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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지리산 편지] 다윗 같은 대통령 (2) - 다윗의 정치 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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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1

정치공학(政治工學. Political Manipulation)이란 말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나가는 과정을 일컫는다. 앞에서 말한 바대로 아기스 왕을 찾아갔던 다윗이 세가 불리하자 미친 사람 흉내를 내어 사지(死地)에서 벗어나게 된 경우가 정치공학의 한 구체적인 예이다.

정치공학이 발전한 나라는 일본과 중국이다. 일본의 경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의 경우 가히 정치공학의 화신이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는 삼국지를 읽노라면 중국 정치공학의 진수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는 독일의 히틀러나 러시아의 공산주의 같은 전체주의 국가들이 정치공학을 철저히 행사하였다.

한 나라를 일사불란하게 통치하는 것이 가능하려면 정치공학적인 수단이 아니고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독재국가나 전체주의 사회들의 경우 체제유지를 위하여는 정치공학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좋은 면으로서의 정치공학은 필요하다. 인도의 간디의 경우 대국민적 자신의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고 유지하기 위하여 많은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바로 정치공학을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였던 경우이다.
이런 점에서 다윗을 좋은 예가 된다. 다윗은 정치공학을 스스로 체득(體得)하여 활용하였던 천재였다.  

다윗 같은 대통령 (11) - 엔게디 굴에서

다윗의 정치공학(政治工學)적 사고(思考)와 접근은 엔게디 황무지에 있는 한 동굴에서 실감나게 연출되었다. 다윗이 아기스 왕의 손아귀에서 겨우 벗어나 이스라엘 땅의 엔게디 황무지에 머물 때였다. 사울 왕이 3천명의 특공대를 거느리고 전국을 샅샅이 뒤져 다윗을 찾던 중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나타났다는 정보가 그에게 날아들었다. 사울 왕과 그의 특공대는 한걸음에 엔게디로 향했다.

그때 다윗은 한 동굴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용변을 보러 굴을 찾은 사울 왕이 하필이면 다윗이 숨어 있는 굴을 찾아 들어 다윗 앞에서 용변을 보는 것이었다. 다윗의 동지들 중 하나가 하늘이 준 기회이니 사울 왕을 죽이자고 소곤댔다. 그러나 다윗은 서울의 외투 자락만 칼로 베어 들고는 그냥 살려 보냈다. 그리고는 굴을 나서는 사울왕의 등 뒤에 몸을 나타내어 크게 소리쳤다.
“사울 왕이여 나는 당신을 죽일 수 있는 자리에서도 당신을 존중하여 살려주고 당신의 외투자락만 베었거늘 당신은 왜 나를 끝까지 미워합니까?”하고 말했다. 이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 본 3천명의 사울왕의 특공대들은 마음 속 깊이 다윗을 편드는 사람들로 변해갔다.

다윗이 실행한 공치공학의 극치를 이루는 장면이라 하겠다. 그때 굴속에서 다윗이 사울을 죽였더라면 밖에 있는 3천명의 친위대가 들어와 다윗 일행을 몰살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오히려 사울을 살려 주면서 자신의 목적을 200% 달성하였다.
이런 통찰력을 그냥 술수나 책략으로써는 발휘되지 않는다. 인격의 깊이와 정치력 판단력과 역량등이 성숙의 경지에 이르러 발휘되는 것이다.  

다윗 같은 대통령 (12) - 비폭력 무저항 정신

엔게디 황무지에서 다윗이 사울을 살려 보낸 일에 대하여 정치공학적인 측면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할 것이다. 그때 다윗의 생각에는 분명히 영적이고도 본질적인 동기가 깃들어 있었을 것이다. 아마 다음의 두 가지 동기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음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왕을 해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둘째는 비폭력 무저항 정신을 실현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을 것이다.
엔게디 사건 이후에도 몇 차례나 다윗이 사울을 살려 보낸 경우를 살펴보면 다윗의 마음 바탕에 이런 뜻이 깃들어 있었음직도 하다.

이러한 다윗의 비폭력∙무저항 정신을 이어온 사례는 인도의 간디의 경우나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경우에 이어져 왔다. 킹목사는 버스 좌석에 흑인과 백인을 구분하여 앉게 하는 법에 도전하면서 다음 같이 말했다.

“폭력을 써서는 안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백인들이 우리에게 어떤 고난과 차별을 하여도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해줍시다.”

