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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신을 시험하라 (고후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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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시험하라(고후13:5) 

고린도 교회는 믿음도 있고 많은 은사도 체험한 교회였지만 반면에 문제도 많은 교회였습니다. 고린도교회가 가진 문제들 중에 가장 큰 문제는 비방이었습니다. 성도들끼리 비방하고 그리고 끊임없이 사도바울을 비방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비난에 자신이 비방 받을 잘못이 없다는 것을 계속 변론하였고 이제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서신인 고린도후서를 끝내는 자리에 와서는 뼈에 사무치는 말 한마디를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①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
  
② 과연 너희 안에 예수가 있기는 있냐 라는 것입니다. 
 
심각한 바울의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을 우리가 받는다면 우리 성도들이 스스로의 신앙을 점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기는 쉽지만 자기 스스로를 성찰하기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말씀의 거울 앞에서 자신을 살핀다면 결코 남을 비판 할 만한 교만함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성도로서 자기반성이 없으면 자기만족에 빠지게 되고 말씀의 진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이런 사람은 늘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발전이 없는 것이지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로 그러 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 마지막으로 보내는 서신에서 바울은 강력한 한마디의 일침을 놓는 것입니다. 

“너희들 정말 믿음이 있기는 있냐. 너희 안에 예수가 있기는 있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시험하라고 했는데 우리가 자신을 살핀다는 의미에서 무엇을 시험해 봐야 할까요? 

1. 내가 기도하고 있는 사람인가 시험해야 합니다.
 
빌4:6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보다 앞서야 할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가 문제를 해결하고 이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시91:15절에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내개 간구 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면 그날로 문제는 끝입니다. 시118:5절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고통의 문제가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 했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다고 했는데 속이 후련하다 그 말입니다. 해결되었다는 말입니다.
  
기도는 우리 주님도 하셨던 것입니다.

눅22:44절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주님도 하나님이신데 기도할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필요 했습니다.  이 땅에 계신 동안에는 연약한 육신의 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① 우리 인간은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 

마26:41절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기도가 없는 사람은 반드시 시험에 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기도 하는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을 이깁니다. 그리고 시험을 이기게 됩니다. 자기를 이기지 못할 때 시험에 들게 되는 것이지요. 나를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 해야 합니다. 

② 회개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행8: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악한지 모릅니다. 이 악한 마음을 회개하고 악한 마음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③ 남을 용서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마5:44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   도하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남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아예 용서할 마음조차도 생기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의 감동이 오게 되고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면서 나도 남 못지않은 인간이구나 하면서 용서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자신을 거칠게 비난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자신을 돌아보며 기도했다면 바울을 그렇게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바울의 증거하는 설교말씀을 통하여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의 죄도 하나님께 용서 받기 위해서 용서 해야 합니다. 막11:25절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내가 용서 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용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교회와 성도들이 그렇게 서로 위하고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나눠주고 은혜가 넘쳤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행2:42절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해답은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였습니다. 자신에게 또 교회가 기도가 살아 있으면 반드시 은혜와 평안과 부흥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한 가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방인들과 다르게 구별되어 좀 거룩하게 사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레11:45절에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애굽에서 구원해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어떻게 해야 성도가 하나님의 최종적인 뜻인 거룩을 이루어 갈 수 있을까요? 딤전4:5절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하나님의 최종적인 뜻을 이루는 길은 기도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여러분 자신을 시험하고 돌아보십시오. 내가 기도하는 사람인가라고 말입니다.


2. 나는 말씀 중심의 사람인가를 시험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인생을 설계하고 말씀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 중신이란 말의 반대말은 무슨 중심일까요? 두 가지입니다.

