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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지리산 편지] 여호수아의 지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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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15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은 지도자였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을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으로 이끌기에 성공하였던 지도자였다. 구약성경의 여섯 번째 책인 <여호수아서>의 1장에 모세가 죽은 후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하게 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당부하신 지도력의 다섯 가지 원칙이 있다. 그는 이들 다섯 가지 원칙들을 철저하게 실천함으로써 자신에게 부과된 책임을 감당할 수 있었다.

첫째는 “백성들과 더불어 일어나 약속의 땅으로 가라.”는 1장 2절의 말씀에서 일컫는 바처럼 공동체적이고 민주적인 지도력이었다. 그의 스승 모세의 경우는 권위주의적인 지도력이었다. 그러나 새 시대에 새 지도자로 등장한 그에게는 모세 형의 지도력이 통할 리 없었다. 그의 경우는 국민 전체와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의논하고, 온 국민들이 합의된 목표를 향하여 함께 도전하는 공동체적이고 민주적인 지도력이어야 했다. 여호수아는 그런 지도력을 넉넉히 감당하였다. 그래서 성공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둘째는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너희에게 주었노라.”는 1장 3절의 말씀처럼 가나안 땅으로 진입하여 한 걸음 한 걸음 피 흘리고 땀 흘리며 싸워서 기반을 닦아내는 지도력이다. 완전히 발바닥에서부터 꼭대기로 나아가는 지도력이었다. 우리나라는 좁은 땅에 자원은 없고 사람만 많은 나라이다. 이 나라가 선진국으로 일어서려면 이런 지도력일 수밖에 없다. 일컬어 무에서 유를 창출하여 나가는 지도력이다. 여호수아는 그런 점에서 우리들에게 교과서가 될 수 있는 지도자였다.  
  
여호수아의 지도력 ②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를 일컬어 상승장군(常勝將軍)이라 부른다.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등장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그와 그의 백성들은 33번의 대전투를 치렀다. 그가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였기에 그런 별명이 붙게 된 것이다.

그가 그렇게 성공하는 지도력을 발휘하게 된 비결은 바로 여호수아서 1장에 기록된 다섯 가지 지도력의 요체를 체득(體得)하였기 때문이다.
어제에 이어 그 비결의 세번째는 여호수아서 1장 6절에 기록된 다음의 구절에 담겨 있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여기서 ‘강하라, 담대하라’는 말의 뜻은 ‘내적 확신(inner conviction)을 지니라’는 뜻이다. 지도자가 지녀야 할 덕목(德目)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의 사명과 지도력에 대한 강력한 자기 확신이다. 그런 확신을 바탕으로 삼아 부딪히는 온갖 시련과 도전을 극복하여 나가게 된다.

지도자가 이런 확신이 없이 형편 따라, 사정 따라 흔들리게 되면 그 공동체는 재난을 맞게 된다. 이 점에서 여호수아는 지도자다운 지도자였다. 자신이 붙든 확신에 대하여 목숨을 걸고 일관되게 지켜 나갔다.  

여호수아의 지도력 ③

여호수아가 상승장군(常勝將軍)으로서 품었던 지도력의 네 번째는 여호수아서 1장 7절에 기록된 다음의 말씀에 담겨 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너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이 구절에서의 핵심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이다. 가치관에서 있어서나 그 가치관을 실천하는 행동에 있어 치우치는 지도자는 공동체를 재난으로 이끌게 된다. 지도력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이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는 균형 잡힌 사고방식과 판단력이다. 그런데 위의 말씀에서 우리가 살펴야 할 중요한 요점은 어떤 기준에서 치우치지 않느냐는 점이다. 그 기준을 제시하기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일러 주신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그 기준에서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라는 점이다.