성경의 기록을 살펴 짐작컨대 다윗이 엔게디 광야 동굴에서 벌렸던 비폭력 시위는 그가 일생동안 일관되게 적용하였던 다음의 몇 가지 원칙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다윗 같은 대통령 (13) - 다윗과 만델라

엔게디 황무지에서 동굴에서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자리였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미루어 짐작컨대 다윗의 마음속에 몇 가지 원칙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 첫째가 다윗이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성경의 원리를 실천하려 하였을 것이다. 로마서 12장17절에 악에 대한 대처방법을 다음같이 말해준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같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악은 악을 부르고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는 교훈이다. 예수는 이점을 일컫기를 “칼을 쓰는 자는 칼로써 망한다”고 하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용서와 사랑이 필요한 때이다. 다윗은 자신의 숙적 사울 왕에게 이 정신을 실천하려하였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1918- )는 우리 모두에게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다.

그는 44세 때 종신형을 받은 후 72세 때까지 죄수로 살았다. 그러나 그가 석방되어 대통령이 되자 모두를 사면하였다. 백인들에게 보복을 하지 않았다. 관용과 화해로 흑백 공존시대를 열어 나갔다. 그는 용서로써 악의 고리를 끊었다.  

다윗 같은 대통령 (14) - 그의 비전과 꿈

다윗이 위대하였던 점은 그가 4백명의 동지들과 함께 아둘람 굴에 숨어 지내던 때에 드러난다. 사울 왕의 물샐틈없는 추적에 쫒기고 쫒긴 다윗은 인적이 끊긴 불모지를 찾아들어 몸을 숨겼다. 바로 아둘람 굴이란 곳에 그가 숨어있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져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때의 정황(情況)을 성경은 다음 같이 전해준다.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명 가량이였더라”(사무엘상22:1-2)

척박한 땅, 열악한 여건의 환경에서 자기 한 몸도 지내기 어려운 처지에 이래저래 소문을 듣고 다윗 휘하로 모여 드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기존 체제와 질서에 적응치 못하고 경쟁에서 낙오되거나 밀려난 인물들이었다. 그런 사람들 4백명이 모였으니 그 어려움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 바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최악의 조건에서 최선의 비전을 품었고 최고의 꿈을 꾸었다. 바로 ‘조국의 미래에 새벽을 깨우겠노라’는 비전이었다. 그 비전에서 그는 찬양과 감사로 하루하루를 보람되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다윗 같은 대통령 (15) - 새벽을 깨우리로다.

다윗과 그의 동지들 400명이 아둘람 굴에 숨어 숨을 죽이며 살아가던 때는 그들의 하루하루가 마치 살얼음을 밟고 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때였다.
사울왕의 특공대 3천명이 전국 땅을 이 잡듯이 뒤지며 다윗의 흔적을 찾고 있던 때였다.
거기에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인적이 드문 불모지여서 먹을 양식이 부족한 것을 물론이려니와 마실 물조차 부족한 처지였다.

이런 절박한 여건이었으나 그들의 사기만큼은 하늘 같이 높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가슴 속 깊이 품고 있었던 비전 탓이었다.
어떤 역경도 시련도 이길 수 있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비전과 꿈에 대하여 다윗은 시편 57편 7절과 8절에서 다음 같이 읊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7절에서 다윗은 자신의 마음 속 깊이 임한 확신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8절에서는 그 확신이 이스라엘 역사에 새벽을 깨우는 사명임을 다짐하고 있다. 어둠에 잠긴 민족의 현실과 백성들의 좌절을 딛고 일어설 새벽의 역사를 불러일으키겠노라는 비전이었다.
그리고 그 비전과 꿈에 인생을 걸겠노라는 다짐이었다.  

다윗 같은 대통령 (16) - 역경속에서 찬양

다윗이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타고난 능력 탓이 아니었다. 남다른 신앙심과 신념, 비전 탓이었다. 그건 그의 동료들과 함께 아둘람 굴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때에 숨막힐 듯한 처지 였으되 그는 누구를 탓하거나 자신의 불운을 탓하지 않았다.

시편 57편에서 그가 최악의 역경을 극복하고 온 겨레에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었던 비결 4가지가 기록되어 있다.
첫째는 1절에서 노래하기를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보호 받고 있노라고 하였다. 자신이 도망자로서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능자의 품에 보호 받고 있다는 그의 마음 가짐과 신앙심이 자신의 처지를 이기게 하였다.

