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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년왕국 (계 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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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 (계 20:1-10)  

재림하시는 주님 앞에선 그 누구도 대항할 자가 없다. 두 짐승이 산 체로 유황 불붙는 못에 던져지고 두 짐승을 수하의 종처럼 부리던 용이 잡힌다. 요한은 계20:1에서 이 용을 잡는 것을 보았다.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온 천사가 용을 잡아서 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無底坑)에 던져 넣는다. 무저갱이란 끝없이 떨어지는 바닥없는 홀이다. 아비소스(a;bussoj)의 홀에 던져진 용은 나오지 못하도록 잠그고 인봉한다. 즉 용은 계20:2, 12:9의 기록대로 옛 뱀, 마귀, 사탄이라 불리우는 자다. 천 년간 결박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민족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려고 가두는 것이다. 

사탄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천 년이 차면 잠깐 놓이게 되고 싸움을 하게 된다.(계20:7) 여하튼 이 마귀가 천 년 동안 아비소스에 갇혀 있는 동안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게 된다. 그러니까 천 년 왕국이란 하나님이 사탄을 가둠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천 년 왕국이란 무엇일까?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다. 재림하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앞에서 다 심판을 받은 이 세상의 천 년 왕국은 에덴 동산보다 더 좋은 세상이다. 천 년 왕국은 혼인식에 참석한 주님의 신부들이 신랑되신 주님과 함께 혼인 페스티벌을 벌이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 천 년 왕국은 세 가지 설이 있다. 

천 년 왕국이 먼저 이루어지고 예수님이 재림한다는 후 천년설이 있고 천 년 왕국이 상징이기에 천 년 왕국을 예수님이 오실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무 천년설이 있고 천 년 왕국은 역사의 종국에 이루어질 왕국이기에 그 나라가 임하기 앞서 예수님이 재림한다는 전 천년설이 있다.

왜 이렇게 다른 견해를 가지는가? 

①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천 년 왕국이 바울 서신과 복음서에는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② 천 년 왕국을 문자로 보느냐, 상징으로 보느냐의 차이 때문이다.

③ 전승 중의 하나가 인류 역사를 7시대로 구분하였는데 아담 시대로부터 주님 오실 때까지 6시대이고 천 년 왕국은 7번째 시대의 틀로서 보는 여부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 신학자인 저스틴(Justine), 이레네우스(Irenaeus), 터틀리안(Tuertulian) 같은 이는 천 년 왕국을 인정했지만 클레멘스(Clemens), 오리겐(Origen) 같은 동방의 교부들은 천 년 왕국을 거부했다. 게다가 어거스틴(Augustin)은 무 천년설을 주장하므로 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교회가 다스릴 세상에 세워지는 나라로 이해되었다. 물론 세 가지 천 년 왕국론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만 나는 성경적으로 요한계시록을 보면서 전 천년설을 믿는다. 

전 천년설이란 천 년 왕국을 주님이 재림하므로 역사적으로 이루어질 혼인 페스티벌로 보는 것이다. 즉 주님의 재림은 이렇게 된다. 하나는 공중으로 재림하시고 주 안에서 잠자는 자들과 믿는 자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끌어 올림을 통해 혼인식을 하는 일이다. 그리고 성도는 주님을 대장으로 삼아 그를 따르는 주님의 군대가 되어 지상으로 재림하여 혼인 페스티벌을 갖는 기간이 천 년 왕국이다. 
  
1. 천 년 왕국을 다스리는 자가 누구인가?

순교자 신앙으로 살다가 죽은 자들이다. 계20:4에서 요한이 본 것은 세 가지이다. 

① 보좌를 보았다.

거기 앉은 자들이 심판하는 권세를 받은 것을 보았는데 이들은 신앙의 싸움에서 꼭 승리한 자들이다.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여기 이 사람들은 이긴 자들이다. 넘어뜨리려는 갖가지 미혹을 당해도 싸워 이긴 자들이다. 신앙의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한 자들이 많다. 안된다. 반드시 보좌에 앉는 자가 되려면 이겨야 한다.
  

② 목 베임을 받은 영혼을 보았다.

왜 목 베임을 당하며 죽었는가?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순교 당한 것이다. 환난의 날에 믿음을 버리지 않고 기꺼이 목을 내어놓은 것이다.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 - 예수가 어떤 분이기에 죽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진리와 가치가 있기에 목을 내어놓고 죽는가? 순교자들의 모습이 여기 있는 것이다. 예수를 위해 죽는 것을 택한다. 인도네시아 목사님들이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순교자 기념관을 데려갔는데 그들은 한국의 교회가 저절로 된 줄 알았다가 감동받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다고 한다. 목숨을 내놓는 신앙, 그것이 교회의 자양분임을 본 것이다.
  

③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은 자를 보았다.

표를 받지도 아니하였다. 이들 역시 물질 문제, 세속적인 가치의 문제에 굴하지 않은 이긴 자들이다. 계13:15을 보면 환난의 날, 짐승의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자들을 다 죽이게 하였다. 그러므로 박해 받은 자들은 순교자인 것이다.  

따라서 요한이 본 이 세 가지 사람들은 다 신앙으로 살다가 신앙으로 이기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목을 내놓은 순교자들인 것이다. 천 년 왕국을 다스리는 자는 순교자다. 순교 신앙으로 산 자에 대한 특별한 보상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한다. 이 영광스런 왕 노릇의 날을 믿으라. 이 날이 목숨을 다하려는 자에게 약속이 되어 있는 통치의 날이다. 

