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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를 깨닫게 하심에 감사합시다 (골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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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깨닫게 하심에 감사합시다 (골 1:6)

(골 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길거리 호떡장수에서 1,200여 개 가맹점의 대표가 된 죽 전문점 '본죽'의 경영자(김철호)가 자신의 사업 경험담을 [정성]이라는 책으로 내 놓았다합니다. 본죽을 시작하기 전 운영하던 회사를 부도처리로 은행에 넘기고 집에 돌아왔는데 부도난 회사를 처리하고 남은 것은 승합차 한 대였다고 합니다. 너무 힘들고 피곤해 문간방에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잠에서 깨어난 순간, 불현듯 어릴 적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고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 기억났다고 합니다. 몇 십 년 동안 여자 혼자 몸으로 포목점을 하며 다섯 자녀를 기르신 어머니는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늘 그렇게 말씀하시기를 '장에 가면 소도 보고 말도 본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평범한 말이지만 그에게 깨달음이 왔다고 합니다. 장에 가면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이것저것 보게 되는 것처럼,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기고 나쁜 일도 생기니, 모든 일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그 말은 세상 그 어떤 말보다 더 큰 힘이 되었답니다. 그는 그 후 재기하여 오늘의 기업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골로새 교회는 에베소에서 바울을 통해 개종한 에바브라에 의해서 복음이 전파되어 설립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골 1:7-8)고 합니다.
에바브라는 바울에게 배운 복음을 골로새에 와서 전했던 것입니다. 이때 에바브라로부터 복음을 들었던 많은 골로새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깨닫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유다인의 관원이 밤중에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를 찾아온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 바리새인을 중심한 유다 지도자들이 예수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예수를 따르는 무리는 유대교에서 추방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개인적으로 예수에 대해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고, 예수를 직접 만나 교훈을 받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여 예수를 찾아왔던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께 찾아왔을 때 예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비록 바리새인이고 유다인의 관원인 지식층이었지만 예수의 말씀에 대하여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사람이 어떻게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날 수 있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또한 어렵게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명의 떡에 대한 교훈을 주셨을 때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요 6:60)고 하였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목격한 무리는 예수를 찾아다녔습니다. 그것은 예수가 자신들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여 주실 분임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유다 사회는 이방의 식민 통치를 받고 있었으므로 정치, 경제적으로 심한 압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보이시자 무리는 예수를 왕으로 삼으면 먹는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믿고 예수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성경이 증거한 메시야에 대한 왜곡된 사상이 있었습니다. 즉 메시야를 현세적인 복을 주는 존재로만 이해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사실을 아시고 그들이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닌 먹고 배부른 까닭으로 자신을 찾았음을 말씀하시면서,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리는 예수께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신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것임을 증거하시면서 자신을 믿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며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히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아니함은 곧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므로 예수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에게 영생의 복이 주어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늘로부터 하나님이 보내신 생명의 떡이심을 밝히시며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에게 생명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만나는 사람들이 먹고 육신의 생명만을 연장할 수 있었지만, 예수 자신의 살을 먹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구속 사역을 믿는 자에게는 마지막 날에 부활의 영광을 부여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와 항상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심을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그 말씀에 대하여 의심을 가지고 수군거렸고(41) 어렵다(60)고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들은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마 13:10) 하자 예수님은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 13:13)고 하시며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하십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마 13:14-17)고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가리어진 것은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고후 4:3)고 합니다. 그러기에 복음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가려집니다. 바울은 이미 유대인들에 대하여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여(고후 3:14)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헬라인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복음을 어리석은 것으로 여겼다(고전 1:18)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알려집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 13:10-11)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해 설명하 주시고 가라지의 비유를 들은 제자들이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마 13:36)하자 주님께서 다시 설명해 주십니다.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시고 깨우쳐 주십니다. 고넬료가 기도하는 가운데 베드로를 청하라는 음성을 듣고 베드로로에게 사람을 보내 청하는 가운데 베드로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고넬료는 이달리아 연대에서 100명의 군사를 책임 맡은 로마의 관원인 백부장이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오순절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들은 첫 이방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오후 3시가 되면 기도했는데 그 기도 시간에 환상을 보았던 것입니다. 천사는 그에게 피장이 시몬의 집에 머무는 시몬이라는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도록 지시했습니다. 천사가 떠나자, 고넬료는 세 명의 경건한 종을 불러 일어난 모든 일을 말하고 욥바로 보냈습니다. 베드로는 기도하러 다락으로 올라가 기도 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온갖 짐승과 파충류와 조류를 담은 그릇을 내려 보내시는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 짐승들을 먹으라고 명하셨을 때, 그의 대답은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율법을 통하여 부정한 짐승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이 환상은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이는 이 환상이 주는 확실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뜻을 몰라 고민하던 중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로 세 사람의 사자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성령께서 이 세 사람의 도착에 대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고넬료가 보낸 자들은 고넬료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베드로에게 아기들이 온 목적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 사람들을 맞아들여 유숙하게 했습니다. 그는 환상의 의미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 수가 있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은혜요 크신 긍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복음을 '진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은혜'(6절)라고 합니다.
‘깨달은’(에페그노테 원형 에피기노스트)이란 강조를 나타내는 말(에피)과 ‘알다(기노스코)의 합성어로서 ‘어떠한 사실에 대하여 철저히 알다’라는 뜻입니다.
  
