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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메네 메네 데겔 우 바르신 (단 05: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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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과 근동지방을 중심으로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알 게되는 한가지 사실은 이 역사적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계획되어 있고, 어 떤 목적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애굽의 역사가 그렇고, 앗수르, 바벨론, 메데파사, 그리고 헬라 제국의 흥 망 성쇄와,..... 연이어 로마 제국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뜻에 의 해서 좌우되어,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당신의 경륜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나누고자 하는 본문의 배경도 이와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느 브갓네살 대왕의 막강한 통치력을 바탕으로 한 바벨론은 약 80년간을 근동 지방의 거대한 제국으로 군림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의 죄로 앗수르 제국에 의해 패망했을 때, 이미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당시 미미한 나라 바벨론 이 거대한 제국으로 부상함을 예언하셨고, 이에 따른 유다의 패망을 200년 전에 예언하셨습니다. 더구나, 이사야 44:28절에는 아직 탄생도 하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말씀하 시며 그로 인해 유다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놀라운 예언을 하셨는데, 이 사람이 바로 바사왕 고레스 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5장은 이 역사의 섭리 가운데 닥치는 바벨론 제국의 마 지막 장면입니다. 본문 4장과 5장 사이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죽은 후에 권력이 이양되는 극 심한 권력 투쟁이 있었습니다만 기록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 사 이에 4명의 다른 왕들이 거쳐갔고, 이제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 왕의 최후를 맞게 되는 장면이 5장의 배경인 것입니다. 사실 벨사살은 부왕을 대신해서 섭정으로 바벨론을 치리 하던 중 신생 국 가인 메데 파사 연합군의 침공을 맞게 되었습니다.

역사가『헤로도투스』의 기록에 의하면 고레스를 선봉으로 한 메데 파사 군이 북쪽으로 침공하자 바벨론 군대가 맞서 싸웠으나 크게 패했습니다. 그래서 퇴각하여 천연의 요새, 큰 성 바벨론을 방패로 메데군과 대치하고 있게 되는데 ...... 그 상황이 바로 오늘 본문인 단5장의 배경인 것입니다.

1절을 보면.... "벨사살 왕이 그 귀인 일천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 고..."라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다시말씀드리면, 성이 적군에게 완전히 포위 당한 상태에서 군사들의 저하된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 거대한 주연을 베풀 어서 극복해 보려는 하나의 전략인 것입니다. 그러나, 2절을 보면.... 중대한 실수를 범하게 되는데, 그것은 '술' 로 인한 것이였습니다. 70인역 성경에 의하면, 이 구절은 "....그가 술을 마실 때에 그의 마음은 흥분되었고, 명하여 그의 조부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취 하여 온 하나님의 전의 금, 은 기명을 가져오게 하여 그의 동료들과 그것에 다 술을 받아 마시려 함이었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대하여 정면으로 도전한 신성모독 이었습 니다. 이 금, 은 기명은 하나님의 전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거룩하게 구별된 것입 니다. 비록 이스라엘의 패망으로 인해 이곳에 옮겨 놓았지만, 아직도 하나 님을 위해 구별된 상태인 것입니다. 출애굽기나 레위기에 보면, 이스라엘의 제사장 조차도 이것을 다룰 때에는 속죄 의식을 행한 이후에 성결된 상태에서 이것을 다룰 수 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거룩한 기명을, 타락한 연회의 술잔으로 쓴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 판을 재촉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4절 이하에 보면.... 그들은 "금, 은, 동, 철, 목석으로 만 든 신들을 찬양했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홀연히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 편 분벽에 글자를 새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의 해석이 25절에 기록되어 있 습니다. 손가락이 나타나더니 벽에 글씨를 쓰는데,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 라고 썼습니다. 이 돌연한 징조로 인하여 왕의 얼굴 빛은 흙빛으로 변하였 고, 그의 생각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을 직감하였습니다. 극심한 공포로 인하여 넓적 다리가 녹는 듯하고 그 무릎이 떨려서 서로 부딪힐 정도로 질렸으나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것입니다. 이제 그 난잡하고 불경한 파티 석상은 돌연히 하나님의 심판의 법정으로 순식간에 변하였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며, 오늘 우리는 여기에서 무슨 교훈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 세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메네라는 뜻은 "세다, 혹은 계수 되어지다"라는 뜻입니다. "메네 메네" 즉, 하나님은 "세고 또 세고 계신다"라는 뜻입니다. 눅1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머리 털 하나라도 다 세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56:8절에서는,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라고 말씀하시므 로 인간의 모든 행위들을 세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의 침묵 속에서, 하나님은 바벨론 제국의 모든 것을 평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잔인한 학살, 성전의 훼파, 황제 숭배, 신성 모독... 등 일일이 구 체적으로 세고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에서는 바벨론의 죄악상들을 세셨지만...,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우 리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행위들을 세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 랍니다. 시139:3절에 보면 다윗은 고백하기를, "하나님은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 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14:16절에 보면,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즉,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아시고 세신다는 사실입 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24시간 이라는, 같은 분량의 시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동등하게... 평등하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을 행 하기에 족한 기간과 기회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을 맞이할 때, 대게 세부류의 사람들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부류의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다고 할 만큼 남에게 해를 주면서 사는 인생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해를 끼치며 살았던 사람입니 다. 또 어떤 사람은 있으나 마나, 그저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 저 그런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인류의 손실이요, 큰 슬픔이 라고 애석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의 삶을 남의 유익을 위해서 살고 희생과 사랑으로 살았던 사람인 것입니다.

