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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빌 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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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빌 4:10-13)


얼마 전 재단 식구들과 후원자 40명이 함께 강화도 마니산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당뇨 때문에 거의 매일 걷기 운동을 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걷는데는 자신이 있어서 별로 염려하지 않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마니산이 만만치 않았습니다.제가 운동삼아 거의 매일 걷는 남산 길과 경희대 캠퍼스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주로 (그래봤자 연래행사지만) 다니는 도봉산과도 수준이 좀 달랐습니다.

1.7 키로 정도의 거리여서 그리 멀지는 않았는데 1,7 키로 내내 거의 평지가 없이 계속 올라만 가는 코스였습니다. 그리고 길도 좁고 험했습니다.
괜히 따라왔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따라 오지 않았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작전을 세웠습니다. 내가 쓸 수 있는 힘과 속도의 70-80%의 힘과 속도로 천천히 올라가자. 그냥 한 번에 한 걸음씩 힘을 아끼며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말고 천천히 올라가자.

작전은 성공하였습니다. 산행이 쉽지 않았던 만큼 정상에 오른 기쁨도 컸습니다. 정상에 올라서서 산 아래의 모습을 내려다 보는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마니산 만만치 않았지만 나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산 길과 경희대 길처럼 아름답고 포장이 잘 되어 있는 길을 걷는 것과 같은 때도 있지만 때로는 마니산을 올라가고 내려오는 것처럼 험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을 겁니다.
누구는 남산 길을 꽃구경하며 걷는데 나는 죽어라고 힘들고 위험한 마니산을 길을 걷는가 싶으면 참 불공평한 세상 때문에 기분 나쁠 수도 있고 의욕이 꺽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나약한 생각을 접고 포기 하지 않고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내가 걸을 수 있는 힘과 속도로 걷다보면 불공평하고 왜곡된 세상에서도 승리하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세상 참 만만치 않지만 사람들은 세상 만만치 않은 것만 알고 자기가 더 만만치 않은 존재라는 걸 종종 잘 잊는 것 같습니다.마니산 등산을 한 그날은 '나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아주 확인한 기분 좋은 하루였습니다.
만만치 않은 산과 싸워 승리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꼭 남산 길 같아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세상에는 세상과 인생이 남산 길 같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어떤 사람들은 잘 포장되고 예쁜 남산 길을 걷는데 어떤 사람들은 험한 마니산을 걷는 것을 불공평한 일로 보고 모두가 다 평등하게 편한 남산 길을 걷는 세상을 만들어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이 바뀌면, 다시 말해서 좋고 편한 세상이 되면 사람들은 세상에 패배하지 않고 성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까요?
저희 교회가 세운 열매나눔 인터내셔널에서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말라위 그물리라라는 마을에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매주 그물리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있었던 일을 일기 형식으로 보고해 주기 때문에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의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라위와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정말 천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서 말라위와 우리 한국은 비교의 대상이 되질 못합니다. 말라위에서 가장 힘든 일은 기본적인 상식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도 그와 같은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지금의 말라위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던 우리나라는 지금의 우리나라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만큼 변했고 발전했습니다. 세상에 우리나라 만큼 변하고 발전한 나라는 세상에 몇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거의 일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가난한 나라들이 가장 모델로 생각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는 우리나라처럼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나라 사람들은 우리 대한민국의 절반 만큼이라도 자기들이 사는 나라와 세상이 변한다면 행복하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와 같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별로 행복한 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험하고 어렵고 불공평하다며 불만을 토로하며 전과 별 다름 없이 별로 행복한 줄 모르며 살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적 같은 변화를 이루어냈는데도 사람들은 기적처럼 행복해지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말라위의 변화를 위하여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삶이 너무 힘들고 비참하기 때문에 저들의 마을과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만한 세상으로 바꾸어 주려고 정말 우리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말라위를 남산 길과 같이 잘 포장되고 예쁜 그런 길로 만들어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한다고 말라위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니산을 오르다 보니 정말 일반인들이 오르기에는 힘들고 어려운 곳곳에 계단도 있고 다리도 있었습니다. 아주 가파른 곳에는 로프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산을 오르는 일은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올랐습니다. 결국 정복했습니다. 저만 오른 것이 아니라 40명 전원이 다 올랐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소에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사람이어서 자신들의 표현대로 저질 체력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함께 산행을 한 후원자분들 중에는 암투병 생활을 했던 분도 계시고 일 년 전쯤 큰 뇌수술을 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아마 무척 힘드셨을 겁니다. 그런데 모두가 다 산에 올랐습니다.

우리 모두는 마니산 보다 강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인생과 세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인생과 세상이 마니산 길 같아도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우린 그 험한 세상과 인생보다 더 강하니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창조하셨으니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알고 또 좋아하는 말씀입니다.특히 오늘 본문 중 빌립보서 4:13의 말씀인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다 잘 알고 좋아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으로 표현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남산 길을 주시는 것보다 마니산을 정복할 수 있는 능력 주시는 것을 더 좋아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정복하며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 12장 1절부터 4절까지를 보면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대하여 도무지 상식적으로 잘 이해되지가 되지 않는 인생과 세상의 문제를 질문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왜 오히려 악한 자들의 삶은 평탄한데 의인의 길이 오히려 험하고 어려운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의인의 삶이 형통하고 악인의 길이 고통스러워야 하는게 옳아 보이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악인은 오히려 남산 길을 걷고 의인이 마니산을 걷느냐는 것이 예레미야의 질문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예레미야의 질문에 하나님은 질문으로 대답하십니다.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 (렘 12:5)

하나님의 질문 속에 예레미야의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들에게 평안한 환경을 축복으로 주시지 않고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능히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싶어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질문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대답이십니다.

저는 이 말씀이 참 좋습니다.

고린도전서 10:13에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할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함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아멘.

이 말씀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감당할 시험>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말씀을 곱씹어 보면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시험은 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는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옳지 않은 불의와 편법으로 남산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그것 때문에 억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억울한 삶을 사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 왜곡된 세상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다 실패하고 불행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아직 공평해지지 않았는데, 세상은 아직 좋아지지 않았는데 그 불공평하고 왜곡된 세상에 패배하지 않고 그것을 뚫고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 성공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을 탓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 삶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정말 약한 세상의 약자들을 위하여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하여 힘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말해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마니산처럼 험하고 어렵다고 하여도, 불의한 방법으로 남산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지 않고 승리하는 삶의 능력을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이 더 옳고 지혜로운 일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요즘 여러분의 인생은 남산 길이십니까 마니산 길이십니까? 혹시 여러분은 예레미야와 같은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사는 자신의 삶이 힘들고 어려운 것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힘들어 하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마니산 만만치 않았지만 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니 저 뿐만 아니라 저질 체력이라고 자신을 우습게 보았던 사람들까지 모두 다 그날 마니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저질 체력인 사람도 그 만만치 않아 보였던 마니산 보다 강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시험보다 우리를 훨씬 더 강한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속의 사도바울의 고백이 맞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마니산이 아니라 에베레스트도 넘을 수 있습니다.

믿음 안에 있는 우리는 세상보다 강한 자들입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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