뿌리 내리는 삶이 복 받고 구원받는 길이요 자손들에게 축복을 계승하는 길입니다."라고 가르쳐 주어 그 부인을 구원으로 인도했다합니다. 이 부인이 가장 잘 부르는 찬송이 [빈손 들고 앞에 나가 십자가를 지고]라는 찬송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훈계와, 때에 따른 경고를 주시고 그들을 고통으로부터 건져내실 때, 구원을 은혜로 이루셨습니다.

복음 전도자 무디 선생이 한 번은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공동묘지”라는 별명을 가진 교도소를 방문하였습니다. 설교를 끝낸 후 무디는 여러 죄수들과 함께 그들의 감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형을 살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여기에 들어왔습니까?” 그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은 똑같은 대답을 들었습니다. “나는 여기에 있을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음모에 말려 들었습니다.” “부당하게 기소당했습니다.” “불공정한 재판을 받았습니다.” 

어느 한 사람도 자기의 죄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무디 선생은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는 한 남자를 보고서 “왜 그러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복역수는 대답했습니다. “내 죄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받기를 원하는 한 사람을 만난 것에 위안을 느낀 무디 선생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무디선생은 곧 즐거운 마음으로 그 사람을 그리스도의 구원에 이르는 지식, 즉 죄의 사슬로부터 해방시키는 구원으로 인도했다합니다.  우리도 말씀을 통해 은혜로 구원 받은 줄 믿습니다.

크신 긍휼로 함께 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합시다

선지자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는 사람들'의 자격으로 말하는 것입니다.(느 9:30-31)

차머즈는 그의 책 " 정오의 강풍 "에서 유명한 건축 기사 피어흠의 긍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합니다. 기사 피어흠은 세계 도처에 많은 다리와 터널들을 건설하여 큰 명성을 얻었으나, 뒤에 질병과 실패로 인해 부인과 어린 딸을 데리고 낙향하였다합니다 . 그 이웃에 한 몰인정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너무 사나운 개를 길러 위험하므로 피어흠은 자꾸 경고를 했지만 오히려 번번히 모욕만 당하고 말았다합니다. 

그러던 중 불행은 갑자기 닥쳐왔는데 그 개가 하필이면 피어흠의 어린 딸을 물어 죽이고 말았다 합니다. 사람들은 일제히 개의 주인을 비난하고 파종기가 되어도 그 노인에게 한 톨의 곡식 종자도 나누어 주거나 팔지 않았다합니다. 노인이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은 그를 냉소했다합니다. 밭을 간 후에 씨를 달라고 애걸하는 노인의 모습을 피어흠은 보았다합니다. 그는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 광에 가서 자신이 쓸 씨앗 반 되를 꺼냈다합니다. 피어흠은 열심히 노인의 밭에 씨를 뿌려 주었다합니다. 며칠이 지난 후 이웃 노인의 밭은 파릇파릇해진 반면, 피어흠의 밭은 그 일부가 아직도 빈 땅으로 남아 있었다합니다.
  
성령은 비록 우리 자신의 밭 일부가 맨 땅으로 남겨진다 하더라도 .... 우리들이 원수의 밭에 좋은 씨를 뿌리도록 역사하시는 줄 믿습니다.
  
한 장로님이 평소에 자신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성도와 함께 이웃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예배시간에 성만찬의 순서가 있었습니다. 장로님과 그 성도는 주님의 몸과 피를 서로 나누면서 각각 떨어져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그 교회의 목사님이 이런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예배가 끝난 후에 장로님에게 물었습니다. “장로님께서는 왜 같이 오신 성도님과 함께 성만찬을 나누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와 돈 거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정직하지 않았고 약속도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상대하기도 싫기 때문에 떨어져 앉았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장로님은 자신이 우리 주님보다 더 위대하다고 생각합니까? 주님께서는 유다가 자신을 팔아넘길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와 함께 앉아서 만찬을 나누시지 않았습니까?” 이 말을 들은 장로님은 다시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실 돈 거래에서 그가 딱 한 번 실수를 했던 것 뿐인데 그것을 가지고 자신과 차별을 두는 것은 자신이 비난받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장로님은 그 성도와 좋은 관계를 회복하여 가까이 앉아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용서받은 심령은 용서하며 함께해야 할 줄 믿습니다.

「롱펠의 꿈」이란 이야기라 합니다.  그는 중세시대에 어느 성의 군주이며 말 타기와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고 예수님을 위해서 뜻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작별의 저녁 식사를 하실 때에 포도주를 부어 마시게 한 은잔이 세상 어디인가에 있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듣건데 그 은잔은 후에 미술가의 손에 넘어가 예수님과 열두 제자들의 얼굴이 밑바닥에 그려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유명한 은잔을 찾아 후대 사람들에게 기념으로 보여 준다는 것은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긴 여행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물통에는 물이 가득하고 자루에는 빵이 가득했습니다. 모든 짐을 말 잔등에 싣고 돈도 넉넉히 가지고 말을 탔습니다. 성문을 지나 먼 여행길을 달려 어느 벌판을 지나가다가 나병 환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지치고 배가 고파 보였습니다. 떨어진 옷을 걸치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구걸을 했습니다. 

"형제여!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나를 도와 주세요.먹을 것을 좀 주십시오. 물을 좀 주세요." 
"나의 가는 길을 방해 하지 말라. 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구주 예수님의 은잔을 찾기 위해 떠나가는 몸이다. 더러운 나환자가 어찌 나의 가는 길을 막는가?" 
"나를 살려 주세요. 이대로 두면 굶어 죽습니다." 

나병자는 더욱 애걸을 하면서 말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금돈 한 개를 던져 주고 말을 달렸습니다. 이곳저곳 다니며 은잔을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10년 가까운 세월로 구라파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였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이제 힘없이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모든 꿈은 사라지고 떨어진 옷을 입은 그는 힘없이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추운 겨울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벌판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때 기진하여 간신히 몸을 가누며 걸어 가다가 쓰러져 죽을 것만 같은 한 걸인을 만났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으로는 이 빵이 있을 뿐입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이것을 받으세요." 

롱펠은 걸인을 일으켜서 차고 있던 표주박으로 물을 따라 걸인에게 먹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걸인은 홀연히 빛이 나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보라! 나로다 두려워 말라. 너는 은잔을 얻으려 이 나라 저 나라로 여행하였으나 너 얻은 것이 무엇이냐? 보라! 너의 손에 들려있는 쪽박을... 나에게 물을 떠준 그 쪽박이 네가 찾아 헤매던 은잔이니라. 네가 준 그 빵이 찢기운 나의 몸이요, 나에게 마시운 그 물이 십자가의 피로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음식이 성찬이로다." 롱펠이 정신을 차려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그 후 그는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재물을 나누어 주었다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되 3월은 긍휼을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달입니다. 긍휼을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강성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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