성서에 나타난 시간은 분명한 시작에서.... 분명한 종말을 지향하고 있습니 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간의 알파와 오메가, 즉 처음과 나중이 되시기 때 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성서에 나타난 시간은 단순히 흘러 가버린 허무가 아니 라 하나님께서 선정해 놓으신 뜻을 향해 가는 목적 지향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HISTORY는(역사는) 결국 그의 이야기(HISSTORY) 라는 뜻입니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반복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다시 볼 수 없는... 오직 한번만이 존재하는 시간입니 다. 흘러간 시간을 바라보며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후회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입니다. 그래서 삶은 엄숙한 것 이며 진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90편 12절에서 다윗은 고백하기를,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라고 기도했습니 다. 또 같은 장 10절에 보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 "고 했습니다. 즉, 우리의 인생은 허비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서로 싸우고 미워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입니다. 부부 싸움을 하고서, 서로 먼저 용서를 청해 오기를 기다리며 신경전을 펴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입니다. 게으르고 나태하여 내일로 미루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입니다. 세상의 일 에만 얽매여 있기에는 우리 인생은 너무나 짧은 시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창조적으로 써야 합니다. 창조성은 시간의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질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다시 말하면 "그 시간에 무엇을 하며 어떻게 생을 살았느냐"하는 것입니 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 쁘지 않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바쁩니다... 그래 서 어떻게 시간을 사용할 것인가 .. 혹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 이것 이 현대인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우선 순위인 것입니다. 성경은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 님의 가치에 의해서 우선 순위를 결정해서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 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일일이 한사람 한사람의 시간 사용을 계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메네 메네" 세고 또 세시는 주님이십니다.

두번째로, 주님은 무게를 재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데겔"이라는 뜻은 "무게를 잰다, 저울에 단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달 아보는 것입니다. 어떤 기준에 미달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달아보는 것입니 다. 즉, 오늘 본문 27절에 보니까 벨사살 왕의 일생이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졌 습니다. 그 결과 그의 인생 판결은 '부족함을 뵈었다'고 판결이 나왔습니다.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판단 기준에 의해서 그 필요한 무게가 극히 부족한 것입니다. 곧 종교적, 도덕적 저급성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반열에서 제외되고 엄중한 심 판을 받을 대상이 되었음을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도 주님의 판단 기준에 의해 서 그 필요한 무게가 나가는지를 주님이 달아보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시 기 바랍니다. 백보좌 심판대에서 하나님께서 행위록을 펴시고 거기에 기록된 모든 일들 을 밝히실 때에.... 그 누구도 정확한 증거 앞에서 아무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할 수 는 없는 것입니다.

옛날,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근방에서 역마차 마부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 니다. 그는 일평생 동안 쌍마차를 몰면서 많은 사람을 실어다 주었습니다. 올라가는 길도 있었고, 내리막길도 많았는데, 내리막 길을 갈 때는 제동기 를 발로 힘차게 누르면 쌍마차가 별사고 없이 내려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평생 동안 수많은 사람을 태워 많은 거리를 오가곤 했는데, 한번도 사 고라고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늙음이 왔습니다. 이제는 병에 걸려 자리에 누워 죽음만 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른발을 이불 밖으로 내어 놓고는 '폈다 오무렸다, 폈다 오무렸다'를 계속하는 것 이였습니다. 문병 온 사람들이 "왜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대 답하기를, "내가 곧 죽는걸 아는데, 이 죽음의 내리막 길을 내려가지 않으 려고 제동기를 아무리 눌러도 내가 탄 이놈의 죽음의 마차는 자꾸만 내려 가는구려...." 하고 고백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사람은 마치 죽음의 마차를 타고 죽음의 내리막 길을 내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죽음엔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술자리에서 잡담하다가 맞 아서 죽은 사람, 화투 판에서 싸우다 죽은 사람, 술에 취해서 개굴창에 빠 져 죽은 사람, 도둑질 하다가 총에 맞아 죽은 사람... 등등 별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나중에 누가 "어쩌다 죽었느냐"고 물어 보면, 어떻게 대답할 것입니까... 더구나 하나님 앞에서 무슨 대답을 할 것입니까.......

