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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요 1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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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요 13:1-20)


예수님의 생애는 33년이었습니다. 그 중에 공생애는 3년이었고 성경에서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대부분의 기록들은 예수님의 고난부터 부활까지의 1주일 정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고난주간에 하신일 중에 하나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 일"이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예수님의 권위는 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건에서 나온다!"라는 말이 생길만큼 이 일은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잘 반영하고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의 이 사역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한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아니다 싶었던 것입니다. 인생이란 서열이란 것이 있고 위 아래가 있는 것인데 어찌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길 수가 있는가? 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발을 예수님께 내놓기를 거절했던 것입니다. 이 일을 당하신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상관"이란 말은 "서로 관계를 맺음"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제자들의 상관관계를 자신이 발씻겨주심과 제자들이 그것을 받아들여서 씻음을 받은 것과 연결지으셨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발을 씻음받았다는 발씻음의 체험이 없다면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과 이해가 맞고 연결되어야 상관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이 주님과 상관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과는 무관한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주님과 무관한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을 해놓고도  

오늘 본문의 발씻음이 주는 교훈은 

첫째로 예수님과 우리가 상관이 있으려면 예수님에게 발 씻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발을 씻어 주신다는 것은 우리를 정결케 하신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의식에는 구속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어린양의 피로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서 정결됨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예수님의 씻어 주심으로 깨끗하게 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결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밖에 없음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이 씻어주심을 거부하는 것은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이며, 베드로가 예수님의 고난을 말린 것처럼 예수님이 자기를 희생하신 십자가를 의미 없게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 우리의 발을 드린다는 것은 오늘 우리들이 예수님과 철저한 결속 안에 있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발을 맞기고 씻음을 받을 때만이 우리는 예수님과 상관이 있습니다. 천국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정신으로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의 정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온전한 정신이심을 믿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의 보혈은 우리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하시며 먹물처럼 검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하시는 용서의 씻음임을 믿습니다. 
  
둘째로 발을 씻는 자와 같이 낮아져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발은 모든 지체 중에 가장 낮은 곳에 있습니다. 그런 발을 주님께서는 씻어주셨습니다. 발과 같이 낮아지지 아니하면 나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발을 씻어주시기 위해서 수건으로 허리를 두루셨습니다. 허리를 두르신 의미는 후에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에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했는데 이것은 베드로가 뒤늦게 그떄일을 생각해보니 그 수건이 겸손이었음을 깨닫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낮은 곳에 제일 먼저 고이고, 가장 나중까지 남아있어 주위에 생명력을 공급하는 역할과 소임을 합니다. 하늘의 축복도 이와 같은 이치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축복도 흘러흘러 낮은 곳에 임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낮추고, 낮은 곳을 찾고, 낮은 자세를 갖는 자를 하나님은 축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우러나 무릎을 굽힐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무릎을, 자만과 자존의 무릎을, 가진 자의 오만의 무릎을 굽히고, 그 대상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을 때, 참다운 섬김이 있을 수 있고, 그런 자를 하나님은 축복하시고 크게 들어 쓰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믿음이 지니치게 구속적으로 흐르는 것을 방지하도록 제동장치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예수에 의해서 씻음을 받는 것으로만 끝나는 신앙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스승으로 내가 너희를 씻음과 같이 너희도 이와같이 다른 사람을 씻어주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낮아짐으로서 서로 종노릇할 때 그곳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며 서로 서로 상관이 있는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자리는 낮아짐의 자리 밖에 없습니다. 성 토마스 아켐퍼스는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 걸으시며, 낮은 자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며, 작은 자들에게 지식을 주시며, 순결한 자들에게 자기의 의도를 내보이신다. 그러나 호기심 있는 자와 교만한 자에게는 그의 은혜를 숨기신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남의 발을 씻어주는 자와 같이 낮아져야 합니다. 작아짐의 의미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자를 들어 쓰신다고 했습니다. 스가랴 13:7절에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상관을 맺으려고 낮아지셨습니다. 하나님이신데 인간으로 낮아지셨고, 만왕의 왕이신데 고난을 받으시며 섬기시며 머슴처럼 일하셨습니다. 그분은 나귀를 타셨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침뱉음을 당하셨고 그리고 끝내는 가장 비천한 십자가까지 지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상관을 맺고자 하신 표현이며 바램이며 요청이며 손을 내미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절하는 자는 주님과 상관이 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상관이 없는 자들은 아무리 이 세상에서 착하게 살아도 실적을 쌓고 공적을 쌓고 수양을 하고 수련을 해도 유업을 얻을 수가 없으며 참 된 복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섬기는 모범을 친히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발을 씻기신 것을 서로 섬기는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다는 말씀은 섬김 받아야 하실 예수님이 섬기는 자리에 자발적으로 내려오신 것이고, 이를 통해서 우리들도 서로 섬기는 사람들이 되라고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셨는데 그 사랑을 발을 씻기는 섬김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섬김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상과 교회가 달라야 하는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는 경쟁관계 속에서 이기는 자는 살고 지는 자는 죽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교회공동체를 지배하는 원리는 경쟁관계가 아닌 섬김의 관계입니다. 사랑이 지배하는 곳에는 약한 자가 더 먼저 배려를 받는 곳입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 교회 공동체 속에서 이 믿음의 내용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는 사람이 될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 있는 남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본문의 내용에서 교훈을 받아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으로 살 것이 아니라 모든 범사에 예수님과 상관이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믿음,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열심,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소원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상관이 있을 때 유업을 주님과 함께 나누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상관이 있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상관이 있다는 것은 곧 예수님께 접붙여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과 보혈로 씻음을 받을 때, 주님에게 접붙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낮아질 때 예수께 접붙여진 것입니다.자신을 향한 주님이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주님 안에서 십자가의 속죄로 정결한 성도가 되며, 섬김 받기를 원하는 삶에서 섬기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율법의 핵심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마 7:12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에서의 모든 사역은 이와 같은 정신위에 기초를 두고 행해져야 주님의 교회, 주님께 속한 성도들의 모임이 되는 것입니다.친히 발을 씻어주심으로 섬기는 본을 보이신 주님과 같이 우리도 서로의 발을 씻어 주는 사람들이 다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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