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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고후 07: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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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편안하고 안락한 가운데 만족감과 기쁨을 느끼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 평안함과 기쁨을 위해서 여러가지 계획들을 세우며,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 합니다.

그러면 과연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기쁨과 평안은 어디로 부터 올까요
흔히 우리는 그것을 재물이나 명예, 그리고 권력등과 같은 물질적이고 일시적인 것에서 찾으려 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일시적인 만족감과 기쁨을 줄지는 모르지만 결코 궁극적인 만족과 기쁨을 가져다 주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에 항상 우리의 주변에 있을 수 만은 없는 것이며, 또한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화:고대 그리이스의 많은 도시 국가중에 <에피루스>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을 다스리는 사람은 <피로스>라는 왕이었습니다. 그는 땅에 대한 욕심이 대단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영토에 만족하지 않고 로마까지 정복할 야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대장군 <씨네아스>는 왕의 정복욕을 설득하고자 이렇게 질문하였답니다.
각하! 로마를 정복하고 난 후에는 무엇을 하실 겁니까
다음에는 아프리카를 건너 카르타고를 정복하는 거야.
씨네아스는 또 물었습니다.
카르타고를 정복한 후에는요
다음에는 마게도니아를 정복하는거야.
그는 또 물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나라들을 다 정복하고 나시면 또 무엇을 하실 겁니까
그때는 앉아서 즐기는 거야.
왕의 대답이 끝나자 씨네아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각하! 그것을 지금하는 것이 어떨까요 각하에겐 이미 왕국이 있지 않습니까 조그만 왕국에도 만족하실 줄 모르신다면 온 세상을 가지고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물질적인 어떠한 만족감도 우리에게 궁극적인 기쁨을 가져다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궁극적인 기쁨에 소망을 두고 그것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노력을 통하여 만족함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임을 깨달을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있는 궁극적인 소망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궁극적인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고후 3:5절에서,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났다.”고 고백합니다. 결국 인간에게 가장 크고 궁극적인 기쁨을 주는 일은 인간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옳바로 섬기고, 그 분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는가를 항상 생각하며,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속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과연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배우려고 합니다.

이 예배에 참석한 모든 성도들은 이 말씀을 받고 실천하므로써 여러분들의 삶속에서 진정한 평안과 기쁨과 감격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모함과, 그분의 뜻속에서 항상 살지 못함을 애통해하는 마음 에서 우러나오는 열심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요즈음은 아이, 어른 할 것없이 모두들 분주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간에 쫒기고 쫒으며 삽니다. <바쁘다 바뻐>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새벽기도회, 심야기도회, 수요기도회도 정해진 1부 순서만 끝나면 뭐가 그리 바쁜지 우르르 나가십니다. 도저히 바빠서 조용하고 차분히 기도할 여유가 없다는 뜻이겠지요. 예배시간도 1시간을 넘기면 벌써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모두들 시간에 쫒기고 쫒기 때문입니다.

예화:<파파라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영국의 옥스포드로 유학을 갔던 한 아프리카 원시종족의 왕자가 영국의 유학생활중 경험한 문명인들의 모습을 자신의 관점에서 서술해 놓은 책입니다. 파파라기라는 단어는 그 원시종족의 말로 문명인이라는 단어랍니다.
그 책속에서 저자는 시간에 쫒겨서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모습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먹고 일하고 사냥하다가 해가 지면 잠을 잡니다. 하지만 <파파라기>들은 시간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는 그 시간에 맞추어 바쁘게 쫒겨다니고 있습니다. 시간이라는 괴물에 목이 묶여서 질질 끌려다니며 피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원시종족의 눈을 통해 보여진 문명인들의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을 너무도 잘 표현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과연 얼마나 하나님을 사모하고 생각하며, 그분의 뜻속에서 살고 있지 못함을 애통해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일주일 168시간 동안 1-2시간도 제대로 드리지 못한체 하나님을 새까맣게 잊어 버리고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삶속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속에서 살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며,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성도들을 매우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근심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물론 이것은 세상 걱정에 사로잡혀 세상일을 근심하는 자들을 기뻐하신다는 말은 아닙니다. 세상일의 근심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며, 일반적으로 스트레스가 쌓이게 하고 각종 병을 유발시키며 사람들의 육신을 상하게 합니다.
뿐만아니라, 잠 15:3절에 기록된 대로 세상 근심은 사람의 심령을 상하게 하고, 사람의 영혼을 침식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식게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마 6:27-34절의 말씀에서, 너희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나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근심이 있습니다.
1) 자신의 의를 위해 하는 근심입니다.

세상은 너무도 악하고 우리들은 연약하기에 항상 죄를 짓기 쉽습니다. 그것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은총을 한몸에 받고 그분의 사랑안에 살던 사람도 밧세바와 간음하고 또 그것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충복이며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야를 죽게하는 엄청난 죄를 짓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실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지만 연약한 우리의 삶속에 자리잡고 있는 죄성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롬 7: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근심하고 탄식하고 있음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죄악된 성품을 깨닫고 자신을 지키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옳바로 살아가려는 근심과 노력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기쁘신 자로 설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2) 형제의 영혼을 사랑하므로 하는 근심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형제가 물에 빠져 죽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빠지지 않은 것이 감사하다고 기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를 구해 내려고 안간힘을 쓸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들 가운데는, 영원한 사망의 깊은 바다로 빠져가고 있는 형제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한 영혼의 구원을 얼마나 중요하고 값지게 생각하시는지는 예수님께서 하신 잃은양 한마리 비유나, 잃은 드라크마 비유, 혹은 한 영혼을 실족시키는 것보다 연자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하신 말씀들을 볼때 가히 짐작이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어가는 형제들을 위해 뼈가 마르도록 근심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근심과 열심이 그들의 영혼을 바른 길로 인도하게 되며, 바로 이런 근심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3) 또한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가에 대해서 쉬지않고 근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효자는 부모를 위해 끊임없이 선한 근심을 하며 살아갑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편히 모시고,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기쁘시게 할까”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죽을수 밖에 없는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셔서 자기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근심하며 살아갑니까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으로서 자녀된 우리로 인해 안타까워 하시고 근심하시며, 또한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나 깨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위해 선한 근심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만한 일인가” “나는 지금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라고 말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을 위해 근심하는 근심이야말로 우리를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을 위하고, 형제들의 영혼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근심하는 사람들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3. 마지막으로 순종하며, 담대히 자원하여 봉사하는 믿음의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그저 자신과 형제의 영혼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근심만 하는 생각과 사고속의 믿음으로만 남아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근심이 끝나고 나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올바른 뜻을 향해 순종하고, 담대함으로 자원하여 나아갈 수 있는 행함의 신앙인이 될 때 비로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어 주시고 영원한 구원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이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에게 엄청난 축복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사실도 내가 믿고 순종치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실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담대히 자원하여 봉사할 수 있는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은 과연 지금까지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결코 세상이 줄 수 없는 진정한 평안과 궁극적인 기쁨과 만족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모하는 뜨거운 열정과, 그분을 향한 사랑과 애틋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세상 근심에 쌓여 영혼을 상하게 하는 어리석음으로 부터 벗어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근심을 통해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순종하고 담대함으로 자원하여 헌신,봉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놀랍고 풍성한 영육간의 평강을 주시며, 세상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기쁨과 희열, 감격과 만족한 삶을 누리며 살게 해 주실 줄 확신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순간에도 우리를 향해 그 인자한 눈길과 포근한 가슴을 내미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내 나라와 내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것을 너희에게 넘치도록 채워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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