우리 땅 한반도의 비극이 이 점에 있다. 지난 50년간 한반도는 남과 북이 공히 치우치는 지도력이 이끌어 왔다. 북녘은 좌로 치우치는 역사였고 남녘은 우로 치우치는 역사였다. 그러다가 그 기간의 모순이 쌓여 이제는 남녘도 좌로 치우치는 지도력이 득세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는 가치관이 혼란에 빠져 치우치는 사회가 되고 있다. 이런 때에 치우침이 없는 지도력을 세워나가는 일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여호수아의 지도력 ④

구역성경의 여섯 번째 책인 여호수아서에는 지도자 여호수아의 일대기와 그가 지도력을 어떻게 행사하였는지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의 삶과 그의 지도력에서 특기할 사항들 중의 하나는 그가 자신의 업적과 공로에 대하여는 단 한마디의 기록도 남기지 않았던 점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맡은 지도자로서의 과업에 충실하였을 따름이지 자신이 이룬 업적에 대한 자랑에 대하여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다만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장인 24장에서 그의 신앙과 신념에 대하여서만 확실하게 기록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는 자신의 과업을 마치고 현역에서 은퇴하는 자리에서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과 헌신을 강조하며 다음 같이 말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팡세의 저자 파스칼이 이르기를 ‘신앙은 선택’이라 했다. 마치 도박사가 자신이 손에 든 화투장에 자신의 전 재산을 걸듯이 신앙인은 자신이 믿는 바에 자신의 영혼을 건다고 하였다. 지도자에게 합당한 말이다.

자신의 신념에 자신의 삶을 걸지 않는 지도자는 바른 지도자가 될 수 없다. 형편 따라, 이익 따라 갈팡질팡하는 지도자는 백성들에게 재난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여호수아는 이런 점에 지도력의 본보기가 된다. 자신이 믿는 바에 자신의 삶을 걸고 이를 지도력의 근본을 삼았던 점에서다.  

여호수아의 지도력 ⑤

훌륭한 지도자들 중에서 전임자의 그늘에 가리워져 낮게 평가되기가 일쑤다. 여호수아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는 전임자 모세가 워낙 탁월한 인물이었기에 그의 그늘에 가려서 자신의 인격이나 업적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여 온 지도자이다.

모세의 업적은 긴긴 세월 애급에서 종살이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이 보이는 자리에까지 이끈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거기서 멈추고 말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갓 헛되이 사막을 떠도는 유량민족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요단강을 도하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백성들을 새로운 땅에 정착시키는 일이다.

새로운 땅에서 국가를 세우고 문화를 일으키며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여 나가는 작업이다. 모세의 뒤를 이은 지도자 여호수아는 이 과업을 성실히 수행하였다. 그런 점에서 말한다면 여호수아의 업적이 모세에 견주어 결코 미흡한 것이 아니었다.

여호수아가 부닥친 문제는 가나안 땅이 비어 있는 땅이 아니라 자신들보다는 훨씬 더 우수한 무기, 더 좋은 방어망을 갖춘 체 자신들보다 몇 배나 수가 더 많은 원주민들이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점이다.

열악한 무기를 지닌 소수의 전투력으로 강력한 무기를 지닌 다수의 적을 돌파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는가? 일견 불가능에 가까운 이 과업을 완성하였다.  

