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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기도문강해 ⑨-하나님의 용서, 우리의 용서 (3) (요일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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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강해 ⑨-하나님의 용서, 우리의 용서 (3) (요일 1:5-10)


1. 매일 죄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기도는 두 가지 용서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우리의 용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죄사함의 은혜를 받은 우리는 이제 우리 이웃들이 우리에게 잘못한 것을 용서하여 주겠습니다 라는 서약이 담긴 기도입니다. 지난 두 주간에 걸쳐 이웃의 잘못을 용서해주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용서의 마지막으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어거스틴은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 기도가 주기도문에서 가장 중요한 기도라고 했습니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고 매일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고,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본성 때문에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릴 때는 울릉도에 연탄공장이 딱 하나 있었습니다. 연탄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니, 한결같이 얼굴이 새까맣습니다. 작업복도 연탄으로 시꺼멓게 더럽혀졌습니다. 그리고 연탄공장 근처에도 석탄가루가 날려 시꺼멓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보는 것, 먹는 것, 마시는 것, 즐기는 것, 스마트폰, 인터넷, 도박, 광고 등... 우리 생활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차고 넘칩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더라도, 우리도 모르게 더러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더러워진 손발을 씻듯이, 우리는 매일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회개의 유익

죄에 대한 설교를 하면, 성도들의 반응이 싸늘합니다. 부담스러워하고, 심지어 어떤 성도들은 화를 내기도 합니다. 미국 인디애나주 해몬드 제일침례교회에서는 한 청년이 회개를 촉구하는 목사를 향해 권총을 발사한 사건도 있었다고 합니다. 스데반 집사는 유대인들을 향해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하라는 설교를 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울은 그 충격이 그의 가슴 깊이 박혀서 훗날 회개하여 위대한 복음 전도자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죄가 없으면, 십자가도 없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롬5:20)고 바울사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의 허물과 죄를 가슴 아파하고 회개할 때, 십자가의 놀라운 은혜와 감격을 깊이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간직하고 있는 복음은 십자가의 피 묻은 복음입니다. 죄인임을 철저히 깨닫는 사람에게 십자가의 은혜가 흘러 넘칩니다. 죄사함의 기쁨이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회개의 유익이 있습니다. 두 가지 입니다. 
첫째, 회개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는 지름길이다. 

자녀들이 집에서 장난을 치다가 아빠가 소중히 여기는 도자기를 깨뜨렸습니다. 이 때부터 자녀들은 아빠를 피해 다닙니다. 같이 밥을 먹어도 아빠 얼굴을 피합니다. “아빠가 알면 안되는데...” 불안합니다. 걱정이 태산입니다. 아빠와의 관계가 소원해집니다.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수하는 것입니다. “아빠, 저희들이 장난치다가 도자기를 깨뜨렸어요. 잘못했습니다” 라고 고백하면, 아빠는 “그래, 아빠는 벌써 다 알고 있어. 이미 용서했어. 아빠는 너희들이 언제 잘못을 비는지 기다리고 있었어. 다시는 그러지마.” 하며 용서해주십니다. 이제 자녀들은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아빠와 다시 친밀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우리의 죄악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들이 죄를 고백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죄책감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죄를 고백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5-7절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하나님과의 사귐, 다시 말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빛 가운데서만 가능합니다. 우리 안에 어둠이 있으면, 죄악이 있으면, 하나님과의 사귐이 차단됩니다. 회개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회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능력과 복을 받게 한다.
자녀들은 아버지가 누리는 기쁨과 영광, 아버지가 갖고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을 다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을 풍성히 받아 누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막히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좋은 것들이 차단됩니다. 죄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영적 찌꺼기입니다. 하수구가 간혹 머리카락과 같은 찌꺼기로 막히듯이, 우리 몸의 수많은 혈전들이 혈관 속의 피 흐름을 막아 위험한 지경에 빠뜨릴 수 있듯이... 우리가 짓는 죄는 하나님의 은혜의 흐름, 축복의 흐름을 막아버립니다. 

물은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피도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중간에 막는 이물질이 없는 한 흐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물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의 흐름을 막는 이물질인 죄만 회개한다면,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행 2:38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종 좋은 은사를 주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성령의 은사와 열매는 우리 곁에 이미 와 있습니다. 창문을 열면, 햇빛이 창으로 들어오듯이, 수문을 열면 저수지에 모여 있던 물이 폭포수같이 쏟아져 내리듯이, 수도꼭지를 틀면 바로 꼭지 앞에 까지 와 있는 수돗물이 콸콸 나오듯이, 우리의 죄를 회개하면, 성령의 은혜의 물줄기가 우리에게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3.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

회개는 헬라어로 ‘메타노이아’ 라고 합니다. 
메타노이아= 메타(변화)+누스(마음), 회개는 마음의 변화입니다.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마음의 변화는 근본적인 삶의 자세가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적인 자랑과 명예, 돈, 쾌락으로 향하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서울행 열차를 타고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내가 탄 차는 부산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경주역에서 내려서 다시 서울행으로 갈아타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렘18:11)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

