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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마귀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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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강) 요한일서 3:7-8 마귀의 일

 

<본문>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한일서 3:7-8)

<설교>

죄를 어떤 특정한 행위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신자로서 죄가 무엇인가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죄에 대해 잘못 이해하게 되면 마귀에 대해서도 전혀 엉뚱한 생각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마귀의 존재에 대해 잘못 이해한다는 것은 마귀의 장난에 놀아날 수 있다는 뜻이 되기에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신앙이 아니라 마귀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신앙으로 착각하여 열심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를 어떤 특정한 행위로 이해하는 것은 마귀가 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예수님이 아닌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께 나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바라보며 전혀 다른 곳을 향해 달려가게 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죄를 특정한 행위로 인식하게 되면 자신에게서 죄로 여기는 행위가 없을 때 자연히 자기 의가 살아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가 살아남으로써 죄인된 인간으로서의 자기 상태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상태를 보지 못하는 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상관없이 사는 것이기에 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보게 하는 현장입니다. 그리고 신자는 자신의 죄, 악함을 봄으로 말미암아 참으로 못나고 악한 자신의 실체를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결코 내세울 것도 잘난 것도 없는 존재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저 사람보다 더 낫다고 여겼는데 십자가 앞에 나와 보니 내가 죄인의 괴수며 멸망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신자는 자기 부인의 길을 갈 수 있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길을 훼방하는 것이 마귀입니다.

8절에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합니다.

 

마귀의 일이 뭐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마귀의 일을 신자의 종교적 행위를 방해하는 것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기도 못하게 방해하고, 교회가지 못하도록 하고, 설교 시간에 졸게 하는 것이 마귀의 일이 아니란 것입니다.

 

마귀의 일을 알려면 마귀가 세상에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세상이 어떤 상태가 되었는가를 보면 됩니다. 그것이 마귀가 목적하고 노린 것이고, 세상은 지금까지 그때의 그 상태로 흘러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처음에는 어떤 상태였습니까? 인간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 세상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순종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막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교제가 단절되고 생명에서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결국 마귀의 일은 단순히 선악과를 먹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생명의 교제에 머물러 있는 인간을 하나님과 단절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을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에서 멀어지게 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잘될 수 있는가에 관심을 두게 한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생각하기보다는 세상에서 예수님의 이름과 영광을 드러내는 쪽으로 미혹했습니다. 이러한 시험에 대해 예수님은 의인은 떡이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고 하심으로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자신의 복과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이야 말로 마귀에게 미혹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아니라 떡을 위해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8절에서 말씀한 대로 예수님은 이러한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늘의 천군천사를 동원이라도 하셨습니까? 아니면 직접 나서서 예수님과 결투를 하셨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힘있는 분을 원했지만 예수님이 하신 일은 그냥 힘없이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뭐가 마귀의 일을 멸하신 것입니다.

 

마귀의 사상은 약자가 아니라 강자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말하는 하나님의 뜻 역시 세상에서 강자되게 하는 것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사상은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천군천사를 동원해 원수를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으시면서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일을 멸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때로 ‘하나님을 잘믿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불신자보다는 잘살게 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가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고통 받고 어려움을 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무슨 하나님의 뜻이냐는 반발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고통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고통과 어려움에서도 하나님을 높이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즉 하나님은 신자를 고통과 어려움에 있게 하심으로써 그런 환경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 때 마귀의 일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군사들이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내려와 보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구원하지도 못하면서 남을 구원한다면서 조롱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묵묵히 달려 계십니다.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오셔서 자신을 매단 모든 사람을 치실 수도 있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고 자기 힘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할 뿐임을 아시기에 묵묵히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죽는 길이라 할지라도 아버지의 뜻을 의심치 않고 순종하시는 것이야 말로 마귀의 일에 대한 승리였던 것입니다.

 

신자는 이러한 예수님을 바라봄으로써 마귀의 일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7절을 보면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의로움은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따라서 예수님 안에 있는 신자라면 예수님에게 순종을 배울 수 있고, 신자에게서는 순종이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가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배우며 사는 것이야 말로 마귀의 미혹에 승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향한 우리의 포부와 목표를 도우시고 이루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신가는 이미 증거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런 신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인간의 일을 돕고, 지켜주는 수호신으로서의 신을 요구할 뿐입니다. 나를 위한 신의 존재에 관심을 둘 뿐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미혹에 들어있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귀의 일은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다른 거짓된 하나님, 다른 예수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인간의 구미에 맞는 신을 제공함으로써 참된 하나님과 상관없는 존재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삶이 어렵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에 의심을 가진다면 그것이야 말로 마귀의 미혹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이미 복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것을 복으로 여기지 않게 합니다. 세상에서 좋은 것을 복으로 여기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복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가로 복을 저울질 하게 하는 것이 마귀의 일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이것을 가졌으면’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가지기를 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것을 깨닫고 그것으로 감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믿으면 복이 주어진다는 것은 마귀의 속임수일 뿐입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욕심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마귀의 일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잘믿는다면 결과는 천국이 아니겠습니까? 믿음에서 생명을 바라보고 소원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지 믿음의 댓가로 세상을 원하고 바라본다면 그것을 온전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믿음은 신자로 하여금 세상이 아닌 천국을 바라보게 하는 능력이고 힘인데, 오히려 믿음을 이용해서 세상에 더 집착을 하게 한다면 그것은 분명 마귀의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에서 무엇을 보십니까? 십자가에는 세상의 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짐을 홀로 지신 예수님의 고난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이 우리를 생명에 있게 합니다. 여기에 모든 소망을 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귀의 일에 미혹되지 마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승리하는 신자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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