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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눅 12: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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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눅 12:13-21)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교회에 다녔습니다. 할아버지는 설교 시간만 되면 졸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손자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조실 때마다 깨워드려라. 그러면 매주일 내가 천 원씩 주마.” 그래서 손자는 설교 시간에 열심히 할아버지를 깨웠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난 후부터는 할아버지가 아무리 졸아도 손자기 깨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예배 후에 목사님이 손자를 불렀습니다. “요즘은 왜 할아버지를 깨우지 않니?” 그러자 손자가 말했습니다. “할아버지가 깨우지 않는 대가로 2천원을 주신다고 했거든요.” 

돈의 위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돈은 순진한 아이의 마음도 사로잡습니다. 돈이 있어야 생필품도 구입하고, 병에 걸려도 치료를 받을 수 있고, 교육도 받을 수 있습니다. 돈이 있어야 물건도 생산되고 건물도 지어집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돈이 있어야 콧대도 높아지고 어깨도 든든해집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때로는 돈이 법의 심판도 좌지우지할 수 있습니다. “조개는 칼로 열고, 변호사의 입은 돈으로 연다.”는 영국 속담도 있죠. 우리는 돈이 곧 능력이 되고 존재 가치가 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돈의 위력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되고 있습니다. 돈이 생존과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돈이면 다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잘못입니다. 돈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돈의 위력에 굴복하고, 심지어는 돈을 숭배하기까지 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 6:24)고 말씀하셨을 때에 ‘재물’이라는 일반적인 단어 대신에 ‘돈의 신’을 뜻하는 ‘맘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돈을 숭배하는 세태를 비판하시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돈을 섬기고 살지는 않습니까? 

2.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내 형제에게 명해서 유산을 나와 나누라고 해주십시오.”(13절)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구약시대부터 내려오는 유산 상속에 관한 법이 있었습니다. 그 법의 핵심은 장자가 다른 형제들보다 두 배의 유산을 받는 것입니다.(신 21:17) 그 사람이 예수께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자기 형이 두 배 이상의 유산을 가로챘거나, 혹은 형이 자기보다 배나 되는 유산을 물려받는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분배인으로 세웠느냐?”(14절)라고 질책하듯 말씀하신 것을 보면 그의 형이 부당하게 유산을 차지한 상황이 아니라, 형이 자기보다 배나 되는 유산을 상속받은 것이 배 아팠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그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에 대한 만족과 감사가 없이 형이 차지한 것을 넘보는 탐심이 가득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께서는 뒤이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15절)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이 재물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돈을 숭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째서 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까? 머리로는 그것을 알고 있지만, 마음에는 여전히 탐욕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돈을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3.

예수께서는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 이야기를 비유로 들려주셨습니다. 어떤 부자가 밭농사를 지어 풍작을 거두었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곳간을 넓혀 곡식을 저장하고 마음껏 먹고 마시며 살아보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20절) 하나님께서 그 부자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부르신 까닭은 그가 단지 부자였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 부자가 “자기를 위해서 재물을 쌓아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해서는 부요하지 못한 사람”(21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지도 않고 그 은혜에 대해 감사할 줄도 모르는 것입니다. 부자는 밭에서 거둔 많은 소출을 ‘내 소출’이라고 했습니다. 착각입니다. 밭의 소출은 그 부자 혼자만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지혜롭게 밭농사를 지었어도, 하나님께서 적절한 날씨나 건강을 허락하시지 않았다면 그가 그렇게 많은 소출을 거둘 수 있었겠습니까? 말하자면, 밭의 풍성한 소출은 하나님과 부자의 합작품이었습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100%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부자가 살아있는 것부터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부자는 하나님의 몫을 가로챘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데,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십일조도, 감사의 예물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자체를 갖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해서 부요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래 전에 여러분께 들려드린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사업이 잘 되어서 만 불을 벌게 해주시면 십의 2조를 바치겠습니다.” 

한 달 후 그는 8천 불을 벌었습니다. 그러자 다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기도에 응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의 수고를 덜어주시려고 십의 2조인 이천 불은 떼고 8천불만 주셨군요. 주님의 배려에 감사 드립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이웃과 나누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자는 그 소출을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쌓아두고 먹고 마시고 즐길 궁리만 했습니다. 물질을 이웃과 나누며 살지 못하고 혼자 움켜쥐고 살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쓰고 넘치도록 풍성한 재물을 주신 것은 그 중에서 일부를 가난한 이웃에게 전달하라고 맡겨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재물 속에는 우리 자신의 몫만 아니라 이웃의 몫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몫을 가로채는 것입니다. 

『주일학교에 열심히 나오는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주일학교 시간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가장 간절한 소원을 담아 기도문을 써보도록 시켰습니다. 그 아이도 기도문을 썼습니다. “하나님, 올해 생일에는 작은 선물이라도 받고 싶어요. 제 기도를 꼭 들어주세요.” 

