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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위한 주님의 기도 제목 (요 17: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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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주님의 기도 제목 (요 17:9-17)

어떤 인터넷 자료를 보니까 연령대별 성공시리즈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10대에는 성공한 아버지를 두었으면 성공이고 

20대에는 학벌이 좋으면 성공이고 

30대에는 좋은 직장에 다니면 성공이랍니다. 

40대에는 2차를 쏠 수 있으면 성공이고 

50대에는 공부 잘하는 자녀 있으면 성공이고 

60대에는 아직 돈을 벌고 있으면 성공이랍니다. 

그리고 70대에는 건강하면 성공이고 

80대에는 본처가 밥 차려 주면 성공이고 

90대에는 전화 오는 사람 있으면 성공이고 

100세 때는 아침에 눈 뜨면 (大)성공이랍니다. 


재미있지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저는 이글을 읽으면서 웃기도 했으나 한편으로 참 씁쓸했습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세상 것에다 성공의 잣대를 대고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런 것에 성공의 기준을 둔다면 우리는 대부분 실패자라고 할 것입니다. 

성공한 아버지도 없고 학벌이 좋지도 못하고 좋은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건강하지도 못하고…….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있으면, 우리는 성공한 사람인줄 믿어야 합니다.   

비록 세상 사람은 우리를 사랑해 주지 않으나, 하나님 아버지는 지금도 지극한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 우편 보좌에서 날마다 기도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이 있음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 친구 목사님은 모태신앙인인데 늘 자기의 성공은 부모님의 믿음의 기도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보모님 속을 무척 썩였답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답니다. 어느 날 그 부모님의 사랑이 느껴지면서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목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사랑받고 있다고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 난 사람” 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여기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사람들의 사랑도 포함되어 있겠으나 진짜 우리가 받은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 이것을 느끼고 이것을 체험하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아시나요? 

그것을 모르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힘이 없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크고 놀라운 사랑을 얼마나 알고 느끼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 신앙생활은 달라집니다.   

왜 예수 믿는 것이 힘듭니까? 왜 봉사하고 섬기는 일이 어렵습니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원인은 주님이 우리를 향해 베푸신 사랑의 깊이를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만 온전히 알고 느낀다면 그 무엇도 우리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를 향한 주님의 위대한 그 사랑, 그것이 여러분의 가슴속에 느껴지는 은총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종려주일인 오늘, 우리는 그 주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어디에서 느낄 수 있을까요?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보기 쉽지 않으나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러브레터입니다. 창세기 첫 장부터 계시록까지 어디 한곳도 빠진 곳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찾을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요한복음 17장은 우리 주님이 지상에서 하신 기도 중에 가장 긴 기도문으로 남아 있는 말씀입니다. 이 기도 속에 우리 주님의 뜨거운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이 기도는 세 부분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십자가를 지실 주님 자신을 위한 기도이고, 

둘째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 제자들로 인하여 예수를 영접할 사람들을 위한 중보 기도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 속에는 우리 주님의 놀라운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기도 제목은 어떤 것일까요?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1. 우리를 보호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11절을 다 같이 읽읍시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성도 여러분! 
제자들을 지극히 사랑하신 주님이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하신 기도를 보세요. 마치 죽어 가는 아비가 자식을 염려하여 다른 사람에게 자식의 앞길을 부탁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위해서 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님께 맡긴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는 기도를 하십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옵소서."

그런데 무엇으로 보전해 달랍니까?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에는 하나님의 명예가 담겨 있습니다. 또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전해 달라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로 보호해 달라는 것입니다. 왜 주님이 이토록 간절한 사랑으로 보호를 요청하는 것일까요? 11절을 다시 보세요.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주님이 저들을 떠나는데 제자들은 세상에 그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양을 이리가운데 두고 떠나는 목자의 심정인 것입니다. 

14절도 보세요.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칠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속했다면 사단이 자기편이므로 그냥 두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단은 온 힘을 다해 넘어트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 기도를 응답하시는데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제자들을 보호하시고 지키셨습니다.   

그와 같이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계십니다. 

지금도 우리가 주님의 자녀로 보전되고 주의 몸 된 교회에 일꾼이 되기를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 기도 덕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기도 덕에 우리의 생명이 보전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그 은혜를 누리며 우리가 생명을 연장 받고 사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를 택하셨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신변과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우리를 지키십니다. 시편의 고백처럼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의 가슴 속에 느껴지기를 축원합니다. 자식을 향한 지독한 사랑의 부모님처럼 우리를 향해 기도하시는 그 사랑이 성령의 감동으로 느껴지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두 번째 기도 제목은

2. 우리가 하나 되기를 기도하십니다. 