① 자기 중심입니다. 매사에 자신이 중심이고 자기에게 맞추어 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잘못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에게 화를 냅니다. 이기적인 사람이지요. 남의 마음을 조금도 이해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② 세상 중심입니다. 말씀이 무어라고 하는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이 사람의 관심은 늘 세상입니다. 늘 세상 따라 갑니다. 말씀보다 세상이 우선이고 세상이 더 좋습니다.  
우리 성도가 왜 말씀 중심이 되어야 할까요? 하나님은 말씀으로 명령하시고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 하시고 말씀으로 감동 주시고 말씀으로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경우 창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노아의 경우 창8:15절에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브라함 창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모세 출6: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부터 모든 믿음의 사람에게 말씀으로 다가 오시고 말씀으로 명령하시고 말씀으로 인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고요, 자신을 반드시 돌아보아야 할 사람입니다.
  
진리의 말씀 곧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고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시대의 윤리나 도덕 교과서가 아닙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인간의 생명을 위한 지침입니다. 
 
약1:21절에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온유함으로 받으라는 말씀은 복음의 진리를 겸손하게 받으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한 자세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말씀을 무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66:5절에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아 그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했는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떨어 보았습니까? 말씀이 두려워서 덜덜덜 떨어 보았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무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고 뭐고 내 멋대로 하는 거예요. 교회에서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이 두렵지 않는 거예요. 내 중심대로 막 하는 것이지요.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①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마4:4절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육신의 양식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요6:27절에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탄식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사55:1-2절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식욕이 떨어지면 건강의 적신호입니다. 식욕이 왕성하면 젊고 건강한 징조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영의 양식입니다. 말씀이 부족한데도 안 받고 싶다면 영적인 병에 걸린 것입니다. 

② 내 인생길에 안내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영적 생활, 영적 생명의 성취를 위한 탁월한 안내서입니다. 시119: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앞길에 등이 되고 빛이 되어 나의 인생을 가장 값있게 가장 올바르게 안내하는 지침서인 것입니다. 

말씀 없는 인생은 소경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도 자기 중심적이던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소경이다, 즉 맹인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고 마15:14절에서 말씀 하신 것입니다.
 
옛날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들을 가득 태운 노예선이 미국을 향해 떠났습니다. 배 밑창에 갇혀있던 흑인들은 반란을 일으켜서 일제히 갑판으로 뛰어 올라 갔습니다. 백인들을 바다에 던지고 모든 기물을 파괴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선장실에 있는 나침반마저 부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자유롭게 되었다고 기뻐했지만 나침반이 없는 그 배는 방향을 잃어버리고 파도에 견디지 못해서 결국 파선 당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항로에도 성경이라는 영혼의 나침반이 있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의 파선을 당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3. 나는 교회 중심의 사람인가를 시험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성전 중심이었습니다. 집을 지어도 성전을 향해서 짓고 문도 성전을 향해서 문을 답니다. 단6장에 다니엘이 기도 할 때 항상 어디를 향해서 기도했다고 했습니까? 그 먼 이방 땅 바벨론에서도 예루살렘의 하나님 성전을 향해서 창문을 열어놓고 하루 세 번씩 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하나님의 성전 중심인가 하는 것을 알 수있는 대목입니다. 
  
오늘날 신약시대에 교회 중심의 사람이라는 것은 내가 얼마나 교회의 유익을 위하는 사람인가라는 말입니다. 교회에 유익을 끼치는 사람인가 아니면 교회에 해를 끼치는 사람은 아닌가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나 깨나 교회걱정으로 산 사람입니다. 고후11:28절에 보면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하기 바로 전에 보면 바울은 복음 사역을 하면서 엄청나게 고통 받은 사실을 죽 얘기 하고 있습니다. 

고후 11장에 보면요 이 바울이 당한 고통과 고난이 어마어마한 고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아무리 고난을 당하더라도 교회만 잘 된다면 자신의 고통쯤은 아무 상관 없다는 말이 바로 고후11:28절 말씀입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하고 라는 말은 나에게 주어진 고난은 상관 없다는 말입니다.
교회만 부흥하고 교회만 잘 된다면 고난쯤은 상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피로 세운 교회가 거슬립니까? 교회 충성하고 섬기는 것이 부담이 됩니까? 시험 해 보시고 내 속에 과연 예수가 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기도의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말씀중심의 사람입니까? 아니면 세상, 자기 중심입니까? 여러분은 교회 중심의 사람입니까? (문해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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