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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물음 (창 0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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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람은 관계적인 존재이다 2,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3,네 동료는 어디 있느냐

우리네 속담에 "독불장군은 없다"라는 것이 있다. 이는 "인간"이라는 단어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 모두는 서로 서로가 서로의 관계를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와, 남편과 아내로, 아버지와 어머니로, 부모와 자식으로, 가족과 가족으로, 사회와 사회로, 국가와 국가간으로 전부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더우기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기에 더 귀한 존재들인 것이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좆겨남을 당했다함은 곧 하나님과의 관게에서 단절되었다는 말인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후 저들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을 얻었는데 그게 바로 가인이었고 또 한 아들을 다시 얻었는데 가인의 동생인 아벨이었다.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 얼마나 행복했을까

행복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제 이들은 추방되었던 동산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찾게 되었다.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것이었다.

형은 형대로 동생은 동생대로 각기 나름대로의 제단을 쌓았었다.

이것이 한장의 그림이라고 생각해 보시라. 세상에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이 또 있을까 제단을 나란히 쌓고 있는 형제의 모습...

그런데 그날 형인 가인이 동생인 아벨을 돌로 쳐 죽이는 살인이 있었다. 그것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후에 살인이 있었다.

우리는 여기 이 사건을 통하여 가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행복했던 한 가정이 그렇게도 아름답던 그림이 여지 없이 산산조각이 나고 마는 것을 본다.

관계의 파괴가 얼마나 잔인한가를 보여 준다.

1,사람은 관계의 존재이다. 이 세상에 관계가 없이 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혈연적 관계 성씨를 따지기 전에 먼저 우리가 아담의 원죄를 인정한다면 우리 모두는 한 혈통의 자손이 분명하니 우리는 서로가 한 형제인 것이다

 2),종교적 관계 우리는 다 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이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기 때문이다. 같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서로 서로가 형제인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3),공동체 관계 또 우리는 교회 생활을 함게 하고 있는 그리스도 안에 공동체의 일원이다. 공동체라함은 가인 한사람이 잘못함으로 인하여 온 가정이 다 파괴되고 말았던 것과 같이 한 사람이 잘못을 저지름으로 말미암아 공동체 전체가 흔딜리게 되기 도하고 또 한 사람 한 사람이 잘 함으로 말미암아 전체가 다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4),본능적 관계 우리 모두는 공히 동물적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다같이 약접과 결점을 가지고 산다는 말이다. 그리고 끝내는 한줌의 티끌로 돌아 가야만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했기 때문이었다. 에덴 동산에서 좆겨남을 당했기 때문이다. 살인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2,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어느날 하나님께서 가인을 찾아 오셨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다. 이 물은만 물으신게 아니다. 10절에 "네가 무었을 했느냐도 함께 물으셨다.

그 때 가인은 이렇게 대답을 했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니이까" 라고...

여기 하나님께서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의 물음의 "어디"라는 말은 두가지로 해석해서 들을 수 있다. 하나는 장소적인 어디를 생각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상태적인 어디를 말할 수 있다. "어떻게 있느냐"이다.

그런데 가인의 대답은 아우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아우는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에 여러분들을 향하여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고 물고 계시는 줄 안다.

여러분들의 아우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들의 아우들은 지금 어떻게들 살고 있는가

사람들이 행한 모든 일들을 땅이 우리가 밝고 있는 이 땅이 하나님께 호소한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낱낱이 빠짐없이 하나님께 고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10절 하반절의 말씀을 보라!

가인의 행위를 하나님께 땅이 입을 벌려 호소하고 있다. 우리들의 선행이나 악행이나 모든 행위가 다 호소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의 연조가 많은신 분들일 수록 더 많은 아우가 있을 것이다. 직분이 앞섰을 수록 더 많은 아우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들의 아우들은 무었을 하고 있으며 어디서 어떻게들 살고 있는가 정말 아우들의 삶에 관신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가인을 찾아 와 물으시던 하나님께서 이 시간 여러분들을 향하여 묻는다.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라고...

가인은 모른다는 말만 한 것이 아니고 덛붙여서 이런말을 했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했었다. 이렇게 대답을 해서는 않된다. 이는 대답이 아니라 항거이다.

형이 동생을 지키지 않으면 누가 동생을 지켜 주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미음의 동생을 지켜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럼 어떻게함이 동생을 지켜 주는 것일까 말 그대로 지켜준다는 것은 다른 길로 곁길로 가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는 것이다.

가정에서도 어떤 형제는 동생을 위한다는게 실천의 모범은 없고 입으로만 말로만 발라 붙이는 사람도 있다. 오병이어의 일 생각해 보시라. 제자들이 에수님께 무었을 건의했었나 날이 저물었으니 사람들을 동네에 보내어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자고 했었다. 그 때 예수께서 "너희들이 주라"고 하시니 또 무어라고 대답을 했었던가 "이 많은 사람이 어디서 무었을 ...." 아에 가망도 없었던 것을 말했던 제자들...

한번은 한 여인이 값진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다 붙도 자기의 머리털로 씻을 때 가룟 유다가 무어라고 했었나 "어찌하여 허비하느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라고 했다. 왜 자기 것으로 하지 남의 것으로 할려고 하나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잘 양육을 하는 것이다. 행함으로, 생활로, 헌신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3,네 동료는 어디 있느냐

네아우가 어디 있느냐의 물음을 이렇게도 들린다. "네 동료는 어디 있느냐"라고도 들을 수 있다. "네 이웃은 어디 있느냐"로도 들린다. 동료라함은 나와 함게하고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을 말한다. 학교, 직장, 시장, 그 어디나 적용된다.

하나님께서 물으신다. 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 때문에 지금 네 동료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를 네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이 되었으니 네 동료는 어디 있느냐고.. 네가 예수의 사랑을 배운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 네 동료는 무었을 하고 있는가... 네가 십자가를 아는 사람이 되었기에 네 동료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묻고 계신다.

지금 여러분들의 동료들은 여러분을 닮아도 좋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여러분을 닮을 수 있다면 어떤 것이 좋은 점일가 정말 여러분을 닮는다면 그 모습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날까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묻습니다. "네 동료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고...

주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는냐'라고 물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자기 몸을 거꾸러 매달려 죽음으로 대답을 했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옥에서 단두대의 형장의 이슬로 대답을 했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향하여 묻고 계신다.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다.

어떻게 대답을 하고 있는가 마음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주께서 물으실 때 내 아우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음을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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