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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대위임 명령 (마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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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대위임 명령 (마 28:16-20)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임금의 명령을 가리켜 ‘어명’이라고 합니다. 임금의 명령은 대단해서 “어명이오. 죄인 아무개는 사약을 받으시오.”라고 하면, 죄인은 지체 없이 독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의 전투가 끝나고 나서, 지휘관이 그날의 전투 상황에 대해 장교들과 함께 평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휘관이 물었습니다. 어느 군인이 그 날 가장 탁월한 군인이었는지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어느 장교는 가장 탁월한 군인은, 그 날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한 군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장교들은 이 군인, 저 군인 자기 나름대로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지휘관은 말했습니다. “아니오. 여러분 모두가 다 틀렸어요. 오늘 전장에서 최선의 군인은 적을 죽이려고 칼을 들어 막 내리치려는 순간, 퇴각 나팔 소리를 듣고 적을 치지 않고 팔을 내리고 나팔 소리대로 후퇴한 군인입니다. 지휘관의 명령에 복종한 것이 오늘의 가장 고귀한 일인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과 재회하신 사건 및 그들을 향해 주시는 ‘지상 명령’(the Great Commission), 또는 ‘대위임 명령’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또 그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구속 사역을 완수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앞서 이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하여야 할 바를 명령하신 것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사도들과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이 명령을 목숨을 다하여 지켰고, 오늘날까지 뜻있는 성도들에 의하여, 이 명령은 계속 수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진실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주님의 지상 명령에 복종해야만 합니다. 이제 본문 말씀을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6-17절에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마 26:32절에서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 후 나타났던 천사들도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 영광의 모습을 보여주시려고 자신의 제자들을 갈릴리의 한 산으로 오도록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에 따라 이곳에 모인 제자들은, 주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뵈올 수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님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영광의 주님을 뵈올 수 있습니다. 그곳에 어디냐고요? 바로 하늘의 시온 산에 있는 새 예루살렘성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주님이 우리와 만나기로 약속하신 곳은 이 땅이 아니라, 저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그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그곳으로 전진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것에 미련을 두고 주저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저 약속의 장소를 잊은 성도는 없습니까? 하늘 영광을 얻고 주님을 뵈오려면, 부단히 신앙의 달음질을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저 천국에서 주님과 만나기로 약속한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들과 만나기로 약속하신 저 천국을 향하여, 날마다 전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신 장소는 갈릴리였습니다. 갈릴리는 어떤 곳입니까? 갈릴리는 주님이 처음 공생애를 시작하신 곳이요, 또한 주님의 제자들을 부르신 곳입니다. 갈릴리는 대부분의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주님의 제자로서의 영광을 얻고,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 나선 곳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주님의 죽으심으로, 그 꿈과 소망과 기쁨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슬픔과 절망과 패배감에 젖어 있었습니다. 죽은 예수님만을 생각하며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그들에게 영광스러운 부활의 모습을 보여 주시고,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천국에 대한 소망과 믿음, 승리의 확신과 사명의 재다짐을 확인시켜 주시고자 갈릴리로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제자들처럼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마치 주님이 안 계신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현실에는 불신앙과 죄악의 권세만 넘쳐나고, 나의 믿음과 소망은 보잘것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그 신앙의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 우리가 주님을 영접했을 때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때의 그 기쁨, 그 신비로웠던 체험, 주님이 나에게 베풀어 주셨던 사랑, 그리고 나의 꽃처럼 아름다웠던 믿음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새로운 신앙의 힘과 확신이 생겨날 것입니다.

♪내가 처음 주를 만났을 때, 외롭고도 쓸쓸한 모습/말없이 홀로 걸어가신 길은 영광을 다 버린 나그네/정녕 그 분이 내 형제 구원했나/나의 영혼도 구원하려나/의심 많은 도마처럼 물었네/내가 주를 처음 만난 날

내가 다시 주를 만났을 때, 죄악으로 몹쓸 병든 몸/조용히 내 손 잡아 이끄시며/병든 자여 일어나거라. 눈물 흘리며 참회 하였었네/나의 믿음이 뜨거웠었네/그러나 죄악이 나를 삼키고 내 영혼 갈 길을 잃었네.