골로새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에바브라가 가르치는 복음을 듣고 깨달아 철저히 도를 믿는 믿음 가운데서 신앙이 성장하는 성도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열매를 맺어 자란다는 상징적 표현으로 전달합니다.
  
열매롤 맺어 (카르포포루메논 원형 카르포포레오)는 ‘과일’(카르포스)과 ‘맺다’(페로)의 합성어로서 어떤 일에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됩니다.
특히 이 말은 현재에도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즉 진리의 복음이 선포된 곳에서 진리의 선한 열매들이 끊임없이 맺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수학자요 과학자요 철학자였던 파스칼은 젊은 시절 정말 거침없는 인생을 살았다합니다. 17세의 나이에 이미 프랑스의 학계를 뒤집어 놓은 새로운 수학의 혁신적 논리를 펴내고 몇 년도 안 되어 오늘날 전자계산기의 초창기 모델을 발명하고 공기의 압축에 관한 탁월한 이론을 창출하기도 하는 천재성으로 인해 그는 20세도 채 되기 전 불란서 학계와 귀족사회에 유명 인사로 떠 올랐다 합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스스로 인정하기에도 하늘 찌르는 교만과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와 성적인 방종에 젖어 마구 살았다 합니다. 그러다가 1654년 11월, 그가 31세 되던 해에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합니다.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최고봉에 올랐다고 자부했던 파스칼이 자기가 상상도 못했던 지식과 사랑과 능력을 가진 존재 하나님과 일대일로 부딪쳤던 순간이었다합니다. 

그 때의 감격을 그는 <팡세>에 이렇게 기록했다합니다. "은총의 해 1654년, 11월 23일 월요일 밤 10시30분, 그 짧은 시간에 나는 하나님을 만났다. 철학자의 하나님도. 인텔리 지식인의 하나님도 아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만났다. 확신. 그리고 또 확신.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기쁨과 평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그리고 당신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들은 이제 나의 뒷전으로 사라져버리고 있다. 오직 복음을 통해서만 그 하나님은 내게 다가오고 있다. 의로우신 하나님, 세상은 당신을 모르지만 이제 나는 당신을 압니다. 환희. 환희. 환희.. 눈물. 눈물. 눈물. 너무나도 달콤하고 완벽한 포기. 내 인생의 감독이 되신 그리스도께 완전히 항복한다. 나의 기쁨은 영원하다. 내가 당신의 말씀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그 후 그는 8년 밖에 더 살지 못했지만 그 8년 동안 그는 모든 학문 활동을 접고, 기독교사 최고의 명상 집으로 꼽히는 <팡세>를 저술했다합니다. 그 <팡세> 속에는 30대의 청년이 썼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가 막힌 인간의 철학과 문학이 들어있다 합니다. 인생의 처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끝나고 있음을 정리하고 있다합니다. 그 깊은 묵상에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심오함이 있다합니다. 현대 수학과 과학의 일대 전환점을 가져온 이 젊은 천재 파스칼, 그도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깨달음을 얻고 자기 인생의 참 지평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성한 생명력과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6-17)고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심어지는 곳마다 영적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이때 맺어지는 열매는 구체적으로 갈5:22.23에 나타나 있는 성령의 열매들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성숙함의 표지들입니다.

