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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라크마 1369 명상 (5)

첨부 1



잘 지켜 보아지는지요.
아니면 어느 새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채
그 어떤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을
한참 후에 발견하시고 깜짝 놀라시는 것은 아닌지요.

참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지요.
최근에 일에서 부터
까마득히 잊었던 옛날 생각들
그리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의 구상들 까지.

예, 잘 되고 있는 것입니다.
삶이 명상에서 의심과 두려움은 금물.
온갖 생각의 파편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찢어진 신발짝도 나타 날 것이고
망가진 가방에 우유곽, 비니루, 걸레들 등등.

보면 사라집니다.
이런 것들은 다 보아 달라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보아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무어라 판단하지 않고
무어라 이름 붙이지 않고
그것을 그것 자체로 보아주는 것,
바로 사랑입니다.

명상은 사랑을 배우는 기술 중의 기술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정한 내가
진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숨이 들어 오고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숨은 누가 쉬고 있습니까?

삶은 아주 쉽고 간단합니다.

앉고
서고
걷고
눕고

보고
듣고
말하고

이것이 진짜 사는 삶의 원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들을 잊은 채
그 무슨 생각이나 느낌들에 끌려 다니거나 묶여서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른채
삶의 지성소인 지금 여기를 살지 못하고
허겁지겁 오리무중으로 대충대충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을 음미해 볼 겨를 없이 말입니다.

어떤 제자가 물었다 하지요.
도가 무엇이냐구요.
그랬더니 스승은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밥 먹을 때 밥 먹고
일 할 때 일 하고
잠 잘 때 잠 자는 것이지.
우리도 선생님 처럼 똑 같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지 자네들은 밥 먹을 때에 일 할 생각을 하고
일 할 때에는 쉴 생각을 하고
잠 잘 때에는 꿈을 꾸지 않는가.
거기다가 그런 줄도 모르고 말이지.
평상심이 도라네.

예, 그렇습니다.
제가 안내하는 의식변화 프로그램인
삶의 예술 하비람도
일상으로 깨어나기입니다.
일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하고 가치있는지를
경험시키는 것이 수련의 핵심입니다.

성경에 시편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시편 1장도 이렇습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함께 앉지 아니하며,
오로지 주의 율법을 즐거워 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무상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앉고 서고 걷고  이잖습니까?
삶은 누구와 함께 서 있는냐
누구와 하께 가느냐
누구와  함께 앉아 있는냐
누구와 함께 누워 있는냐 이지요.
지금 하는 관계가
지금 내가 사는 삶이자,
바로 그것이 나이지요.

삶은 그 어떤 것에도 수단이 되어서는 않됩니다.
삶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이미 우리는 도착해 있고
이미 하늘 나라는 도래해 있읍니다.
지금이 은혜 받을 때고
여기가 구원의 날입니다.
지금 여기
지금 여기
Here and Now

지금에는 아무 무제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어둠도 없습니다.

지금 앉아 있다면 호흡에
지금 걷고 있으면 걸음에
지금 서있으면 서 있음에
지금 누워 있으면 누워 있음에
손이 닿는 그 닿음에
눈이 닿으면 눈이 닿는 그것에
소리가 들리면 그 들리는 소리를 타고
가만히
가만히
아무것도 안하는 것을 하면서
그냥 가만히 바라보는 것,
명상입니다.

명상인 그 바라 보는 것을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그리고 시시때때로 어디서나 하는 것은
삶을 예술로 가꾸는 지혜 중의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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