내가 이제 주를 만남으로, 죽음의 길 벗어나려네/변찮는 은혜와 사랑 베푸신 그 분만이 나의 구세주/주 예수 따라 항상 살리로다/십자가 지고 따라 가리라/할렐루야 주를 만난 이 기쁨, 영광의 찬송을 돌리리.♪

성도 여러분! 인간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우리 영혼과 신앙이 침체되는 이유는, 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주님과 처음 만났을 때의 체험을 기억하심으로, 그 슬럼프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마침내 믿음의 승리를 거두시기를 바랍니다.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게 된 열한 제자들은, 주님께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경배’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프로세퀴네오’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제자들은 그 때가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옵고는, 그분을 진정한 하나님으로 예배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몸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썩어질 우리의 몸과 같은 몸이 아니고, 영원히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의 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향하여 한없는 외경심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주님의 발아래 무릎을 꿇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하나님이시며,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의 주인이시며, 그 모든 것들에게서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경배를 기꺼이 받아들이심으로,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으며, 참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을 가지신 분으로 경배한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게 된 제자들이 주님께 경배한 것처럼, 우리의 예배 수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장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처음 주님을 믿을 때는, 그저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점차 믿음이 성장할수록,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앙이 완숙한 단계에 이르게 되면, 주님이 얼마나 고귀한 분인지를 알게 되어 순수하게 경배하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조건부 예배는 합당한 예배가 아닙니다. 

주님께 은혜를 받든 못 받든, 주님 자체를 사랑하고 존숭하여 경배하는 예배가 순수한 예배요 참 예배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은 지 수십 년이 되었어도, 아직도 무엇을 달라고만 하는 조건부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신앙의 성장은 곧 예배의 성장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예배 수준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신 사실만으로도 감격하여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왕과 하나님으로 경배하고 찬송 드립니까? 자신의 예배 수준을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18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과거에는 하늘과 땅에 대한 권세가 없었다는 말씀인가 의문이 생깁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 2위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이시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서, 이미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묘사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본래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권세를 지니신 성자이셨으나, 하나님의 인류 구속 계획에 따라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니신 권세를 구속 사역을 완수하시고 부활하시기까지 잠시 유보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구속 사역을 완수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잠시 하나님께 맡겨 드렸던 본래의 권세를 다시 회복하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 그 주님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예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을 영접하는 모든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결과 영적 혁명이 일어나고 역사의 진로가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분이었던 나사렛 예수는 개인 개인의 삶을 변화시킴으로, 인류 역사의 모든 선한 일을 일으키도록 하신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돈도 군대도 없이 알렉산더, 시저, 마호멧, 나폴레옹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정복하셨고, 학술과 학문도 없이 모든 철학자들과 학자들이 남긴 빛보다, 더 많은 빛을 인류에게 던져 주셨습니다. 그는 수사학적인 웅변도 없이 예전에 아무도 말하지 못했고, 또 앞으로도 못할 생명의 말씀을 하시고, 연설가나 시인이 이룰 수 없는 영향을 온 인류에게 끼치신 것입니다. 그는 글을 한 줄도 쓰지 않았지만, 고대와 현대의 위인들을 다 합해놓은 것보다 더 많은 그에 대한 글을 쓰게 하셨고, 끝이 없는 설교와 토론과 예술작품과 학술서적과 아름다운 찬양의 주제가 되셨습니다. 구유에 나시어 죄수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그분이, 모든 문명세계의 운명을 지배하시고 온 인류의 영적 왕국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대주재로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말씀을 가리켜 ‘지상 명령’ ‘대 사명의 말씀’ 또는 ‘대 위임 명령’이라고도 합니다. 이 지상명령이 어느 동사에 초점이 있는가에 따라, 다르게 강조가 될 것이고, 각 분야에서 자기들의 신조로 삼을 것입니다. 선교학에서는 ‘가라’에, 제자사역에 관심 있는 단체에서는 ‘제자 삼으라’에, 기독교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가르치라’에, 기독교윤리학자들은 ‘지키라’에 강조를 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지상 명령은 한 마디로 복음을 시급히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은 교회의 사활이 걸려 있고, 온 세계 족속들의 영혼이 달려 있는 소중한 것입니다. 왜 전도가 주님의 최대 최상의 긴급명령이요 지상명령입니까?

