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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창조의 대략 (1) 인간 (창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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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음으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에덴 동산에 아직 없었던 것이 있었다.

1,사람을 지음심 없었던 것 몇가지가 있다. 초목이 없었고 채소가 없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재창조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아니다. 4절의 표현대로 앞장의 창조를 대략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있는 이 표현들은 야생적인 것과 정원적인 것들을 구별하고 있을 뿐 재창조는 아니다.

또 없는 것이 있었다. "경작할 사람도 없었음으로" 경작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 하나님의 최대의 관심사였다.

이 말은 에덴 동산의 가장 핵심이 경작할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세상은 인간이 만들어지기 전에 존재했다. 실로 아름답게 만들어져 있었다. 온갓 동식물로 가득차 있었다.

파아란 하늘이며 넘쳐 흐르는 강물이며 골짜기마다 샘 솥는 생수들이며 망망 대해들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없는 세상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경작할 사람이 필요 했었다.

세상에 그 어떤 피조물에게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마낄 수가 없었다.

2;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2,흙으로 지음심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지으셨다고 했다.

19절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 짐승과 공중의 새를 지으시고..."

여기의 흙이란 인체의 구성 원소를 말함과 동시에 이 단어는 티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Dar1win 이란 자의 진화론이 발표된 이 후 사람들은 원숭이의 진화물이라는 가설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면서도 과학자들은 유인원의 화석과 오래된 인간의 화석은 발견하면서도 단 한 번도 중간화석을 발견한 예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가 무어라해도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또 재료는 흙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게서 그 많은 재료들 중에 흙이라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좋은 재료들 중에는 금도 있고, 은도 있고, 철고 있고....

흙은 티끌을 말한다.1),흙은 약점을 상징한다(시109;14)

2),흙은 하찮을 것은 상징한다(창18;27)

3),흙은 부정을 상징한다(사52;2)

4),흙은 수치스러움을 상징한다(애3;29, 욥42;6)

5),흙은 애도를 상징한다(수7;6)

6),흙은 죽음을 상징한다(전3;20, 12;

7.) H. Bonear.

결코 교만할 수 없게 만드셨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 가야하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3,생기로 지음심 2;7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사람은 모태로부터 태어나서 흙을 밟고 살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단순한 과정을 밟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과 영혼은 결코 단순한 동물적의 삶과는 같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원시인과 현대인을 막론하고 영생을 갈구하여 종교를 찾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본래의 형상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하며 그것이 곧 에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길이다.

사람은 생기를 맏은 영이기에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인 것이다.

생기는 사람에게만 특별하게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영원한 불멸의 존재인 것이다. 우주 만물과 달리 즉 다른 짐승들과 달라서 죽음 그자체로 모든게 끝나는게 아니다.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음은 영이신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를 맺기 위하이다. 영적인 관계 속에서 영적인 교제를 하나님께서 원하셨기 때문이다.

만약에 영혼을 가진 인간이 조물주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 없이 살고 있다면 이는 영혼을 부여 받지 못하고 태어난 동물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만물의 여장이라는 말은 단순히 동물들보다 좀 뛰어난 점을 지먹함이 아닌줄 안자.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를 사실은 따질 것도 못된다.

S.M.Simmons.라는 분이 "호흡"이라는 주제로 아주 재미 있는 글을 썼다. 생물학자들의 의하면 숨을 쉰다는 자체는 곧 일종의 연소라는 것이다. 사람은 숨을 쉬면서 우리 몸 속에 있는 유기 물질을 타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난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때는 원리와 같다는 것이다.

(1),식물 식물이 숨쉬는 것을 탄소동화작용이라고 부른다.

(2),동물 고등한 동물일 수록 숨쉬는게 더 활발한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이 1년 동안 호흡하여 방출하는 열량은 석탄 170파운드에 해당한다고 한다. 또 한사람이 매달 1 bushel 이 넘는 량의 숯을 연소한다고 한다.

(3),영적인 호흡 인간의 사고도 호흡의 일종이다.

오늘 세상을 이렇게 잘 살게 만든 것이 생기가 아닐까 하나님께서 주신 생기가 오늘의 문화와 과학을 낳은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가 어떻게 호흡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얼마든지 달라 질 수 있다는 계산이 된다.

우리 믿음의 사람 한사람 한 사람의 호흡이 이토록 귀중한 것이다.

시150;6절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한가지의 호흡을 더 많이하고 있는 것이다.

날마다 찬양하면서 살아야 한다. 날마다 영광을 돌리면서 살아야 한다. 날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날마다 새롭게 변화하면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가 아닌가 주님을 만나 뵈올때 주님 닮은 모습으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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