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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에게 왕이 계시다! (시 4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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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왕이 계시다! (시 45:1-17)

1 마음이 흥겨워서 읊으니, 노래 한 가락이라네. 내가 왕께 드리는 노래를 지어 바치려네. 나의 혀는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다네. 
2 사람이 낳은 아들 가운데서 임금님은 가장 아름다운 분, 하나님께서 임금님에게 영원한 복을 주셨으니, 임금님의 입술에서는 은혜가 쏟아집니다. 3 용사이신 임금님, 칼을 허리에 차고, 임금님의 위엄과 영광을 보여주십시오. 4 진리를 위하여, 정의를 위하여 전차에 오르시고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두어 주십시오. 임금님의 오른손이 무섭게 위세를 떨칠 것입니다. 5 임금님의 화살이 날카로워서, 원수들의 심장을 꿰뚫으니, 만민이 임금님의 발 아래에 쓰러집니다. 
6 오 하나님, 하나님의 보좌는 영원무궁토록 견고할 것입니다. 주님의 통치는 정의의 통치입니다. 7 임금님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임금님의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주셨습니다. 임금님의 벗들을 제치시고 임금님께 기쁨의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8 임금님이 입은 모든 옷에서는 몰약과 침향과 육계 향기가 풍겨 나고, 상아궁에서 들리는 현악기 소리가 임금님을 흥겹게 합니다. 9 임금님이 존귀히 여기는 여인들 가운데는 여러 왕의 딸들이 있고, 임금님의 오른쪽에 서 있는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단장하였습니다. 
10 왕후님! 듣고 생각하고 귀를 기울이십시오. 왕후님의 겨레와 아버지의 집을 잊으십시오. 11 그리하면 임금님께서 그대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임금님이 그대의 주인이시니, 그대는 임금님을 높이십시오. 
12 두로의 사신들이 선물을 가져오고, 가장 부유한 백성들이 그대의 총애를 구합니다. 13 왕후님은 금실로 수놓은 옷을 입고, 구중 궁궐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니, 14 오색찬란한 옷을 차려입고 임금님을 뵈러 갈 때에, 그 뒤엔 들러리로 따르는 처녀들이 줄을 지을 것이다. 15 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안내를 받아, 왕궁으로 들어갈 것이다. 
16 임금님, 임금님의 아드님들은 조상의 뒤를 이을 것입니다. 임금님께서는, 그들을 온 세상의 통치자들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17 내가 사람들로 하여금 임금님의 이름을 대대로 기억하게 하겠사오니, 그들이 임금님을 길이길이 찬양할 것입니다.


지난 주간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외국 여행을 처음 한 것도 아닌데, 이번 일본 여행 중에 유난히 다른 나라에 왔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면서‘하나님의 나라는 얼마나 다를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다른 것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다를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 나라 시민이라는 생각으로 일본에서 지내보았습니다.
흥분이 되는 일이기도 했고 매우 유익한 기간이 되었습니다.

선교사님께서 안내해 주셔서 쿄토 산 속에 있는 미호 박물관에 가 보았습니다. 마침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고대 메소포타미아 시대의 유리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둘러보면서, 뛰어난 고대 문명에 대해 감탄하였습니다. 그 때 고대 문화도 이 정도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가 보지 않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알 길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박물관을 나오면서 답은 너무나 간단히 내려졌습니다. 박물관 주위에 봄 기운이 완연한 아름다운 자연을 펼쳐져 있는데, 나무 하나만 해도 어두운 전시실에 조명을 통하여 본 전시물과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작품이었습니다. 그것도 무궁무진하게 온 천지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게다가 박물관에 찾아가는 비용, 들어가는 입장료 등이 매우 비쌌는데,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은 모든 사람에게 공짜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이 얼마나 대단한가! 

본 시편 45편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한 왕의 결혼식 때 왕을 위하여 지은 노래입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왕의 결혼식 노래가 왜 성경에 기록이 되었을까요?
이 시편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예언적으로 노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절 사람이 낳은 아들 가운데서 임금님은 가장 아름다운 분, 하나님께서 임금님에게 영원한 복을 주셨으니, 임금님의 입술에서는 은혜가 쏟아집니다. 

