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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경 속 비밀] 세포리스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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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비밀] 세포리스의 십자가 

- 김성일 작가 
 

복음서에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아기 예수가 애굽으로 피신했다가 나사렛으로 돌아간 것과 열두 살 때 예루살렘에 올라갔던 일이 적혀 있고, 그 후에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며 공생애를 시작한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 사이, 즉 BC 4년에서 AD 27년까지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는 것도 그분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 유익하다. 아기 예수가 탄생한 BC 4년 베들레헴 인근의 아기들을 학살한 헤롯 1세는 그해에 죽었고 그의 아들 아켈라오가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을 물려받았다.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마 2:22) 

또 안디바는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 그리고 빌립은 드라고닛과 바네아스 지역의 분봉왕이 되었다.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에서 아켈라오의 폭정으로 소요와 폭동이 그치지 않자 AD 6년 로마의 아구스도 황제는 아켈라오를 해임하고 수리아 총독 구례뇨가 그의 지역을 관할하게 했다. 

바로 그해에 갈릴리의 유다가 이끄는 열심당의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열심당의 본거지는 안디바의 궁이 있던 갈릴리의 세포리스였다. 구레뇨 총독은 로마군 2개 군단과 4개 기병대를 추가로 파병하여 반란을 진압한 후 세포리스로 들어가는 가로의 양쪽에 2000개의 십자가를 세웠다. 

“십자가에 달려 처형된 자의 수는 2000명에 달했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죄수를 엎어놓고 매질할 때 사용하던 형틀을 수직으로 세워 사형수를 매달아 죽이는 처형 방법은 BC 71년 노예 반란을 일으켰던 스파르타쿠스 일당을 로마로 들어가는 아피아 가도에 세운 6000개의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것이 그 효시였다. 

매달려 죽어가는 반란군들을 보며 다시는 반역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할 목적이었다. 세포리스에서 갑자기 2000개의 십자가를 제작할 때 인근의 목수가 모두 동원되었을 것이고 나사렛의 목수 요셉도 동원되었을 것이다. 세포리스는 나사렛에서 서북쪽으로 8㎞ 거리에 있는 성읍이고 지금으로 말하면 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의 거리였다. 그리고 열 살 된 소년 예수도 아버지를 따라 세포리스에 가서 그 무서운 광경을 보았을 것이다. 

요셉이 소년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던 AD 8년부터 10년까지 세포리스의 재건 공사가 있었다. 이때에도 역시 요셉은 그 공사에 동원되었을 것이고 건강을 많이 해쳐서 일찍 죽게 되는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유대 총독 코포니우스의 뒤를 이은 암비비우스를 거쳐 루푸스가 유대 총독으로 있던 AD 14년 로마에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죽어 디베료가 즉위했고(눅 3:1) 그라투스가 11년간 유대 총독으로 있다가 AD 26년 본디오 빌라도가 후임 총독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이듬해 예수 그리스도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드라고닛 지역의 가이사랴 빌립보에 갔을 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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