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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인생의 기념비는 어디에 (수 04: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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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묘지 앞에 세워져 있는 묘비의 비문을 읽으면서 인생의 많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기념비문을 새겨놓고 누군가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역사의 사건을 간직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교훈, 역사적 교훈을 기념비를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분명한 선민의식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민족사 가운데 어떻게 역사했느냐 하는 것을 마음판에 새깁니다. 그들은 유월절과 장막절을 지키고 오순절을 지키면서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어떻게 역사했는가 하는 것을 살피고 기념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독립기념관이 있고 전쟁 기념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통하여 후손들에게 역사의식을 가르칩니다. 우리 나라의 부끄러웠던 모습을 가르치고 영광스러웠던 모습들을 가르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매 년 일본의 목사님들을 초대해서 세미나를 여는데 금년에도 약 300명이 우리 수도원에 와서 세미나를 열고 교회성장학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꼭 빠지지 않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하나는 수원의 제암리 감리교회를 방문하는 일입니다.

3.1운동 당시 일본 헌병들이 그 교회를 포위하여 예배당에 불을 지르고 총질을 함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기독교인이 학살당한 곳입니다. 저들이 그 교회를 찾아가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그들의 조상들이 얼마나 흉악한 죄를 범했는지를 자백하는 일입니다.
또 하나는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입니다. 그들의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던 역사의 교훈을 한국에 와서 배움으로 말미암아 일본 기독교인의 참회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쓰라린 역사, 영광스러운 역사들을 생각하면서 기념비에 새겨져 있는 것을 읽고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던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후에 또 다시 요단강 앞에 섰습니다. 그들은 도저히 강을 건너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요단강물에 들어서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법궤를 메고 요단강물에 들어서는 순간 40년 전 홍해가 갈라졌던 것처럼 요단강물이 육지같이 갈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육지같이 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요단강 물 속에 있던 12개의 돌을 취해 그 가운데 기념비를 세워 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12개의 돌을 취해다가 동쪽 길갈이라는 곳에 다시 기념비를 세우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요단강 물 속에서 12돌을 취해서 길갈에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 기념비를 후손들이 묻거들랑 여호와의 권능의 손이 우리와같이 계셨고 하나님 앞에 영원토록 경배하기 위해서 이 비석을 세웠노라고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바로 가르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작년에 북경을 방문했을 때 중국 황제의 무덤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묘비에는 황제의 이름만 써 있지 아무런 기록이 없었습니다. 이 황제는 아무런 업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비문에는 무엇이라고 쓸 것인가 내 인생의 기념비는 어디에 세울 것인가
저는 오늘 아침에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은혜로 구원받은 곳에 기념비를 세우라.
이스라엘 백성이 길갈에 세운 기념비는 400년간의 노예생활과 40년간의 황야생활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마지막 기념비입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고 하는 기념비를 세운 것입니다.
우리도 다 구원받은 체험이 있습니다. 그 구원의 은총에 대해 감사하는 기념비를 세워야 됩니다.
사무엘상 7장에 보면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하려 할 때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미스바로 다 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 통회 자복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공격하던 블레셋 군대에게 뇌성벽력을 발하여 그들이 도망을 쳤습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했습니다. 사무엘은 돌을 취해서 미스바와 센 사이에 제단을 쌓고 그 곳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도우셔서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이 기념비가 세워져야 합니다.
야곱이 돌베게를 하고 고독하게 광야에 누워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는 그 말씀을 듣고 벌떡 일어나 자기가 베고 자던 돌에 기름을 붓고 그곳에 제단을 쌓아 벧엘이라고 했습니다. 벧엘이란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데 대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념비를 세우고, 내 마음 속에 구원받은 체험을 간직하는 삶의 기념비를 세워서 감사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생일을 예수 믿는 날로 바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세례받은 날로 바꾸기도 합니다.