‘자라다’(아욱사노메논 원형 아욱사노)는 ‘증가하다’,식물 따위가 ‘성장하다’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점점’ 닮아가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골로새 사람들은 에바브라를 통해서 듣게 된 복음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그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도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그러한 현상이 골로새 성도들 사이에서만이 아닌 ‘온 천하’에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온 천하’란 당시 로마 황실의 지배력이 미치는 로마 제국 전체의 영토를 지칭합니다. 당시 로마 제국에 퍼져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약5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Glover).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있었던 시기로부터 불과 3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이 시기에 50만 명에 이르는 개종자가 있었다는 것은 열매를 맺어 자라나게 하는 주의 능력이 그들 가운데에서 놀랄 만큼 활발하게 역사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롬 16:25-26)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비밀은 구원의 복음의 주체이신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골 2:2)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비밀의 깨달음은 들어야만 한다고 합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합니다.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이 누리는 은혜의 매개체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5,6)하며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5절)고 합니다.
  
골로새 성도들의 신앙이 그들이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데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골로새 성도의 신앙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교회가 언제 개척되었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분명한 것은 그들이 복음을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이란 단편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이라 할 수 있겠지만. 복음 진리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뿐 아니라,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를 믿는 자로서의 생활 방식,사고 방식,그리고 미래에 대한 소망까지 나타내는 전반적인 내용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골로새 성도들이 온전한 신앙을 갖기 전에 선행되었던 것은 바로 그 복음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가스펠 송 가수인 피터 빌혼이 어떤 때에 아이오와 주에 있는 포트메디슨 형무소에 가서 가스펠 송으로 전도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합니다. 그 때에 부른 노래 가운데 "날개가 상한 새는 날 수 없습니다" 하는 노래였는데 이 노래를 듣고 죄수 하나가 찾아와서 울면서 "날개가 상한 새는 영영 날수 없는 겁니까?" 하고 슬픈 얼굴로 묻자 아무 대답도 못 했는데 그래 집에 돌아왔는데 이게 기억에서 지워지질 않습니다. '날개가 상한 새는 날수 없습니다.' 

그 슬퍼하는 사람을 보고 깊은 은혜 가운데 노래를 다시 지었는데 그 작곡한 노래가 이렇습다 합니다. "예수께로 가면 어떤 죄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 맡기기만 하면 실패한 과거도 새롭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에 그대를 맡기십시오. 그대의 날개는 다시 새로워지고 높이 높이 푸른 하늘을 날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았다합니다.

20년 후에 뉴욕 YMCA에 무슨 일이 있어서 가서 행사에 참여할 때 자기 눈앞에 미군 대령 한 사람이 버젓이 나타나서 인사를 하더랍니다. "제가 20년 전에 상한 날개를 치유하면 다시 날 수 있다고 한 당신의 노래를 듣고 새 사람이 된, 바로  그 사람입니다.”하더랍니다. 복음 송만 들어도 새로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온전한 신앙,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적인 소망을 품기 위해서는 복음의 말씀을 듣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진리이고,진리를 가진 자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등에 대한 들음이 우리의 신앙을 온전케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믿음을 갖는 것은 복음에 대한 들음으로 가능합니다.
  
