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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 (사 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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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 (사 53:5,6)

다음 주일은 부활주일이다. 이번 주간은 고난주간으로 지낸다. 고난 주간을 맞이하면 우리는 마음이 숙연해진다. 예수님이 나 때문에 고난을 당하신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고난 주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세 가지 마음이 필요하다. 

첫째는 근신하는 마음이다. 예수님이 나 때문에 고난 받으셨던 기간인데 희희낙락 하면서 지낼 수는 없다. 평소보다 오락을 삼가고 근신하면서 지내야 한다. 할 수 있다면 금식도 병행하면서 평소보다 말씀과 기도에 더 힘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는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서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더 많이 감사의 찬송을 드리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는 누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이 나 때문에 고난 받으셨기 때문에 단지 엄숙하고 무거운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주님의 고난은 이미 끝났고 주님은 이미 부활하셨고 승리하셨기 때문에 슬퍼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주님의 고난 때문에 받은 은혜를 누리는 것이 필요하다. 

1.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묵상하자.

먼저 고난 주간을 맞이하면서 근신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면 주님이 어떤 고난을 당하셨는지 다시 한 번 묵상할 필요가 있다.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시어 멸시와 천대와 핍박과 온갖 고난을 당하셨는가? 그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이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1) 육신의 고난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목요일 저녁에 대제사장이 보낸 군병들에게 붙잡히시어 빌라도 총독에게 넘겨졌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특별한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대인들의 압력에 못 이겨서 예수님에게 십자가 형을 선고했다. 

로마 군병들은 십자가 형을 앞두고 예수님에게 채찍형을 가했다.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은 온 몸에 상처가 났다. 살갗이 찢어지면서 피가 튀었다. 지쳐 쓰러진 예수님의 머리에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만들어서 예수님의 머리에 씌웠다. 가시가 예수님의 머리를 찔렀다. 얼굴로 피가 흘러내렸다. 군병들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면서 뺨을 때리고 갈대를 꺾어서 예수님의 얼굴을 때렸다. 

예수님은 지친 몸을 이끌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셨다. 도중에 자꾸 쓰러지니까 로마 군병이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였다.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두 손과 두 발에 대못이 박혔다. 굵은 못이 예수님의 살을 뚫고 들어갔다. 살이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갈라졌다. 비명이 흘러나왔다. 피가 흘러내렸다. 

십자가가 높이 세워졌다. 예수님의 몸은 십자가에 매달려졌다. 십자가형은 두 손과 두 발로 체중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뼈마디와 관절이 늘어나는 고통을 받기 때문에 끔찍한 형벌이라고 한다. 게다가 예수님은 두 손과 두 발에 못이 박혀서 피까지 흘러내렸다. 최악의 형벌이었다. 저절로 비명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스라엘 땅의 기후는 낮에는 매우 건조하고 뜨겁다. 그냥 서 있어도 목이 마른데 예수님은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갈증이 있었다. 죽음을 부르는 갈증이다. 예수님은 자신도 모르게 목마르다고 외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이 왜 이런 육체의 고난을 당하셔야 했는가? 우리의 죄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 주간에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근신하면서 나를 대신하여 이런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2) 정신적인 고난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배신을 당하셨다. 
제자들이 모두 도망을 쳤다. 
베드로가 배신을 했다. 
자기를 환영하던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팻말을 붙이고 조롱하였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향해서 어서 빨리 내려와 보라고 조롱했다.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제비를 뽑아서 나눠가졌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가장 비천한 인간이 받는 멸시와 천대와 모욕과 수치를 당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이 왜 이런 고난을 당하셔야 했는가? 우리의 죄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 주간에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근신하면서 나를 대신하여 이런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3) 영적인 고난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마귀가 한시도 떠나지 않고 줄곧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을 시험하였다. 
광야에서 40일 금식하고 난 후에 나타나서 시험하였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앞에 두고 갈등하면서 고난 당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 직전까지 영적으로 고난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로워서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마27:46)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할 수 없었다. 도울 수가 없었다. 
예수님이 끝까지 인류의 죄악을 온전히 담당하셔야 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하나님이 도우신다면 우리의 죄 값을 다 갚을 수가 없게 된다. 물거품이 된다. 

그래서 하나님도 예수님의 울부짖는 기도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나님은 그 괴로움을 표현하시려고 하늘의 해를 가리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3시간 동안 온 세상은 어둠이 드리워졌다. 
그것은 예수님의 영적인 고난을 의미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이렇게 고난을 받으신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이다. 내가 눈으로 보면서 지은 죄, 머리로 생각하면서 지은 죄, 말로 지은 죄, 손과 발로 행하며 지은 죄 때문이다. 우리가 갚을 수 없는 죄 값을 예수님이 갚으셨다. 아무 죄 없는 거룩한 피로써 갚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근신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또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예수님의 고난이 우리를 숙연하게 만들고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예수님의 고난이 우리에게 주신 유익을 깨닫고 그 유익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2. 예수님의 고난의 유익을 누리자.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고난당하심으로 우리가 받은 유익은 무엇인가?  