17절 “내가 사람들로 하여금 임금님의 이름을 대대로 기억하게 하겠사오니, 그들이 임금님을 길이길이 찬양할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왕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왕이라고 말하는 것은 왕이 다스리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를 되찾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 요한이 선포한 첫 번째 말씀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마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이 전파하신 첫 번 말씀도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신약에는 ‘하나님 나라’, ‘천국’이란 단어가 100여 번 나오는데, 이 단어들은 거의 모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더 세상에 머무신 이유도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행 1:3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제자들은 물로 사도 바울이 전파한 복음의 핵심도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행 28: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제가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좀 장황하게 말씀드린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어느 정도로 중요한 것인지 묻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크게 네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첫째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살아왔다
둘째 하나님 나라를 등지고 살아왔다.
셋째 하나님 나라 주변에서 빙빙 돌면서 살아왔다.
넷째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살아왔다. 
여러분은 어느 항목에 해당되십니까? 괴로워도 반드시 대답을 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되,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구주요 사랑의 주님이요 치유자이시요 기도 응답자라고 생각하지만, 왕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을 여러분 읽고 들었지만 여전히 ‘모든 것을 받는 비결’을 몰라서 못 받고 삽니다.
세상에서 잘 살아 보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대개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산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분명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불확실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반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만큼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서울 법대 교수인 권오승장로님께서 40세에 예수를 믿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목사를 만났는데, 세상적으로는 자신보다 공부도 잘하지 못한 것 같고 성공한 것 같지도 않은데, 목사님들은 알곡만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자신은 겉껍데기만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법을 전공하고 책을 많이 썼지만 자신이 쓴 책은 국회에서 법 개정이 되면 한 순간에 쓰레기 취급을 받게 되고, 50년 이상 읽히는 책이 없는데, 성경은 수천 년을 지내면서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는 책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법전을 내려 놓고 성경에 몰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자신의 전공에 대한 기초와 지혜를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소위 선진국의 법에서 도움을 받으려 했었지만 가장 귀한 지혜는 성경에 있음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진짜가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하면 한번 사는 인생, 고통스럽게 마치게 됩니다.

스탠리죤스 선교사, 2차대전 후 독일에서 독일 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강연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연을 하는데, 그 자리에 모인 독일 교회 지도자들이 주먹으로 책상을 쾅쾅 두드려댔습니다. 스탠리죤스 선교사는 당황했답니다, 연설을 마치자, 그들이 다가와 말했습니다.“당신은 오늘 독일인들이 어찌하여 파시즘에 기울이게 되었는지를 정확하게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독일 교회는 삶의 의미와 목적과 목표를 가져다줄 무언가를 찾고 찾았는데,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이 하나님의 나라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은 치루어야 할 대가 지불이 있습니다.
10절 왕후님! 듣고 생각하고 귀를 기울이십시오. 왕후님의 겨레와 아버지의 집을 잊으십시오. 
다른 나라의 공주였던 신부에게 이제 왕후가 되었으니 자신의 조국과 아비의 집을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마땅히 세상 소망을 정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11절 그리하면 임금님께서 그대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누가 사랑스러우시겠습니까? 세상 소망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말을 들으면 불안한 분이 계실 것입니다. 위험한 설교라고 느끼실 것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믿고도 진짜 축복인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는 것입니다.

제게 어느 청년이 이런 메일을 보내온 적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 는 말씀이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은...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내려놓고... 모든 선택과 판단 의지를 하나님께 모두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까?.... 제 꿈을 포기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날 만큼 괴롭습니다.”

많은 성도들에게 이런 갈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도 이런 고민이 될까요? 왕이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이런 고통이 있을까요?

마태복음 13장에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와 진주 장사의 비유가 나옵니다. 밭에 값비싼 보화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모든 것을 다 팔아 밭을 샀습니다. 가장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 모든 것을 다 팔아 진주를 샀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것을 다 주고 바꿀 만큼 값어치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하나님 나라입니다. 모든 것을 다 주고 살 하나님 나라입니다. 