여호수아의 지도력 ⑥

여호수아의 명쾌하고도 확고한 지도력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부분이 여호수아서 17장에 기록된 요셉 지파와의 대화의 경우이다. 먼저 당시의 상황을 간략히 살핀 후에 본문을 읽어 보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 도하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후에 강력한 적들을 하나씩 무찔러 나갔다. 무려 33번에 걸친 대전투를 치르는 동안에 한번, 한번의 전투마다 민족의 생존자체를 걸고 싸울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애초에 군사의 수에서나, 무기에서나 열세일 수밖에 없었던지라 그가 전개한 전략은 현대 게릴라전의 교범이랄 수 있는 전략들을 구사하였다. 매복 기습, 유인, 야간 행군 등으로 그는 언제나 적이 예상할 수 없는 시간에, 예상할 수 없는 장소에 나타나 적의 허를 찔렀다. 상상력에 바탕을 둔 그의 이런 전략 구사에 힘입어 33번의 전투들을 완승으로 치러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가나안 땅을 점령한 후에 그들에게 부닥친 문제가 땅의 분배 문제였다. 이스라엘은 본래 지파 연합체라 할 수 있는 12지파의 연합체였다. 그래서 각 지파들에게 원망과 시비가 없이 점령한 땅을 분배하는 문제가 심각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그런 때에 12지파 중에서 가장 큰 지파인 요셉 지파가 자기들에게 배정된 몫에 반발하여 최고 지도자가 여호수아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때 여호수아가 취한 명쾌하고, 확고한 대처를 볼 때 그가 얼마나 탁월한 지도자였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여호수아의 지도력 ⑦

가나안 땅을 점령한 후에 땅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요셉의 후손들이 여호수아에게 항의하며 요청한 내용은 일견 일리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들의 요구는 자신들의 지파는 숫자도 많고 공로도 크고 실력이 있는 지파이니 그들 자신에게 걸맞게 두 지파 몫의 땅을 배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우리가 큰 무리가 되었는데, 어른께서는 왜 우리에게, 한 번만 제비를 뽑아서 한 몫만 유산으로 가지게 하십니까?”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이 큰 무리이어서 에브라임 산간 지방이 당신들에게 작다면, 거기에서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인 삼림지대로 올라가서 그곳을 개간(개척)하시오.”
요셉 자손이 말하였다. “그 산간 지방은 우리에게 넉넉하지 못하고, 그 골짜기 땅 곧 벳산과 그 변두리 마을과 이스르엘 골짜기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에게는 다 철 병거가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 족속인 에브라임 지파와 서쪽 므낫세 지파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큰 무리요, 큰 세력도 가졌으니, 한 몫만 가질 일이 아닙니다. 산간 지방도 당신들의 것이 될 것이오. 산간 지방이라 하더라도, 그곳을 개간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차지하시오. 가나안 사람들이 철 병거를 가져서 강하다 하더라도, 당신들은 그들을 쫓아낼 수 있소.”(여호수아 17:15~18)

위의 대화를 통하여 우리는 여호수아의 개척 정신과 진취적인 기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과 동족을 가로막는 장애나 위협에 대하여 위축되거나 굴하지 않았다. 백절불굴의 기상으로 정면 돌파하여 최악의 조건에서 최선의 승리를 거두어들이곤 하였다. 지금의 한국 지도자들이 꼭 배우고 익혀야 할 지도자로서의 정신이라 할 수 있겠다.  

여호수아의 지도력 ⑧

전쟁의 지휘관으로서나, 공동체의 위기를 극복하여 나가는 지도자로서나 여호수아의 능력의 일면을 우리는 아이성의 전투의 경우에서 살펴볼 수 있다.
아이성 전투는 여호수아서 6장에 그 전말의 사정이 잘 기록되어 있다. 문제의 발단은 가나안 땅에 진입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치른 첫 번째 전투였던 여리고성의 전투가 대성공으로 끝난 데서 비롯되었다.

인생만사에 성공 뒤에는 실패가 따르게 마련이듯이 여리고성의 승리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만심과 방심에 젖어들게 하였다.
두 번째로 치르게 된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아이성의 전투력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겨우 3천 명의 병력으로 성을 공격케 하였다. 결과는 여지없는 실패였다. 현장에서 36명의 병사들이 전사하고 전군이 지리멸렬한 상태로 후퇴하여 진지로 돌아왔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진영 내에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적에 대한 공포심이 넘쳐나게 되어 민심이 흔들리기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공동체의 위기를 절감케 된 여호수아는 스스로 병사들과 침식을 함께하면서 위기를 돌파하는 길을 찾았다. 먼저 자신이 앞장서서 힘 드는 자리, 위험한 전선의 최전방에 서면서 패배를 승리로 전환시킴에 전력을 투구하게 되었다.

