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다시 갈릴리 호수에서Gone Fishing (요 21:1-7)

첨부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세 번째로 제자들을 만나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장소는 갈릴리 호수, 등장 인물은 베드로를 비롯한 일곱 명의 제자들입니다. 본문의 분위기는 한 편의 풍경화를 보듯, 한 편의 서정시를 읽듯, 시골 내음과 인간의 내음이 물씬 풍깁니다.

 

우선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지역으로 간 것은 일반에 흔히 오해되고 있는 것처럼 사명을 버리고 옛생활로 되돌아간 것이 아니라, 제자들보다 갈릴리에 먼저 가서 그들을 기다리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을 따른 것입니다(마 26:32, 28:7).

 


갈릴리가 어떤 곳입니까? 대다수 제자들의 고향이자 처음으로 주님으로부터 부름 받았던 곳이면서, 주님을 따라 동고동락하며 사역하던 곳이고 많은 추억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다시 만나고자 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주님과 함께 했던 아름다운 시간들을 기억하게 하시며, ‘나를 따르라’는 음성을 듣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던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게 하려 하심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본문은 제자들이 처음으로 주님을 따르게 되었던 때, 곧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아무 것도 잡지 못하다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던진 결과 많은 고기를 잡았던 때의 상황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실로 제자들로서는 3년 전 처음으로 부름을 받던 그 때를 기억하게 만드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의 제자들은 3년 전부터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보았고, 부활의 기쁨을 체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릴리로 오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제자들과 함께 앞으로 엄청난 사역을 시작하실 예정이었습니다. 

 


본문 1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다” 고 했는데, 이것은 자신이 부활한 사실을 제자들에게 다시 한번 확실하게 보여주며, 더 나아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주님의 제자로서 감당해야 할 사명을 확실히 일깨워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시간 본문 속으로 들어가서 제자들이 호숫가에서 주님과 함께 나누었던 경험들을 살펴보며, 장차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나누게 될 잔치를 소망하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1. 다시 갈릴리 호수로 물고기 잡으러 감 (= 불확실한 미래, 서글픈 현실)

 

3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

 


먼저 베드로와 여러 제자들의 형편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되겠습니다. 2절에는 시몬 베드로와 함께 한 제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들은 도마와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다른 제자 두명이었습니다. 이처럼 이름을 명기한 것은 이 사건의 역사성을 드러내려는 저자의 의도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갈릴리에 내려와서 줄곧 함께 있었습니다. 주님의 명령(마 28:10)에 따라 주님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며 그들이 체험한 신비한 경험, 곧 주님의 부활 사건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예수님의 부활이 너무도 놀랍고 신비한 일이었으므로 그것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호수의 물소리와 내음이 그들을 계속 유혹해 왔습니다. 마침내 참지 못한 베드로가 말합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그의 마음은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안정되지 못했고, 자신이 처한 현실이 서글프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 주님을 따라 나섰지만 다시 고기 잡는 어부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다음날 새벽에 찾아오신 주님께서 베드로가 고기 잡으러 나온 것에 대해 책망하지 않으신 것을 보면, 베드로의 심적 상태가 어떠한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베드로는 울적한 마음이었지만 뭔가를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다른 제자들은 베드로의 태도에 금방 전염되었습니다.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 그들 모두 자신들의 불확실한 미래와 자신들이 처한 서글픈 현실 앞에서 방황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삶이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보며 따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끼친 영향력은 결국 우리에게 책임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롬 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갈릴리 해변의 제자들처럼 실의에 빠져 있다면, 이제 곧 주님의 위로와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을 기대하십시오. 그리고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임을 다짐하십시오. 

 

 


2. 그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함 (= 열매 없는 삶, 공허한 마음)

 

3절=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제자들이 밤에 고기를 잡으려 했던 것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밤이 가장 많은 고기가 잡히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낮에는 기후가 더워 호수 상층부의 물이 뜨거워지므로 고기들이 시원한 물 밑의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가 서늘한 밤이 되어서야 수면 가까이로 올라오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의 어부 출신으로 고기잡는 일에 있어서만은 베테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으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고기가 많이 잡히는 밤 시간에 베테랑 어부들이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것 역시 예삿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15장 5절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과 함께 있을 때에만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자신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교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익숙한 고기 잡는 일이라는 실습을 통해서 그 말씀의 의미를 적용하여 가르치신 것입니다. 

 

평생 고기 잡는 일만을 해 온 그들이 더욱이 어느 누구보다도 익숙한 갈릴리 바다에서 자신들이 이제까지 쌓아온 인간적인 경험과 기술이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 있어 하는 육적인 일인 고기 잡는 행위에서도 주님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이 사실은 앞으로 그들이 감당하게 될 영적인 일인 ‘사람 낚는 일’에 있어서는 주님의 도움이 절대적임을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 없는 인생의 수고는 노력의 분량과는 무관하게 결국 헛될 뿐입니다. 제자들은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제자들을 위한 교훈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인생을 달음질이라고 한다면 예수님 없는 달음질의 끝은 절망과 허무뿐입니다. 그날 밤 제자들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열매 없는 삶, 공허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생을 항해라고 한다면 예수님 없는 항해의 종착지는 영원한 절망의 심연일 뿐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에게만 생명과 구원이 있고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안 계시면 아무리 인생을 열심히 살아도 남는 것은 허무 뿐입니다.

 


시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어느 두 친구가 큰 기차 정거장에서 최신식 엔진을 한 기차가 날아 갈 듯 지나쳐 버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엔진 참 쎄군!” 하고 그 중에 한 사람이 그곳 역장인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네,” 하고 그리스도인인 역장이 대답합니다. “허지만 그것도 철로 위에서 뿐이지 철길에서 벗어나는 날이면 그건 세상에서 더 없이 무력한 것이 아니겠어? 그러니까 우리 신자들도 마찬가질세” 하고 그는 말을 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힘이 센 것은 구주이신 주님과 연합하여 할 때 가능한 것이지 저 교제의 좁은 길을 떠나는 때면 그는 이 세상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가장 미약한 존재가 아니겠는가?“(빌4:13).