저도 제 일생을 통해서 수많은 구원의 체험을 했습니다. 물 속에 빠져들어가는 것을 건져내는 것처럼, 죄악과 흑암의 세력에서, 이 혼탁한 사회 속에서 예수님께서 나를 건져주신 구원의 체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열심히 예수를 믿어보려고 집회 때마다 참석을 하고 철야기도와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주신 구원의 체험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6.25 동란때 포탄에 맞아 쓰러져 불구덩이 속에서 죽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신 것, 이 체험 때문에 오늘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합니다. 내 마음에 기념비를 세우고 늘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할 때에 우리의 신앙에 불이 일어나고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인 줄로 믿습니다. 구원받은 체험을 증거하는 기념비를 우리 마음 가운데 새겨야 합니다.
영국의 기독교 변증가인 C.S.루이스라는 사람은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찰스 윌리암스가 죽었을때 그의 장례식에서 이렇게 조사를 했습니다.
“이제 천국은 무척 가까워졌습니다. 멀리 생각되던 천국이 이젠 이웃집이 되었습니다. 그 곳에 내 친구 찰스가 있으니 얼마나 가까운 곳입니까”
그후 채 1년이 못 되어 그의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그는 일기 속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제 천국은 내 집처럼 되었소. 내 사랑하는 아내 조이가 그곳에 가 있고 친구 찰스가 있으니 그곳이 내 집이 아닌가.”
슬픔의 골짜기에서 천국을 생각하고 구원받은 기념비를 마음 속에 새긴 것입니다.
내 인생의 구원받은 기념비는 어디에 세울 것입니까

2. 사랑의 기적을 체험한 곳에 기념비를 세우라.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동안 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불기둥의 기적, 구름기둥의 기적, 홍해가 육지같이 갈라지는 기적, 반석에서 물이 터져나오는 기적,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 이들은 모두 전적으로 하나님의 보호로 이루어진 기적의 체험들입니다. 그들은 어제나 오늘이나 연원토록 동일하신 것을 기적을 통해 체험했습니다. 이 기적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의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 하던 것 같이 하였더라”(수 4:14)
모세가 기적을 일으킨 것은 모세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들어서 기적을 베풀게 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수아도 하나님께서 들어쓰실 때에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백성들이 그를 보고 모두 다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40년 전에 홍해를 가르게 하셨던 하나님이 오늘도 살아계셔서 여러분 앞에 있는 요단강을 갈라주시고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시는 기적의 역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집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날 때마다 기적을 체험하고, 사랑하는 남편이 출근해서 자동차를 타고 무사히 돌아올 때마다 기적을 체험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하루하루 사는 것이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다 버리시고 예수의 보혈로 우리를 새롭게 하신 그것에 기념비를 세워서 사랑의 기적을 기념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만찬 식에 참여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구원해주신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지성전을 여러 곳에 짓고 있습니다. 중동과 분당에 짓고 있고 하안성잔과 세미나하우스도 짓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때에, 주님이 오시기 전에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 여러분 모두 이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공식 때마다 흙을 뜨는 삽과 머리에 썼던 헬멧에 기념사인을 해서 그것들을 보관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기적의 기념비를 세우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성지순례를 할 때, 우리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내산 정상에서 있는 모세의 성전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리고 성찬식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빈 무덤에 가서 기도를 드립니다.
갈릴리 해변가의 팔복교회,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켰던 그 교회에 가서 성찬식을 행할 때면 마치 예수님께서 오셔서 떡을 떼어 주시는 것 같은 감격을 느낍니다.
