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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음을 통과한 신자 (요 12: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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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형제가 풀 밭에서 놀고 있는데 큰 벌 한마리가 빙빙 돌더니 형의 머리 를 쏘았습니다. 그리고는 곧 동생 한테로 덤벼드니까 무서워서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형이 말하기를 "얘야, 무서워 하지마, 그 벌은 나를 쏠때 독임이 빠졌기 때문에 쏠 수가 없단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 없는 몸을 입으시고 오셔서 사탄이 쏘는 독침을 그 몸으로 받으시고 그 피를 쏟아 우리 죄인들을 위한 속죄 제물이 되어 죽으시고 부 활 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정복 하셨습니다.

 1. 죽음은 죽음으로 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속죄의 죽음을 죽어 주셨으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 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요 12:24)고 말씀 하신 것은, 예수님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고 사망 권세를 이기게 해 주실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제1의 아담의 범 죄로 말미암아 사망의 종이 되었던 우리가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5절에 "...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 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인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고 사도 바울도 말씀 했습니다.

 2. 죽었다가 부활한 자 같이 살자.

 스펄젼(C.H. Spurgeon) 목사님은 "당신은 살아서 주님이 재림하실 때 변화 를 받겠느냐, 죽었다가 부활 하겠느냐"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죽 었다가 부활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하면서 예수님이 죽음을 거쳐 부활 하셨 으니 자기는 예수님이 거치신 과정을 거치는 것이 더 좋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확신에 찬 말입니까 그리고 그는 "차라리 죽읍시다. 우리 대장 예 수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 하셨으니 부하된 우리들도 즐거이 따 릅시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확신에 찬 말입니까

반드시 죽음을 거쳐야 영광의 부활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들도 지금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살아야 합니 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 때 우리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 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 난 것입니다. 그르고 장차 예수께서 재 림하실 때 우리의 육신도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과거에 죽은 것처 럼, 믿고, 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것 처럼 믿고 현재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삶 속에서 마치 과거에 죽어서 천국에 갔다가 지금 부활해서 돌아온 것 처럼 살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6장 8절에서 9절에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 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앓이로라"고 하 시고 11절에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 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길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여긴다"는 말 은 "인정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순간 순간 "옛 사람은 죽고 새 사가으 로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될 때 그 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의 생활 속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술을 끊었는데도 퇴근하고 돌아올 때 한 술집 앞을 지나오게 되는데 그때마다 술냄새가 코로 솔솔 들어와서는 들어가 한 잔 하고는 주일날 괴로워서 울며 회개하곤 했는데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이제 나는 새 사람이다"라고 외우며 그 술집 앞으로 지날때 무사 히 유혹을 이길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 여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자로 여길 지어 다"한 말씀을 명심하고 생활에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뿐 아니라 모든 가치관도 죽었다가 천국을 갔다 온 사람처럼 달라진 삶 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렇게 산 사람입니다. 고린도 후서 12장 2절에 이하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사람을 아노니 14년 전 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은 세상 을 분토와 같이 여기며 실수가 있었고 결혼도 하지 않은채 복음만을 전하다 가 담대해 순교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전에 설때 세상것은 도무지 찬양할 수가 없고, 세상에 대한 집 착을 버릴 수가 있고 압력도 벗어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귀 영화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하나님의 나라의 것과 족히 비교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자 와 같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죽지 않고는 부활의 새 생명이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죽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입니 다. 죽지 않은 옛 사람은 아무리 잘나고 지식이 많고 착하고 재주가 많아도 하나님께는 무가치한 것입니다.

 죠지 뭘러 (George Muller)가 말하기를 "나는 어떤 날 죽었다, 죠지 뮐러 에 대해서 죽고 세상이나 친구들의 칭찬에 대해서 죽고, 책망에 대해서도 죽었다"고 했습니다. 죽은 사람은 욕을 해도 꼬집어도 모르고, 송곳으로 찔 러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 옛 사람이 죽었다는 믿음으로 살 때에 불쾌할 것도 없고 실망할 것도 억울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칭찬을 듣는 다고 우 쭐하고 교만할 것도 없고 책망이나 비방을 듣는다고 실망하거나 불쾌할 것 도 없습니다.

 다같이 한번 따라 합시다. "나는 죽었다. 0 0 0 (자기 이름을 넣어서)는 죽었다."

이제 성공하거나 칭찬 들을 일이 있으면 주님께 감사하고 영광 돌리고 불 쾌한 일이나 근심스러운 일이 있으면 나와 함께 하신 주님께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 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 신 하나님이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신앙의 극치를 말했 습니다.

 그러므로 새 생명이 나타나는 생활은 믿음으로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 로 다시 산 것 같이 살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칭의와 구원은 단번에 순 간적으로 이루어져 변함이 없지만, 새 사람의 생활, 즉 성화된 생활은 믿음 의 긴장 속에서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화된 성도라도 옛 사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믿음의 긴장이 풀어지면 죄악의 옛 성품 이 다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로마서 6장 13절에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드리라"는 말은 "yield"(생산하다,주다.양도하다.) 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3. 내가 많이 죽어야 남을 많이 살립니다.

 나 자신이 희생하고 죽어지는 범위가 넓고 시간이 길면 그만큼 나로 인하 여 많은 사람이 생명을 얻고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10절에서 12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 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 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 에서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위해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고, 사망은 우리 안에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 한다는 말씀은 우리가 많이 죽을수록 다른 사람이 많이 생명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법궤를 맨 제사장 들이 요단강에 발을 들여 놓을 때에 물이 갈라졌고, 그들이 요단강 한 복판 에 굳게 버티고 서 있을 때에 많은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건너 갔습니다.

제사장들이 강에서 올라 오자마자 요단강이 합쳐져서 아무도 건널 수가 없 게 된 것입니다.

 요단강은 죽음의 상징입니다. 제사장들이 죽음 한 가운데 굳게 버티고 서 있을 때 많은 사람이 생명을 얻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 다.

 내가 많이 죽을수록 남을 많이 살리게 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고는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맡은 제사장, 즉, 주의 종들이 남의 목회 흉내도 내고, 설 교도 그대로 모방도 하는데,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 것은, 진실한 희생과 죽 어지는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통과해야 자신도 살고 남도 살리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육성이 죽지 않고 깨어지지 않는데, 그 속에 든 영적 생명의 능력이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죽음을 거쳐 부활의 역 사가 많이 나타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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