여호수아의 지도력 ⑨

여호수아는 먼저 날쌘 군사 3만 명을 뽑아 밤새워 행군하여 아이성 뒤편에 매복케 하였다. 그리고는 날이 새자 자신이 앞장서서 군대를 이끌고 전선으로 나아갔다. 아이성 가까이에 이르자 성 가까이에 있는 숲에 5천 명의 군사를 매복시켰다.
그리고는 성을 공격하였다. 전초전의 승리에 기고만장하여 있던 아이성의 왕은 적군의 세가 많지 않음을 보고는 전군을 휘몰아 공격에 나섰다. 성문을 열어둔 채로 모두가 공격에 가담하였다.

처음 얼마간 전투를 하다가는 밀리는 척하며 여호수아의 군대가 후퇴하게 되었다. 아이성의 군사들은 신바람이 나서 공격에 가담하였다. 여호수아의 군사들은 어쩔 수 없이 후퇴하는 듯이 돌아서서 후퇴하였다. 당연히 아이성의 군사들은 승리가 눈앞에 온 것으로 알고 추격하였다. 그러나 후퇴하던 여호수아가 돌연 뒤돌아서며 지휘봉을 들어 아이성 쪽을 가리키자 성 뒤편에 매복하여 있던 3만 군대가 일거에 내달아 순식간에 성을 점령하고 말았다.
성이 접수되었음을 알리는 봉화가 오르자 아이성 군사들은 당황하여 성을 구하겠노라고 쫓던 걸음을 멈추고 성으로 가려 하였다. 그러나 이때 미리 매복하고 있던 5천의 매복군이 그들의 길을 가로막고 후퇴하던 전군이 뒤돌아서며 공격에 가담케 되었다. 그리고 성 안을 차지한 3만의 군사들 역시 공격에 가담케 되었다.
이날에 아아성 군사의 사망자만 1만 2천 명이었다. 전투가 끝난 후 여호수아는 아이성을 사람이 살 수 없는 쑥밭으로 만들어 배후의 근심 거리를 제거하였다.

이상이 아이성 전투의 전말이다. 이 기록에서 우리는 공동체의 어려움에 직면하여 앞장서서 문제를 풀어 나가는 여호수아의 솔선수범하는 지도력을 볼 수 있고, 실패를 오히려 성공으로 전화시켜 나가는 그의 지도력을 살펴 볼 수 있다.  

여호수아의 지도력 ⑩ - 안식케하는 정치

2 세기 전 이 땅에 살았던 선각자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정치와 행정의 근본을 일컬어 ‘백성들로 편안하게, 안식하게 하는 것’이라 지적하였다. 정치와 치국의 핵심을 지적한 말이라 여겨진다.
이 점에서는 여호수아도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던 때에 그가 한결같이 품고 있었던 생각이 ‘어떻게 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안식을 누리게 할까’하는 생각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에 방황과 고난의 여정에서 지치고 지친 백성들로 하여금 ‘안식을 누리게 하겠다’는 생각이 그의 한결같은 염원이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 1장 15절에 보면 그가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둔 때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여호와께서 너희로 안식하게 하신 것같이 너희 형제들도 안식하게 하라”

그리고 여호수아서 23장 1절에서도 다음같이 말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사방 대적을 다 멸하시고 안식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지 오랜 후......”

안식이란 말은 신앙생할에 있어 중심을 이루는 단어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되는 영혼의 안식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들의 삶의 전반에 걸쳐 누리게 되는 안식이야말로 바람직한 신앙생활의 중심을 이룬다. 그 안식을 바탕으로 삼아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안식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요즘같이 나라 사람들 전체가 심신이 지쳐 있는 때에 여호수아의 안식을 다시 살펴보며 그런 안식이 우리들에게도 다시 임하게 되어질 것을 고대하며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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