지난번 터키 땅에 있는 유명한 동굴교회를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누가와 바울과 베드로와 아볼로가 만나서 예배를 드리고 성찬식을 했던 교회인데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그곳에 찾아가서 하나님 앞에 찬송을 드리고 성찬을 베풀 때에 마치 누가나 바울이나 베드로를 만난 것처럼 감격스러운 눈물을 흘리면서 서로 부둥켜 안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동굴교회를 지키는 터키인이 그 앞에 있는 선인장 가지 하나를 잘라 주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성경책에 끼워서 가져왔는데 와서 보니 다 시들어버려 이제는 생명이 없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을 화분에 심고 물을 주었더니 다시 살아났습니다. 저는 그것을 볼 때마다 전도에 앞장섰던 안디옥교회를 생각하며 내 마음에 기념비를 새기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 남단에 희망봉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처음에 그곳은 ‘폭풍의 곶, 악마의 곶’이라 불렀습니다. 그것을 통과하는 배마다 폭풍우 속에 휘말려 난파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6세기 포르투갈의 탐험가인 바스코다가마란 사람이 모험적으로 그 죽음의 곶을 헤치고 나와 잔잔한 인도양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때부터 그곳을 희망봉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죽음의 골짜기를 헤매다가 예수를 만난 후 잔잔한 하나님의 축복의 은총 속에서 인생의 항해를 하게 될 때에 죽음의 곶이 희망봉으로 변해지는 축복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사랑의 기적의 체험은 예수를 믿지 않고는 결코 체험할 수 없는 놀라운 것입니다. 이 체험을 영원토록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간직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능력으로 뜻을 이루게 한 곳에 기념비를 세우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고 내 꿈이 이루어지게 하신 곳에 기념비를 세우는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너 이스라엘 백성은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것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40년 동안 갖가지 시련 속에서도 마지막으로 뜻을 이루게 하신 것이 감사하고 그 은총에 감사해서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곳 이름은 길갈이라고 합니다. 길갈은 여리고 성에서 1/4마일 떨어진 조그만 고을인데 원래는 군사기지였던 곳이 그곳에서 12개의 기념돌을 세운 이후로 종교의 센타가 되었습니다. 신앙의 센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룬 기적을 체험한 기념의 마을이 된 것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너희 후손들이 12개의 돌이 무엇이냐고 묻거들랑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우리와 같이 계시고 그 뜻을 이루게 하신 기념비,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우리에게 주신 기념비라고 후손들에게 가르치라고 말씀했습니다.
미국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인 콜린포웰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걸프전의 영웅입니다. 그는 뉴욕 슬럼가인 사우드 브롬크스의 중학교 출신입니다. 범죄와 알콜과 폭행과 가난 속에서 공부한 사람입니다. 아직도 가난과 범죄속에서 헤매는 그 학교 학생들에게 한 사회 교사가 말하기를 “이 학교에서 콜린포웰 합참의장이 나왔습니다. 그에게 편지를 보냅시다.”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이 그에게 답장을 써보냈습니다. 포웰 장군은 펜타곤에서 친필로 그 학생들에게 답장을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판사도 나오고 장군도 나오고 위대한 지도자도 나올것이니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중퇴하지 마시오 열심히 공부하시오. 미래를 준비하시오. 내가 여러분의 꿈을 바라보고 있소.”
학생들은 합참의장인 포웰장군의 친필 편지를 읽고 자기들도 그와 같은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그 학교에서 마역이 없어지고 폭행이 없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뜻을 이루기까지 동행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산 기념비를 우리 교회는 세워 놓고 그것을 바라보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기념으로 가져온 두 개의 돌이 있습니다. 하나는 동서독을 가로질렀던 베를린 장벽에서 떼어온 콘크리트 돌입니다. 베를린장벽은 이데올로기가 쌓아 놓은 장벽이었습니다. 인간의 죄악이 쌓아 놓은 장벽이었습니다. 이제 그것은 다 무너지고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죄악으로, 탐심으로, 이데올로기로, 비진리로 세워진 장벽은 결국 부서지고 마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이 교회를 세울 때 땅 밑에 있던 반석을 깬 돌입니다.
“내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저는 이 기념돌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얼마나 큰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시는가 하는 것을 회상하게 됩니다.
내 인생의 기념비는 어디에 세울 것입니까
은혜로 구원받은 기념비를 내 인생 한가운데에 세웁시다. 사랑의 기적을 체험한 것을 내 인생 한가운데에 세웁시다. 능력으로 뜻을 이루게 하신 기념비를 세우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시는 복된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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