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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대한 기도(8) : 주님의 기도 (눅 22: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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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기도(8) : 주님의 기도 (눅 22:39-46) 
 
 
❚기도의 사람

우리 크리스천들은 누구나 기도하면서 응답 받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만 역사 상 가장 기도 응답을 많이 받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영국의 죠지 뮬러 목사님(1805~1898년)입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이 세상을 떠난 후 일기가 발견되어서 기도 응답된 숫자를 세어보니까 무려 5만 번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죠지 뮬러 목사님은 아버지의 주머니를 상습적으로 뒤져 돈을 훔칠 정도로 문제아였는데 1825년 어느 토요일 친구를 따라 우연히 저녁 기도모임에 갔다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회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단 교회 나오게 하는 게 이렇게 중요한 겁니다. 억지로 나왔든, 밥 사준다고 꼬였든 간에 친구 따라 나왔던 한 문제아가 예수님을 만나니까 운명이 바뀌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어떻게든 사람들을 교회 데리고 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이 만나주시고 하나님이 뒤집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회심한 후 죠지 뮬러 목사님은 일생을 주님께 바쳐서 죽을 때 까지 동시에 2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아원 다섯 개를 지어서 1만 명의 고아들을 하루세끼 다 먹이고 입히고 돌봐줘서 “고아들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이 엄청난 고아를 돌보면서 누구에게도 구걸하거나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기도해서 응답 받아 고아들을 먹여 살리고 대학까지 보낸 것이지요. 기도만 하면 여기저기서 구호물자를 보내고, 도움의 손길이 왔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저녁식사 전인데 고아원 총무가 와서 “원장님, 먹을 것이 바닥나서 오늘 저녁에 애들에게 줄 것이 없습니다.” 하는데 뮬러 목사님은 “아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아버지시고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예비하시는 하나님이니 걱정하지 마라.” 그러더니 고아들을 전부 식당에 모으고 접시를 앞에 놓고 숟가락을 준비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뮬러 목사님이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이 좋은 만찬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기도하자 문이 열리더니 트럭이 여러 대 와서 아주 좋은 음식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그날 부자들이 모여 파티를 했는데 음식을 너무 많이 준비해서 남는 바람에 이 음식을 어떻게 처치하나, 버릴까 하다가 뮬러 목사님의 고아원에 갖다 주자고 해서 온 것입니다. 이런 기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5만 번 이상 응답 받았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구약의 위대한 기도>라는 주제로 6명의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기도의 사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브라함, 한나, 다윗, 솔로몬, 히스기야, 다니엘이 바로 그 위대한 기도의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고난주간을 앞둔 종려주일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위대한 기도> 시리즈는 다 끝났지만 마지막으로 <신약의 위대한 기도>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고 하는데 신약의 가장 위대한 기도의 사람, 아니 신구약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기도의 사람인 예수님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우리 주님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우리 주님이 가장 위대한 기도의 사람인지 세 가지 이유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 가지 이유