 


성도 여러분! 열매 맺는 생활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열매를 많이 맺기 위해서는 (1)깨끗케 하심을 받아야 하고(요15:2), (2)포도나무 안에 거해야 하고(요15:5), (3)사랑의 계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피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단번에 없애 버렸으므로 깨끗하지만, 날마다 손 발에 묻히는 죄는 자백함으로 씻음 받아야 합니다(요일1:9).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을 위해서는 고백하지 않은 죄가 없어야 한고, 주님 허락 없이 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매인 것이 없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말씀 속에서 살아가며, 성령님을 모시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사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십계명을 포함한 사랑의 계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탱자나무에 귤감 열매가 맺히는 것과 같이 곧 예수 열매 성령 열매가 맺힙니다. 

 


만일 내가 예수님을 떠난다면 주님이 잃으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주님은 ‘나’ 라는 존재가 없어도 잃을 것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나는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지금 뿐 아니라 영원한 세계의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되는 ‘잃어버린 자(the lost one)’가 되고 말 것입니다. 

 

주님이 물으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 너무도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대답 또한 중요합니다.

 

“주님, 영생의 말씀이 주님께 있는데, 제가 주님을 떠나 어디로 가겠습니까? 저를 언제나 주님 곁에 있게 하시고, 주님을 충성스럽게 섬기게 하소서.”

 

 


3. 예수님의 지시대로 순종하여 그물 가득히 잡았음 (= 주님의 임재, 기적의 삶)

 

6절=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이제 실의에 빠진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 그분의 임재가 가져온 기적을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날이 새어갈 때’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의 삶에 아침을 가져오십니다.

 

제자들은 해변가에 서 있는 분이 예수님인 것을 금방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몸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고, 아직 어두움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상태에다가(4절), 배가 떠 있는 곳에서 예수님이 서 계신 곳까지 90여 미터라는 거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8절). 거기에 무엇보다 그들의 영안이 아직 가리워진 상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애들아!” 주님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주님은 제자들의 필요에 민감하십니다. 그리고 3년 전처럼 명령하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성도 여러분!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졌을 때 순식간에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엄청난 결과로 상황이 반전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지닌 위력을 다시한번 보게 됩니다. 주님의 임재는 제자들에게 기적의 삶을 가져왔습니다.

 


제자들의 배는 여전히 그들이 밤새도록 헛수고를 한 그 자리에 있었고, 그물도 같은 것이었으며, 그물을 던지는 이들 역시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주님 말씀 전에는 상식에 의존하여 그물을 던진 데 반하여, 지금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던졌다는 것뿐입니다. 실패를 이기는 삶의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성공을 원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하는 이들의 전기든지 성공하는 방법을 다룬 책들이 베스트 셀러가 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조언이나 충고가 모두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부분적으로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인생의 궁극적인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합니다.

 

성공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행하는 것입니다(시 19:7-11). 말씀을 의지하고 실천하는 이들은 항상 의의 길로 다니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닌 능력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주님의 말씀은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변화시키며,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기 때문에 보는 이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작가인 존 뉴턴 목사님, 그는 예수 믿기 전에는 도저히 구제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젊은이였습니다. 흑인들을 잡아다가 팔아먹는 노예 매매업자로 악명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이 뉴턴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때 그는 크게 회개하고 변화되어 사랑과 눈물의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외모가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의 사지백체, 오장육부는 모두 그대로였지만, 그의 삶과 그의 가치관에는 가히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뉴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던 삶이 이제는 주님의 말씀이 이끄는 삶으로 바뀌었다는 것, 그것이 유일한 이유입니다.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성도 여러분! 가정 환경이 좋지 않다고 인생을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든든한 배경이 있다고 다 원하는 목표에 이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나를 주관하던 삶에서 주님의 말씀에 나를 굴복시키는 삶으로 바뀌기만 하면 그 사람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인생의 진정한 성공은 권모술수와 같은 세상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 아니라 주의 말씀에 의지하는 것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습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갈릴리 호수에서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고, 순식간에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제자들이 그물을 던져 잡은 153마리나 되는 물고기는 앞으로 주님의 교회가 세계 선교를 통해 얻게 될 구원받을 자의 충만한 수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3년 전처럼 다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제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7절).

 


여러분 중에 서글픈 현실, 불안한 미래 때문에 방황하고 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여러분 중에 밤새도록 헛고생한 제자들처럼 열매 없는 삶 때문에 공허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와 계신 분은 안계십니까?

 


바닷가에 서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제일 먼저 알아차렸던 요한처럼, 예수님이 여러분의 주님 되심을 먼저 확인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동행하심을 기대하시고 믿으십시오.

 

겉옷을 입고 바다로 뛰어내리던 베드로처럼, 우리 모두 예수님께로 달려나갑시다. 주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내던지십시오. 

 


바닷가에서 숯불과 생선과 떡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시던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주님의 잔치 자리에 초대하고 계십니다. 주님과의 교제 자리가 이 땅에서의 연회 자리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주위에 주님 사랑을 가지고 모인 무리들 -- 이 모임이야말로 이 땅에서의 가장 위대한 연회입니다. 해변의 축제는 장차 어느 날 더 아름답고 더 영광스러운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재현될 것입니다.

 


이 위대한 비전을 어떻게 이룰까요? 그물을 던지라는 주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여러분의 과거의 경험과 가치관을 주님의 것으로 비우십시오. 그리하면 주님은 여러분을 사람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