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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받은 천국의 성도들 (계 7: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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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천국의 성도들 (계 7:9-17)
    
구원(Redemption)이라는 말은 포괄적인 개념으로 “모든 악과 고난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로 ‘Redemption’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되사오기’, ‘되찾기’, ‘변제’, ‘상환’, ‘해방’, ‘속죄’, ‘대속’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이란 말을 할 때에 ‘Salvation’이라는 말도 사용합니다. 이 말은 ‘구조’, ‘구출’, ‘구제’, ‘죄로부터의 구원’이란 뜻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으신 하나님의 작품, 피조물이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주인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과의 의존관계에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만드신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은 일생 살아가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의존해야 하는 의존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대하여야 합니까? 우리의 대신관계(對神關係)는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요, 하나님으로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올바른 태도는 하나님께 대한 의존과 순종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을 받았는데, 하나님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지어주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죄를 모르고 죄의식도 모르고, 죄를 전혀 짓지 않는 그런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고 하면 최고로 잘 지으신 것이 아니라, 하등동물도 지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믿음과 의지를 가지고 죄를 안 지을 수도 있고,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죄를 지었을 때에는 부끄럽고 송구스러운 죄의식을 가지는 최고의 작품으로 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잘 만드신 것은 하나님의 최후의 역작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존재로 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어 당신의 아들과 참된 교제를 하면서 지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고전1:9에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존하는 관계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가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만 사탄의 유혹을 받아 독립을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인간은 자기를 주장하려는 의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악한 사탄이 우리 조상이요 어머니이신 하와에게 찾아와 하나님이 금하신 실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미혹하였습니다. 그 사탄의 감언이설에 속아 하나님이 금하신 실과를 따먹고, 죄인이 되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지시하신 금령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사탄은 거짓말쟁이요, 모든 거짓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을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었습니다. 그 선을 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해도 피조물이지 너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 아무리 능력이 있고, 힘이 있고, 지혜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피조물이라고 하십니다. 항상 피조물인 것과 우리 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기 위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지정하시고 그 열매는 따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해서는 안 되는 일,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지켜야 하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위에는 영원히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지으신 아담과 하와를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시며 그 동산을 경작하고 지키게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동산에서 마음껏 은혜를 누리면서 살아가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에게 금령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위치 설정이요, 우리가 서 있어야 하는 좌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의존하고, 순종해야 하는 존재임을 알고 살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창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악한 영, 사탄은 뱀의 혀를 가지고 인간에게 다가왔습니다.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였습니다. 뱀이 하와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와는 직접 들은 사람이 아니라, 전하여 들었기에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만지지도 말라는 하지 않았고, 죽는다고 하셨지, 죽을까 하노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말씀하신 문자 그대로 말하고 들어야 합니다. 

뱀이 여자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속였습니다. 악한 영 사탄이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천상에서 쫓겨나서 인간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에게서 떼어놓고 멀어지게 하고, 범죄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탄의 유혹으로 범죄하였다고 하지만, 모든 책임을 사탄에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사탄의 미혹이 분명히 있었지만, 모든 범죄는 인간 스스로의 결단이요, 그 책임입니다. 어떤 유혹도 단칼에 물리치면 되는데, 유혹에 빠진 것은 전적인 우리의 책임이었습니다. 

인간은 자기의 지혜, 자기의 힘, 자기 사랑- 자기 애, 나 스스로 살아가려고 하였습니다. 생명을 누리고, 행복을 누리라고 하나님을 의존하고 순종하며 살라는 것을 억압이나 속박으로 알고, 하나님에게 벗어나자고 하였고, 독립하여 홀로 하나님처럼 서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란 자기주장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자기 사랑으로 뭉쳐 있습니다. 자기의 지혜와 힘으로 능히 살아갈 수 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와가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세히 올려다보았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면 무조건 경계해야만 합니다. 사탄의 유혹은 항상 간교합니다. 

요한일서2:15-16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책임은 인간 스스로 져야만 합니다. 사탄이 우리의 죄 값을 대신 갚아주지 않습니다. 사탄이 그 열매를 따 준 것이 아니라, 사주는 하였지만, 하와가 따는데, 자기의 손을 뻗어 과실을 따고, 먼저 자기가 먹고, 자기 남편에게도 주니 아담도 먹었습니다. 

남편 아담이 금단의 열매인줄 모르고 먹었나요, 아닙니다. 알고 먹었습니다. 자기가 따먹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아내의 마음에 이미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아담의 마음속에는 만물을 지배하고 싶은 마음,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아내에게 편승하고, 용인하고 아내를 따라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안에 경고가 있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었던 그 날에 죽음이 주어졌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먹고 난 후에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관계에서 두려워하고 숨어야 하는 무서운 관계로 변하였습니다. 사람이 정말 달라졌습니다. 

유명한 김세윤박사는 “구원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한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범죄한 인간, 자기주장, 자기사랑, 자기 의지로 살기로 작정한 인간 곧 생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타락한 인간은 생명의 땅에서 분리되어 뿌리째 뽑힌 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풀 한포기가 땅에서 뽑혔습니다. 그렇다고 죽었습니까? 아직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 뿌리에 들어 있는 제한된 수분과 영양분이 있을 때까지 잠시 살다가 곧 말라비틀어지고 죽게 됩니다. 풀의 생명은 그 근원이 땅에 있습니다. 땅으로부터- 흙으로부터 더 이상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풀은 땅에서 뽑히는 순간부터 죽음이 시작되었습니다. 머지않아 잎이 마르고, 꽃이 떨어지고, 시들어갑니다. 죽음의 증상들이 나타납니다. 