(사53:5)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게 되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고난 덕분에 우리가 나음을 받았다. 치료를 받았다. 어떤 치료를 받았는가? 어떤 나음을 받았는가?

1) 영적으로 나음을 입었다. 

예수님이 우리를 영적으로 낫게 하시려고 얼마나 영적인 고난을 당하셨는가?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영적으로 고난을 받을 필요가 없다. 예수님이 주신 영적인 나음을 마음껏 누리면 된다.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를 영적으로 나음을 입게 하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나음을 입었을까?

(행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믿음의 눈을 뜨게 하셨다. 
어둠에서 빛으로 옮기셨다.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셨다. 
마귀의 종의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죄 사함을 받게 하셨다. 
천국을 기업으로 받게 하셨다.  

함께 고백하자.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었습니다.” 
이 은혜를 확실히 기억하고 누리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고난은 단지 우리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평화를 누리게 하고 나음을 입게 하였다. 이 나음을 마음껏 누리기를 바란다. 

2) 정신적으로 나음을 입었다.

예수님이 우리를 정신적으로 낫게 하시려고 얼마나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셨는가?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의 마음에 나쁜 씨앗을 뿌리고 간다. 초조, 불안, 염려, 걱정, 근심, 미움, 욕심, 분노 등등이다. 우리는 때때로 마귀에게 속아서 이런 것들이 내 마음에 자라도록 허용할 때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모든 고난을 이미 다 받으셨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 마음 속에 잡초를 뽑아버리고 예수님이 주신 평안으로 다시 채우게 된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평안을 누리기를 바란다. 더욱 더 담대하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얼마나 마음이 무거우셨는지 모른다. 예수님도 두려우셨다. 망설이셨다. 그러나 기도하심으로 이겨내셨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우리 마음을 잘 아신다. 내가 갈등하고 고민할 때 예수님도 다 경험해보셨기 때문에 잘 아신다. 그래서 우리를 위래서 기도해주신다. 우리에게 찾아와서 위로해주신다. 

함께 고백하자.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었습니다.” 
이 은혜를 확실히 기억하고 누리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고난은 단지 우리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평화를 누리게 하고 나음을 입게 하였다. 이 나음을 마음껏 누리기를 바란다. 


3) 육신적으로 나음을 입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육신적으로 낫게 하시려고 얼마나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셨는가?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육신적인 고통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인간의 타락이후에 인간을 가장 괴롭혔던 것이 질병이다. 온갖 질병, 예수님은 모든 질병을 고치셨다. 예수님 앞에서 불치병이란 없다. 

예수님은 지금도 모든 질병을 고치신다. 지금도 기적은 계속 일어난다. 오늘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질병이 고침 받게 하신다. 오늘 주보에 채시라씨 부부의 예를 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예수님 때문에 육신의 나음을 입었다는 의미는 이 땅에서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다는 의미를 뛰어넘는 것이다. 병에 걸렸다가 기도해서 고침을 받아도 언젠가는 죽게 된다. 또 어떤 사람은 기도해도 병이 낫지 않고 그대로 죽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진정한 의미의 육신의 나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이뤄진다. 그 때가 되면 살아 있는 사람의 육체는 산 채로 변화되어 질병도 연약함도 죽음도 없는 완전한 육체가 된다. 죽었던 사람은 부활함으로 완전한 육체를 입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질병 때문에 두려워하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질병에 결렸을 때 일단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만약에 병이 낫지 않았다 할지라도 실망하거나 낙심하면 안 된다. 완전한 육신의 치유는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 입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감사와 찬송으로 살다가 주님 품에 안기면 되는 것이다. 

진정한 육체의 나음은 지금 당장 내 몸이 편해졌다 증세가 사라졌다는데 있지 않다. 말씀 그대로 내가 이미 나았음을 선포하는 데 있다. 그러면 지금 당장 나을 수도 있고, 예수님이 오실 때 근원적으로 완전하게 고침 받을 날이 있는 것이다. 그런 승리가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바란다. 

함께 고백하자.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었습니다.” 
이 은혜를 확실히 기억하고 누리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고난은 단지 우리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나음을 주셨다. 영적인 나음을 주셨다. 정신적인 나음을 주셨다. 육신의 나음을 주셨다. 이 나음을 누리면서 은혜가 넘치는 고난 주간을 보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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