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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지리산 편지] 에스라의 개혁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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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편지] 에스라의 개혁운동 ①

크리스천들에게 “솔로몬이 어떤 왕이었느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지혜로운 왕’이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는 50점 밖에 되지 않는 답이다. 솔로몬이 지혜로웠던 것은 그의 집권 초반과 중반의 경우였다.

그의 후반부는 어리석은 왕으로 변질 되어 나라의 장래를 완전히 그르치는 정치를 펼쳤다. 성경은 그가 그렇게 어리석게 된 이유를 숱한 비빈(妃嬪)들에 휩싸여 여인들이 그를  변질시켰다고 지적하고 있다.(열왕기상 11장 참조)
솔로몬의 실정과 그의 아들 르호보암 왕의  어리석은 처세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남∙북이 분단되는 비극을 겪게 된다.(왕상 12장 참조)

한 번 분단이 된 후에는 뭇 사람들의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로 남∙ 북이 따로따로 강대국에게 망하게 된다. 먼저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멸망당하게 된다. B.C. 722 년이었다. 그때 앗시리아 군대에 끌러간 포로들은 훗날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역사에서 실종 되고만 것이다.

그러나 남 유다는 그 후 150여년을 더 지속하다가 바벨론에게 망하게 된다. B.C. 587 년이었다. 바벨론에 망하게 되기 전에 이렇게 살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고 피눈물을 흘리며 호소하였던 선각자가 있었다. 선지자 예레미야이다. 그는 나라가 망하지 않게 될 대안(代案)을 제시하기를 상∙하∙관∙민(上下官民)이 회개하는 길이라고  다음 같이 호소하였다.

“유다 국민들아, 예루살렘 시민들아, 할례를 받아 나에게 몸을 바쳐라. 마음에 수술을 받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의 사악한 행실을 보고 화를 내어 너희를 불처럼 태우리니, 그 불을 꺼줄 사람이 없으리라.”(공동번역 예레미야 4장 4절)

그러나 누구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태평성대에 국가의 위기를 조성하며 민심을 현혹 시킨다고 그를 투옥하고 말았다. 그가 갇힌 감옥은 최악의 조건인 왕궁 뒷 뜰에 있는 우물이었다. 우물 바닥은  진흙뻘이어서 가슴에까지 뻘흙이 차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가 석방 된 것은 예루살렘 성을 함락 시킨 적군, 바벨론군에  의하여서였다.

에스라의 개혁운동 ②

에스라가 정복군인 바벨론 군에 의하여 우물 감옥에서 석방 되어 나오고 보니 그렇게도 ‘회개하면 살 길이 있노라’고 절규하였던 조국은 이미 망하고 난 후였다. 그는 슬픈 조국의 모습을 바라보며 예레미야 애가(哀歌)를 지었다.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빰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이제는 원수가 되었도다.”(애가 1: 1,2)

그는 옛날 동료들이 포로로 잡혀 굴비처럼 손이 묶여 끌러가는 모습을 대하고 그들에게 다음 같이 희망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10,11)

이제는 조국도, 성전도, 인권도, 희망도 아무것도 없어진 채로 그냥 한 노동력으로만 끌려가는 그들에게 고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희망의 소리가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긴 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하는 때에 고국으로 귀환할 것에 대한 예언을 한 것은 예레미야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보다 이미 150 여년 앞서 선지자 이사야가 다음 같이 예언한 바 있다.

“고레스에 대하여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이사야 44 :28)

에스라의 개혁운동 ③  

마치 굴비 묶음처럼 줄줄이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포로들은 바벨론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변에 세워진 포로 수용 시설에 머물며 기약 없는 종살이를 시작케 되었다. 그들은 나날의 고달픔과 서러움을 시로 읊어 남겼다. 시편 137편이 그 시절에 쓰여진 대표적인  작품이다.

“우리가 바벨론  강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기억하며 눈물 흘렸노라.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우리의 수금을 걸어놓고서.