11절 하반 절을 보세요.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따라서 합시다.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님은 제자들이 세상에서 분열되는 모습을 염려하시고 하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떠나면 그들은 제각각이 되어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 되어야 하나요? 

1)사단은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더욱이 교회가 어찌하든지 분열되고 나누어져 서로 피 터지도록 싸우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나누어지면 안 됩니다.   

2)하나님의 일은 하나 되어 합력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일하면 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합력하여 서로 돕고 합력하여 서로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를 만드신 것입니다. 교회는 말 그대로 공동체입니다. Community (커뮤니티)입니다. 공동체는 반드시 하나 되어야 살 수 있습니다. 하나 됨이 없는 공동체는 망하는 것입니다. 가정도, 교회도,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여기서 ‘하나 되라’ 해서 이단들이나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 다원주의자들과 하나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동성애를 용납하고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부정하는 세력과는 하나 되면 그것은 하나 되는 것이 아니고 타락입니다. 

이런 것이 아닌 진리를 올바로 믿는 사람들과는 하나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라는 말은 남남이 아니란 말입니다. 남이 아닌 한 가족, 한 식구 되면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하나 되기 위해 오신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엡4:3절에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십니다.   

성령의 역사에 특징을 하나 고르라면 그것은 하나 되게 함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분열과 나눔을 너무도 흔하게 봅니다. 이 분열과 아픔은 무엇으로도 해결이 어렵습니다. 오직 하나 있다면 성령의 치료하심의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간절히 하나 되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혹, 여러분의 마음이 누군가와 갈라지고 있습니까? 혹 끊임없이 미워지고 멀리하고 싶습니까? 
깊이 살펴보셔야 합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나도 그도 아닌 사단의 간교한 역사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 됨은 성령의 사역입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는 영입니다. 
그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하고 분열하고 나누어지려 한다면 정말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 책임은 너무 무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보좌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시되 하나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계십니다. 혹 우리 중에 누군가에게 마음이 불편하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혹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나를 주님의 세 번째 기도는

3. 진리로 거룩하게 해 달라 기도합니다.

17절을 보세요.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우리 주님은 우리 모두가 진리로 거룩하게 되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왜요? 진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는 놀라운 변화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그 주님이 기도하시기를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 말씀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죄의 유혹을 물리쳐 주시고 그리고 그 가운데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우리의 심령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의 언어, 습관, 생각을 바꾸어 주십니다. 그 때 우리는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거룩’은 성도의 최고의 가치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그 ‘거룩’입니다. 
그 거룩을 우리가 이루게 해달라고 주님은 십자가 지기 전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룩하기보다는 세상에 오염되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죄가 뭔지 분별을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세상에 속했다면 마귀가 자기편이니 건들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자이니 타락시키려고 갖은 유혹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어떤 맹인이 밤길을 가는데 등불을 들고 나갔습니다. 

맹인이 눈이 어두우니 캄캄한 길이면 어떻습니까? 그런데 등불을 들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보지도 못하면서 왜 등불을 들고 다니나요?” 

그러자 대답합니다. “나는 보지 못하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부딪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참 지혜롭지요?

그런데 어느 날 그 맹인이 등불을 들고 길을 가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쳤습니다. “이보시오. 뭘 보고 다녀요? 이 등불이 안보이나요?” 그러자 그가 대답합니다. “등불이 있긴 뭐가 있어요. 그 불은 이미 꺼졌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빛이길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등불이 이미 꺼진 줄도 모르고 산단 말입니다. 그리고는 세상에다 ‘나를 따르라’ 한다면 말이 되겠냐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지금도 우리가 주님을 닮아 거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영적 순결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거룩입니다. 
이 세상은 거룩이라는 단어를 잘 안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길 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종려주일입니다. 이번주간 고난 주간입니다. 

이 한 주간 우리를 위해 지금도 기도하시는 주님의 이 기도 제목을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들을 보호 하옵소서. 
저들을 하나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거룩하게 하옵소서. 

이것이 지금도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기도 제목입니다. 이 세 기도제목의 공통점은 모두 현세적이거나 세속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의 기도 때문에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기도처럼 하나 되고 거룩한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보답이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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