1)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신 목적이 영혼구원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고,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이 멸망 받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까닭에,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셨고, 주님께서는 이 땅위에 오셔서 인간을 멸망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2)전도는 모든 일 중에서 중대하고 긴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할 일이 많습니다. 얼마나 급하고 바쁜 일이 많습니까? 그러나 가장 긴급한 일은,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의 우선순위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긴급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추수기가 되었는데도 추수를 하지 않으면, 봄부터 여름 내내 땀 흘려 수고한 모든 농사가 다 헛수고로 끝납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우리는 서둘러서 영혼을 추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3)사람의 운명은 모르기 때문에 긴급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언제 죽음이 찾아올는지 모르는 것이 인생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지상 명령을 수행할 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놀라운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실로 위대한 위로와 소망을 갖게 됩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백 년을 해로하자고 굳게 맹세했던 남편이 먼저 가는가 하면, 아내가 먼저 가기도 합니다. 코흘리개 철부지들을 두고 먼저 가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노부모를 놔둔 채 자식이 먼저 가기도 합니다. 행복한 환경도 영원한 것이 아니고, 부귀영화도 영원한 것이 못됩니다. 지금 내가 자족하고 만족하고 흐뭇해하고 있는 그것들도, 내 곁에 영원히 있을 것들은 아닙니다.

캐나다에서 목회하시는 어떤 목사님은, 딸이 시집가는 날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그가 운 것은 “조국도 떠나 왔는데, 너마저 떠나는구나!” 라는 생각이 뼈에 사무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내 곁을 떠나지 않는 분이 계십니다. 그는 곧 영원한 임마누엘이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모든 것들이 온다간다 말 한 마디 없이 내 곁을 떠난다고 해도, 온 세상이 모조리 나를 외면한다고 해도, 철석같이 믿었던 것들이 내 곁에서 사라져 간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나를 떠나시지 않습니다. 내가 죽는 순간에도 내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또 내가 죽은 후에도 나와 함께 영원히 계시는 분은, 영원한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어차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폭풍도 있고, 환난도 있고, 이별도 있고, 슬픔도 있습니다. 실패도 있고, 아픔도 있고, 죽음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내 곁을 떠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 의지하고 살아갈 필요가 더 절실해지는 것입니다. 구명조끼 하나를 걸치고 자신만만하게 바다에 나가서 배를 타는 것이 인간입니다. 생명줄이라는 밧줄 하나에 의지하여 자신감을 가지고 암벽을 타오르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으니, 이 얼마나 든든한 일입니까? 이 사실을 믿고 당당하게,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의 지상 명령, 대위임 명령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감히 어떻게 이 명령에 불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지상 명령이란 순종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을 어기면 반드시 책임이 따르는 법입니다. 미국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의 아버지가 운명하기 전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한 말은 “한 명이라도 더 예수님께 가도록 해야 해. 한 명이라도 더…”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바로 “한 명이라도 더 주님께 인도해야 한다.”는 주님의 지상명령 우리 모두에게 위임하신 대위임 명령이었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은 그 아버지의 유언이자 명령을 자신의 삶의 목표로 삼기로 결정한 후,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목회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잠시 스티브 스필버그가 감독한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영상으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은 온 세상을 구하는 것이라는 탈무드의 말이 나옵니다. 쉰들러가 구해낸 유대인은 1100명이나 됩니다. 오늘날 폴란드에 사는 유대인은 4천 명이 안 되지만, 쉰들러가 구해낸 유대인 후손은 6천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쉰들러는 마지막 장면에서 이렇게 흐느낍니다. “왜 이 차를 팔지 않았을까? 열 명은 구해낼 수 있었을 텐데....왜 이 핀을 팔지 않았을까? 두 명은 살릴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 흐느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는 5월 27일은 영혼 추수주일입니다. 마태복음 강해를 마치면서, 우리는 주님의 대 위임 명령이자, 최후의 유언 같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좀 더 힘쓰고 애쓰면 한 생명, 한 영혼이라도 더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대 위임 명령에, 우리 모두 반드시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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