우리를 잡아온 그 사람들이
그 곳에서 노래하라  청하였지만
우리를 끌어온 그 사람들이
기뻐하라고 윽박지르며
‘시온 노래 한 가락  불러라’하였지만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리요.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 손이 말라버릴 찌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치 아니하거나
예루살렘보다 더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지로다.”

에스라의 개혁운동 ④

그런데 어느날 해방의 날이 왔다. 그 날은 글자 그대로 도적같이 왔다. 구약성경 에스라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홀연히 임하는 해방의 날을 이렇게 말해 준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에스라 1 : 1-3)

여기서 말하는 ‘바사’는 페르시아 제국을 일컫고 고레스 왕은 페르시아를 건국한 Cyrus 대왕을 말한다. 그는 나는 새가 아니고는 들어갈 수 없다던 바벨론 수도를 성 밑으로 땅굴을 파고드는 작전을 펼쳐 하룻밤 사이에 점령하고 말았다. 그 후 그는 바벨론 제국에 끌러와 종살이 하고 있던 소수 민족들에게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가 자기들이 믿던 신을 섬길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해방의 날을 맞게 되어 꿈에서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 갈 수 있게 되었다. B.C. 539 년 10월이었다.

에스라의 개혁운동 ⑤

페르시아(PERSIA)의 사이러스(CYRUS) 대제의 배려로 포로 생활에서 풀려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감격과 기쁨에 대하여는 1945년 8∙15 광복절의 기쁨을 경험하였던 우리들로서는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바이다. 암울하였던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어느 날 해방을 얻게 된 그들로서는 그 기쁨이 오히려 꿈만 같고 현실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때의 감격을 시편 126 편에서 다음 같이 시로 읊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들을 풀어주시던 날,
그날이 꿈이든가 생시든가!
그 날 우리들에게는 함박 같은 웃음이 터져 나왔었고
흥겨운 노랫가락이 입술에 넘쳤도다.

그 날 이교 백성 가운데서 들려오는 말소리,
‘놀라워라, 여호와께서 자 사람들에게 하신 일들! ’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하셨으니,
우리는 얼마나 기뻤던가?

여호와께서 저 네겝 강바닥에 물길 돌아오듯이,
우리의 포로들을 다시 데려오듯이
눈물을 흘리며 씨 뿌리는 자
기뻐하며 거두어들이리라.

씨를 담아 들고 울며나가는 자,
노랫소리 흥겁게 곡식단을 안고 흥겁게 들어오리라.”

에스라의 개혁운동 ⑥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에스라 7 ; 10)

대제국 바벨론을 쓰러트림으로 페르시아를 건국한 고레스 왕은 건국 다음 해인 B.C. 538 년에 포로로 끌러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귀환령을 내렸다. 환희에 넘쳐 찬양을 부르며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황무지나 다름없이 변해 버린 고국 땅에 새로운 사회,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당시의 지도자였던 에스라는 세 가지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기준으로 삼아 국가재건 내지 개혁운동을 펼쳐나갔다. 에스라 7장 10절이 그 원칙을 말해준다.

첫째는 지도자인 에스라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공부하고 실행하였다.
둘째는 자신이 익히고 실행한 말씀을 백성들에게 철저히 가르쳤다.
셋째는 지난날의 허물을 철저히 회개하는 도덕성 회복 운동을 펼쳤다.

예나 지금이나 개혁을 성취하려면 개혁운동의 기준이 되는 원칙과 목표가 분명하여야 한다. 그런 원칙과 목표가 분명치 않는 개혁운동은 끝내는 실패로 끝나게 되고 만다. 에스라는 그 원칙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았다. 그래서 그 말씀을 먼저 자신이 철저히 공부하고 익힌 후에 스스로 실천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실천한 내용을 국민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그 말씀이 요구하는 기준을 따라 상하관민이 함께 그릇되게 살았던 삶을 회개하는 데서 개혁을 시작하였다.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살아 있는 말씀이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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