첫째, 주님은 항상 기도를 통해 힘과 능력을 얻은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은 엄청난 권능을 행하신 분입니다.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고, 풍랑을 잠잠케 하시며 그가 전하는 말씀마다 사람들은 “권위 있는 새 교훈”(막 1:27)이라며 감탄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 권능과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기적을 행하고 권세 있는 말씀을 선포하신 것 아니냐? 하나님의 아들이라서 당연히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풍랑도 잠잠케 하시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신 것 아니냐?” 아닙니다. 주님의 그 놀라운 능력과 말씀의 권세는 주님의 기도생활에서 나온 것입니다. 마가복음 1:35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이 말씀처럼 주님은 늘 새벽 동트기 전 한적한 곳에 나가 기도하는 분이었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이 기도시간은 빼먹지 않고 늘 하나님과 만났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날 새벽기도의 시초가 되셨고 이 새벽기도를 통해 아무리 일을 많이 해서 지치고 힘들어도 새 힘을 얻고 그 놀라운 권세와 늘 새로운 힘을 얻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기도는 우리의 능력입니다. 기도는 하늘의 능력의 원천입니다. 우리도 아무리 많은 하나님의 일과 세상의 일을 해도, 그래서 아무리 에너지를 많이 써서 힘들고 지쳐도, 아무리 환난과 시험이 닥쳐와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이 바로 이 기도에 있음을 기억하고 오늘도 기도에 매달려 응답 받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둘째, 주님은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기도의 가장 대표적인 모범, 모델이 우리가 늘 암송하는 ‘주기도문’입니다. 누가복음 11:1에 보면 주님의 제자들이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하고 요청하자 가르쳐주신 기도가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본디 이름은 ‘주의 기도’ 바로 주님이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의 모범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주님이 친히 가르쳐주신 가장 완벽한 기도이기 때문에 우리가 열심히 암송하고 기도의 모범으로 사용하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주님은 수많은 기적을 행하실 때도 기도를 통해 일으키셨습니다. 그 유명한 오병이어 기적도 바로 주님이 한 아이가 가져온 다섯 개의 보리떡과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사’ 즉 축복기도를 한 후에 일어난 것입니다(요 6:11). 그러니 주님의 기도는 오늘 우리에게 가장 귀하고 완벽한 모범을 보여주시고, 또 이럴 때 어떤 기도를 해야 응답 받을 수 있는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지 똑똑히 보여준 기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주님은 마지막까지 기도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하루는 한 마디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른 새벽에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친 하루였습니다. 또한 주님의 생애 전체가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친 생애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지막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까지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십자가 위에 달려 마지막으로 외친 일곱 가지 말씀 ‘가상칠언’ 역시 기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이 바로 유명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입니다.” 주님이 십자가 죽음이 임박한 것을 느끼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매달려 간절히 드린 이 겟세마네 기도가 오늘 사순절 기간에 종려주일과 성찬식을 맞으면서, 또 내일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을 맞으면서 참으로 뜻 깊게 우리 마음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주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로 나아간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기도에는 네 가지의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 기도 습관 : 우선 39절 말씀에 보면 주님은 “나가사 습관에 따라 감란 산에 가셨다”고 합니다. 주님이 왜 습관적으로 감람산에 가신 것일까요? 등산 가신 것은 아닐 테고 습관적으로 그 산에 가셨다는 것은 기도를 위해 가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죽음이 임박해서 급해서, 도와달라고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늘 습관적으로 기도하셨고, 이날도 습관을 따라 기도하러 가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급해서 필요해서만 기도하고 매달리고 하나님 찾는 것이 아니라 늘 습관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넌 급할 때만 날 찾는구나”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 너희도 기도하라 : 또한 40절에 주님은 기도하러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너희도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세상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나태함과 형식주의 신앙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43절에 천사가 하늘로부터 와서 주님의 기도에 힘을 더해 준 것처럼 오늘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은 하나님의 우편에서 함께 간구하시고, 성령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친히 간구하시고, 또한 주님이 천사를 보내 우리의 기도를 도우실 것입니다.

󰊳 내 뜻, 아버지의 뜻 : 주님은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보세요. 주님은 “이 잔” 즉 죽음의 잔, 고난의 잔이 자신에게서 지나가기를 원했습니다. 세상에 누가 죽기를 바라고 고난 받기를 바라겠습니까? 그런데도 주님은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소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기도’ 하면 내 뜻대로, 내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기도는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제 소원은 이것입니다. 만약 제 소원이 하나님 뜻과 같다면 이루어 주시옵소서. 하지만 아버지의 뜻이 다르시다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기도하는 사람은 결국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더 크고 놀라운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 최선을 다해 : 마지막으로 주님은 ‘최선’을 다해 기도하셨습니다. 44절을 함께 읽읍시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주님이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땀이 비 오듯 떨어지는데 그 땀이 마치 핏방울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땀 흘려 기도해 보셨습니까? 땀이 비 오듯 흐를 정도로 기도해 보셨습니까? 눈물 콧물이 뒤섞여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도록 기도로 매달려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옛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산 기도를 다니면서 소나무를 잡고 뿌리째 뽑힐 때까지 기도했는데 요즘은 이런 뿌리 뽑는 기도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오직 점잖은 기도, 신사적인 기도만 남아있습니다. 혹시 이런 기도가 점잖은 기도나 신사적인 기도가 아니라 “적당히 하는 기도”가 아니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도로 승부해야 합니다. 땀이 핏방울처럼 되도록 기도하신 주님처럼 기도로 뿌리를 뽑고, 죽기 살기로 기도해서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이 정도의 각오를 가지고 기도해야 하나님이 감동(感動)하시는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 “응답 받는 기도”가 되지 않겠습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던 이런 찬양이 있지요?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수원 용인 근처 어떤 낡은 건물 벽에 이런 말이 붙어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언젠가 이 글씨가 철거되어 참 아쉬웠지만 이 한 문장이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우리는 왜 기도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두고 걱정하며 염려하고 있을까요?

설교 첫 머리에 소개한 기도의 사람 죠지 뮬러 목사님은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다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바르게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기도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끝까지 기도를 계속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축복을 받을 때까지 기도를 계속하지 못하고 축복을 쉬지 않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죠지 뮬러 목사님의 묘는 영국 브리스톨의 아노스 베일 묘지에 있는데 거기 서 있는 비석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이루어졌다!” 이 묘비는 뮬러 목사님이 돌본 1만 명의 고아들이 그를 기리며 세웠습니다. 저는 제 묘지에 거창한 비석이 세워지길 바라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제가 목회한 교회 성도들이, 그리고 누구보다 하나님이 저를 기도의 사람으로, 응답의 사람으로 기억해주기 바랍니다. “늘 평생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간 사람, 늘 어떤 일이든 크고 적은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응답 받은 사람,” 바로 이런 귀한 평가가 저뿐만 아니라 여기 계신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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