둘째는 2절에서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자신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하나님이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실 것이라 노래하였다.

셋째로 그는 7절과 8절에서 자신과 그의 동지들이 겨레와 백성들에게 새벽을 깨우는 사명자들로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였다.

그리고 넷째로 9절에서 다음같이 읊고 있다.
“주여, 내가 당신을 뭇 백성 가운데서 찬양하리이다. 뭇 나라 가운데서 당신께 노래하리이다.”

이와 같이 최악의 조건 속에서 오히려 찬양하고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그의 신앙심과 신념이야 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꼭 있어야 할 바가 아니겠는가?  

다윗 같은 대통령(17) - 기도하는 지도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이까 가라사대 헤브론으로 갈찌니라”(사무엘하2:1)

다윗이 여느 지도자들과 달랐던 점이 한가지 있었다. 이점이 그가 겪은 온갖 시련과 좌절을 극복하고 정상에까지 오를 수 있게 하였던 점이다. 바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먼저 무릎 굻어 하나님께 물어 결정한 점이다. 위에 인용한 말씀의 경우가 바로 그 한 예로써 사울왕이 죽은 후 그가 어떻게 처신하여야 할지를 하나님께 물은 내용이다.

이와 같이 다윗이 하나님께 물어 그 응답을 받아 결정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그의 삶의 기록에서 계속 이어진다. 그가 이렇게 하나님께 물어서 응답을 받아 행동하였던 때에 그는 갖은 시련을 겪었으나 능히 극복하여 나갈 수 있었다.

이점에서 다윗에게 가장 접근한 경우의 대통령을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의 경우를 손꼽는다. 링컨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물론이려니와 대통령이 된 후에도 중요한 국사를 결정하여야 할 때마다 기도실로 들어가 긴 시간 기도를 한 후에야 결정하곤 하였다.
특히 남북전쟁이 진행중이였던 때에는 더욱 철저하였다.

우리가 비록 왕이나 대통령은 아닌 평범한 보통 사람들일찌라도 이점을 꼭 본 받아야 할 점이라 여겨진다.

다윗 같은 대통령 (18) - 실패한 지도자와 성공한 지도자

구약성경의 사무엘서에는 4명의 주연급 등장인물들이 있다. 엘리, 사무엘, 사울, 다윗이다. 이들 중에 엘리와 사울은 ‘실패한 지도자’들이 되었고 사무엘과 다윗은 ‘성공한 지도자’들이 되었다. 그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엘리와 사울은 왜 실패한 지도자들로 인생의 막을 내리게 되었고 사무엘과 다윗은 성공한 지도자들로 삶을 마감할 수 있게 되었을까? 가장 중요한 원인은 그들 각자가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어디에다 두었느냐의 문제였다. 말하자면 가치판단의 우선권(Priority)의 문제였다.
대제사장이었던 엘리는 어리석게도 한 시대의 영(靈)적 지도자로서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는 것보다 자신의 아들들을 더 소중히 여겼다. 이에 대해 여호와께서 친히 그에게 이른 말씀이 있다.

“너희는 어찌하여......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살찌게 하느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사무엘상2:29,30)

대제사장 엘리의 실패는 그가 하나님보다 자식들을 더 소중히 여겼고 공인으로서의 자신의 직무보다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에 더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엘리의 실패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한 교훈이 된다.  
  
다윗 같은 대통령 (19) - 실패한 지도자 사울왕

어제 글에서 소개하였던 바대로 사무엘서에 등장하는 네 사람의 중심인물들 중에서 제사장이었던 엘리와 왕이었던 사울은 실패로 끝난 사람들이 되었고 선지자였던 사무엘과 왕이었던 다윗은 성공하는 왕이 되었다.

그렇다면 왜 처음 두 사람은 실패한 지도자가 되었고 뒤의 두 사람은 성공하는 지도자들이 되었을까? 대제사장이었던 엘리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어제 간단히 소개하였다. 오늘은 이스라엘 역사에 왕정시대를 열었던 첫 번째 왕 사울이 실패한 지도자로 끝나게 된 이유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간결하게 한 마디로 지적하여 주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라....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음으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나이다. 서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5:10-25 중에서)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사울이 실패한 것은 그가 원칙을 무시하고 그때그때의 편의와 수단에 의존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소위 국민여론을 따라 우왕좌왕 하느라 근본을 떠났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지도자는 꼭 명심하여야 할 대목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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