어느 기독교신문의 설문에 의하면‘믿지 않아도 천국에 간다’는 사람이 71.5%나 됩니다. 모든 걸 다 팔아서 살 가치가 있는 하나님 나라를 아무 것도 안 팔고, 아무 것도 안하고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습니다. 이런 얌체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때문입니다. 
바울은 태장으로 맞고, 돌에 맞고, 파선 당하고, 굶주리며 풍랑을 만나 죽을 뻔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 때문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사는 것이 불안하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눈을 열어달라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C. S. 루이스는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기들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아기는 따뜻하고 안전한 어머니 뱃속에 머무는 쪽을 더 좋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기 생각에는 엄마의 뱃 속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여겨질 것입니다. 그러나 아기가 원하는대로 하면 어떻게 될까요? 죽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살면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영광을 보게 되면 세상의 것들은 버려집니다! 그래서 놀라운 것입니다.

12-15절은 자신의 나라를 잊어버리고 왕과 하나가 된 왕후가 어떤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인지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12-15절 두로의 사신들이 선물을 가져오고, 가장 부유한 백성들이 그대의 총애를 구합니다. 왕후님은 금실로 수놓은 옷을 입고, 구중 궁궐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니, 오색찬란한 옷을 차려입고 임금님을 뵈러 갈 때에, 그 뒤엔 들러리로 따르는 처녀들이 줄을 지을 것이다. 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안내를 받아, 왕궁으로 들어갈 것이다. 
우리가 왜 이런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합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신랑으로 왕으로 믿고 고백하고 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가장 큰 유산입니다. 
:16 임금님, 임금님의 아드님들은 조상의 뒤를 이을 것입니다. 임금님께서는, 그들을 온 세상의 통치자들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어제가 아버님 소천하신지 1년 추도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나라 백성임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외에 나가 사는 교민들, 자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려고 애를 씁니다. 
외국에 살아도 한국 사람이니까요!

어제 큐티 창세기 46:28-34절에 보면 요셉이 아버지 야곱과 가족들을 굳이 애급에서는 천직이라 여기는 목축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화려한 바로의 궁전이 있는 도시가 아니라 변방인 고센 땅에 떨어져 지내도록 합니다.
요셉의 의도는 후손들이 애급에서 살아가면서 애급에 동화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무시당하고 손해를 볼지라도 그리스도인이야말로 그리하여야 합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삶인지 잘 몰랐는데, 일본에 가니 외국인으로 나그네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계실 때, 어떤 마음이셨을지 알 것 같았습니다.

금요일에 한국에 도착하니 모든 것이 편안했습니다. “내 나라에 왔구나!”
그러면서 생각하였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신 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내 나라같을까? 다른 나라같을까?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외국인이다 나그네다 라는 의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이나 행동이나 하나님의 나라 원리대로 사는 습관을 갖는 일이 중요합니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기만 해서는 큰 일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삶이 익숙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핵심은 예수님의 통치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셔서 다스리는 사람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일본에서 묵었던 호텔 뒤에 산이 있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산에 올라가며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산은 깊었고 숲도 울창하였습니다. 처음 가보는 산이었고 방향도 모르는 숲 속이었지만 두렵지 않았습니다. 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길을 따라 산에 올랐다가 길을 따라 내려 왔습니다. 내려 오면서“길 위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 똑같은 산이라도 길이 없었다면 대단히 고생스럽고 위험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길 위에 있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길 위에 있습니까? 
지금 길 위에 있는지 아닌지는 세 가지만 물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대답하기 힘들다면 길을 잃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있으면 어디서나 안심인 것입니다.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인생의 길 위에 바로 서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왕이라 고백하고 사는 것은 바른 길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예수님과 함께 여행을 떠나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나라로 가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사는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디서나 분명한 자기 신분 고백을 하여야 합니다. “제게는 왕이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 여권입니다.
주 예수님의 통치 아래 살고,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이 습관이 되고 삶이 되고 자연스럽게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는 자는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합니다.
선포하십시오. “나에겐 왕이 계시다!”
삶으로 증거하십시오. “저 사람에게는 왕이 계시구나!” 사람들이 인정할 때까지!

예수님을 왕이라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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