왜, 우리가 예수를 위해 죽어도 좋은가? 다스리기 때문이다. 그 날이 오면 왕 노릇 한다. 이 땅에 다스림을 받은 자를 향해 신령하고 기이한 몸으로 변화된 영체로서 왕 노릇 한다. 왜, 우리가 지금 목숨을 다해 주의 일을 하려고 하는가? 세상 사람이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하는데도 주님을 위해 재산도 드리려고 하는가? 그 이유는 왕 노릇의 날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다윗을 보라. 고난의 날을 견딘다. 도망을 다니고 굴 속에 있으면서 망명의 날을 견딘다. 위협을 느낄 때 침을 흘려가면서 미친 척을 해야 되는 비참함의 날을 견딘다. 왜냐하면 영광의 날을 믿기 때문이다. 왕위에 앉아 다스릴 그 날을 확신하기 때문에 추격해 오는 창과 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윗은 왕 같이 다스릴 성도의 그림자다. 
  

2. 천 년 왕국에 들어갈 자는 누구인가?

세상을 사는 동안 예수를 잘 믿고 있다가 환난의 끝에 공중 재림하는 예수님에게로 이끌려 올라간 사람들은 주님의 신부로서 다스리는 자로 오신다. 허나 환난 시대에 살아있는 자들, 2/3가 다 죽고 멸망을 받았지만 1/3의 사람들이 살아있다. 그들 중에 유대인도 있고 이방인도 있다. 그 살아남은 자들은 해의 뜨거움과 어두움의 재앙으로 인해서 화상과 종기의 고통으로 신음할 것이다. 

하지만 사탄이 감금되고 두 짐승이 유황 불에 들어갔으므로 회복과 고침이 있다. 천 년 왕국에 들어가는 자는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시는 하나님의 의로운 은혜 앞에서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택한 자를 위해 환난을 감하므로 살아남아 있는 자가 모아진다. 그리고 주님이 왕 노릇 하는 순교 신앙의 사람들과 함께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모든 민족을 각각 분별한다. 선민, 유대인, 이방인 등 각각 다 분별한다. 

마25:32~33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이 각각 분별하는 일은 가라지와 곡식을 구별하는 비유의 뜻과도 같다.

마13:24~30을 보면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두었다가 추수 때에 가라지는 불사르게 하고 곡식은 내 곳간에 넣게 된다. 이처럼 곡식으로, 양으로 기록된 사람은 하나님의 오른편에 두게 된다. 그들은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왼편에 있는 염소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신다. 

끝 날에는 이렇게 분명한 나뉨이 있다. 섞여 있을 수 없다. 그리하여 양으로 인정된 자는 놀랍게도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였다. 즉 주님이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주님이 벗었을 때 옷 입혔고 주님이 병들었을 때 돌아보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는 일이란 주님의 형제, 믿는 자에게 물 한 그릇이라도 주는 것이 양이 되는 것이다. 

주님의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라도 먹을 것을 주었다면 양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아! 실로 놀라운 일이다. 구원 받은 것은 아니지만 양으로 간주되면 이 사람은 살아남은 것도 은혜인데 자기 자신도 모르고 있는 천 년 왕국에 들어간다. 정말로 복된 은혜이다. 이 나라는 천 년간 조화의 나라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낙원을 빼앗기고 살았다. 그러나 양으로, 알곡 곡식으로 구별된 자는 아담이 죄 짓기 전 상태로 회복된다. 

그렇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믿음을 지켜 구원 받아 영화될 이는 이끌림 받은 주의 신부들이다. 왕 노릇 하는 이는 순교자들이다. 그리고 천 년 왕국에 육체를 지닌 체 들어갈 이는 각각의 민족들을 구별할 때 양으로 간주된 이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천 년 왕국에서 하나님이 본래 원하셨던 조화의 나라에서 사는 것이다.
  

3. 천 년 왕국이 끝날 때는 어떻게 되는가?

계20:7을 보면 사탄이 옥에서 놓여 활동하게 된다. 그래서 사탄이 땅의 사방 백성을 미혹하고 싸움을 붙인다. 싸움을 모르던 사람들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다. 여기 사탄이 다시 활동하게 하여서 성도들과 그리고 사탄의 편에 넘어가지 않은 성도들을 공격하려고 한다.(계20:9) 그리고 사랑하는 성 예루살렘을 포위한다. 

왜 저들은 천 년 왕국 백성들을 죽이려 하는가? 그 이유는 사람이라면 사탄의 유혹과 꾀임을 당하는 도전 앞에 서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에덴 동산의 무죄 시대에도 뱀을 통한 사탄의 미혹이 있었다. 천 년 왕국 끝에도 조화의 삶을 살던 저들에게 다시 사탄의 미혹이 제공되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다루시는 원리다. 

계20:8을 보라.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고 하였고 
계20: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라고 하였다. 

천 년 왕국 기간에 번성하고 번성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천 년 왕국은 
①조화의 세계이므로 장수하고(사65:20), 
②사탄이 감금되었으니 모든 사람이 율법을 배우고(사2:2~3) 전쟁도 없는 왕국(사2:4, 사4:3), 갈등 대적도 없는 왕국이다.(사65:25) 그래서 번성 번성하는데 천 년 왕국이 차면 사람을 반드시 시험하여 다루어야 한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뱀의 미혹을 거절할 수 있었으나 넘어진 것처럼 천 년 왕국 시대의 번성된 사람들은 유혹이 없었다. 여기서 유혹이 다시 주어질 때 동조자가 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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