그런데 그 아이의 생일이 지났지만 선물은 받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어쩌지? 하나님께서 네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셨구나.” 그러자 아이가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선생님.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생일 선물을 전해주라고 누군가에게 맡기셨겠죠. 그런데 그 사람이 그것을 깜빡 잊었나 봐요.”』 

4.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에게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1955년생 동갑내기입니다. 두 사람 모두 대학을 중퇴한 후에,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스티브 잡스는 애플 컴퓨터를 설립해서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었고, 또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2000년 은퇴한 후에 그 동안 번 돈을 세상에 환원하는 엄청난 기부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도 이웃을 위해 베푼 것이 없고, 2011년 세상을 떠날 때에도 세상을 위한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구두쇠 억만장자’라는 것이었습니다. 빌 게이츠는 모교인 2007년 하버드 대학 졸업식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연설의 골자는 인류를 위한 헌신과 고난 당하는 이웃을 위한 나눔과 섬김을 촉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연설의 골자는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성공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빌 게이츠가 인생의 방향을 제시했다면, 스티브 잡스는 인생의 속도를 촉구했습니다. 인생의 방향과 속도 – 둘 중에서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일까요? 

교우 여러분, 누가 진짜 부자입니까? 누가 어리석은 부자입니까? 빌 게이츠가 세계 최고의 부자라서 그렇게 많은 기부와 뜻 깊은 활동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에게는 나눠줄 것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나 혼자 쓰기에도 턱없이 부족한데, 어떻게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고 싶으십니까?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과 혼자 움켜쥐고 살아가는 사람의 차이는 재산 정도의 차이가 아닙니다. 탐욕의 차이입니다. 많이 버는 만큼 나눠줄 것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탐욕을 멀리하는 만큼 나눠줄 것이 생깁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탐욕을 멀리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어리석은 부자에 불과합니다. 

5. 

저는 잠언 30장에 있는 ‘아굴의 기도’를 참 좋아합니다. 

주님께 두 가지 간청을 드리니,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허위와 거짓말을 저에게서 멀리하여 주시고,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오직 저에게 필요한 양식만을 주십시오. 제가 배가 불러서, 주님을 부인하면서 '주가 누구냐'고 말하지 않게 하시고, 제가 가난해서, 도둑질을 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거나, 하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7-9절)

아굴이라는 사람이 드리는 첫 번째 기도는 허위와 거짓말을 멀리하여 달라는 기도입니다. 즉 영혼의 순결함과 생활의 거룩함을 위한 기도입니다. 두 번째 기도는 생활의 필요는 채워주시고 그 이상의 탐욕은 멀리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오직 저에게 필요한 양식만을 주십시오.” 

여러분, 가난하면 불편하고 불안합니다. 서럽고 고통스럽습니다. 심지어는 가난한 탓에 생명까지 잃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 중에 적지 않는 사람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헐떡거리고 있습니다. 풍요와 진보의 21세기에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가난한 탓에 굶어 죽고 병들어 죽는 사람들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이 고난에 찬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온갖 탐욕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부터 이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말했듯이, “모든 이들의 필요를 채워줄 음식은 충분하지만, 모든 이들의 욕심을 채워줄 음식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시대에 누군가가 굶주리고 있다면, 그것은 다른 누군가가 지나치게 많이 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가난에 찌들어 있다면, 그것은 다른 누군가가 필요 이상으로 움켜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바로 다른 이들의 몫까지 먹고 움켜쥐고 사는 장본인은 아닙니까?

빌 게이츠와 멜린다가 결혼하던 날 어머니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습니다. “From those to whom much is given, much is expected.” (많은 것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보다 많은 것을 베풀 의무가 요구된다.)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어머니가 있었기에, 빌 게이츠가 그토록 귀한 나눔의 실천을 통해서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인류에게 참된 인생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빌 게이츠가 어머니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가난해서 힘들고 서러울 때에 열심히 주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한두 번 기도하다 멈추지 말고, 꾸준히 눈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동시에, 우리가 결코 탐욕에 물들지 않도록 더불어 기도합시다. 진실한 섬김과 겸손한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고, 또한 작은 나눔의 실천부터 시작합시다. 

지난 고난주간 동안에 금식을 하고 식비를 아껴 사랑의 헌금을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나눔의 실천을 시작합시다. 내가 원하는 만큼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만큼,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일을 시작합시다. 

마음속에 있는 탐욕을 물리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눔을 실천하면서 그 기쁨을 맛보는 것입니다. 나눔의 기쁨을 맛보는 만큼 탐욕이 물러갑니다. 할 수 있는 만큼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탐욕에 물든 우리 자신의 마음과 세상을 치유하는 주님의 도구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현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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