단5장 27절에 보니까,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 요"라고 했습니다. 벨사살 왕의 일생이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졌는데, 그의 인생 판결은 부족하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도 주님이 무게를 달아보고 재신다는 것을 기억하 시기 바랍니다.

달아보고 재었는데, 부족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원히 지옥 불에 다 들 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도 부족함이 없는, 믿음의 권속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세번째는, "우 바르신" 즉 '나누었다'라는 심판을 경고하고 있습니 다. "우 바르신" 이라는 말에서 "우"는 AND(그리고)의 뜻이고, "바르신"은 베 레스라는 말의 복수형인데 "나누다, 가르다" 라는 뜻입니다. 즉, 나라가 나 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씀드려서, "너의 일생을 세고 세어서 달아보니... 기준에 미달이 되 어 왕의 날수가 다하였고 나라도 빼앗겨 나뉘어 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벨사살 왕의 죄악상을 낱낱이 세고 계셨습니다. 그 누구도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벨사살 왕은 가장 겸손해야 할 상황에서 그는 교만을 택했습니다. 오히려 금, 은, 동, 목석으로 된 우상을 하나님으로 대치하면서 하나님을 능멸했습니다. 결국, 벨사살은 그날 밤에 벨사살, 목이 베어지고 사살되고 말았습니다. 그 리고, 그의 나라는 나뉘어 져서 메데 파사 사람에게로 넘어가 찬란했던 바 벨론은 그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벨사살 왕에게 하나님의 손이 나타나 경고하신 말씀처럼, 성경은 지금도 오늘 우리에게 심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바로 그분의 말 씀이기 때문입니다. 히9: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씀했고, 계21:8절에서는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 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벧후3:10절에 보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고 했습니 다. 계16:15절에 보면,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주님이 벨사살에게 나타나 경고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최후의 날에 심판을 경고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 웹스터라는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요 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한번은 국무장관으로 있을 때, 뉴욕의 어느 호텔에서 저명한 사람 약 20여 명과 같이 저녁 식사는 하게 되었습니다. 저녁을 다 먹고난 이후에 다른 사 람들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웹스터는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있더랍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웹스터 씨, 당신의 일생을 통해서 당신의 마음 속에 들어온 생각 가운데, 제일 중요한 생각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습니 까"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있다가 얼굴을 들고 대답하는 말이 "나에게 제일 엄숙하고 중요한 생각은.... 내가 지금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내가 책임 질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에 내 마음이 제일 엄숙해 집니다." 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될 것은, 내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나, 입에서 나오는 말, 내가 행하는 모든 행동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메네메네 데겔 우 바르신.... 사랑하는 성광교회 성도여러분! 특별히 오늘 하나님 앞에 헌신을 다짐하시 는 성도여러분! ①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 세고 계십니다. ②우리의 무게를 달아보고 계십니다. ③누구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짧은 생애를.... 보다 나은 가치를 위해서 사시기 바랍니 다. 눈에 보이는 것을 위해 살기 보다는..., 손에 잡히는 것을 위해서 투자하 기 보다는 ... 하늘의 영원한 가치를 위해서....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자신을 드리고 투 자하시는 권속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ㄸ로 우리는 사람을 너무 의식하여 실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보 고 실망하거나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의 봉사와 헌 신을 다 세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더럽고 추해서.... 주님이 우리의 죄악상을 세 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가 거룩하고 귀해서... 주님이 우리가 흘린 땀과 정성과 헌신을 세시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메네메네 데겔 우 바르신.... 다른 사람들은 다 몰라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우리의 마음의 중심과 모든 행실들을 세시고, 또 달아보고 계시며, 판단하셔서... 훗날, 하 늘의 상급으로 축복해 주시는 믿음의 권속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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