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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백성 (벧전 0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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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교는 성서 주석을 함에 있어서 사회학적 접근을 시도해본 글이다. 이 방법은 본문 속에서 사회적 실재를 읽어내려는 시도를 말한다. 우리가 본문에서 접할 수 있는 문자적 입장을 넘어서 그 본문이 생성되고 영향을 주어왔던 사회적 실재의 모습을 상정하며 그곳에서 성서 해석에 새로운 시 각을 찾고자 함이다. 이러한 사회학적 통찰력은 우리가 설교를 준비할 때 그 본문을 과도하게 단순화시키거나 개념화시키는 위험을 피하게 도와줄 것 이다.

초대교회는 작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를 따 라 다니던 사람들도 갈릴리 촌놈들이었고 그중에서도 배우지 못한 어부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세리와 창녀 갈곳 없는 부랑자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곳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 습도 특별히 다른 것은 없었을 줄 압니다.

고린도 전서 2:26 에서도 나와 있듯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 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이 전해졌던 교회들의 상황은 더욱 핍 박 가운데 있어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베드로 전 서를 고난문서로 분류하고 있듯이 그들이 겪었던 많은 박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있는 자 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 만일 그리스 도인으로 고난을 받은 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 을 돌리라."(벧전 4:14-16)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좀더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 엇인가를 살피기 위해 당시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그들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그네"와 "행인"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밝혀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말이 이세상 의 실존과 하늘의 소망을 대조하는 은유적인 의미로 해석해 왔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각은 여기서 말하는 "나그네"와 "행인"이 사회질서의 주 류에서 소외된, 사회적인 계층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즉 이들은 당 시의 사회 속에서 실재적으로 사회의 변두리에서 정치적, 법적, 사회적, 심 지어 전통적 종교의 위치를 빼앗긴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삶의 모습 은 사회에서 쫓겨난, 영구적인 집도 없고 이곳 저곳을 방황하는 형태였습니 다. 거기에다가 더욱 더 어려운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맏는 신앙으로 말 미암아 더 많은 핍박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비방하는 자들이 사실 아닌 사실로 기독교인들을 괴롭혔습니다. 당시에 많은 소분이 있었던 것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만, 첫째 사람 들은 신자들을 식인종이라 비방했습니다. 성만찬의 오해였습니다. 심지어 는 아이를 잡아 제사를 드린다는 소문까지도 생겨났습니다. 둘째, 그들이 나누던 사랑의 식사가 잘못 전해져 음탕한 회합이라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 습니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가정의 파탄을 일으킨다는 비방을 받았습니다. 또한 노예들로 하여금 주인에게 반항케 한다는 협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세상을 미워하고 적대시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를 섬기기를 거부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핍박에 대처해서 교회는 여러가지 반응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더욱 더 세상을 부인하고 세상과 적대적이 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을 것입 니다. 아니면 그들이 가졌던 신앙을 버리고 세상과 조화를 맞춰서 살려는 생각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제 삼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낡은 질서를 새로운 사회적 실재로 대치하려고 합니 다. 베드로 전서 4:17에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에서 그들의 정 체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눈 앞에서,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만 살 수 없는 존 재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눈 앞에서도 살고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교회 가 세상의 험담을 막아내는 방법은 반박이나 변명이 아니라, 아름다운 생활 로서 그들의 비난이 거짓임을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살아계셨을 때 말씀하셨던 말씀이 생각났을 지도 모릅니다.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하여, 저희로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이방인들이 기독교인들의 "좋은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 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물러나 고립된 삶을 사는 대신 "좋은 행실"과 "좋은 삶의 방식"을 취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현재 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4:13)하는 것으로 알고 기뻐하며 "도 리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4:16)고 권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을 통해 우리를 영원한 영광에로 인도하시기 때 문입니다.(5:10)

우리가 이 세상 안에서 베드로전서를 받았던 공동체 처럼 이방인의 모습 을 갖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우리는 교회 보다 더 큰 세상 안에서 우리의 믿 음을 이 땅에 이루어 나가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현재 에도 우리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비판적인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 다. 또한 우리가 이러한 비판을 받을 여지를 남기기도 했었습니다.

이제 시 시대 속에서 교회가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얻을 것은 우리의 자기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내가 과연 누구인가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사회 에 임해야 하겠는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 본문의 저자는 우리가 "하 나님의 백성"(household of God)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공동체는 세상에서 도피하는 것이나 세상에 물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더욱 절제하고 행실을 선하게 가져,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새로 운 공동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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