우리 인간들 중에는 의인이 없다고 하지만, 모든 사람이 죄악의 종이 되었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죄요, 말하는 것이 죄요, 행동하는 모든 것이 죄악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들이 없습니다. 

롬1:21-23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죄의 목록들을 보면 죄의 종류가 참으로 많습니다. 롬1:29-32을 보면 얼마나 많은 죄의 목록이 나오는지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범죄한 영혼은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이러한 죄를 하나님은 아들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므로 모든 죄를 짊어지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다 허구입니다. 선한 행위를 쌓으면 구원 얻는다고 말하는 것도 더 허구입니다. 구원을 얻을 만큼 선한 사람도 없고, 선한 행실을 쌓아서 구원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문명에 대한 낙관론자들은 인간이 지혜를 계속해서 계발하면 전쟁도 없고, 평화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문명 낙관론자들은 19세기 계명주의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갔고, 세계대전을 몇 차례 치르면서 비인간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구원은 우리 밖에서 우리에게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들어와야 합니다. 인간 내재된 힘으로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지만, 구원은 하나님이 무조건 봐주셔야 하고, 용서해주시면서 받아주셔야만 구원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무조건 봐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죄를 다 물으시고, 다 짊어지게 하시고, 우리를 대속하게 하셨습니다. 

구원은 주셔야 합니다. 우리 밖에서,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이 주어져야 합니다. 복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하는 모든 저주와 심판,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것 그 죽음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 쏟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주의 날에 기도하다가 환상 중에 천국에 끌어올려가 하나님의 보좌와 천국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144,000명이 구원받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 숫자는 문자 그대로 계산할 것이 아니라, 12*12* 1000이라는 수로 완전한 수요, 세상의 만수로 하나님이 택하시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는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사도요한은 아무도 능히 헤아릴 수 없는 흰 옷을 입은 성도들을 보았습니다. 이 세상은 엄청난 박해와 환난으로 우리 성도들이 고통을 받고 있지만, 천국에서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구원받았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인종 차별이 없습니다. 백인이나 흑인이나, 한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나, 차별이 없는 나라여서 감사합니다. 

그들이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서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하나님의 보좌 앞과 어린 양이신 우리 주님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치며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라고 노래하였습니다. 모든 천사가 하나님의 보좌와 24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찬송하였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성도들의 찬송, 천군천사들의 찬송, 찬송으로 가득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성도들의 찬송 중에 거하시고 있습니다. 시22:3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6:2에는 스랍이라고 불리는 천사들이 찬송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렀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24장로 중에 한 분이 사도요한에게 나아와 물었습니다.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13)고 물어보셨습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서 나온 성도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흰옷을 입었습니다. 

양복 한 벌이 30만원 하는 기성복에서 수백만 원 가는 고급양복도 있고, 고급스런 명품 옷도 있지만, 하늘나라에는 예복만 입고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옷, 흰옷만 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흰옷은 구원받은 사람만이 입을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모든 성도들이 흰 옷을 입었습니다. 옷이란 그의 인격을 드러내고, 신분을 말해주는데, 모든 성도들이 흰옷을 입었습니다. 이 흰옷은 구원받는 자의 옷이고 거룩한 신부들이 입는 세마포였습니다. 우리 주님도 변화산에서 흰옷을 입으셨는데, 세상의 아무리 빨래를 잘 하는 사람도 그렇게 희게 할 수 없는 희고 찬란한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계19:8에 보면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입은 옷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인데,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하셨습니다. 옳은 행실이라 하시며 흰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사람들 중에 옳은 행실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우리의 행실이란 옷은 더럽고 추하고 얼룩이 져서 봐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멀쩡하게 앉아서 예배드리니 선남선녀들 같지만, 추한 냄새나고, 더러워진 옷을 입고 살고 있습니다. 

이 흰옷을 입은 자들은 누구이고 어디에 오신 이들입니까? 사도요한이 대답하였습니다.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사도요한보다 하늘에서 지켜보신 그 장로님이 먼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장로님이 잘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14)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죽은 행실로는 흰옷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옳은 행실이라고 하면서 입혀주신 흰옷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옷이었습니다. 어린 양의 피로 빨아야만 흰 옷이 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9:22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히10:19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핍박과 환난을 감내하고 절대로 배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사61:10에 보면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주시고, 공의의 겉옷을 더 입혀주셨습니다. 

우리 구원받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면서 하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는데, 하나님의 친히 우리의 장막이 되어주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고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합니다. 보좌 가운데 계시는 어린 양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어주시고, 우리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눈물을 씻어주시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천국의 생활 중에 극히 일부분만 보시고 왔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피의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피 흘리지 않으셨다면 죄사함도 없습니다. 

요6:53-56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옷을 당신의 피로 깨끗하게 씻어 희게 하셨습니다. 세상만 바라보지 말고 하늘나라를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들어가 영원히 살아갈 하늘나라를 사모하고 그려보고, 흐믓한 마음으로 감사하면서 살아가십시오. 하늘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심령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보니 예수님이 준비하신 모든 천국이 우리 안에 들어왔습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은 천국의 성도들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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