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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01: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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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에는 모든 만물의 근원과 그 시작을 하나님의 창 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의 과정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창조되는 날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입니다. 10절과 12,18,21,25절에도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하 나님의 창조를 마치시고 지금까지의 감탄사 보다 더욱 강조된 의미로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가 다 완성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그렇 게 기뻐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것은 하나님 의 만족이며,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만족과 기 쁨의 의미를 몇 가지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고 하심은 창조물 자체의 존재 목적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을 지으실 때에는 선한 목적을 위해 지 으셨습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 지으신 모든 창조물을 보실 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첫째날 천지와 빛을 창조하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고 하십니다.

그리고 둘째날 궁창을 만드신 다음, 셋째날 바다와 땅과 식물이 있게 하셨습니다. 넷째날에는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셨습니다.

다섯째날엔 조류와 어류를 창조하셨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보시고 그 어느것 하나 쓸데없거나 불필요 한 것이 없이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아름다운 것이며 하나님 보시기 에 좋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고전14:10)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이같이 많되 뜻 없는 소리 는 없나니 " 라고 했습니다. 하물며 형상이 있는 창조물은 당연 히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있습니다.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식물학자요, 농부인 조지 워싱턴 카 버는 땅콩한 알에서 수레의 차축에 쓰이는 기름과 화장품 인쇄 잉크 초 비누,샴푸등 무려 3백여 가지의 상품을 개발, 세계문명 에 기여했다.

그가 땅콩을 보며 늘 생각하던 것은 [하나님께서 땅콩에 어떤 자연의 신비를 담으셨을테니 이것을 연구해 보자] 였다. 그리고 그는 기도하면서 땅콩에 담긴 하나님의신비를 캐나갔다. 그는 흑인노예 출신이었으나 불우한 환경을 신앙으로 극복, 위대한 식 물학자가 된 것이다.

하루는 그가 상원 의원들 모임에 초청을 받고 예정된 10분동안 연설했는데 이 연설에 감동을 받는 상원의원들이 계속 간청 무 려 1시간30분동안 명연설의 요지는 [땅콩 한 알에 담긴 하나님의 무한한 창조섭리]였다.

 2. 하나님의 창조를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만 족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만물을 만드실 때는 오늘날 진화 론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생물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의 장 이 아니고 완벽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울 정도로 조화, 균 형, 질서 그리고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만드신 것이 틀림이 없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먹는 소금은 대단히 소중한 것이다. 음식의 맛을 내기도하고, 방부제도 되고, 우리가 먹지 않으면 죽기도 한다. 이 렇게 중요한 소금이 극히 나쁜 독소 두 가지로 구성된 것은 놀 라운 일이다. 소금은 '소디움'과 '크로라이드'라는 두 가지 원소가 합하여 된 것인데, 사람이 이 소디움과 크로라이드를 각각 따로 먹으면 죽게 되는 것이다.

물도 참 이상하다. 물은 수소와 산소 이 두 가지가 합하여 된 것인데, 산소는 불이 더 잘 타도록 돕는 것이고, 수소는 불에 아 주 잘 타는 물질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합하면 정반대인 물 이 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자연계는 이와 같이 이상스럽고, 놀라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상한 일들은 서로 다른 특 성을 가진 것들이 조화를 이룰 때 생기는 것이다.

(딤전4: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 면 버릴 것이 없나니 (계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바로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질서있는 조화를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조화를 이루며 질서를 이룰수록 아 름답고 하나님 보시게에 좋은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 정도 그렇습니다.

사회에는 세 종류의 사회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밀림의 사회입니다. 먹느냐 먹히느냐,죽느냐 죽이느 냐의 살벌한 투쟁이 벌어집니다. 이 사회는 폭력과 투쟁의 법칙 이 지배하는 약육강식, 사생결단의 사회입니다.

둘째는 스포츠의 사회입니다. 규칙을 지키며 정정당당하게 싸워 공정한 심판으로 승패를 가립니다. 법과 정의에 의한 경 쟁과 투쟁의 사회입니다.

이기는 이는 기쁘고 자랑스럽지만, 지는 사람은 슬프고 괴로운 냉혹한 사회입니다.

셋째는 교향악의 사회입니다. 여기에는 투쟁도 없고 승자나 패자도 없습니다. 교향악에서는 모든 악기가 정연한 질서를 지키 면서 절제된 자기의 소리로 협동과 조화를 창조해냅니다.

우리는 어떤 사회가 아름다운지를 압니다. 어떤 가정이 아름다 우며, 어떤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지를 알 것입니다. 교향악 단 같은 질서와 조화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피비린내가 나고 부패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는 역사에 서 하나님이 탄식하셨습니다.

 3. 하나님 보시게에 심히 좋았더라 는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 다.

 이 말씀은 여섯째날 인간을 창조하신 후 인간에게 모든 창조 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시고 심히 좋아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관심은 다른 창조물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에게 관심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하시는 것처럼 다른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것을 보시고 하나 님은 참으로 만족해하십니다.

아무리 가난한 집에도 자식이 그 앞에서 재롱을 부리고 예쁜 행동을 하면 그 가정에는 웃음이 있게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다른 피조물들과 조 화를 이루며, 그것들을 다스릴 때에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심 히 좋아하십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가장 마음아픈 것은 인간의 타락입니다. 하 나님의 심히 기뻐하심과 마음아파하시는 것은 성경의 여러곳에 서 알수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즉 잃었던 아들을 찾는 아버지의 비유와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 잃었버린 은전을 찾는 비유는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잘 나타내줍니다.

(눅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 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눅15:20) 이 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 데 아버지 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 15: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 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 나이다 하나 (눅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눅 15: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 자 (눅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 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창세기의 하나님의 심히 기뻐하심과 좋아하심은 인간을 향하 신 것입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고, 하나님의 만족을 드리게 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예 수 그리스도께 돌아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롬8: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롬8: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 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 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8:22) 피조물이 다 이 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 8: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 다리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바로 창세에 누렸던 그 하나님의 기쁜과 만족,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그것 을 얻고자 하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이 사 랑하시는 자를 구원하시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께 인도하 시기 위하여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시기 전에는 견 딜 수 없습니다.

자식이 죽은 사람에게 "다른 자식하나 놔서 기르면 되지" 라 고 위로해 보세요. 그 위로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부모는 그 자식이 아니면 않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 시고 좋아하시는 것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것이며, 그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기를 바라 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를 보시고 하나님의 심히 좋아하십니다. 이렇 게 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결코 견딜 수 없어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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