그런가하면 온전한 신앙을 성취하는 것도 이 들음으로 이루어집니다.
만일 골로새 성도들이 하늘에 소망을 쌓아두어야 한다는 진리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들에게 어떤 지표가 있었겠습니까?
  
어려움과 역경이 닥쳤을 때에 그것에 대처할 근거가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듣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요즘 시대는 듣는 것에 소홀한 것 같다는 저적들을 합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자리에 성도들이 모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름대로 복음의 말씀을 들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분도 계시지만 대부분의사람들은 일주일에 복음의 말씀을 주일날 한 번 듣는 것으로 족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머물면서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책에 일주일 동안 쌓인 먼지를 쓰윽 닦아내고 교회로 들고 오는 것이 습관화된 성도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신앙을 이루려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지만,어찌 주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는데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 무언가 목표가 생기고,분별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을 때의 모습이 온전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그 온전함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지표가 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정녕 우리는 듣는 것 없이는 온전한 신앙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를 기억하면서 온전한 신앙을 이루기 위해 말씀 듣는 일에 열심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들으려면 전하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선포하는 자 없이 복음은 결코 들을 수 없습니다. 골로새 교회에 이러한 복음을 전하는 일을 바로 에바브라가 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러한 고백을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고 합니다.

일본의 한 여학교 기숙사에 강도가 들어왔습니다. "꼼짝마라, 그리고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것들을 다 내놔라..." 위협한 강도는 그 방에 값나갈 것을 다 챙겨넣고 나가려는데 한 여학생이 "아저씨, 중요한 것을 다 가져 간다면서 가장 중요한 저 책은 왜 안가져가요?"라고 하며 한 낡은 책을 가리켰습니다. 도둑은 그 책도 집어넣었습니다. 그 도둑은 훔친 물건 들을 파는데 그 책은 아무도 사려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아무도 안사는 이 책이 무슨 책이기에 그 여학생이 가장 귀한 책이라고 했을까?"하며 그 책을 읽어 보았으나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여학생이 한말이 계속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아서 읽고 또 읽는동안 그만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회개하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열심히 믿다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가 부흥 목사가되어 한 곳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며 자기가 옛날 예수 믿게 된 동기를 이야기하자 앞에서 한 중년 부인이 마구 울어 댔습니다. 분명히 자기 설교에서 은혜를 받아 우는 줄 알고 간증을 요구했습니다. 그 여인은 나와서 기숙사에서 성경을 준 여학생이 바로 자기라고 하며 그 후 강도를 위하여 계속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빼앗아간 성경을 통해서도 구원의 역사는 나타납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자,곧 복음을 들려주는 자가 없으면 사람들은 복음을 들을 수 없고 또 온전해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파하여야 합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 6:19)라는 바울의 결단이 우리의 결단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신앙인의 간증입니다. '나는 천국에서 꼭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 그는 대학교 4년 동안 제일 친했던 친구였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 제일 처음으로 그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고 신앙을 권유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그는 내게 거센 반발로 거절을 했습니다. 그 후 군에 입대한 친구는 1966년 1월 3일 한국 해병장교로 월남전에 참가하던 중 사망했습니다. 

나중에 전사 통지서를 받은 뒤 그가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네가 그렇게 예수님에 대해서 확신을 가진 것을 볼 때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사실은 속으로 네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네가 가진 확신이 나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네가 믿는 예수님을 나도 믿고 싶었지만 작은 자존심 때문에 너를 미워했다. 비행기를 타고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 우연히 미국 침례교 목사님을 만났고 그 분에게서 복음을 들었다. 이제는 네가 믿는 예수를 나도 믿게 되었고 요즘에는 소대원들과 함께 아침 예배를 드리고 있다.” 나는 천국에서 그 형제를 만날 것입니다.‘

전도는 천국에서 만나는 영광이 있습니다. 오늘도 전도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아름다운 날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교회 설립 80주년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되 하나님의 은혜인 복음 진리를 깨닫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성경을 반포하는 일에 협력하게 하시고 태신 자를 작정하며 복음을 전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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