몇 주 전에, 제 차가 서부정류장 바로 앞의 횡단보도에서 멈췄습니다. 보행자들이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연세 많은 분이 지팡이를 짚고 계셨는데 똑바로 걷지 못하고 갈 지 자로 걷는 것입니다. 술 취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그가 횡단보도 앞에 멈춰선 차들에게로 막 들어오려고 하는데 옆 사람이 붙잡아주었습니다. 그분이 횡단보도를 다 건넌 후, 또 옆 도로를 걸어가는데 거기에는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잘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데, 얼마나 위험한지 모릅니다. 저는 속으로 “차들이 많은데 부딪치면 안되는데, 어쩌나, 어쩌나.” 불안했습니다. 

영적 시각장애인은 자기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길이 얼마나 악한 길인지, 결국 멸망에 이르는 길인지도 모르고 가고 있습니다. 
누군가 외칩니다. “그리로 가면 큰 일 납니다. 돌이키세요.” 
지혜로운 사람은 그 소리를 들으면 멈춰섭니다. 이 길이 바른 길인지 살펴봅니다. 우리도 때로는 영적 시력이 약해지기도 합니다. 
악한 길에 서 있어도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 스펄전 목사님은 악한 길에 대한 네 가지 판단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가장 자주 넘어지는 죄가 무엇인가? 
우리가 자주 넘어지는 부분, 이것이 악한 길입니다. 어떤 성도는 많은 분들에게 칭찬 듣는, 너무나 신앙생활을 잘 하시는 분인데, 너무 충동적입니다. 곧잘 불같이 화를 냅니다. 화 내고도 금방 차분해져서 자신이 했던 말이나 행동에 대해 너무나 미안해합니다. 이 분에게는 충동적인 기질, 쉽게 화내는 것이 악한 길입니다. 

둘째, 비판하는 말을 들었을 때, 언제 가장 화를 잘 내는가? 
잘못한 일이 없는데 비판을 받는다면, 화를 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실수한 거야”하고 가볍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연약한 부분을 잘 알고 있는데, 그것을 누군가 비판한다면 화를 냅니다. 비판을 들었을 때, 화를 자주 내는 부분은 우리의 악한 길입니다. 

셋째, 신앙생활 중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부분이 무엇인가?
특히 설교를 들을 때, 가장 듣기 싫고 화가 나는 부분, 그것이 우리의 아킬레스건입니다. 이 아킬레스건이 바로 우리의 악한 길입니다. 

넷째, 자기 의가 악한 길이다. 
어떤 성도는 매사에 최선을 다합니다. 사람들에게 존경받습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더 바르게 삽니다. 누구보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 합니다. 악한 길에 서 있는 사람, 죄 짓는 사람들을 혐오합니다. 너무 선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위험합니다. 
바리새인처럼, 자기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옷은 자기 의로 이미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그는 십자가 은혜가 필요없는 사람입니다. 천국은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받은 자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 의, 이것은 바리새인이 지닌 무서운 악한 길입니다. 

4. 지금, 내가 바로 돌이켜야 할 사람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바로 지금, 악한 길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지금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다.” 

돌이켜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 가운데 많은 분들은 이미 악한 길에서 돌이킨 분들입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그러나, 아직 돌이키지 않은 분들은 이 말씀을 들으십시오. 
“너희는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
다윗이 남의 아내를 빼앗고 그 남편을 전투에서 죽게 한 중대한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책망하셨습니다. 나단은 다윗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마을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자이고, 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부자에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자기에게 있는 양과 소를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암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손님 접대를 했습니다. 이 가난한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없고 이 암양새끼 한 마리 뿐이었습니다. 자식처럼 키웠는데, 부자가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왕은 분노하면서 나단선지자에게 말합니다. “그 놈을 당장 잡아오라. 죽어 마땅한 자라.” 

그 때,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오.”
다윗은 용상에서 내려와서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악한 길에서 돌이켰습니다. 
다윗의 인생에서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실 때, 회개할 줄 알았습니다. 베드로를 위시한 예수님의 12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였습니다.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누가 위대한 사람입니까? 죄 안 짓는 사람이 아닙니다. 회개하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가 바로 그 사람임을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말씀을 전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저 자신에게도 돌이켜야 할 악한 영역이 남아 있었습니다. 성도들에게 좋은 말씀을 먹이려고 힘쓰고 애쓰면서도, 정작 저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저와 비슷한 분은 계시지 않습니까? 
오늘도 주일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서비스하며, 다른 성도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도록 섬기는 사역을 하면서, 정작 우리 자신은 그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은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물을 길어 마시게 하면서 정작 우리 자신은 그 물을 마시지 못하고 갈증을 느끼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할 사람,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우리 자신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한일서 1:5~10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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